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75자)
만조 삼십 분 전, 안전화 앞코까지 핵에 먹였다
던전 안전 감독관 · 피오담
12월 16일 목요일 아침 여덟 시 일 분, 9층 핵 바위턱에서 무열이 망치를 들어 올렸다. 핵이 부풀 때마다 바위턱 바닥이 무릎으로 올라왔다. 만조까지 육십구 분이었다. 태경은 무릎을 꿇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열과 핵 사이로 들어갔다. 지게를 벗지 않아서 쇠말뚝이 등 뒤에서 철컥 울렸다.
“비키십시오.”
“굴에 사람이 있습니다.”
“압니다. 그래서 지금 깹니다. 핵이 터지면 고인 물이 9층 바닥을 채웁니다. 굴도 잠깁니다. 그건 지금 깨도 만조에 저절로 터져도 똑같습니다.” 무열의 목소리는 낮았고 빨랐다. “다른 것은 하나입니다. 저절로 터지면 물이 9층을 채우고도 남아서 입구로 넘칩니다. 송도까지. 지금 깨면 9층에서 끝납니다.”
“핵이 저절로 터지는 건 만조 때입니다. 아직 한 시간 넘게 남았습니다.”
“맥 보십시오.” 무열이 핵을 턱으로 가리켰다. 푸른 빛이 부풀었다 가라앉는 사이가 눈에 띄게 짧아졌다. “지난번 7층에서 이 빠르기가 되고 사십 분 만에 숨구멍이 터졌습니다. 오늘은 만조까지 못 기다립니다. 삼십 분이면 터집니다.”
태경은 목에 건 오리 호루라기를 물었다.
꽥, 꽥, 꽥.
소리가 바위 종 안을 돌아 굴 입구까지 갔다. 굴 입구의 짐꾼들이 고개를 들었다. 대원들이 망치를 쥔 채 서로를 보았다. 태경이 호루라기를 입에서 떼었다.
“흑철 직접 고용 짐꾼 41번입니다. 작업중지를 요구합니다. 굴에 사람 열둘이 있습니다. 급박한 위험이 있습니다.”
“특별한 사유가 있습니다.” 무열이 망치를 내리지 않았다. “송도 해안 단지에 아직 대피 안 한 집이 있습니다.”
바위턱 끝에 놓인 무전기가 지직거렸다. 층마다 짐꾼 하나씩이 무전을 받아 다음 층에 넘기는 중계였다. 8층, 7층을 거쳐 부두의 하늬 목소리가 끊겨 들어왔다.
“……남은 집 백 가구 중에…… 육십 나왔어요…… 시청이 문 두드리는 중…… 할아버지 강아지도 나왔어요!”
무열이 무전기를 보았다가 태경을 보았다. 태경은 한 걸음도 비키지 않았다.
“감독관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열이 물었다. 처음으로 묻는 말이었다. “계산해 보십시오. 사십 가구와 열둘.”
“길드장님이 7층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태경이 지게를 풀어 내렸다. 쇠말뚝 묶음이 바위턱에 쿵 떨어졌다. “핵은 쇠를 먹으면 숨이 느려집니다. 먹이는 동안 줄을 겁니다. 굴에서 열둘을 건너오게 하고, 다 건너면 깹니다.”
무열이 쇠말뚝 묶음을 내려다보았다. 굵은 쇠말뚝 열두 개.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빠르게 따지는 얼굴이었다.
“말뚝은 줄을 거는 데 넷이 필요합니다. 남는 여덟 개로 십 분입니다. 대원 칼 스물다섯 자루로 이십 분.” 무열이 말을 멈췄다. “모자랍니다.”
“그럼 더 먹여야죠.”
무열은 대답하지 않았다. 망치를 바위턱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왼쪽 어깨판의 끈을 풀었다.
*
여덟 시 육 분, 무열이 은빛 어깨판을 두 손으로 들어 핵에 댔다. 쉬이익, 쇠가 핵에 닿은 자리에서 푸른 김이 솟았다. 어깨판 가장자리부터 녹아 흘렀다. 핵의 맥이 느려졌다. 한 번 뛰고 쉬는 사이가 길어졌다. 대원들이 숨을 들이켰다.
“칼 다 가져와. 하나씩.”
대원들이 칼을 뽑아 들고 줄지어 모였다. 무열은 녹아내리는 어깨판을 놓고 칼을 받아 핵에 댔다. 칼날이 핵 속으로 반쯤 잠기며 푸르게 녹았다.
태경은 쇠말뚝 넷을 바위턱 가장자리 바위틈에 박았다. 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손바닥이 울렸다. 굴 입구에서 갑수가 같은 일을 했다. 굴에 부려 둔 짐 속에 쇠말뚝 한 묶음과 밧줄이 있었다. 갑수가 밧줄 끝에 고리 상자 하나를 묶었다.
“감독관님, 받아요! 아니, 41번, 받아!”
갑수가 상자를 매단 밧줄을 크게 돌려 던졌다. 상자가 낭떠러지 위로 날아오다 바위턱 두 걸음 앞에서 떨어졌다. 밧줄이 물속으로 미끄러졌다. 갑수가 욕을 하며 끌어올렸다.
“열다섯 해 던졌는데 오늘 팔이 안 펴지네!”
“반장님, 일당에 투포환은 없었잖아요.” 승재가 굴 입구에서 외쳤다. 짐꾼들이 웃었다. 웃음 끝이 떨렸다.
두 번째 상자는 바위턱에 떨어졌다. 태경이 몸을 던져 상자를 끌어안았다. 상자 모서리가 갈비뼈를 찍었다. 태경은 숨을 삼키고 밧줄을 쇠말뚝에 감았다. 위아래 두 가닥. 십 미터짜리 줄길이 무너진 다리 위에 다시 생겼다.
“한 사람씩! 고리 새것!”
오씨가 먼저 건넜다. 위쪽 밧줄에 고리를 걸고 아래쪽 밧줄을 밟으며 게처럼 옆으로 왔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손은 놓지 않았다. 태경이 바위턱 끝에서 오씨의 벨트를 잡아당겼다. 오씨가 바위턱에 엎어지며 숨을 몰아쉬었다.
“떡. 떡이었어. 내 고리.” 오씨가 말했다. “아니, 쇠였어. 떡 아니었어.”
*
여덟 시 십구 분, 칼 스물다섯 자루가 다 녹았다. 대원들은 빈 칼집만 허리에 차고 있었다. 무열은 가슴판의 끈을 풀었다. 은빛 판이 몸에서 떨어지며 묵직한 소리를 냈다. 무열이 가슴판을 핵에 댔다. 가슴판 가운데 박힌 흑철 길드 문장이 먼저 녹았다. 쇠 방패 모양의 문장이 푸른 김 속에서 흐물흐물 내려앉았다.
대원 하나가 소리쳤다. “길드장님, 문장이…….”
“문장은 다시 찍으면 됩니다.” 무열이 이를 악물었다. “사람은 다시 못 찍습니다.”
짐꾼이 하나씩 건너왔다. 다섯, 여섯, 일곱. 태경은 건너오는 사람마다 벨트를 잡아당겨 바위턱에 앉혔다. 바위턱에 앉은 짐꾼들이 빈손이 되자 저마다 허리에서 쇠붙이를 찾았다. 허리띠 버클, 손전등, 열쇠 꾸러미. 하나씩 무열에게 건넸고, 무열은 하나씩 핵에 댔다. 열쇠 꾸러미가 녹으며 짤랑 소리가 났다.
“우리 집 열쇠야.” 짐꾼 하나가 말했다. “마누라한테 문 열어 달래야지.”
태경은 건너오는 사람의 고리를 하나씩 비틀어 보고 줄에 걸게 했다. 갈비뼈가 숨 쉴 때마다 결렸다. 굴 입구에서 승재가 짐꾼들 고리를 차례로 건네주고 있었다. 대원 가슴판을 벗어 던진 맨 훈련복 차림이었다. 물이 승재의 무릎까지 올라와 있었다.
“형, 나 계약 위반이래.” 승재가 고리를 건네며 소리쳤다. “위치 이탈. 계약금 토해 내야 된대. 빚 그대로야.”
“같이 갚아.”
“형 파면이라며. 형 연금도 반이라며. 둘이 합쳐도 마이너스야.”
“그럼 엄마 가게에서 김치 팔자.”
“형이 버무리면 맛없어. 형은 양념을 기준선까지만 넣잖아.”
굴 입구의 짐꾼들이 웃었다. 갑수가 다음 사람의 등을 줄 쪽으로 떠밀며 말했다. “김치 사업 하면 나 배달할게. 일당 칠십.”
“비싸요, 반장님.”
“바다 밑까지 배달하는 값이야.”
여덟 번째 짐꾼이 줄에 고리를 걸었다. 바위턱에 앉은 오씨가 손을 모으고 줄 위의 사람을 보며 중얼거렸다. 떡, 떡, 쇠, 쇠.
무전기가 지직거렸다. “……남은 집 스무 가구…… 부두에 짐꾼 사백이…… 9층 소식 기다려요…… 다들 오리 물고 있어요…….”
여덟 시 삼십일 분, 무열의 갑옷은 정강이받이만 남았다. 무열이 정강이받이까지 풀어 핵에 댔을 때 갑옷 아래 입은 옷이 드러났다. 빨간 내복이었다. 바위턱의 짐꾼들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가, 갑수가 굴 입구에서 먼저 터뜨렸다.
“길드장님, 내복 빨간 거 입었어!”
“겨울이라서요.” 무열은 정강이받이를 핵에 누른 채 대답했다. 얼굴이 내복만큼 붉었다. “바다 밑은 춥습니다.”
웃음이 바위 종을 한 바퀴 돌았다. 대원 하나가 제 패딩 조끼를 벗어 무열의 등에 걸쳐 주었다. 무열은 거절하지 않았다. 핵에 정강이받이를 누른 채 무열이 태경에게 고개를 돌렸다.
“감독관님, 지난번 부두에서 짐꾼 하나가 그랬다면서요. 고리 하나가 사람 하나라고.”
“오씨 아저씨가 했습니다.”
“갑옷 한 벌이 몇 사람입니까?”
태경은 줄 위의 아홉 번째 짐꾼 벨트를 잡아당기며 대답했다. “여덟 사람 지나갔습니다.”
무열은 더 묻지 않았다. 녹아내리는 정강이받이를 끝까지 누르고 있었다. 아홉 번째와 열 번째 짐꾼이 건너왔다. 굴 입구에 남은 사람은 둘이었다. 승재와 갑수. 갑수가 승재의 등을 떠밀었다.
“신입부터.”
“반장님이 먼저 가요. 나이 많은 사람부터라면서요.”
“그건 고리 비틀 때고!”
*
여덟 시 삼십팔 분, 정강이받이가 다 녹았다. 남은 쇠말뚝 여덟 개도 이미 핵 속으로 들어갔다. 핵의 맥이 다시 빨라졌다. 푸른빛이 부풀 때마다 바위턱 가장자리가 부스러져 아래로 떨어졌다.
무전기가 다시 지직거렸다. 하늬의 목소리가 층마다 짐꾼들 입을 거쳐 내려왔다. 남은 집이 열 가구라는 말과 부두 철망 앞에 오리 사백이 줄지어 있다는 말이 뒤섞여 들렸다. 누군가 무전 너머에서 오리 호루라기를 불었다. 꽥. 7층 짐꾼이 오리 소리까지 받아 넘겼는지, 바위턱 무전기에서도 작게 꽥 소리가 났다.
승재와 갑수가 함께 줄에 고리를 걸었다. 둘이 한 줄에 매달려 건너오기 시작했다. 위쪽 밧줄이 둘의 무게에 출렁였다.
무열이 바위턱을 둘러보았다. 쇠라고 할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대원들의 빈 칼집은 가죽이었다. 무열이 마지막으로 망치를 집었다. 망치 머리는 쇠였다. 망치를 먹이면 핵을 깰 것이 없어졌다.
태경이 무릎을 꿇고 안전화 끈을 풀었다. 갈색 안전화의 앞코에는 발가락을 지키는 쇠가 들어 있었다. 일곱 해 동안 공사장과 부두와 던전 바닥을 디딘 신발이었다. 태경은 양말 바람으로 바위턱에 서서 안전화 두 짝을 무열에게 내밀었다.
“앞코에 쇠 있습니다. 안전화라서요.”
무열이 안전화를 받아 들고 잠깐 웃었다. 그리고 앞코를 핵에 눌렀다. 가죽이 타는 냄새와 함께 쇠가 녹았다. 핵의 맥이 마지막으로 한 번 느려졌다.
“다른 것도 있습니다.” 태경이 목에서 진구의 쇠 호루라기를 풀었다. 주둥이가 푸르게 변한, 소리가 나지 않는 호루라기였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잠깐 보았다. 그리고 무열에게 건넸다. 무열은 받지 않았다.
“그건 넣지 마십시오.” 무열이 망치를 고쳐 쥐었다. “그건 제가 핵에 먹일 물건이 아닙니다.”
줄 한가운데에서 승재와 갑수가 멈추었다. 위쪽 밧줄에서 푸른 연기가 실처럼 피어올랐다. 핵에 가까운 바위턱 끝 말뚝이 먼저 삭고 있었다. 핵이 크게 부풀었다. 바위턱 전체가 들리듯 흔들렸다. 바위 종 천장에서 돌가루가 비처럼 떨어졌다.
여덟 시 사십사 분. 무열이 망치를 들어 올렸다.
“지금 안 깨면 저절로 터집니다! 그럼 송도까지 넘칩니다!”
태경은 줄 위의 동생을 보았다. 승재와 갑수가 줄 가운데서 서로의 벨트를 움켜쥐고 있었다. 반쯤 왔다. 다섯 걸음이었다. 태경은 무열을 보았다. 무열의 빨간 내복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망치 자루를 쥔 맨손 손등이 7층에서 데인 자리 그대로 푸르스름했다.
태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위턱 끝으로 달려가 맨발로 엎드려 위쪽 밧줄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승재야, 고리 풀지 마! 줄째 당긴다!”
무열의 망치가 핵을 내리쳤다. 핵이 쩍 갈라지며 하얀 빛을 토했다. 바위 종 전체가 한 번 크게 울었다. 갈라진 핵 틈에서 푸른 물이 터져 나와 9층 바닥을 덮치며 솟아올랐다. 물은 굴을 삼키고 낭떠러지를 채우며 줄길을 향해 올라왔다. 줄 위에 매달린 두 사람의 발밑까지 물보라가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