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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산이 어디예요

8조 해킹한 정찰총국 막내 해커 · 금나율

2026년 11월 16일 월요일 아침⁠, 선양⁠. 리명길은 사무실 벽에서 평양 시간 시계를 내려 건전지를 갈고 있었다⁠. 주말 사이 시계가 사 분 늦어졌는데⁠, 황금철은 늦은 시계를 믿고 출근한 일을 아침 내내 용서하지 못했다⁠. 새 건전지를 끼우자 초바늘이 한 번 떨다가 제 박자를 찾았다⁠. 명길은 베이징 시간 시계 옆에 평양 시간 시계를 도로 걸고⁠, 두 바늘 사이의 한 시간을 손가락으로 짚어 보았다⁠.

“⁠막내⁠, 시계 다 고쳤으면 이리 와 봐라⁠.⁠”

염상혁이 모니터를 돌려 보였다⁠. 뉴스 창에 바이낸스 기사가 떠 있었다⁠. 빼앗긴 돈 가운데 28억 5천만 달러에서 30억 달러를 묶거나 막았고⁠, 피해는 회사 돈으로 채워 이용자에게 떠넘기지 않겠다고 바이낸스가 발표했다는 기사였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가 딴 송이 절반 가까이가 상자째 남의 창고에 갇혔다는 말이다⁠.⁠”

“⁠읽었습니다⁠.⁠”

“⁠읽은 놈 얼굴이 왜 그렇게 편하냐⁠?⁠”

명길은 대답 대신 시계를 한 번 더 올려다보았다⁠. 회사가 돈을 채운다는 문장에 엔지니어 한 사람의 일자리도 들어 있는지⁠, 기사는 말하지 않았다⁠.

칸막이 문이 열렸다⁠. 금철은 감색 양복 차림이었지만 넥타이를 반쯤 풀고 있었다⁠. 평양과 아침 통화를 마친 날의 매무새였다⁠.

“⁠모두 들어라⁠. 평양 시간 아홉 시부로 기한이 바뀌었다⁠.⁠”

조장이 의자를 돌렸고 상혁이 일어섰다⁠. 명길은 시계 밑에 선 채였다⁠.

“⁠서른 상자는 그대로다⁠. 대신 열다섯 상자를 12월 15일까지 먼저 채운다⁠. 바이낸스 송이가 묶인 만큼 평양이 급해졌다⁠.⁠”

“⁠사장님⁠, 서울 일은 이제 겨우 1차 면접입니다⁠.⁠”

“⁠그러니까 빨리 해라⁠.⁠”

금철은 한마디만 남기고 칸막이 안으로 돌아갔다⁠. 문이 닫히자 상혁이 명길의 의자를 끌어다 자기 책상 옆에 붙였다⁠.

*

“⁠막내⁠, 오늘 밤 면접에서 바로 최종 과제 보내라⁠. 1차니 2차니 다 건너뛰고⁠.⁠”

“⁠안 됩니다⁠.⁠”

“⁠왜 안 되니⁠? 다니엘 때는 여섯 주 걸렸다⁠. 이번에는 여섯 주가 없다⁠. 12월 15일까지 한 달이다⁠.⁠”

“⁠재하는 엿새 동안 답을 안 한 사람입니다⁠. 망설이는 사람한테 문을 너무 빨리 열어 주면 오히려 돌아섭니다⁠.⁠”

“⁠네가 남조선 사람 속을 어떻게 아니⁠?⁠”

“⁠다니엘 때 배웠습니다⁠.⁠”

상혁이 볼펜 뚜껑을 이로 물었다⁠. 상혁의 책상에 엎어 둔 휴대전화가 진동하면서 화면이 잠깐 켜졌다⁠. 배경 화면 속 갓난아기가 강보 밖으로 주먹 하나를 내밀고 있었다⁠. 상혁이 서두르는 까닭은 평양의 기한보다 화면 속 주먹이었다⁠.

“⁠선배님 따님 백일이 언제입니까⁠?⁠”

“⁠12월 23일⁠.⁠”

“⁠기한이 당겨져서 좋으시겠습니다⁠. 열다섯 상자를 먼저 채우면 백일 전에 들어가실 수도 있습니다⁠.⁠”

“⁠야⁠, 그걸 말이라고⁠.⁠” 상혁이 웃다가 금세 정색했다⁠. “⁠그러니까 최종 과제 보내라⁠. 네가 안 보내면 내가 보낸다⁠. 에릭 비밀번호 내놔⁠.⁠”

“⁠에릭은 제가 만든 사람입니다⁠. 말투가 바뀌면 재하가 압니다⁠.⁠”

“⁠말투⁠? 개 키우는 놈 말투⁠?⁠”

“⁠예⁠. 망고 아버지 말투입니다⁠.⁠”

상혁이 볼펜을 책상에 던졌다⁠. 볼펜이 굴러가 명길의 무릎에 떨어졌다⁠. 명길은 볼펜을 주워 상혁의 필통에 꽂았다⁠. 상혁은 필통을 노려보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막내⁠, 지난번 피드백 파일 끝에 신문지는 뭐냐⁠? 아침에 내가 열어 봤다⁠.⁠”

명길은 숨을 고르게 쉬려고 애썼다⁠.

“⁠재하가 혼잣말을 써서 맞장구를 쳤습니다⁠. 혼잣말에 대답해 주면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더 합니다⁠.⁠”

“⁠그건 맞다⁠. 나도 류 사장 말버릇을 따라 한다⁠. 따라 하다가 중국말을 반 섞어서 류 사장이 못 알아들은 적은 있지만⁠.⁠”

창가에서 조장이 의자를 반 바퀴 돌렸다⁠. 하루에 열 마디를 넘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기다려라⁠. 막내 말대로⁠.⁠”

상혁이 입을 벌린 채 조장을 보았다⁠. 조장은 다시 창가로 돌아앉았다⁠. 상혁이 명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조장 동지가 오늘 벌써 여섯 마디 하셨다⁠. 큰일이 나려나 보다⁠.⁠”

“⁠좋습니다⁠. 1차는 제 식대로 하겠습니다⁠.⁠”

“⁠좋다⁠. 대신 내가 옆에 앉는다⁠. 한 줄도 빼놓지 않고 본다⁠.⁠”

*

점심에 명길은 탕비실 정수기 앞에서 에릭의 대화창을 처음부터 다시 내려 읽었다⁠. 11월 10일 저녁에 「⁠재하⁠」가 보낸 줄이 그대로 있었다⁠.

「⁠좋아요⁠. 채팅이 편할 것 같아요⁠…⁠… 에릭 씨는 고향이 어디세요⁠? 산 좋아하세요⁠?⁠」

명길은 이틀을 고민하고 답했었다⁠. 「⁠싱가포르엔 산이 없어요⁠. 제일 높은 언덕이 백육십삼 미터예요⁠. 산은 부모님 고향에 있어요⁠.⁠」 싱가포르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 부킷 티마이고 백육십삼 미터라는 것은 인터넷에서 찾은 사실이었다⁠. 부모님 고향에 산이 있다는 것은 명길의 사실이었다⁠.

평양 대성산은 봄이면 진달래로 붉었다⁠. 아버지가 살아 있던 해⁠, 명길은 동생 은정을 업고 대성산 남문까지 올라갔다⁠. 은정이 등에서 잠들어 침을 흘렸고⁠, 명길의 셔츠 어깨가 저녁까지 축축했다⁠. 은정은 올해 대학생이 되었는데도 젖은 셔츠 이야기만 나오면 귀까지 빨개졌다⁠.

“⁠막내⁠, 라면 또 혼자 먹니⁠?⁠”

상혁이 탕비실 문간에 기대어 있었다⁠. 명길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선배님 것도 끓이겠습니다⁠.⁠”

“⁠물 끓은 다음에 부어라⁠. 사장님이 물 온도까지 평양 시간으로 재신다⁠.⁠”

*

오후 네 시⁠, 금철이 명길을 칸막이 안으로 불렀다⁠. 책상에 귤 한 봉지와 송이 납품 서류철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금철은 귤을 하나 집어 껍질을 끊지 않고 한 줄로 벗기기 시작했다⁠. 생각할 것이 많은 날이었다⁠.

“⁠오늘 밤 1차다⁠.⁠”

“⁠예⁠, 사장님⁠.⁠”

“⁠상혁이는 서두르자고 하지⁠.⁠”

“⁠예⁠.⁠”

“⁠너는 기다리자고 하고⁠.⁠”

“⁠예⁠.⁠”

금철의 손에서 귤껍질이 길게 늘어졌다⁠. 껍질이 책상 모서리에 닿을 즈음 금철이 입을 열었다⁠.

“⁠평양에서 아침에 하나 더 물었다⁠. 막내가 믿을 만하냐고⁠.⁠”

명길은 무릎 위에서 두 손을 맞잡았다⁠. 칸막이 벽 너머에서 상혁이 영업 전화를 거는 목소리가 반 옥타브 높게 들렸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다니엘을 한 아이라고 했다⁠. 그거면 됐다⁠.⁠” 금철이 귤 한 조각을 떼어 명길 앞에 놓았다⁠. “⁠대신 하나만 약속해라⁠. 면접에서 그 여자가 나오면 바로 나한테 말한다⁠.⁠”

“⁠보안팀장 말씀입니까⁠?⁠”

“⁠재하 답장에 산 이야기가 또 나오면⁠, 그건 재하가 아니다⁠. 너도 알지⁠.⁠”

명길은 귤 조각을 집지 않았다⁠. 열흘 전 밤에 금철은 김책 기숙사 3층 끝방을 말했다⁠. 금철이 무엇을 얼마나 아는지 명길은 가늠할 수 없었다⁠.

“⁠사장님⁠, 그 사람이 나오면 일을 멈춰야 하지 않습니까⁠? 들킨 것 아닙니까⁠?⁠”

“⁠멈추지 마라⁠. 말을 걸어오면 받아 줘라⁠.⁠” 금철이 귤껍질을 둥글게 말아 쓰레기통에 넣었다⁠. “⁠말을 거는 사람은 듣는 사람한테 묶인다⁠. 그 여자가 너한테 말을 거는 동안 그 여자 눈은 너한테 붙어 있다⁠.⁠”

“⁠그럼 저는 무엇을 하면 됩니까⁠?⁠”

“⁠지금처럼⁠. 망고 아버지 말투로⁠.⁠”

금철은 서류철을 펼치고 더 말하지 않았다⁠. 명길은 일어서서 고개를 숙이고 칸막이를 나왔다⁠. 책상 위에 귤 한 조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

평양 시간 밤 아홉 시⁠, 베이징 시간으로는 여덟 시⁠. 사무실에 남은 사람은 셋이었다⁠. 조장은 창가에서 등을 보였고⁠, 상혁은 해바라기씨 한 봉지를 들고 명길 옆에 의자를 붙였다⁠. 껍질 뱉는 종이컵까지 미리 놓았다⁠.

“⁠시작해라⁠.⁠”

1차 면접은 채팅으로 했다⁠. 질문 열 개는 상혁이 주말에 적어 둔 대로 나갔고⁠, 「⁠재하⁠」는 말끝을 흐리는 답을 하나씩 보냈다⁠. 상혁이 해바라기씨를 까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명길은 답장 하나하나의 말끝을 보았다⁠. 점 세 개로 흐리는 버릇은 재하의 것이었지만⁠, 문장의 길이는 재하보다 짧고 단단했다⁠.

아홉 시 사십 분⁠, 질문 목록이 끝났다⁠. 명길이 마무리 인사를 치는 사이 「⁠재하⁠」가 먼저 보냈다⁠.

「⁠에릭 씨⁠, 하나만 여쭤봐도 돼요⁠? 예시 답안에 산 이름 붙이신 거요⁠…⁠… 그거 어디서 배우셨어요⁠? 저도 따라 해 봤거든요⁠.⁠」

상혁이 해바라기씨 껍질을 종이컵에 뱉었다⁠.

“⁠이 아새끼 또 산이다⁠.⁠”

“⁠사람이 집요합니다⁠. 개발자는 원래 그렇습니다⁠.⁠”

명길은 자판에 손을 올렸다⁠. 상혁의 숨소리가 귀 바로 옆에 있었다⁠. 명길은 거짓말 대신 반만 참말을 쳤다⁠.

「⁠대학 때 은사님 버릇이에요⁠. 산을 좋아하셨어요⁠.⁠」

“⁠됐다⁠. 잘했다⁠.⁠”

답은 금방 왔다⁠.

「⁠은사님이 고향 산도 하나 넣으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저는 반룡산을 넣었는데⁠…⁠…⁠」

“⁠반룡⁠?⁠” 상혁이 화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놀이에 나오는 용 아니었니⁠?⁠”

“⁠놀이에 나오는 용 이름도 반룡이고 산 이름도 반룡입니다⁠. 남조선 사람들은 이름을 아무 데나 붙입니다⁠.⁠”

“⁠우리도 송이를 아무 데나 붙이지⁠.⁠”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칸막이 문이 열렸다⁠. 금철이 수화기를 손바닥으로 막고 상혁을 불렀다⁠.

“⁠염 과장⁠, 류 사장 전화다⁠. 칠보산 북쪽 송이가 남쪽 송이보다 맛이 없다고 한다⁠.⁠”

상혁이 해바라기씨 봉지를 내려놓았다⁠. “⁠그 사람이 북쪽 남쪽을 어떻게 압니까⁠. 내가 지어낸 말인데⁠.⁠”

“⁠그러니까 네가 받아라⁠.⁠”

상혁이 일어서며 명길의 어깨를 눌렀다⁠. “⁠손 떼고 있어라⁠. 삼 분이다⁠.⁠”

칸막이 문이 닫혔다⁠. 문 너머에서 상혁의 목소리가 반 옥타브 올라갔다⁠. “⁠류 사장님⁠! 북쪽 송이는 햇볕을 덜 받아서 향이 깊습니다⁠!⁠”

명길은 화면을 보았다⁠. 「⁠저는 반룡산을 넣었는데⁠…⁠…⁠」 아래에서 커서가 깜박였다⁠. 창가의 조장은 돌아보지 않았다⁠.

명길은 쳤다⁠. 「⁠제 고향 산은 대성산입니다⁠.⁠」 그리고 지웠다⁠. 고향을 밝히는 말은 명길 한 사람의 목숨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은정의 주소였다⁠.

다시 쳤다⁠. 이번에는 짧았다⁠.

「⁠선생님은 왜 가셨습니까⁠?⁠」

물음표 하나를 찍는 데 손가락이 오래 머뭇거렸다⁠. 김책 실습실에서 한창범 교원이 분필을 내려놓던 소리가 들렸다⁠. 이름은 묻지 마라⁠. 명길은 이름을 묻지 않았다⁠. 까닭만 물었다⁠.

칸막이 너머에서 상혁이 웃었다⁠. “⁠아니요⁠, 사장님⁠, 남쪽 송이는 햇볕을 많이 받아서 향이 밝습니다⁠!⁠”

명길은 전송을 눌렀다⁠. 곧바로 망고가 수박 껍질을 문 사진을 두 장 이어 보냈다⁠. 한 줄이 사진 두 장 위로 밀려 올라갔다⁠.

삼 분 십 초 만에 상혁이 돌아왔다⁠.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류 사장이 이제 동쪽 송이를 달란다⁠. 칠보산 동쪽은 바다다⁠, 이 사람아⁠. 막내⁠, 뭐 했니⁠?⁠”

“⁠망고 사진 보냈습니다⁠. 면접 끝인사로⁠.⁠”

상혁이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수박 껍질을 문 프렌치불도그 두 장이 맨 아래에 있었다⁠. 상혁이 엄지로 화면을 위로 올리려 했고⁠, 명길은 해바라기씨 봉지를 상혁의 손에 쥐여 주었다⁠.

“⁠선배님⁠, 다 드십시오⁠. 저는 짭니다⁠.⁠”

“⁠짠 맛에 먹는 거다⁠.⁠”

상혁이 봉지를 받아 들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화면 맨 아래⁠, 「⁠재하⁠」의 이름 옆에 「⁠입력 중⁠…⁠…⁠」이 떴다⁠. 명길은 숨을 멈췄다⁠. 점 세 개가 오래 깜박였다⁠. 일 분이 지나고⁠, 이 분이 지났다⁠. 상혁이 해바라기씨를 까는 소리만 났다⁠.

점 세 개가 사라졌다⁠. 답은 오지 않았다⁠.

명길은 점퍼 왼쪽 가슴의 배지를 손끝으로 눌렀다⁠. 벽에서는 새 건전지를 넣은 평양 시간 시계가 열 시를 향해 정확하게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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