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5,338자)

단둥행 차표

8조 해킹한 정찰총국 막내 해커 · 금나율

2026년 12월 14일 월요일 아침⁠, 선양⁠. 리명길은 사다리 위에서 평양 시간 시계를 벽에서 떼고 있었다⁠. 한 달 전 건전지를 갈던 시계였다⁠. 못에서 시계를 들어 올리자 벽지에 동그랗게 하얀 자국이 남았다⁠. 해가 닿지 않은 자리였다⁠. 옆의 베이징 시간 시계 자리에도 똑같은 동그라미가 있었다⁠.

“⁠막내⁠, 시계는 내가 싼다⁠.⁠”

염상혁이 송이 상자에서 솔잎을 한 줌 꺼내 신문지 위에 깔았다⁠. 시계를 솔잎 위에 눕히고 신문지로 둘둘 말았다⁠.

“⁠선배님⁠, 시계를 왜 솔잎으로 쌉니까⁠?⁠”

“⁠평양 가는 물건은 다 송이처럼 싼다⁠. 그래야 단둥 세관에서 안 뜯는다⁠.⁠”

“⁠시계가 송이 냄새가 나면 더 뜯지 않겠습니까⁠?⁠”

상혁이 신문지 뭉치를 내려다보았다⁠. 솔잎 몇 가닥이 삐져나와 있었다⁠. 상혁은 대답하지 않고 테이프를 세 바퀴 더 감았다⁠.

“⁠막내⁠, 지난 목요일 냉면집에서 뭐 했니⁠? 나흘이 지났는데 아무도 말을 안 해 준다⁠.⁠”

“⁠운전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사장님은⁠?⁠”

“⁠냉면을 드셨습니다⁠. 한 그릇⁠.⁠”

“⁠그 여자는⁠?⁠”

“⁠안 드셨습니다⁠.⁠”

“⁠남조선 국정원은 봤니⁠?⁠”

“⁠길 건너에서 고구마 먹는 사람을 봤습니다⁠. 세 개 먹었습니다⁠.⁠”

상혁이 테이프를 감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구마 세 개면 국정원이다⁠. 공안은 두 개 먹고⁠, 우리 쪽은 하나도 안 먹는다⁠. 우리 쪽은 배고픈 걸 참는 게 일이다⁠.⁠”

“⁠선배님⁠, 그것도 방금 만드신 말입니까⁠?⁠”

“⁠이건 진짜다⁠. 내가 서탑에서 두 해 동안 센 거다⁠.⁠”

창가의 조장이 어깨를 한 번 들썩였다⁠. 웃은 것이었다⁠. 상혁이 조장을 보고 신이 나서 테이프를 한 바퀴 더 감았다⁠. 시계 뭉치가 송이 상자보다 무거워졌다⁠.

사무실은 반쯤 비어 있었다⁠. 공안이 정한 기한은 연말이었지만 금철은 그보다 보름 일찍 비우기로 했다⁠. 모니터 세 대는 이미 상자에 들어갔고⁠, 창가 자리에는 책상만 남았다⁠. 조장은 빈 책상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창밖의 방송탑을 보았다⁠. 할 일이 없는 조장을 명길은 처음 보았다⁠.

열 시⁠, 금철이 칸막이에서 나와 봉투 하나를 흔들었다⁠.

“⁠차표다⁠. 18일 금요일⁠, 선양역 아침 여덟 시 기차⁠. 단둥에서 내려서 다리 건넌다⁠.⁠”

금철이 봉투에서 차표를 한 장씩 꺼내 나눠 주었다⁠. 조장에게⁠, 상혁에게⁠, 명길에게⁠. 분홍색 종이에 「⁠沈阳 — 丹东⁠」이 찍혀 있었다⁠. 명길은 차표를 손에 쥐었다⁠. 종이가 얇아서 손바닥의 땀에 금세 눅었다⁠.

“⁠사장님 차표는요⁠?⁠”

“⁠나도 같은 기차다⁠.⁠” 금철이 봉투를 접어 양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식구 만나러 가는 기차다⁠. 다들 얼굴 펴라⁠.⁠”

상혁만 얼굴을 폈다⁠. 상혁은 차표를 휴대전화 뒷면에 끼웠다⁠. 아기 사진 위였다⁠.

*

오후 두 시⁠, 상혁이 송이 상자 사이로 명길을 불렀다⁠. 사무실 구석에 진짜 송이 상자와 빈 송이 상자가 벽처럼 쌓여 있었다⁠. 칸막이에서도 창가에서도 보이지 않는 자리였다⁠.

상혁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사진 몇 장이 있었다⁠. 명길의 휴대전화 화면을 찍은 사진이었다⁠. 다니엘 추의 보낸 편지함⁠. 12월 4일 세 시 오십팔 분⁠, 받는 사람 가람엑스 보안 취약점 신고⁠. 편지 본문까지 찍혀 있었다⁠.

“⁠지난주에 네가 휴대전화 충전기에 꽂아 두고 화장실 갔을 때다⁠. 잠금 번호는 은정이 생일이더라⁠. 너는 사람 고르는 손은 좋은데 번호 고르는 손은 나쁘다⁠.⁠”

명길은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창문을 닫으십시오⁠. 두 번째 문은 지갑팀 안에 있습니다⁠. 자기 문장이 남의 휴대전화 속에서 낯설었다⁠.

“⁠선배님⁠.⁠”

“⁠들어라⁠. 나는 두 가지 길을 줄 거다⁠.⁠” 상혁의 목소리가 낮았다⁠. 영업 전화를 걸 때의 반 옥타브가 아니었다⁠. “⁠하나⁠, 오늘 네 발로 사장님께 가서 네가 알렸다고 말해라⁠. 그러면 조장 동지는 손이 늦었다는 말을 안 해도 된다⁠. 둘⁠, 네가 안 하면 금요일에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내가 이 사진을 낸다⁠.⁠”

“⁠제가 말하면 사장님이 다칩니다⁠. 다 알고도 두셨습니다⁠.⁠”

“⁠알아⁠. 그래서 네가 말하는 게 낫다⁠. 네가 먼저 말하면 사장님은 몰랐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말하면 사장님도 알았다고 해야 한다⁠. 나는 거짓말 못 한다⁠. 송이 남쪽 북쪽은 지어내도 보위부 앞에서는 못 지어낸다⁠.⁠”

“⁠선배님은 왜 내십니까⁠?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상혁이 송이 상자에 등을 기댔다⁠. 상자가 조금 밀렸다⁠.

“⁠막내⁠, 이 일은 언젠가 나온다⁠. 가람엑스 기사에 외부 제보라고 나왔다⁠. 평양도 읽는다⁠. 언젠가 누가 이 사무실을 뒤지면⁠, 이 사진을 찍은 내가 알고도 입을 다문 사람이 된다⁠. 그러면 우리 딸은 아버지 얼굴을 백일에 한 번 보고 끝난다⁠.⁠” 상혁이 휴대전화를 거두었다⁠. “⁠나도 셌다⁠. 사장님처럼⁠.⁠”

명길은 상자 사이에 서 있었다⁠. 솔잎 냄새가 났다⁠. 상혁의 말에 틀린 곳을 찾으려 했는데 찾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알겠다는 말 말고⁠.⁠”

“⁠목요일까지 정하겠습니다⁠.⁠”

상혁이 명길을 한참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자 사이를 빠져나가다가 돌아섰다⁠.

“⁠그리고 막내⁠. 다음엔 잠금 번호 바꿔라⁠. 네 동생 생일은 나도 안다⁠. 편지에 다 써 있더라⁠.⁠”

*

저녁 여섯 시⁠, 명길은 칸막이 안으로 들어갔다⁠. 금철은 서류를 파쇄기에 넣고 있었다⁠. 「⁠송이 납품 계획 — 서울⁠」이라고 쓰인 붉은 서류철이 반쯤 갈려 나가고 있었다⁠. 첫날 명길이 손바닥으로 덮었던 서류철이었다⁠. 파쇄기가 종이를 씹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사장님⁠, 상혁 선배가 다니엘 편지를 찍었습니다⁠.⁠”

“⁠안다⁠.⁠”

“⁠아셨습니까⁠?⁠”

“⁠상혁이가 사진 찍는 소리는 사무실 끝에서도 들린다⁠. 휴대전화 소리를 안 끄고 찍더라⁠.⁠” 금철이 서류철의 마지막 장을 파쇄기에 넣었다⁠. 김옥화의 사진이 있던 장이었다⁠. 「⁠함흥 출신⁠」 볼펜 글씨가 기계 속으로 들어갔다⁠. “⁠상혁이는 내가 맡는다⁠.⁠”

“⁠어떻게 맡으십니까⁠?⁠”

금철은 파쇄기의 단추를 껐다⁠.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아직 모른다⁠. 금요일 아침까지 정한다⁠.⁠”

*

12월 15일 화요일⁠, 열다섯 상자 기한이 지났다⁠. 금철은 평양과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통화했다⁠. 저녁 통화는 짧았다⁠. 금철은 칸막이에서 나오지 않았다⁠.

오후에 명길은 상혁과 함께 류 사장네 식당에 마지막 송이를 날랐다⁠. 냉장고에 남은 진짜 송이 여섯 상자였다⁠. 류 사장은 뒷문 계단에서 상자를 받으며 섭섭한 얼굴을 했다⁠.

“⁠염 과장⁠, 진짜 가요⁠? 이제 칠보산 송이는 누구한테 사요⁠?⁠”

“⁠다른 회사 사람이 올 겁니다⁠. 그 사람 송이는 칠보산 서쪽 송이일 겁니다⁠.⁠”

“⁠서쪽은 또 뭐예요⁠?⁠”

“⁠제가 방금 만들었습니다⁠.⁠”

류 사장이 웃다가 식당 안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창가 자리에서 공안 왕리쥔이 혼자 냉면을 먹고 있었다⁠. 사복 차림이었다⁠. 왕리쥔이 젓가락을 든 채 손을 흔들었다⁠.

“⁠막내⁠! 다니엘 아직 없어요⁠?⁠”

상혁의 손에서 송이 상자가 미끄러질 뻔했다⁠. 명길이 상자 밑을 받쳤다⁠.

“⁠없습니다⁠. 송이만 있습니다⁠.⁠”

“⁠좋아요⁠. 다니엘 없으면 나도 좋아요⁠.⁠” 왕리쥔이 냉면을 한 젓가락 들어 올렸다⁠. “⁠금요일 기차죠⁠? 기차 타면 다니엘도 없고⁠, 미국 사람도 없고⁠, 나도 편해요⁠.⁠”

왕리쥔은 다시 냉면을 먹었다⁠. 류 사장이 앞치마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명길의 손에 쥐여 주었다⁠. 식당 이름이 찍힌 쿠폰이었다⁠. 「⁠냉면 한 그릇 무료⁠」⁠.

“⁠막내는 정직하게 생겼으니까⁠. 다음에 오면 공짜예요⁠.⁠”

명길은 쿠폰을 받아 들었다⁠. 다음이라는 말을 명길은 오래 쥐고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상혁이 쿠폰을 보고 투덜거렸다⁠. “⁠나는 두 해 동안 송이를 팔았는데 쿠폰 한 장 없다⁠.⁠” 명길은 쿠폰을 상혁에게 내밀었다⁠. 상혁은 받지 않았다⁠.

12월 16일 수요일 밤 아홉 시⁠, 사무실에 금철과 명길만 남았다⁠. 상혁은 류 사장에게 마지막 송이를 갖다 주러 갔고⁠, 조장은 아홉 시 정각에 가방을 들고 나갔다⁠. 금철이 칸막이 문을 열어 둔 채 명길을 불렀다⁠.

책상 위에 귤이 없었다⁠. 귤 봉지가 놓이던 자리에 금철의 차표가 있었다⁠.

“⁠막내⁠, 앉아라⁠.⁠”

명길은 앉았다⁠. 금철은 차표를 손가락으로 돌렸다⁠.

“⁠평양에서 사람이 온다⁠. 목요일 낮에⁠. 내일이다⁠.⁠”

“⁠누가 옵니까⁠?⁠”

“⁠차 한 대⁠. 막내 하나를 먼저 데려가겠단다⁠. 금요일 기차 말고 목요일 차로⁠. 총화 전에 따로 물어볼 것이 있다고⁠.⁠”

명길은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손바닥이 차가웠다⁠.

“⁠상혁 선배가 냈습니까⁠?⁠”

“⁠아니다⁠. 상혁이는 아직 안 냈다⁠. 남쪽 기사다⁠. 외부 제보⁠. 평양도 남쪽 기사를 읽는다⁠. 누가 밖에 말했는지 따로 묻겠단다⁠. 막내가 서울 일을 맡았으니 막내부터 묻는 거다⁠.⁠”

“⁠사장님이 막을 수 있습니까⁠?⁠”

“⁠못 막는다⁠.⁠”

금철이 차표 돌리던 손을 멈췄다⁠. 처음으로 명길의 눈을 오래 보았다⁠.

“⁠막내⁠, 내가 왜 이 말을 너한테 하는지 아니⁠?⁠”

명길은 대답하지 않았다⁠. 답을 알고 있었고⁠, 답을 말하면 금철이 무엇을 내놓는지도 알았다⁠.

“⁠목요일 낮에 차가 온다⁠.⁠” 금철이 같은 말을 한 번 더 했다⁠. “⁠낮이다⁠. 아침이 아니다⁠.⁠”

금철이 일어서서 외투를 걸쳤다⁠. 칸막이를 나가며 명길의 어깨를 지나쳤다⁠. 손을 얹지 않았다⁠.

“⁠나는 오늘 집에 가서 잔다⁠. 사무실은 막내가 지켜라⁠. 내일 아침은 늦게 나온다⁠. 평양 시간 열 시⁠.⁠”

문이 닫혔다⁠. 금철은 열다섯 해 동안 사무실 간이침대에서 잔 날이 집에서 잔 날보다 많은 사람이었다⁠.

*

밤 열한 시⁠, 명길은 혼자 빈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벽에는 시계 두 개가 떨어진 하얀 동그라미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시간이 없는 벽이었다⁠. 명길은 휴대전화의 시계를 보았다⁠. 평양 시간으로 맞춰 둔 시계였다⁠. 서울 시간이기도 했다⁠.

점퍼 왼쪽 가슴 주머니에서 냅킨을 꺼냈다⁠. 금철이 세 번 접어 꽂아 준 냅킨이었다⁠. 엿새 동안 배지 아래에 있었다⁠. 명길은 접힌 자국을 따라 한 겹씩 폈다⁠. 숫자 열한 개⁠. 7에 가로줄⁠.

명길은 은정의 편지를 꺼내 한 번 더 읽었다⁠. 송이 많이 파십시오⁠. 그리고 휴대전화를 열었다⁠. 다니엘이 아니었다⁠. 중국 통신사의 문자 창이었다⁠. 냅킨의 숫자를 한 자씩 눌렀다⁠. 조장이 준 목장갑을 낀 채였다⁠. 잘린 장갑 끝으로 나온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떨리지 않았다⁠. 목을 너무 조이면 거짓말이 늦다던 조장의 말이 떠올랐다⁠. 오늘 밤에는 거짓말할 일이 없었다⁠.

무엇을 쓸지는 이미 알았다⁠. 상혁이 세 번 꺾어 돌아가던 골목⁠, 큰길 끝의 회색 건물⁠, 열네 걸음과 열 걸음⁠. 건물 너머로 늘 보이던 탑⁠. 아침 아홉 시면 비자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창구 앞에 줄을 서고⁠, 공안 둘은 발을 구르며 하품을 참는다⁠.

명길은 쳤다⁠.

「⁠목요일 아침 아홉 시⁠, 방송탑 앞 횡단보도⁠」

이름은 쓰지 않았다⁠. 이름은 이미 쪽지 끝에 써서 보냈다⁠. 전송을 누르기 전에 명길은 점퍼 왼쪽 가슴의 붉은 배지를 손끝으로 만졌다⁠. 바이낸스 새벽에도⁠, 신문지를 처음 끼운 밤에도 만지던 자리였다⁠. 배지는 차가웠다⁠.

전송을 눌렀다⁠. 「⁠전송됨⁠」이 떴다⁠. 일 분 뒤⁠, 답이 왔다⁠. 한 글자였다⁠.

「⁠네⁠」

명길은 휴대전화를 엎어 두지 않았다⁠. 화면이 꺼질 때까지 한 글자를 보았다⁠.

1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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