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432자)

인천에서 선양까지

8조 해킹한 정찰총국 막내 해커 · 금나율

2026년 12월 8일 화요일 아침 아홉 시⁠, 서울 강남⁠. 김옥화가 19층 상황실에 들어서자 주태강이 모니터를 돌려 보였다⁠. 대기 발령은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12월 4일 이후로 경비원은 옥화를 보면 말없이 문을 열어 주었다⁠. 태강은 떡볶이를 두 번 사 줬다고 했다⁠.

“⁠팀장님⁠, 어젯밤 열한 시에 또 왔어요⁠. 신고 메일함으로요⁠. 다니엘 추요⁠.⁠”

옥화는 화면을 읽었다⁠. 「⁠김옥화 동무께⁠. 서탑 동무네 냉면⁠, 평양 시간 열두 시⁠. 날은 동무가 선양에 내린 다음 날⁠. 혼자 오시오⁠. — 평양역 대합실에서⁠」

“⁠동무네 냉면이 가게 이름이에요⁠?⁠” 태강이 물었다⁠. “⁠친구네 냉면이요⁠? 북한식 가게 이름 귀엽네요⁠.⁠”

“⁠서탑에 있는 냉면집입니다⁠. 제가 남쪽 오기 전에 한 번 간 집입니다⁠.⁠”

“⁠팀장님 단골이에요⁠?⁠”

“⁠한 번 갔습니다⁠. 황 선배가 사 줬습니다⁠.⁠”

태강이 입을 다물었다⁠. 옥화는 편지 맨 끝 줄을 손가락으로 덮었다가 뗐다⁠. 평양역 대합실에서⁠. 2011년 3월의 밤에 금철이 신의주행 표를 쥔 옥화를 보았던 자리였다⁠. 금철은 이름 대신 자리를 썼다⁠.

*

열 시⁠, 상황실 옆 회의실에 셋이 앉았다⁠. 차승규는 김밥을 은박지째 들고 있었고⁠, 레이철 문은 커피를 들고 있었다⁠. 옥화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가겠습니다⁠.⁠”

승규가 김밥을 내려놓았다⁠. “⁠팀장님⁠, 중국이에요⁠. 저희가 못 지켜 드려요⁠. 팀장님은 대한민국 여권을 갖고 있지만⁠, 저쪽 사람들은 팀장님을 김책 나온 김옥화로 봐요⁠. 서탑 냉면집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저희는 신문 기사로 압니다⁠.⁠”

“⁠혼자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더 안 돼요⁠.⁠”

레이철이 커피를 내려놓았다⁠. “⁠김 팀장님⁠, 미국 법무부는 다니엘 추를 원합니다⁠. 바이낸스 8조의 첫 번째 문을 연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나오면 미국 법정에 섭니다⁠. 증언하면 형이 줄어듭니다⁠.⁠”

“⁠형이요⁠?⁠”

“⁠네⁠. 형⁠.⁠”

옥화는 레이철을 보았다⁠. 레이철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레이철에게는 레이철의 법이 있었다⁠. 바이낸스 이용자의 돈⁠, 바이비트의 15억 달러⁠, 핵과 미사일로 흘러간다는 분석⁠. 레이철의 법은 틀리지 않았다⁠.

“⁠차 선생님은요⁠?⁠”

“⁠저는 지난번 그대로예요⁠. 그 친구는 선양에 있을 때 제일 쓸모 있어요⁠. 사무실이 연말에 문 닫고 평양에 들어간다면⁠, 평양까지 줄이 이어지는 거예요⁠. 그런 줄은 몇 년에 한 번 생겨요⁠.⁠”

“⁠평양에 들어가면 그 아이는 열아홉 상자를 혼자 집니다⁠.⁠”

“⁠그건⁠…⁠…⁠.⁠”

“⁠아이 하나를 놓고 국정원은 선양에⁠, FBI는 미국 법정에 두겠다고 합니다⁠. 아이한테 물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승규가 김밥 은박지를 접었다⁠. 레이철이 커피 뚜껑을 만지작거렸다⁠. 회의실 밖에서 태강이 누군가에게 「⁠사 분이면 떡볶이 몇 그릇이에요⁠?⁠」라고 묻는 소리가 났다⁠.

“⁠팀장님은 뭘 원하세요⁠?⁠”

“⁠아이가 고르는 겁니다⁠. 고르려면 누군가 앞에 가서 물어야 합니다⁠.⁠”

승규가 오래 말이 없다가 수첩을 펼쳤다⁠. 2011년이 적힌 장이 아니라 새 장이었다⁠.

“⁠조건이 있어요⁠. 하나⁠, 저도 같은 비행기 탑니다⁠. 떨어져 앉아요⁠. 둘⁠, 냉면집 안에는 혼자 들어가시고⁠, 밖에 저희 사람이 있어요⁠. 셋⁠, 황금철이 무엇을 내놓든 받아 오세요⁠. 거절하든 받든 그 자리에서 정하지 말고요⁠.⁠”

“⁠셋입니까⁠?⁠”

“⁠열다섯 해 전엔 팀장님이 다섯 개 거셨잖아요⁠. 이번엔 제가 셋이에요⁠.⁠”

*

오후 네 시⁠, 지갑팀 자리에서 배 선임이 짐 상자를 싸고 있었다⁠. 모니터 두 대는 꺼져 있었고⁠, 노트북은 국정원이 가져갔다⁠. 책상 위에 남은 것은 머그잔⁠, 아이가 그린 그림⁠, 손때 묻은 키보드 덮개였다⁠. 우 책임이 옆에서 머그잔을 신문지에 싸 주고 있었다⁠. 신문지를 세 번 접어서⁠.

“⁠팀장님⁠.⁠” 배 선임이 상자를 내려놓았다⁠. “⁠저 오늘 그만둬요⁠. 잘린 건 아니고⁠, 제가 그만두는 거예요⁠. 경찰 조사는 계속 받아요⁠.⁠”

“⁠알고 있습니다⁠.⁠”

“⁠기사 보셨어요⁠? 미국 회사가 그러더라고요⁠. 우리 회사에서 나간 돈이 바이낸스 돈이 지나간 지갑 묶음으로 같이 흘러갔대요⁠. 저는 바이낸스 돈으로 애 학원비 내고⁠, 우리 회사 돈은 바이낸스 돈 따라가고⁠. 무슨 돌림노래 같아요⁠.⁠”

배 선임이 웃으려다 말았다⁠. 옥화는 상자 옆에 놓인 그림을 보았다⁠. 크레파스로 그린 집 앞에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손을 잡고 있었다⁠. 큰 사람 머리 위에 「⁠아빠 회사 가지 마⁠」라고 쓰여 있었다⁠.

“⁠팀장님 덕분에 사 분이었대요⁠. 제 탓으로 160억이고요⁠.⁠” 배 선임이 노트북을 가져간 자리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둘 다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이 없어요⁠.⁠”

“⁠배 선임님 탓만은 아닙니다⁠. 지갑팀을 셋으로 둔 회사와⁠, 예산을 두 해 동안 못 받아 낸 보안팀장이 같이 졌습니다⁠.⁠”

“⁠팀장님은 끝까지 그렇게 말씀하시네요⁠.⁠”

배 선임이 키보드 덮개에서 스티커 하나를 떼어 냈다⁠. 「⁠프리랜스 어드바이저⁠」 스티커였다⁠. 배 선임은 스티커를 옥화의 손바닥에 붙였다⁠.

“⁠증거물이에요⁠. 국정원이 안 가져간 거⁠. 팀장님이 가져가세요⁠. 저는 보기 싫어요⁠.⁠”

*

밤 열한 시⁠, 옥화는 승규가 지켜보는 앞에서 다니엘 추에게 답장을 썼다⁠. 신고 메일함에서 회신을 누르자 받는 사람 칸에 다니엘의 주소가 저절로 들어왔다⁠. 아이가 지우지 않은 단 하나의 주소였다⁠.

옥화는 「⁠혼자 갑니다⁠」까지 쳤다가 손을 멈췄다⁠. 같은 비행기에 승규가 탈 것이었고⁠, 냉면집 밖에는 국정원 사람이 서 있을 것이었다⁠. 옥화는 「⁠혼자 갑니다⁠」를 지웠다⁠. 승규가 옆에서 김밥 꽁다리를 씹다가 멈췄다⁠.

“⁠그거 쓰셔도 돼요⁠. 들어가실 땐 혼자니까요⁠.⁠”

“⁠거짓말로 시작하면 아이가 압니다⁠. 아이는 거짓말을 하는 일을 했습니다⁠.⁠”

옥화는 새로 쳤다⁠. 「⁠9일 밤에 내립니다⁠. 다음 날 열두 시에 가겠습니다⁠. — 3층 끝방 창문 아래에서⁠」

승규가 마지막 줄을 읽고 김밥 꽁다리를 내려놓았다⁠. “⁠평양역 대합실에서⁠, 3층 끝방 창문 아래에서⁠. 두 분 다 주소를 참 이상하게 쓰시네요⁠.⁠”

“⁠주소가 아닙니다⁠. 서로 아는 자리입니다⁠.⁠”

옥화는 전송을 눌렀다⁠.

*

12월 9일 수요일 오후 두 시⁠, 대표실⁠. 강도원이 은행에서 막 돌아와 넥타이를 풀고 있었다⁠. 얼굴이 이상하게 밝았다⁠. 옥화를 보자 서류 한 장을 흔들었다⁠.

“⁠팀장님⁠! 은행 재계약 됐어요⁠. 조건부로요⁠. 보안 예산을 내년에 두 배로 늘리고⁠, 지갑팀을 다섯 명으로 늘리는 조건이요⁠. 은행에서 그러더라고요⁠. 사 분 만에 막은 거래소는 처음 봤다고⁠.⁠”

“⁠축하드립니다⁠.⁠”

“⁠팀장님 덕이에요⁠. 대기 발령 오늘부로 풀어요⁠. 내일부터 나오세요⁠.⁠”

“⁠내일부터 휴가 쓰겠습니다⁠. 일주일⁠.⁠”

강도원의 손이 넥타이에서 멈췄다⁠.

“⁠지금요⁠? 회사가 이제 살아났는데요⁠?⁠”

“⁠선양에 갑니다⁠.⁠”

“⁠선양이면⁠…⁠… 중국이요⁠? 그 사람들 있는 데요⁠?⁠”

“⁠예⁠.⁠”

강도원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은행 서류를 탁자에 내려놓고 손바닥으로 덮었다⁠.

“⁠팀장님⁠, 그건 회사 출장이 아니에요⁠. 회사는 모르는 일이에요⁠. 무슨 일이 생겨도 회사는 몰랐던 거예요⁠. 기사에 가람엑스 이름 나오면 안 돼요⁠.⁠”

“⁠압니다⁠. 휴가입니다⁠.⁠”

“⁠그리고⁠.⁠” 강도원이 서랍을 열었다⁠. 봉투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건 회사 돈 아니고 제 돈이에요⁠. 가서 밥 사 드세요⁠. 냉면이든 뭐든⁠.⁠”

옥화는 봉투를 받지 않았다⁠.

“⁠대표님⁠, 냉면은 저쪽이 삽니다⁠.⁠”

“⁠그럼 돌아오는 비행기 표라도요⁠.⁠” 강도원이 봉투를 옥화의 손에 쥐여 주었다⁠. “⁠돌아오는 표는 회사가 사 주는 걸로 해요⁠. 그건 회사 일이니까⁠. 보안팀장이 돌아오는 건 회사 일이잖아요⁠.⁠”

옥화는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겉봉에 강도원의 글씨로 「⁠복귀 비용⁠」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벤트⁠」도 「⁠이상 무⁠」도 아니었다⁠. 옥화는 봉투를 외투 안주머니에 넣었다⁠.

“⁠고맙습니다⁠.⁠”

“⁠공지문은 제가 고칠게요⁠. 팀장님 없어도⁠.⁠”

“⁠이상 무는 쓰지 마십시오⁠.⁠”

“⁠안 써요⁠. 이제 그 말 들으면 체해요⁠.⁠”

*

12월 9일 저녁⁠, 노원 아파트 현관⁠. 윤재하가 이동장을 들고 서 있었다⁠. 이동장 안에서 반룡이가 꼬리를 부풀리고 있었다⁠.

“⁠팀장님⁠, 콩이랑 반룡이 사이좋게 지낼 거예요⁠. 콩이가 고양이를 좋아해요⁠. 고양이가 콩이를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요⁠.⁠”

“⁠반룡이는 개를 처음 봅니다⁠.⁠”

“⁠그럼 오늘이 처음이에요⁠. 처음은 원래 다 무서워요⁠.⁠”

재하가 이동장을 받아 들고 현관에서 머뭇거렸다⁠.

“⁠팀장님⁠, 그 아이 만나면요⁠. 망고 이야기 해 주세요⁠. 망고는 원래 없는 개였지만⁠, 저는 망고 진짜 좋아했다고요⁠. 아⁠, 그리고 콩이 사진 너무 많이 보내서 미안하다고도요⁠.⁠”

“⁠그 아이는 콩이 사진을 좋아했습니다⁠.⁠”

“⁠진짜요⁠?⁠”

“⁠답장에 콩이 이야기가 제일 길었습니다⁠.⁠”

재하가 웃었다⁠. 이동장 안에서 반룡이가 처음으로 야옹 소리를 냈다⁠. 재하가 이동장에 대고 말했다⁠. “⁠반룡아⁠, 우리 집 가자⁠. 우리 집 창문은 잘 닫혀⁠.⁠”

*

12월 9일 밤 아홉 시⁠, 인천공항 탑승구⁠. 승규는 옥화와 열 줄 떨어진 의자에 앉아 우동을 먹고 있었다⁠. 탑승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중국 단체 관광객이 많았고⁠, 면세점 봉투에서 김 냄새가 났다⁠. 옥화는 외투 단추를 끝까지 채웠다가 하나를 풀었다⁠.

탑승 방송이 나오자 승규가 우동 그릇을 버리고 옥화 옆으로 왔다⁠. 떨어져 앉자던 사람이 먼저 와서 앉았다⁠.

“⁠팀장님⁠, 열다섯 해 전에 물으셨던 거요⁠. 어머니는 어떻게 되느냐고⁠.⁠”

“⁠기억하십니까⁠?⁠”

“⁠기억해요⁠. 저는 그때 신참이었고⁠, 대답을 몰랐어요⁠. 지금은 알아요⁠.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몰라요⁠. 그게 대답이에요⁠. 그 말을 하기가 열다섯 해 걸렸네요⁠.⁠”

옥화는 탑승권을 손에 쥐었다⁠. 종이가 손바닥 땀에 조금 눅었다⁠.

“⁠그 아이 어머니도 그렇게 됩니다⁠.⁠”

“⁠네⁠.⁠”

“⁠그래도 물어보러 갑니다⁠.⁠”

“⁠알아요⁠. 그래서 저도 가요⁠.⁠”

승규가 일어서며 외투 주머니에서 귤 두 개를 꺼냈다⁠. 하나를 옥화의 손에 쥐여 주었다⁠.

“⁠선양 가면 귤이 비싸대요⁠. 기내식 나오기 전에 드세요⁠. 저는 기내식도 먹을 거예요⁠.⁠”

옥화는 귤을 외투 안주머니에 넣었다⁠. 강도원이 준 「⁠복귀 비용⁠」 봉투 옆이었다⁠. 외투 앞자락이 귤 하나만큼 불룩해졌다⁠.

*

밤 열한 시 사십 분⁠, 선양 타오셴 공항⁠. 비행기 문이 열리자 찬 공기가 통로로 밀려 들어왔다⁠. 서울보다 열 도는 추웠다⁠. 옥화는 입국 심사대 줄에서 휴대전화를 켰다⁠. 중국 통신사의 환영 문자가 연달아 들어왔고⁠, 문자 끝에 메일 알림 하나가 떴다⁠.

보낸 사람⁠, 다니엘 추⁠.

옥화는 줄에서 한 걸음 비켜섰다⁠. 승규가 다섯 사람 뒤에서 고개를 들었다⁠. 옥화는 메일을 열었다⁠.

「⁠서탑⁠, 내일 열두 시⁠. 평양 시간입니다⁠. 베이징 시간으로는 열한 시입니다⁠. 늦지 마십시오⁠.⁠」

옥화는 마지막 문장을 오래 보았다⁠. 금철이 쓴 편지에는 시각을 바꿔 주는 말이 없었다⁠. 평양 시간만 아는 사람은 베이징 시간을 덧붙이지 않았다⁠. 남의 시계를 같이 보는 사람⁠, 바깥을 지켜보는 자리에 앉은 사람만 그렇게 썼다⁠.

입국 심사대 위 전광판의 시계가 베이징 시간으로 밤 열한 시 사십삼 분을 가리켰다⁠. 옥화는 손목시계를 풀어 한 시간 뒤로 돌리려다 그만두었다⁠. 서울 시간 그대로 두었다⁠. 내일 열두 시에 옥화의 손목시계와 아이의 사무실 벽시계는 같은 시각을 가리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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