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51자)

이미 넘어간 조직도

8조 해킹한 정찰총국 막내 해커 · 금나율

2026년 11월 7일 토요일 아침⁠, 서울 노원⁠. 김옥화는 베란다 빨래 바구니 옆에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반룡이가 바구니 속 수건 위에 앉아 꼬리로 옥화의 손목을 쳤다⁠. 아침밥을 늦게 주는 주인에게 하는 인사였다⁠.

에릭의 피드백 파일은 새벽 한 시 사 분에 와 있었다⁠. 회사 노트북을 집에 가져온 적이 없는 옥화가 어젯밤에는 가져왔다⁠. 인터넷에서 떼어 놓은 낡은 노트북까지 가방에 넣어 왔다⁠. 옥화는 바닥에 앉아 파일을 옮기고 열었다⁠. 칭찬하는 말이 몇 줄⁠, 재하의 답안이 그대로⁠, 그리고 마지막 함수 아래 한 줄⁠.

「⁠// 아직도 안 닫힙니다⁠. 겨울엔 신문지를 끼웁니다⁠」

옥화는 노트북 화면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반룡이가 바구니에서 뛰어내려 옥화의 무릎에 올라왔다⁠. 옥화는 고양이 등을 쓸면서 웃었는데⁠, 웃음이 끝나기 전에 눈이 뜨거워졌다⁠. 2008년 겨울⁠, 3층 끝방의 학생들에게 신문지 접는 법을 가르친 사람이 옥화였다⁠. 세 번 접어 경첩 쪽 틈부터 밀어 넣어야 바람이 덜 들어왔다⁠.

열여덟 해가 지나도 창문은 그대로였다⁠. 신문지도 그대로였다⁠. 코드 너머의 아이는 옥화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그리고 숨기지 않고 답했다⁠.

옥화는 반룡이 밥그릇에 사료를 붓고⁠, 연락처에서 「⁠차승규 — 국정원⁠」을 눌렀다⁠. 이번에는 통화 단추를 눌렀다⁠.

*

11월 10일 화요일 오전 열 시⁠, 19층 작은 회의실⁠. 차승규는 김밥 한 줄을 은박지째 들고 들어왔다⁠. 열다섯 해 전 처음 마주 앉았을 때도 승규는 김밥을 먹고 있었다⁠. 열다섯 해 전에는 스물네 살 신참이었고⁠, 지금은 배가 조금 나온 서른아홉 살이었다⁠. 먹는 버릇은 그대로였다⁠.

“⁠팀장님⁠, 아침 드셨어요⁠? 반 드릴까요⁠?⁠”

“⁠일없습니다⁠.⁠”

“⁠아⁠, 그 말 오랜만에 듣네요⁠.⁠”

옥화는 출력물 석 장을 탁자에 펼쳤다⁠. 에릭의 계정 사진⁠, 예시 답안의 산 이름⁠, 피드백 파일의 마지막 한 줄⁠. 승규는 김밥을 씹으며 한 장씩 읽었다⁠. 세 번째 장에서 씹는 것을 멈췄다⁠.

“⁠신문지요⁠?⁠”

“⁠김책 기숙사 3층 끝방 창문입니다⁠. 경첩이 휘어서 안 닫힙니다⁠. 제가 다닐 때부터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팀장님이 먼저 물으셨고⁠, 저쪽이 답했다⁠.⁠”

“⁠예⁠.⁠”

“⁠팀장님⁠, 그건 저한테 먼저 물어보고 하셨어야죠⁠.⁠”

“⁠물어보면 하지 말라고 하셨겠지요⁠.⁠”

승규가 은박지를 접었다⁠. “⁠맞아요⁠. 하지 말라고 했을 겁니다⁠.⁠”

옥화는 산 이름 버릇을 설명했다⁠. 백두에서 금강까지⁠, 그리고 반룡산⁠. 2007년 실습실에서 자기가 처음 가르쳤다는 것까지 말했다⁠. 승규는 볼펜으로 수첩에 산 이름을 받아 적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팀장님 제자의 제자가 지금 선양에 앉아서 우리 회사를 털려고 한다⁠.⁠”

“⁠우리 회사는 제 회사입니다⁠. 국정원 회사가 아니라⁠.⁠”

“⁠아⁠, 말이 그렇게 나갔네요⁠.⁠”

회의실 유리문이 벌컥 열렸다⁠. 강도원 대표였다⁠. 뒤에 홍보팀장이 노트북을 끌어안고 따라왔다⁠.

“⁠김 팀장님⁠, 국정원이 우리 건물에 들어왔다면서요⁠? 로비에서 출입증 받는 거 다 봤어요⁠. 그거 누가 찍어서 올리면 어떡해요⁠?⁠”

“⁠대표님⁠, 국정원 직원도 출입증 받습니다⁠.⁠”

“⁠이름 칸에 국정원이라고 썼잖아요⁠!⁠”

승규가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대표님⁠, 걱정 마세요⁠. 가람엑스 이름은 저희 서류에 안 올라갑니다⁠.⁠”

“⁠다행이네요⁠.⁠”

“⁠이미 올라가 있거든요⁠. 2024년 자금세탁 의심 거래 건으로요⁠.⁠”

홍보팀장이 노트북을 떨어뜨릴 뻔했다⁠. 강도원이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좋아요⁠. 그럼 조용히 해 주세요⁠. 국정원이 오신 건 우리끼리만 아는 걸로⁠. 사내 공지 없고⁠, 이용자 공지 없고⁠, 12월 재계약까지 아무 일도 없는 걸로⁠.⁠”

“⁠대표님⁠.⁠” 옥화가 강도원을 똑바로 보았다⁠. “⁠이건 이직 제안 하나가 아닙니다⁠. 바이낸스가 털린 바로 다음 날 같은 손이 우리한테 왔습니다⁠. 이용자 이백만 명 돈이 걸린 일입니다⁠.⁠”

“⁠그래서 보안팀이 막으라고 월급 드리는 거잖아요⁠.⁠”

“⁠보안 예산을 두 해 깎으셨습니다⁠. 지갑팀은 셋이 다섯 명 일을 합니다⁠. 그래서 그 셋 가운데 하나가 이직 제안에 대답한 겁니다⁠.⁠”

강도원의 귀가 붉어졌다⁠. 승규가 김밥 마지막 조각을 입에 넣고⁠, 이번에는 아무 말도 보태지 않았다⁠.

*

열한 시⁠, 옥화는 재하를 회의실로 불렀다⁠. 승규가 있다는 말은 미리 하지 않았다⁠. 재하는 문을 열자마자 국정원 출입증을 보고 뒷걸음질 쳤다⁠.

“⁠저 잡혀가요⁠?⁠”

“⁠앉으세요⁠. 묻는 말에만 답하시면 됩니다⁠.⁠” 승규가 웃으며 의자를 빼 주었다⁠. “⁠재하 씨⁠, 에릭이 처음 연락한 날부터 지금까지⁠, 개 사진 말고 보낸 거 다 말해 주세요⁠.⁠”

재하는 옥화를 보았다⁠. 옥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하가 노트북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지난주에 팀장님이 물으셨을 때 다 말 안 했어요⁠. 죄송해요⁠.⁠”

옥화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재하가 엄지로 노트북 모서리를 문지르던 것을 지난주에 보았다⁠. 지난주에 더 물었어야 했다⁠.

“⁠11월 1일에 에릭이 그랬어요⁠. 팀 구조를 알면 저한테 맞는 자리를 찾아 줄 수 있다고⁠. 그래서 우리 팀 소개를 써서 보냈어요⁠. 누가 지갑을 맡는지⁠, 누가 새 프로그램을 서버에 올리는 권한을 갖고 있는지⁠. 팀장님 이름도 들어 있어요⁠. 보안팀이 뭘 막는지도 조금⁠…⁠…⁠.⁠”

“⁠조직도를 보냈다는 말이네요⁠.⁠”

“⁠조직도라고 생각 안 했어요⁠. 그냥 우리 팀 자랑이었어요⁠. 우리 팀 셋이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한다고요⁠.⁠”

재하의 목소리가 끝으로 갈수록 작아졌다⁠. 승규가 수첩을 덮었다⁠.

“⁠팀장님⁠, 바이낸스 보고서 네 번째 줄이 뭐였죠⁠?⁠”

“⁠회사 안이 한 사람씩 넘어갔습니다⁠. 처음 낚인 사람 옆자리부터요⁠.⁠”

“⁠그러니까 저쪽은 이미 지도를 갖고 있다⁠. 재하 씨는 첫 번째 문이고⁠, 지도에 문이 몇 개 더 그려져 있다⁠.⁠”

재하가 고개를 숙였다⁠. 옥화는 재하를 탓하는 말을 고르다가 그만두었다⁠. 지갑팀 셋이 다섯 명 일을 한다고 자랑한 사람은 재하였고⁠, 지갑팀을 셋으로 둔 사람은 대표였고⁠, 대표에게 예산을 더 달라고 두 해 동안 큰 소리를 못 낸 사람은 옥화였다⁠.

“⁠재하 씨⁠, 지갑팀 다른 두 사람한테도 이직 제안 온 거 있는지 오늘 안에 물어봐 주세요⁠. 조용히요⁠.⁠”

“⁠네⁠.⁠”

“⁠그리고 콩이 사진은 이제 그만 보내세요⁠.⁠”

재하가 처음으로 피식 웃었다⁠. 웃다가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나갔다⁠.

*

열두 시 반⁠, 옥화는 회사 뒷골목 국밥집 구석에서 혼자 순대국을 먹었다⁠. 벽에 붙은 텔레비전에서 점심 뉴스가 바이낸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北 해커⁠, 이직 면접 미끼로 8조 탈취⁠」⁠. 국밥집 사장이 깍두기 접시를 놓으며 혀를 찼다⁠.

“⁠코인 그거⁠, 결국 다 북한이 가져간다며⁠? 아가씨도 코인 해요⁠?⁠”

“⁠지키는 일 합니다⁠.⁠”

“⁠아이고⁠, 큰일 하시네⁠. 그럼 깍두기 더 드려야지⁠.⁠”

깍두기가 한 접시 더 왔다⁠. 옥화가 수저를 들었을 때 재하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팀장님⁠, 지갑팀 두 분한테 물어봤어요⁠. 우 책임님은 없대요⁠. 배 선임님도 없다고 하셨는데 표정이 좀 이상했어요⁠. 제가 괜히 그런 걸 수도 있어요⁠…⁠…⁠」

배 선임은 지갑팀에서 가장 오래 일한 개발자였고⁠, 새 프로그램을 서버에 올리는 권한을 가진 두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재하가 에릭에게 보낸 팀 소개에도 배 선임이 맨 위에 있었다⁠. 옥화는 국밥을 반쯤 남기고 일어섰다⁠. 사장이 등 뒤에서 깍두기 더 드렸는데 왜 남기냐고 했다⁠.

지갑팀 자리로 가자 배 선임이 모니터 두 대 앞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마흔 넘은 선임의 노트북에는 오래된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배 선임님⁠, 혹시 요즘 해외 헤드헌터한테 연락 받으신 거 있어요⁠?⁠”

“⁠재하가 물어보더니 팀장님까지요⁠?⁠” 배 선임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팀장님⁠, 저 개발 열여섯 해 했어요⁠. 그런 데 안 넘어가요⁠. 바이낸스 엔지니어들이 바보라서 넘어간 줄 아세요⁠? 저는 바보 아니에요⁠.⁠”

“⁠바보라서 넘어간 사람은 없습니다⁠. 지쳐서 넘어갑니다⁠.⁠”

“⁠저 안 지쳤어요⁠.⁠”

배 선임이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옥화는 더 묻지 않았다⁠. 모니터 아래 놓인 배 선임의 휴대전화가 엎어져 있었다⁠. 화면을 엎어 두는 사람은 화면을 보여 주기 싫은 사람이었다⁠. 옥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수첩 귀퉁이에 「⁠배⁠」 한 글자를 쓰고 동그라미를 쳤다⁠.

*

오후 두 시⁠, 회의실에는 옥화와 승규만 남았다⁠. 승규는 이번에는 편의점 삼각김밥을 까고 있었다⁠.

“⁠팀장님⁠, 제 생각을 말씀드릴게요⁠. 저쪽이 계속 오게 둡시다⁠.⁠”

“⁠막지 말자는 말입니까⁠?⁠”

“⁠막긴 막아야죠⁠. 진짜 지갑에는 손 못 대게⁠. 대신 재하 씨 계정은 살려 두고⁠, 면접도 계속 보고⁠, 최종 과제가 오면 저희가 따로 차린 미끼 컴퓨터로 받는 겁니다⁠. 저쪽이 누구한테 보고하는지⁠, 어디서 움직이는지 우리가 봅니다⁠. FBI도 바이낸스 건으로 저희한테 줄을 대고 있어요⁠. 이게 그 줄이랑 이어지면 큽니다⁠.⁠”

“⁠그 아이는요⁠?⁠”

승규가 삼각김밥 비닐을 마저 벗겼다⁠. 김이 찢어졌다⁠.

“⁠그 친구가 지금 팀장님한테 답을 했죠⁠. 신문지⁠. 그 말은 그 친구가 저쪽 사람들 몰래 우리한테 말을 건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은 선양에 있을 때 제일 쓸모 있어요⁠.⁠”

“⁠쓸모요⁠.⁠”

“⁠데려오면 한 사람이 오는 겁니다⁠. 거기 두면 선양 사무실 하나가 통째로 들려요⁠. 평양까지 들릴 수도 있고요⁠. 팀장님⁠, 길게 보시죠⁠.⁠”

“⁠길게 보다가 그 아이가 들키면 어떻게 됩니까⁠?⁠”

“⁠들키지 않게 저희가⁠…⁠…⁠.⁠”

“⁠들키면 죽습니다⁠. 가족까지 지방으로 갑니다⁠. 국정원이 그 가족을 길게 봐 줍니까⁠?⁠”

승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삼각김밥 귀퉁이만 조금 베어 물었다⁠. 옥화는 탁자 위의 출력물을 한 장씩 겹쳐 모았다⁠. 신문지 한 줄이 맨 위로 올라왔다⁠.

“⁠차 선생님⁠, 한 가지만 약속해 주십시오⁠. 그 아이한테 말을 거는 손은 저 하나입니다⁠. 국정원이 재하 계정으로 아무 말이나 쳐 넣으면 그 아이는 바로 알아봅니다⁠. 저는 그 아이 선생의 선생입니다⁠. 제 말투는 제가 압니다⁠.⁠”

“⁠조건이 그거 하나예요⁠?⁠”

“⁠지금은 하나입니다⁠.⁠”

승규가 손가락에 묻은 밥알을 떼며 웃었다⁠. “⁠열다섯 해 전에도 그러셨어요⁠. 조사실에서⁠. 지금은 하나라고⁠. 나중에 다섯 개 되더라고요⁠.⁠”

“⁠그래서 다섯 개 다 들어주셨습니까⁠?⁠”

“⁠두 개요⁠.⁠”

“⁠그럼 이번에는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승규가 수첩을 펴서 한 줄을 적었다⁠. 「⁠재하 계정 — 김옥화만⁠」⁠.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대신 저도 하나 부탁드려요⁠. 그 친구 이름부터 알아내 주세요⁠. 나이⁠, 고향⁠, 어느 줄로 들어갔는지⁠.⁠”

옥화의 휴대전화가 탁자 위에서 떨렸다⁠. 재하 계정으로 들어온 메시지였다⁠. 옥화가 화면을 돌려 승규에게 보였다⁠.

「⁠재하 씨⁠, 1차 면접은 다음 주 월요일 저녁 아홉 시 어때요⁠? 화상은 부담스러우면 채팅으로 해요⁠. 망고가 기대된대요⁠.⁠」

승규가 삼각김밥을 내려놓았다⁠. 옥화는 답장 창을 열고⁠, 재하가 쓰던 대로 말끝을 흐리며 쳤다⁠. 「⁠좋아요⁠. 채팅이 편할 것 같아요⁠…⁠…⁠」 전송을 누르기 전에 한 줄을 더했다⁠. 「⁠에릭 씨는 고향이 어디세요⁠? 산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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