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47자)

함흥에서 온 사진

8조 해킹한 정찰총국 막내 해커 · 금나율

2026년 11월 16일 월요일 밤 아홉 시 사십오 분⁠, 서울 강남⁠. 김옥화는 19층 작은 회의실에서 인터넷에 이어진 노트북 한 대를 마주하고 있었다⁠. 재하의 계정이 열린 노트북이었다⁠. 옆자리에서 차승규가 컵떡볶이를 먹고 있었고⁠, 국정원 신참 하나가 맞은편에서 화면을 녹화했다⁠. 1차 면접 질문 열 개에 재하의 말투로 답을 하는 동안 옥화의 손바닥이 두 번 젖었다⁠.

마지막 답을 보낸 뒤 옥화는 산 이름을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었다⁠. 은사님 버릇이라는 답이 오자 고향 산을 묻는 한 줄을 더 보냈다⁠. 보내고 나서 화면이 오래 조용했다⁠.

삼 분쯤 지나 줄 하나가 올라왔다⁠.

「⁠선생님은 왜 가셨습니까⁠?⁠」

곧바로 프렌치불도그 사진 두 장이 따라 올라와 한 줄을 위로 밀었다⁠. 옥화는 사진이 아니라 사진에 밀려 올라간 한 줄을 보았다⁠. 물음표가 또박또박 찍혀 있었다⁠. 남쪽 개발자들은 채팅에서 물음표를 잘 안 찍었다⁠. 김책 실습실의 아이들은 보고서에 물음표를 빼먹으면 다시 썼다⁠.

옥화의 손가락이 자판으로 갔다⁠. 「⁠저는⁠」까지 쳤을 때 승규가 떡볶이 꼬치를 내려놓고 옥화의 손목을 잡았다⁠.

“⁠팀장님⁠, 답하지 마세요⁠.⁠”

“⁠물었습니다⁠. 아이가 물었어요⁠.⁠”

“⁠저쪽 옆에 누가 앉아 있는지 모릅니다⁠. 강아지 사진 두 장으로 가린 거 보세요⁠. 옆에 누가 있다가 잠깐 비운 겁니다⁠. 지금 팀장님이 답하면 그 사람이 돌아와서 읽어요⁠.⁠”

“⁠그럼 언제 답합니까⁠?⁠”

“⁠안 하는 게 제일 좋죠⁠.⁠”

옥화는 승규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에 떡볶이 양념이 묻어 있었다⁠. 옥화가 손목을 빼자 양념이 소매 끝에 묻었다⁠. 옥화는 「⁠저는⁠」을 한 자씩 지웠다⁠. 화면 아래 「⁠입력 중⁠」 표시가 사라졌다⁠.

“⁠차 선생님⁠, 열다섯 해 전에 제 조사실에서 제가 똑같이 물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어떻게 됩니까⁠, 하고요⁠.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기억하십니까⁠?⁠”

승규가 꼬치를 다시 집었다⁠. “⁠나중에 말씀드린다고 했죠⁠.⁠”

“⁠아직 안 하셨습니다⁠.⁠”

승규는 떡볶이를 씹으면서 노트북 덮개를 천천히 내렸다⁠.

*

11월 17일 화요일 점심⁠, 재하가 옥화의 자리로 김밥 두 줄을 들고 왔다⁠. 한 줄은 옥화 몫이었고⁠, 다른 한 줄은 이미 반이 없었다⁠.

“⁠팀장님⁠, 저 하나만 여쭤봐도 돼요⁠? 어젯밤에 제가 면접 봤어요⁠?⁠”

“⁠봤습니다⁠.⁠”

“⁠잘 봤어요⁠?⁠”

“⁠1차 붙었습니다⁠.⁠”

“⁠와⁠.⁠” 재하가 김밥을 내려놓았다⁠. “⁠근데 이상해요⁠. 제 이름으로 제가 모르는 면접에 붙었는데 기분이 좋아요⁠. 이거 병이죠⁠?⁠”

“⁠병 아닙니다⁠. 사람이 칭찬에 약한 겁니다⁠.⁠”

재하가 웃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팀장님⁠, 배 선임님 말인데요⁠. 요즘 금요일마다 연차 쓰세요⁠. 어제는 점심때 옥상에서 영어로 화상 통화를 하시더라고요⁠. 제가 담배 피우는 척하고 들었는데⁠, ‘⁠어드바이저⁠’라는 말만 알아들었어요⁠. 저 담배 안 피우는데 기침 엄청 했어요⁠.⁠”

옥화는 김밥 꽁다리를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지갑팀에서 새 프로그램을 서버에 올리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둘이었다⁠. 우 책임과 배 선임⁠.

지갑팀 자리로 가자 배 선임은 모니터 두 대 앞에서 이어폰을 귀에서 뺐다⁠. 노트북에 새 스티커가 하나 늘어 있었다⁠. 「⁠프리랜스 어드바이저⁠」라고 영어로 적힌 둥근 스티커였다⁠.

“⁠배 선임님⁠, 요즘 외부 자문 하세요⁠?⁠”

“⁠팀장님⁠, 또요⁠?⁠” 배 선임이 의자를 돌렸다⁠. “⁠제가 주말에 뭘 하든 회사가 알아야 돼요⁠? 연차는 제 연차예요⁠.⁠”

“⁠회사 일하고 겹치는 자문이면 알아야 합니다⁠. 겸업 신고 규정이 있습니다⁠.⁠”

“⁠겹치는 거 없어요⁠. 해외 스타트업 코드 봐 주는 거예요⁠. 애 학원비가 한 달에 이백이에요⁠. 회사가 연봉을 올려 주면 저도 주말에 애랑 놀아요⁠.⁠”

“⁠그 스타트업 이름 알려 주시겠습니까⁠?⁠”

“⁠싫은데요⁠.⁠” 배 선임이 휴대전화를 집어 화면이 아래로 가게 엎었다⁠. “⁠팀장님이 제 휴대전화까지 보시게요⁠? 그거 불법이잖아요⁠. 보안팀장님이 더 잘 아실 텐데⁠.⁠”

옥화는 대답하지 못했다⁠. 회사는 직원의 개인 휴대전화를 열어 볼 수 없었다⁠. 옥화가 남쪽에 와서 처음 배운 법 가운데 하나였고⁠, 옥화가 가장 좋아하는 법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대신 회사 노트북으로는 자문 일 하지 마십시오⁠. 그것만 부탁드립니다⁠.⁠”

“⁠안 해요⁠. 제가 바보예요⁠?⁠”

배 선임이 이어폰을 도로 꽂았다⁠. 옥화는 자리로 돌아와 수첩의 「⁠배⁠」 옆에 동그라미를 하나 더 그렸다⁠. 동그라미 두 개가 겹쳐서 눈사람처럼 보였다⁠. 재하가 지나가다 수첩을 보고 물었다⁠. “⁠팀장님⁠, 그거 눈사람이에요⁠?⁠” 옥화는 수첩을 덮었다⁠.

*

11월 18일 수요일 오후 두 시⁠, 옥화의 개인 휴대전화로 사진 한 장이 들어왔다⁠. 중국 연길 번호였다⁠. 중개인 김 선생이 백만 원을 받고 보낸 사진이었다⁠.

어머니는 시장 담벼락 앞에 서 있었다⁠. 누빔 외투를 입었고⁠, 머리에 회색 털모자를 썼고⁠, 두 손으로 종이 한 장을 가슴 앞에 들었다⁠. 종이에 연필로 날짜가 적혀 있었다⁠. 「⁠2026⁠. 11⁠. 14⁠」⁠. 사진 찍는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찍었다는 표시였다⁠. 날짜 아래 한 줄이 더 있었다⁠. 삐뚤빼뚤한 글씨였다⁠.

「⁠반룡산 단풍 다 졌다⁠」

옥화는 자리에 앉은 채로 사진을 손가락 두 개로 벌려 보았다⁠. 어머니의 얼굴이 화면 가득 커졌다⁠. 광대뼈가 도드라졌고⁠, 눈두덩이 내려앉았고⁠, 왼쪽 눈썹 위에 옥화가 모르는 흉터가 하나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는 평양역 대합실까지 따라 나오지 않았다⁠. 함흥 집 문 앞에서 옥화의 외투 단추를 끝까지 채워 주고⁠, 등을 한 번 밀었다⁠.

“⁠팀장님⁠, 그거 누구예요⁠? 엄청 단단해 보이시는 분인데⁠.⁠”

주태강이 서류 더미를 안고 등 뒤에 서 있었다⁠. 옥화는 화면을 끄지 않았다⁠.

“⁠어머니입니다⁠.⁠”

“⁠우와⁠. 팀장님이랑 눈이 똑같네요⁠. 화나신 거 아니죠⁠?⁠”

“⁠원래 이런 얼굴입니다⁠.⁠”

“⁠그럼 팀장님도 원래 이런 얼굴이시구나⁠.⁠” 태강이 서류를 내려놓았다⁠. “⁠팀장님⁠, 저희 엄마는 사진 찍을 때마다 브이 해요⁠. 마흔 장이면 마흔 장 다요⁠. 어머님은 브이 안 하세요⁠?⁠”

옥화는 웃으려다 말았다⁠. 어머니의 두 손은 종이를 드느라 비어 있지 않았다⁠.

“⁠태강 씨⁠, 이 서류는 뭡니까⁠?⁠”

“⁠아⁠, 대표님이 보안팀 지난달 출입 기록 다 뽑아 달래요⁠. 회의실 예약이랑 노트북 접속 기록도요⁠. 감사팀 말고 대표실에서 직접요⁠.⁠”

옥화는 사진을 껐다⁠.

*

11월 19일 목요일 아침 아홉 시⁠, 대표실 탁자에 서류 석 장이 놓여 있었다⁠. 회의실 예약 기록⁠, 재하의 계정이 보안팀장 노트북에서 열린 기록⁠, 그리고 「⁠징계위원회 회부 안내⁠」라고 적힌 빈 양식이었다⁠. 양식의 이름 칸은 비어 있었다⁠. 강도원은 소파에 앉지 않고 창가에 서 있었다⁠.

“⁠김 팀장님⁠, 하나만 물을게요⁠. 직원 계정으로 북한 해커랑 채팅하신 거 맞아요⁠?⁠”

“⁠맞습니다⁠.⁠”

“⁠직원 동의는요⁠?⁠”

“⁠재하 씨가 비밀번호를 줬습니다⁠.⁠”

“⁠줬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회사 망에서⁠, 회사 노트북으로⁠, 직원 이름으로⁠, 국정원이 옆에 앉아서⁠.⁠” 강도원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다음 주 목요일에 투자 설명회 있어요⁠. 12월에는 은행 재계약이고요⁠. 은행 실사팀이 이 기록을 보면 뭐라고 할 것 같아요⁠? 가람엑스 보안팀장이 탈북민이고⁠, 직원 계정으로 북한이랑 연락한다⁠. 이렇게 써요⁠. 사실이니까⁠.⁠”

옥화는 서류 석 장을 가지런히 모았다⁠.

“⁠대표님⁠, 저쪽은 지갑팀 조직도를 이미 갖고 있습니다⁠. 제가 채팅을 닫으면 저쪽은 재하 씨를 놓고 다른 사람한테 갑니다⁠. 그 사람은 저한테 말 안 합니다⁠.⁠”

“⁠누구요⁠?⁠”

“⁠아직 모릅니다⁠.⁠”

“⁠모르는 사람 때문에 아는 위험을 지라고요⁠?⁠”

“⁠아는 위험이 더 작습니다⁠.⁠”

강도원이 창가에서 돌아섰다⁠. 귀 끝이 붉었다⁠.

“⁠팀장님⁠, 저도 바이낸스 기사 다 읽었어요⁠. 무서워요⁠. 근데 우리는 바이낸스가 아니에요⁠. 바이낸스는 5조가 빠져나가도 버텨요⁠. 우리는 오백억이 빠져나가면 문 닫아요⁠. 해커가 한 번에 가져가든 이용자가 하루에 나눠 가져가든⁠, 문 닫는 건 똑같아요⁠. 저는 이용자가 나눠 가져가는 걸 막는 사람이에요⁠.⁠”

옥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강도원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옥화는 빈 양식의 이름 칸을 보았다⁠.

“⁠제 이름 쓰십시오⁠.⁠”

“⁠네⁠?⁠”

“⁠징계위원회요⁠. 제 이름 쓰시고 날짜는 투자 설명회 다음 날로 하십시오⁠. 설명회 전까지는 제가 채팅을 닫지 않겠습니다⁠. 설명회 날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책임지고⁠, 아무 일도 없으면 대표님 뜻대로 하십시오⁠.⁠”

강도원이 양식을 내려다보았다⁠. 볼펜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문밖에서 홍보팀장이 노크를 두 번 하고 들어오지 못했다⁠.

“⁠26일까지예요⁠. 27일 아침에 계정 닫고 국정원 내보내세요⁠. 안 그러면 제가 이 칸 채웁니다⁠.⁠”

“⁠알겠습니다⁠.⁠”

옥화가 일어서자 강도원이 하나 더 말했다⁠.

“⁠그리고 팀장님⁠, 보도자료에 ‘⁠이상 무⁠’ 썼어요⁠. 바꾸지 마세요⁠.⁠”

“⁠이벤트보다는 낫습니다⁠.⁠”

*

밤 열 시⁠, 19층 작은 회의실⁠. 승규는 이번에는 호떡을 먹고 있었다⁠. 설탕물이 종이컵 바닥에 고였다⁠.

“⁠대표님하고 26일까지로 하셨다면서요⁠. 팀장님⁠, 일주일이에요⁠.⁠”

“⁠그래서 오늘 답합니다⁠.⁠”

“⁠저번에 말씀드렸잖아요⁠. 옆에 누가 앉아 있는지 모른다고⁠.⁠”

“⁠그래서 재하 씨 말투로 답합니다⁠. 아이만 알아듣게요⁠.⁠”

승규가 호떡을 반으로 접었다⁠. 옥화는 노트북을 열고 대화창 맨 아래로 내려갔다⁠. 사흘 동안 에릭은 망고 사진만 한 장 더 보냈다⁠. 옥화는 재하가 쓰던 대로 말끝을 흐리며 쳤다⁠.

「⁠에릭 씨⁠, 지난번에 물어보신 거요⁠…⁠… 은사님 얘기는 저도 잘 몰라요⁠. 근데 저희 팀장님이 그러셨대요⁠. 옛날 다니던 데서 시키는 일이 싫어서 나왔다고요⁠…⁠… 어머니가 가라고 하셨대요⁠. 그 얘기 할 때 팀장님 얼굴이 좀 이상했어요⁠…⁠…⁠」

승규가 화면을 읽고 호떡을 내려놓았다⁠.

“⁠팀장님⁠, 이거 팀장님 얘기잖아요⁠.⁠”

“⁠재하 씨가 팀장 흉보는 겁니다⁠. 이직하려는 사람은 원래 팀장 흉을 봅니다⁠.⁠”

“⁠흉이 너무 착한데요⁠.⁠”

옥화는 전송을 눌렀다⁠. 2011년 김책 연구실에서 옥화에게 내려온 일은 남의 나라 은행 망을 들여다보는 연구였다⁠. 옥화는 거절할 수 없었고⁠, 어머니가 대신 거절해 주었다⁠. 함흥 집 문 앞에서 단추를 채워 주던 손이 거절이었다⁠.

답장은 사 초 만에 왔다⁠.

「⁠재하 씨 팀장님 멋진 분이네요⁠!⁠! 망고도 하기 싫은 산책은 절대 안 해요 ㅎㅎㅎ 그건 그렇고 2차 면접은 언제가 좋아요⁠? 빨리 잡읍시다⁠!⁠」

옥화는 화면을 오래 보았다⁠. 느낌표가 둘이었다⁠. 「⁠ㅎ⁠」이 셋이었다⁠. 에릭은 지금까지 느낌표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물음표 하나 찍는 데 삼 분을 쓰던 아이가 사 초 만에 답을 보낼 수는 없었다⁠.

“⁠차 선생님⁠.⁠”

“⁠네⁠.⁠”

“⁠답장이 너무 빠릅니다⁠. 말투도 다릅니다⁠.⁠”

승규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설탕물이 묻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키다가 멈췄다⁠.

“⁠다른 사람이 읽고 있네요⁠.⁠”

옥화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화면 속 어머니가 종이를 든 채 엎어졌다⁠. 노트북에서는 에릭의 이름 옆에 「⁠입력 중⁠」이 다시 떴다⁠. 이번에는 점 세 개가 빠르게 깜박였다⁠.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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