7화(5,446자)

보고서 속의 가짜 면접관

8조 해킹한 정찰총국 막내 해커 · 금나율

2026년 11월 20일 금요일 아침⁠, 선양⁠. 리명길은 출근하자마자 에릭의 대화창을 열었다가 의자에서 반쯤 일어났다⁠. 어젯밤 명길이 서탑 류 사장네 식당에 송이 열 상자를 나르는 동안⁠, 대화창에는 명길이 쓰지 않은 말이 쌓여 있었다⁠.

「⁠재하 씨 팀장님 멋진 분이네요⁠!⁠! 망고도 하기 싫은 산책은 절대 안 해요 ㅎㅎㅎ 그건 그렇고 2차 면접은 언제가 좋아요⁠? 빨리 잡읍시다⁠!⁠」

바로 위에 「⁠재하⁠」가 보낸 긴 답이 있었다⁠. 명길은 위로 올라가 한 줄씩 읽었다⁠. 은사님 얘기는 저도 잘 몰라요⁠. 저희 팀장님이 옛날 다니던 데서 시키는 일이 싫어서 나왔대요⁠. 어머니가 가라고 하셨대요⁠.

명길은 「⁠어머니가 가라고 하셨대요⁠」에서 오래 멈췄다⁠. 김책 실습실에서 한창범 교원은 이름을 묻지 말라고 했다⁠. 이름 대신 까닭이 왔다⁠. 시키는 일이 싫어서⁠. 명길은 지금 시키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젯밤 류 사장은 송이를 받고 명길을 붙잡아 앉혔다⁠. 칠보산 동쪽 송이가 없다면 냉면이라도 먹고 가라고 했고⁠, 명길은 한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일어서지 못했다⁠. 류 사장은 냉면을 먹는 명길을 보며 염 과장보다 막내가 정직하게 생겼다고 했다⁠. 명길이 냉면 국물을 마시는 사이⁠, 사무실에서는 에릭이 느낌표를 두 개씩 쓰고 있었다⁠.

“⁠막내⁠, 왔니⁠? 2차 면접 잡았다⁠. 월요일 밤⁠.⁠”

염상혁이 해바라기씨 봉지를 흔들며 들어왔다⁠.

*

“⁠선배님⁠, 이건 에릭 말투가 아닙니다⁠.⁠”

명길은 화면을 상혁 쪽으로 돌렸다⁠. 상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뭐가 아니냐⁠? 친절하고 밝다⁠.⁠”

“⁠에릭은 느낌표를 안 씁니다⁠. 육 주 동안 한 번도 안 썼습니다⁠. 그리고 ㅎ을 세 개 쓰면 남조선에서는 비웃는 겁니다⁠.⁠”

“⁠두 개는⁠?⁠”

“⁠웃는 겁니다⁠.⁠”

“⁠하나는⁠?⁠”

“⁠화난 겁니다⁠.⁠”

상혁이 입을 다물고 해바라기씨를 하나 깠다⁠. 까다가 껍질째 삼켰다⁠. 기침을 두 번 하고 나서 다시 목소리를 세웠다⁠.

“⁠막내⁠, 네가 너무 느려서 그렇다⁠. 사장님이 허락하셨다⁠. 어젯밤 그 아새끼가 팀장 흉을 보는데⁠, 이직할 마음이 굳은 거다⁠. 그럴 때 치고 들어가야 한다⁠. 영업이 원래 그렇다⁠.⁠”

“⁠재하는 송이 사는 류 사장이 아닙니다⁠.⁠”

“⁠사람은 다 류 사장이다⁠.⁠” 상혁이 명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막내⁠, 어젯밤 그 팀장 이야기 읽고 네 얼굴이 왜 그러냐⁠? 남조선 회사 팀장이 회사 그만둔 이야기다⁠. 네가 왜 냉면 먹은 얼굴로 앉아 있니⁠?⁠”

명길은 대답하지 않았다⁠. 상혁이 의자를 끌어 바짝 다가앉았다⁠.

“⁠다니엘 계정⁠, 아직 있지⁠. 다니엘 엔지니어랑 나눈 이야기도 아직 있고⁠. 너 요즘 남조선 사람 말에 너무 귀를 기울인다⁠. 사람 고르는 손이 사람한테 붙들리면 그다음은 내가 안 봐도 안다⁠.⁠”

“⁠선배님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상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빠졌다⁠.

“⁠한 번 봤다⁠. 네가 김책 다닐 때⁠. 여기 앉던 형이었다⁠. 연말에 평양 간다고 기차 타고 갔는데⁠, 단둥에서 내리지를 않았다⁠.⁠”

“⁠어디서 내렸습니까⁠?⁠”

“⁠모른다⁠. 그 형 집 식구들이 어디서 내렸는지는 안다⁠.⁠”

상혁은 해바라기씨 봉지를 접어 서랍에 넣었다⁠. 서랍 안에 갓난아기 사진이 한 장 더 있었다⁠. 상혁은 사진을 덮지 않고 서랍을 닫았다⁠.

*

오후에 금철이 출력한 종이 뭉치를 명길의 책상에 내려놓았다⁠. 바이낸스가 11월 3일에 내놓은 초기 보고서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었다⁠. 맨 위에 금철의 글씨로 「⁠막내 — 읽어 둘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명길은 처음부터 읽었다⁠. 바이낸스는 사건을 다섯 단계로 나눴다⁠. 두 번째 단계에 명길의 여섯 주가 들어 있었다⁠. 구직 플랫폼으로 엔지니어에게 이직 제안⁠, 가짜 채용 절차⁠, 면접관은 사생활 사진이 담긴 SNS 계정까지 공유하며 친분을 쌓음⁠.

사생활 사진⁠. 골든레트리버와 저수지 둘레길과 피아노 발표회⁠. 명길이 인터넷 여기저기서 골라 다니엘의 삶으로 엮은 사진들이 바이낸스의 보고서에서는 한 줄짜리 낱말이었다⁠. 다니엘의 딸은 보고서에 없었다⁠. 엔지니어의 딸도 없었다⁠.

뒤 장에는 금철이 모아 둔 남쪽 기사들이 붙어 있었다⁠. 블록체인을 쫓는 미국 회사 TRM 랩스의 북한 조사관이자 FBI 출신인 닉 칼슨은 남쪽 방송과 이야기하면서⁠, 해커들이 사전 조사로 접근 권한을 가진 개발자를 골랐을 것이라고 했다⁠. 명길은 「⁠골랐을 것⁠」에 볼펜으로 밑줄을 그었다가⁠, 줄이 너무 진해서 손을 멈췄다⁠.

엔지니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바이낸스는 엔지니어 셋을 A⁠, B⁠, C로만 불렀다⁠. 명길이 여섯 주 동안 말을 건 사람은 B였다⁠. B는 이름도 얼굴도 딸도 없이 알파벳 하나로 남아 있었다⁠. 회사가 B를 내보냈는지⁠, 수사기관이 불렀는지⁠, 딸이 아빠 새 회사 이름을 아직도 묻는지⁠, 명길은 알 길이 없었다⁠.

창가에서 조장이 명길을 한 번 돌아보았다⁠. 조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명길의 손에 들린 종이를 보고 고개를 아주 조금 저었다⁠. 너무 오래 읽지 말라는 뜻으로 명길은 받아들였다⁠.

*

네 시⁠, 금철이 명길을 은행에 보냈다⁠. 류 사장이 보낸 송이 대금을 찾아오는 심부름이었다⁠. 진짜 송이의 진짜 돈이었다⁠. 상혁이 해바라기씨 두 봉지를 덧붙였고⁠, 조장은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은행에서 나온 명길은 골목으로 꺾지 않고 큰길을 걸었다⁠. 상혁이 늘 세 번 꺾어 돌아가던 길이었다⁠. 바람이 차서 사람들이 목도리에 코를 묻고 걸었다⁠. 길가 노점에서 군고구마 냄새가 났고⁠, 냄새를 따라 몇 걸음 더 가자 회색 건물이 나왔다⁠.

정문 위에 태극기가 늘어져 있었다⁠. 정문 옆 창구 앞에 중국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서류 봉투를 든 아주머니⁠, 여행 가방을 끄는 대학생⁠, 아이 손을 잡은 젊은 아버지가 차례를 기다렸다⁠. 남조선에 놀러 가려고 비자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었다⁠. 공안 둘이 줄 옆에 서서 하품을 참았다⁠. 건물 너머로 방송탑 꼭대기가 보였다⁠. 사무실 창에서 보던 방송탑을 반대쪽에서 보니 키가 더 커 보였다⁠.

명길은 걸음을 늦추지 않으려고 애썼다⁠. 건너편 인도에서 횡단보도까지⁠, 횡단보도에서 정문까지 걸음 수를 속으로 셌다⁠. 횡단보도 열네 걸음⁠, 정문까지 열 걸음⁠. 스물네 걸음이었다⁠.

공안 하나가 고개를 돌려 명길을 보았다⁠. 명길은 해바라기씨 봉지를 들어 보이듯 손을 흔들고⁠, 군고구마 노점 앞에 멈춰 고구마 두 개를 샀다⁠. 노점 주인이 거스름돈을 세는 동안 명길은 정문을 한 번 더 보았다⁠. 문은 열려 있었다⁠. 아이 손을 잡은 아버지가 서류를 받아 들고 웃으며 나왔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상혁이었다⁠.

“⁠막내⁠, 어디냐⁠? 해바라기씨 샀니⁠?⁠”

“⁠예⁠, 샀습니다⁠. 은행 앞입니다⁠.⁠”

“⁠고구마 냄새가 나는데⁠?⁠”

“⁠은행 앞에 고구마 장수가 있습니다⁠.⁠”

“⁠두 개 사 와라⁠. 하나는 조장 동지 거다⁠.⁠”

명길은 고구마 봉지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두 개였다⁠. 명길은 하나를 더 사고⁠, 골목으로 꺾어 세 번 돌아서 사무실로 돌아갔다⁠.

*

밤 아홉 시⁠, 사무실에 금철과 명길만 남았다⁠. 상혁은 류 사장에게 칠보산 동쪽 송이가 왜 없는지 설명하러 서탑에 갔다⁠. 조장은 아홉 시 정각에 가방을 들고 나갔다⁠. 조장은 사무실에서 가장 늦게 오고 가장 먼저 가는 사람이었고⁠, 아무도 그것을 따지지 않았다⁠.

금철이 칸막이에서 나와 명길의 책상에 하얀 봉투 하나를 올려놓았다⁠. 평양에서 단둥을 거쳐 송이 트럭으로 오는 편지였다⁠. 봉투 입구가 한 번 뜯겼다가 풀로 다시 붙어 있었다⁠.

“⁠동생이다⁠.⁠”

명길은 봉투를 들었다⁠. 풀이 덜 말라 손끝에 묻었다⁠.

“⁠사장님이 먼저 읽으셨습니까⁠?⁠”

“⁠여기 오는 편지는 다 내가 먼저 읽는다⁠. 내 편지도 누가 먼저 읽는다⁠.⁠”

금철은 자기 책상으로 가지 않고 명길의 옆자리⁠, 상혁의 의자에 앉았다⁠. 명길은 편지를 펼쳤다⁠. 은정의 글씨는 중학생 때보다 작아지고 반듯해져 있었다⁠.

「⁠오빠⁠, 대학 생활은 생각보다 춥습니다⁠. 강의실에 석탄이 늦게 들어와서 다들 장갑을 끼고 필기합니다⁠. 어머니 무릎은 겨울 들어 더 나빠지셨습니다⁠. 계단 많은 날은 제 팔을 잡고 다니십니다⁠. 오빠가 지난번에 보낸 손 크림은 어머니가 아까워서 안 바르시고 저한테 바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다음에는 두 개 보내 주십시오⁠. 참⁠, 같은 학과에 오빠 회사 사장님 댁 딸이 있습니다⁠.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둘이 같이 웃습니다⁠. 둘 다 아버지와 오빠가 송이를 판다고 알고 있습니다⁠. 송이 많이 파십시오⁠.⁠」

명길은 편지를 두 번 읽었다⁠. 두 번째에 「⁠송이 많이 파십시오⁠」에서 웃음이 났고⁠, 웃음이 목에서 막혀 기침이 되었다⁠.

“⁠사장님 따님이 은정이랑 같은 학과입니까⁠?⁠”

“⁠올해 같이 들어갔다⁠. 나도 편지 보고 알았다⁠.⁠” 금철이 손바닥으로 무릎을 문질렀다⁠. “⁠우리 딸은 손 크림을 세 개 보내 달라더라⁠.⁠”

명길은 편지를 접었다⁠. 금철과 명길 사이에 한동안 말이 없었다⁠. 벽에서 평양 시간 시계가 열 시를 쳤다⁠.

“⁠막내⁠. 최종 면접은 다음 주 금요일이다⁠. 평양 시간 밤 아홉 시⁠. 화상으로 한다⁠. 대표가 직접 나와서 과제를 낸다⁠.⁠”

“⁠예⁠.⁠”

“⁠대표 역은 네가 한다⁠.⁠”

명길은 고개를 들었다⁠.

“⁠사장님⁠, 제 얼굴은 스물세 살입니다⁠. 회사 대표 얼굴이 아닙니다⁠.⁠”

“⁠싱가포르 핀테크 대표다⁠. 요새는 그런 회사 대표들이 다 너만 하다⁠. 내 양복을 입어라⁠.⁠”

“⁠사장님 양복은 저한테 큽니다⁠.⁠”

“⁠크면 대표처럼 보인다⁠.⁠”

명길은 웃지 않았다⁠. 손에 든 편지에서 풀 냄새가 났다⁠.

“⁠다른 동무가 하면 안 되겠습니까⁠? 상혁 선배는 말을 잘합니다⁠.⁠”

“⁠상혁이는 느낌표를 두 개 쓴다며⁠.⁠”

금철도 웃지 않았다⁠. 명길은 금철이 느낌표 이야기까지 들었다는 것에 놀라지 않았다⁠. 사무실 안의 말은 다 칸막이를 넘어갔다⁠.

“⁠화면에 보안팀장이 나오면 어떻게 합니까⁠?⁠”

“⁠나오면 좋다⁠.⁠”

“⁠제가 그 사람 얼굴을 보면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금철이 상혁의 의자에서 일어섰다⁠. 명길의 책상 위 편지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그러니까 네가 해라⁠. 네가 못 하는 얼굴을 그 여자가 보면⁠, 그 여자도 못 한다⁠.⁠”

금철은 칸막이로 돌아가다가 문 앞에서 멈췄다⁠.

“⁠손 크림은 내가 다음 트럭에 넣겠다⁠. 은정이 것 두 개⁠, 우리 딸 것 세 개⁠.⁠”

금철은 칸막이 안으로 들어갔다가 옷걸이 하나를 들고 다시 나왔다⁠. 감색 양복 윗옷이었다⁠. 금철이 옷걸이를 명길의 의자 등받이에 걸었다⁠.

“⁠입어 봐라⁠.⁠”

명길은 점퍼를 벗고 윗옷에 팔을 넣었다⁠. 소매가 손가락 끝까지 내려왔고⁠, 어깨선이 팔꿈치 쪽으로 흘러내렸다⁠. 안주머니에서 귤껍질 한 조각이 떨어졌다⁠. 금철이 귤껍질을 주워 쓰레기통에 넣었다⁠.

“⁠팔을 걷어라⁠. 요새 대표들은 팔을 걷는다⁠.⁠”

명길이 소매를 두 번 접어 올렸다⁠. 꺼진 모니터에 비친 모습은 아버지 옷을 몰래 입은 중학생이었다⁠. 금철이 한참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대표 같다⁠.⁠”

“⁠사장님⁠, 진심이십니까⁠?⁠”

“⁠평양 시간으로 진심이다⁠.⁠”

금철이 칸막이 문을 닫았다⁠. 명길은 양복 윗옷을 벗어 옷걸이에 도로 걸고 점퍼를 입었다⁠. 편지는 점퍼 안주머니에 넣었다⁠. 휴대전화가 들어 있는 주머니였다⁠. 편지와 휴대전화가 가슴 앞에서 겹쳤다⁠. 휴대전화 안에는 다니엘과 엔지니어의 대화가 아직 지워지지 않은 채 있었다⁠. 명길은 붉은 배지 아래로 두 가지 무게를 같이 느끼며 오래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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