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396자)

송이 검품하러 온 공안

8조 해킹한 정찰총국 막내 해커 · 금나율

2026년 12월 4일 금요일 새벽⁠, 선양⁠. 평양 시간 시계가 다섯 시 구 분을 가리킬 때 조장의 손이 자판 위에서 멈췄다⁠. 리명길은 문 옆 자리에서 멈춘 손을 보았다⁠. 바이낸스의 이십 분 동안 한 번도 멈추지 않던 손이었다⁠.

“⁠막혔다⁠.⁠”

조장이 말했다⁠. 오늘 첫마디였다⁠. 염상혁이 의자에서 튀어 올랐다⁠.

“⁠몇 상자입니까⁠?⁠”

조장이 가운데 모니터를 턱으로 가리켰다⁠. 상혁이 밤새 고쳐 놓은 숫자판이 「⁠₩16⁠,000⁠,000⁠,000⁠」 근처에서 멈춰 있었다⁠. 상혁은 원화를 달러로⁠, 달러를 송이로 바꾸느라 입술을 달싹였다⁠.

“⁠열한 상자⁠. 열한 상자 조금 넘는다⁠. 서른 상자에서 열한 상자⁠.⁠”

칸막이 문이 열렸다⁠. 금철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숫자판을 보고⁠, 조장을 보고⁠, 문 옆의 명길을 보았다⁠. 금철의 눈이 명길에게서 가장 오래 머물렀다⁠.

“⁠막내⁠, 바깥은⁠?⁠”

“⁠가람엑스 공지는 아직 없습니다⁠. 게시판에 출금 안 된다는 글이 셋 올라왔습니다⁠.⁠”

“⁠네가 외치기 전에 저쪽이 먼저 막았다⁠.⁠”

“⁠예⁠.⁠”

상혁이 명길의 책상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사 분이다⁠. 새벽 다섯 시에 사 분 만에 막았다⁠. 바이낸스는 이십 분 동안 아무도 몰랐다⁠. 저쪽은 깨어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고⁠!⁠”

“⁠선배님⁠.⁠”

“⁠네가 알렸지⁠?⁠”

“⁠저는 밤새 여기 앉아 있었습니다⁠.⁠”

“⁠앉아서 뭘 했니⁠?⁠” 상혁이 명길의 점퍼 안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휴대전화 내놔⁠. 다니엘 아직 있지⁠?⁠”

명길이 몸을 돌렸다⁠. 상혁의 손이 명길의 어깨를 잡았다⁠. 의자가 밀리며 송이 상자에 부딪쳤다⁠. 상자 위 해바라기씨 봉지가 떨어져 바닥에 씨가 흩어졌다⁠.

“⁠상혁아⁠.⁠”

금철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상혁의 손이 멈췄다⁠.

“⁠놔라⁠. 평양에 먼저 보고한다⁠. 막내 휴대전화는 그다음이다⁠.⁠”

상혁이 손을 거두었다⁠. 숨이 거칠었다⁠. 상혁은 바닥에 흩어진 해바라기씨를 내려다보다가 발로 쓸어 모으기 시작했다⁠. 아무도 상혁을 돕지 않았다⁠. 명길은 엎드려 씨를 같이 주웠다⁠. 상혁이 명길의 손을 피해 다른 쪽 바닥을 쓸었다⁠.

*

여섯 시 반⁠, 금철이 칸막이 안에서 평양에 보고했다⁠. 문이 닫혀 있어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번에는 금철이 숫자를 말하는 시간보다 듣는 시간이 길었다⁠. 「⁠예⁠」가 여러 번 들렸고⁠, 「⁠알겠습니다⁠」는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일곱 시⁠, 금철이 나왔다⁠. 군복 윗단추를 풀지 않은 채였다⁠.

“⁠모두 들어라⁠. 12월 18일 금요일⁠, 단둥행 아침 기차로 사무실이 다 들어간다⁠. 연말 총화에서 이번 일을 따진다⁠. 송이 열한 상자는 공으로 친다⁠. 열아홉 상자는 누구 탓인지 따진다⁠.⁠”

“⁠식구들은요⁠?⁠”

상혁이 물었다⁠. 목이 쉬어 있었다⁠.

“⁠검토한다고 했다⁠.⁠”

“⁠검토가 뭡니까⁠?⁠”

“⁠검토다⁠.⁠”

금철은 더 말하지 않고 다시 칸막이로 들어갔다⁠. 창가의 조장이 처음으로 의자를 창 쪽으로 돌리지 않고 사무실 안을 향해 앉았다⁠. 조장은 두 손을 무릎에 얹고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오후 두 시⁠, 조장이 명길의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리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명길은 따라 올라갔다⁠. 빨랫줄의 작업복은 여전히 얼어 있었다⁠. 조장은 물탱크 그늘에 서서 담배를 꺼냈다가⁠, 불을 붙이지 않고 도로 넣었다⁠.

“⁠막내⁠.⁠”

“⁠예⁠.⁠”

“⁠내 아들은 일곱 달이다⁠.⁠”

명길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조장이 사무실에서 자기 이야기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조장은 방송탑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말이 느렸다⁠. 한 마디를 하고 나서 다음 마디를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바이낸스 날 손이 하나도 안 떨렸다⁠. 오늘 새벽엔 떨렸다⁠. 다섯 시 오 분에 들어가는데⁠, 저쪽이 깨어 있는 게 손끝으로 왔다⁠. 저쪽 손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장 동지⁠.⁠”

“⁠열아홉 상자는 내가 진다⁠. 손을 댄 건 나다⁠. 너는 상관 마라⁠.⁠”

“⁠조장 동지 식구는요⁠?⁠”

조장이 명길을 돌아보았다⁠. 조장의 눈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도 처음이었다⁠. 눈 밑이 거뭇했다⁠.

“⁠총화에서 내 손이 늦었다고 하면 된다⁠. 늙어서 늦었다고⁠. 그러면 나 하나로 끝난다⁠. 누가 밖에 알렸다고 하면 그건 한 사람으로 안 끝난다⁠. 알린 사람 식구⁠, 알린 사람 옆자리⁠, 옆자리 식구까지 간다⁠. 그러니까 내 손이 늦은 거다⁠.⁠”

조장은 명길의 어깨를 한 번 짚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명길은 옥상에 혼자 남았다⁠. 방송탑 꼭대기의 붉은 등이 깜박였다⁠. 조장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는 것을⁠, 명길은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끊긴 뒤에야 알아차렸다⁠. 누가 알렸는지 조장은 묻지 않았다⁠. 조장은 알고 있었다⁠.

*

12월 5일 토요일 오후 세 시⁠,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상혁이 문을 열자 서탑의 류 사장이 서 있었고⁠, 뒤에 회색 점퍼를 입은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마흔 남짓이었고⁠, 머리를 짧게 깎았고⁠, 목에 공안 신분증을 걸고 있었다⁠.

“⁠염 과장⁠, 미안해요⁠. 왕 경관이 송이 좀 보고 싶대요⁠. 내가 염 과장네 송이가 제일 좋다고 했거든요⁠.⁠”

류 사장이 서툰 조선말로 말하고 눈을 찡긋했다⁠. 공안 왕리쥔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송이 상자와 인삼 견본과 평양 시간 시계를 차례로 보았다⁠. 금철이 칸막이에서 나와 중국말로 인사했다⁠. 금철의 중국말은 조선말보다 부드러웠다⁠.

왕리쥔이 송이 상자 하나를 열었다⁠. 냉장 송이 열 개가 솔잎 위에 누워 있었다⁠. 왕리쥔이 하나를 집어 코에 댔다⁠. 오래 맡았다⁠.

“⁠칠보산 송이요⁠?⁠”

왕리쥔이 우리말로 물었다⁠. 발음은 서툴렀지만 칠보산은 또렷했다⁠. 상혁이 목소리를 반 옥타브 올렸다⁠.

“⁠예⁠, 칠보산 송이입니다⁠! 이건 남쪽 송이고요⁠.⁠”

“⁠류 사장이 동쪽 송이도 있다고 했어요⁠.⁠”

상혁의 얼굴이 굳었다⁠. 류 사장이 왕리쥔 뒤에서 어깨를 으쓱했다⁠. 명길은 송이 상자 뒤에서 웃음을 참느라 볼 안쪽을 깨물었다⁠.

“⁠동쪽 송이는⁠…⁠… 다 팔렸습니다⁠.⁠”

“⁠아깝네요⁠.⁠”

왕리쥔이 송이를 상자에 도로 놓고 손을 털었다⁠. 그리고 금철에게 중국말로 길게 말했다⁠. 명길은 중국말을 반쯤 알아들었다⁠. 상혁은 거의 다 알아들었는지 얼굴이 하얘졌다⁠.

미국에서 명단이 왔다고 했다⁠. 선양과 단둥의 무역회사 이름 몇 개가 들어 있다고 했다⁠. 공안은 시끄러운 일을 싫어하니 연말까지 조용히 정리해 달라고 했다⁠. 정리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왕리쥔이 한마디를 덧붙였고⁠, 금철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왕리쥔이 사무실을 한 바퀴 돌아보다가 문 옆 자리의 명길 앞에서 멈췄다⁠.

“⁠이 친구는 누구예요⁠?⁠”

“⁠우리 막내요⁠. 송이 나르는 애요⁠.⁠” 금철이 우리말로 대답했다⁠.

왕리쥔이 명길의 얼굴을 보았다⁠. 회색 점퍼⁠, 흰 셔츠⁠, 왼쪽 가슴의 붉은 배지⁠. 왕리쥔의 눈이 배지에서 잠깐 멈췄다가 다시 얼굴로 올라왔다⁠.

“⁠미국 사람들이 싱가포르 채용 담당을 찾아요⁠. 이름이 다니엘⁠. 송이 나르는 사람 중에 다니엘 있어요⁠?⁠”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명길은 숨을 쉬는 법을 잊지 않으려고 배지 아래 가슴을 천천히 부풀렸다⁠.

“⁠우리 회사엔 다니엘 없소⁠.⁠” 금철이 말했다⁠. “⁠다 조선 이름이오⁠. 황⁠, 염⁠, 리⁠.⁠”

왕리쥔이 한참 금철을 보더니 웃었다⁠.

“⁠좋아요⁠. 그럼 다니엘 없는 거로⁠.⁠”

왕리쥔은 송이 한 상자를 선물로 받아 들고 나갔다⁠. 류 사장이 문을 닫으며 상혁에게 속삭였다⁠. “⁠염 과장⁠, 다음엔 북쪽 송이로 줘요⁠. 왕 경관이 북쪽 걸 좋아해요⁠.⁠”

문이 닫혔다⁠. 상혁이 문에 등을 대고 주저앉았다⁠.

“⁠미국이 다니엘을 찾는다⁠. 공안이 다니엘을 찾는다⁠. 막내⁠, 너 아직도 다니엘 안 지웠지⁠?⁠”

명길은 대답하지 않았다⁠. 금철이 칸막이로 들어가며 말했다⁠.

“⁠막내⁠, 저녁에 휴대전화 들고 들어와라⁠.⁠”

*

12월 6일 일요일 밤⁠, 상혁이 남쪽 뉴스 기사를 출력해 명길의 책상에 내려놓았다⁠. 기사 제목에 형광펜이 그어져 있었다⁠.

「⁠가람엑스⁠, 해킹으로 160억 원 유출⁠…“⁠새벽 외부 제보로 대비⁠, 사 분 만에 출금 차단⁠”⁠」

“⁠외부 제보⁠.⁠” 상혁이 손가락으로 낱말을 짚었다⁠. “⁠이 사무실에서 서울로 말을 건 사람은 너 하나다⁠. 에릭도 너⁠, 다니엘도 너⁠.⁠”

“⁠선배님⁠.⁠”

“⁠나는 12월 23일에 우리 딸 처음 안는다⁠. 너는 나한테 약속했다⁠. 딸 웃음이 날아가는 일은 없게 하겠다고⁠.⁠” 상혁의 목소리가 떨렸다⁠. “⁠막내⁠, 열아홉 상자가 누구 탓인지 따진다고 했다⁠. 탓할 사람이 없으면 조장 동지가 진다⁠. 조장 동지 식구가 진다⁠. 분유 두 통 넣은 식구가⁠.⁠”

명길은 기사를 내려다보았다⁠. 형광펜 밑에서 「⁠외부 제보⁠」 네 글자가 노랗게 번져 있었다⁠. 명길은 조장을 보았다⁠. 조장은 창가에서 등을 보이고 있었다⁠. 등이 조금 굽어 있었다⁠.

“⁠선배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총화에서 말한다⁠. 기차에서 내리면 바로⁠.⁠”

상혁은 기사를 두고 자리로 돌아갔다⁠. 명길은 기사를 접지 않았다⁠. 접으면 숨기는 것이었다⁠.

기사 아래에 남쪽 이용자들의 댓글이 같이 출력되어 있었다⁠. 상혁이 일부러 함께 뽑은 것이었다⁠. 「⁠사 분이면 우리 보안팀 일했네⁠」 「⁠이상 무라더니 이상 유였음⁠」 「⁠제보한 사람 누구냐 상 줘라⁠」⁠. 명길은 마지막 댓글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종이를 뒤집어 놓았다⁠. 뒤집은 것은 숨긴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

12월 7일 월요일 밤 열 시⁠, 칸막이 안⁠. 금철의 책상에 명길의 휴대전화가 놓여 있었다⁠. 화면에 다니엘 추의 메일함이 열려 있었다⁠. 보낸 편지함 맨 위에 한 통이 있었다⁠. 12월 4일⁠, 평양 시간 세 시 오십팔 분⁠. 받는 사람⁠, 가람엑스 보안 취약점 신고⁠.

금철은 편지를 소리 내어 읽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내리며 눈으로만 읽었다⁠. 다 읽고 나서 휴대전화를 명길 쪽으로 밀었다⁠.

“⁠창문을 닫으라고 썼구나⁠.⁠”

“⁠예⁠.⁠”

“⁠두 번째 문이 지갑팀 안에 있다고도 썼고⁠.⁠”

“⁠예⁠.⁠”

“⁠열아홉 상자가 이 편지 한 통이다⁠.⁠”

명길은 대답하지 않았다⁠. 금철이 귤을 하나 집었다⁠. 껍질을 벗기지 않고 손바닥 위에서 굴렸다⁠.

“⁠이 편지는 평양에 안 보냈다⁠. 아직은⁠.⁠”

명길이 고개를 들었다⁠. 금철의 눈은 귤에 가 있었다⁠.

“⁠사장님⁠, 왜 안 보내셨습니까⁠?⁠”

“⁠보내면 너 하나로 안 끝난다⁠. 너를 사무실에 앉힌 사람⁠, 너를 미끼로 쓴 사람⁠, 네 휴대전화를 석 달 동안 안 뺏은 사람이 다 나다⁠. 나는 우리 딸이 은정이랑 같은 강의실에서 장갑 끼고 필기하기를 바란다⁠.⁠”

금철이 귤을 내려놓고 명길의 휴대전화를 다시 집었다⁠. 다니엘의 메일함에서 새 편지 쓰기를 눌렀다⁠. 받는 사람 칸에 가람엑스 보안 취약점 신고 주소를 넣었다⁠. 명길이 나흘 전에 넣은 주소였다⁠.

“⁠사장님⁠, 무엇을 쓰십니까⁠?⁠”

금철은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쳤다⁠. 손가락이 굵어서 오타가 났고⁠, 지우고 다시 쳤다⁠. 명길은 금철의 어깨 너머로 글자를 읽었다⁠.

「⁠김옥화 동무께⁠. 서탑 동무네 냉면⁠, 평양 시간 열두 시⁠. 날은 동무가 선양에 내린 다음 날⁠. 혼자 오시오⁠. — 평양역 대합실에서⁠」

금철이 전송을 눌렀다⁠. 화면에 「⁠보냈습니다⁠」가 떴다⁠. 금철은 휴대전화를 명길에게 돌려주었다⁠.

“⁠다니엘은 지우지 마라⁠. 저쪽이 답을 하면 여기로 한다⁠.⁠”

명길은 휴대전화를 받아 쥐었다⁠. 화면이 따뜻했다⁠. 금철의 손바닥 온기였다⁠.

1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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