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40자)

감독관증을 내려놓고 짐꾼 41번이 되었다

던전 안전 감독관 · 피오담

12월 12일 일요일 저녁 여섯 시⁠, 노동부 인천 사무소에는 과장실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송도 마지막 공략을 앞두고 탁인규는 주말에도 나와 있었다⁠. 태경은 노크 없이 들어가 책상 위에 흰 봉투 하나와 감독관증을 나란히 놓았다⁠. 봉투 앞면에 「⁠사직서⁠」⁠.

인규가 돋보기를 벗었다⁠. 봉투를 열어 보지도 않았다⁠.

“⁠감찰 중에는 사표 수리 안 돼⁠. 너도 알잖아⁠.⁠”

“⁠압니다⁠. 그래도 냅니다⁠.⁠”

“⁠무엇 하려고⁠.⁠”

“⁠짐꾼 하려고요⁠. 새벽인력에 등록돼 있습니다⁠.⁠”

인규가 웃었다⁠. 이번에는 눈까지 웃었다⁠. 그러다 웃음이 천천히 굳었다⁠.

“⁠공무원이 일용직을 하면 겸직이야⁠. 직무 정지 중에 겸직하면 감찰 결과가 파면으로 바뀌어⁠. 연금도 반 날아가⁠. 일곱 해가 날아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태경아⁠, 왜 이러니⁠. 부두에서 보면 되잖아⁠. 송도는 길드가 알아서 해⁠.⁠”

“⁠강화도 길드가 알아서 했습니다⁠.⁠” 태경이 감독관증을 손끝으로 과장 앞에 한 번 더 밀었다⁠. “⁠부두에서는 고리가 안 보입니다⁠, 과장님⁠. 지난해에 그걸 배웠습니다⁠. 짐꾼은 위험이 우려되면 일을 멈추고 대피할 수 있습니다⁠. 감독관증이 없어도요⁠. 원청에 멈추라고 요구할 수도 있고요⁠. 이제 저한테 남은 건 그것뿐입니다⁠.⁠”

인규는 감독관증을 오래 내려다보았다⁠. 증 속 사진의 태경은 노란 안전모를 쓰고 있었다⁠. 인규가 서랍을 열어 감독관증을 넣고 잠갔다⁠. 봉투는 그대로 책상 위에 두었다⁠.

“⁠사표는 안 받는다⁠. 파면이 되든 말든⁠, 감찰 끝날 때까지 이 봉투는 여기 있어⁠.⁠” 인규가 다시 돋보기를 썼다⁠. “⁠죽지 마라⁠. 죽으면 내가 서명할 데가 또 생겨⁠.⁠”

*

12월 13일 월요일 새벽 다섯 시⁠, 「⁠새벽인력⁠」 사무소 앞에 줄이 길었다⁠. 형광등 하나가 깜빡이는 계단 아래에서 일용직 쉰여 명이 입김을 뿜으며 기다렸다⁠. 줄 중간에 갑수와 오씨가 있었고⁠, 둘은 태경을 보자 동시에 손을 흔들었다⁠. 태경은 노란 안전모를 겨드랑이에 끼고 줄 맨 끝에 붙었다⁠.

사무소 소장이 창구 너머에서 태경의 얼굴을 보다가 휴대전화 화면과 번갈아 보았다⁠. 뉴스 화면이었다⁠.

“⁠어⁠…⁠… 국회 그분⁠?⁠”

“⁠짐꾼 하러 왔습니다⁠.⁠”

소장은 볼펜을 떨어뜨렸다⁠. 줄에 선 사람들이 웃었다⁠. 소장이 계약서를 내밀자 태경은 첫 줄부터 끝 줄까지 다 읽었다⁠. 소장은 태경이 다 읽을 때까지 의자에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기다렸다⁠.

“⁠안전 교육 시간이 비어 있습니다⁠.⁠” 태경이 계약서 한 칸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입장 전 한 시간으로 적어 주십시오⁠.⁠”

“⁠감독관님이 근로계약서 읽으시는 거 처음 봐요⁠. 무섭네⁠.⁠”

“⁠이제 감독관 아닙니다⁠.⁠”

“⁠그게 더 무서워요⁠.⁠”

소장이 한 시간이라고 적었다⁠. 계약서 맨 위에 「⁠흑철 길드 직접 고용 · 송도 던전 짐꾼 · 일용 41⁠」⁠. 갑수가 줄 앞에서 돌아보며 외쳤다⁠.

“⁠41번⁠! 신입은 고리 비트는 법부터 배워야 돼⁠!⁠”

“⁠반장님⁠, 그건 신입이 가르쳐야 할 것 같은데요⁠.⁠” 오씨가 받았다⁠. 사무소가 웃음으로 덜컹거렸다⁠.

*

12월 14일 화요일 저녁⁠, 태경은 김치통을 안고 흑철 대원 숙소 앞에 갔다⁠. 송도 신도시 끝의 사층짜리 건물이었고⁠, 일층 식당 유리문 너머로 대원들이 식판을 들고 줄지어 있었다⁠. 경비 대원이 태경의 얼굴을 알아보고 무전기를 들었다⁠. 한참 뒤 승재가 내려왔다⁠. 흑철 훈련복 차림이었고⁠, 오른손 손바닥에 칼자루에 쓸린 물집이 두 개 잡혀 있었다⁠.

“⁠엄마가 보냈어⁠. 네 몫⁠.⁠”

승재는 김치통을 받아 들고 뚜껑의 노란 쪽지를 읽었다⁠. 「⁠승재 꺼 형이 먹지마⁠」⁠. 승재의 입꼬리가 움찔했다⁠.

“⁠형 짐꾼 계약했다며⁠. 반장님이 단톡에 올렸어⁠. 41번⁠.⁠”

“⁠응⁠.⁠”

“⁠미쳤어⁠? 형 파면이야⁠.⁠”

“⁠알아⁠.⁠”

“⁠나 때문이면 하지 마⁠. 나 대원이야⁠. 무열이 아저씨 옆에 있어⁠. 형보다 안전해⁠.⁠”

“⁠너 때문만은 아니야⁠.⁠” 태경이 승재의 물집 잡힌 손을 보았다⁠. “⁠칼은 손바닥으로 쥐지 말고 손가락으로 쥐어⁠. 고리 비틀 때처럼⁠.⁠”

승재가 손을 등 뒤로 감췄다⁠. 유리문 안쪽에서 대원 몇이 김치통을 보고 몰려나왔다⁠. 한 대원이 냄새를 맡더니 외쳤다⁠. “⁠와⁠, 진짜 집 김치다⁠!⁠” 승재가 김치통을 끌어안고 몸을 돌렸다⁠.

“⁠이거 내 거야⁠. 형이 먹지 말랬어⁠. 대원도 먹지 마⁠.⁠”

대원들이 웃었고⁠, 승재도 결국 웃었다⁠. 웃다가 형을 보았다⁠. 웃음이 사그라졌다⁠.

“⁠형⁠, 열엿새에 내 고리는 비틀지 마⁠. 나 이제 대원이야⁠.⁠”

승재는 김치통을 안고 유리문 안으로 들어갔다⁠. 대원들이 뒤를 졸졸 따라갔다⁠.

*

12월 15일 수요일 밤 아홉 시 반⁠, 부두 조명탑 아래에 짐꾼 쉰과 대원 스물다섯이 모였다⁠. 주민 대피는 오후부터 시작됐고⁠, 해안 단지의 창은 반쯤 불이 꺼져 있었다⁠. 하늬가 부두 철망 안에서 짐꾼 고리 검사를 거들었다⁠. 감독관 자격이 아니라 노동부 기록 담당으로 나왔다고 했다⁠.

태경은 「⁠흑철 일용 41⁠」 조끼를 입고 노란 안전모를 썼다⁠. 조끼 아래 남색 작업 셔츠는 그대로였다⁠. 짐꾼 고리 검사 줄에 서서 갑수에게 고리를 내밀었다⁠. 갑수가 엄지와 검지로 잠금쇠를 비틀었다⁠. 각도가 정확했다⁠.

“⁠합격⁠. 41번⁠, 손 깨끗하네⁠.⁠”

대원 줄 맨 끝에 승재가 있었다⁠. 흑철 신입 대원에게 지급된 은빛 반 판금 가슴판에⁠, 망토는 없었다⁠. 허리에 찬 칼이 무거운지 한쪽 어깨가 내려가 있었다⁠. 승재는 형의 짐꾼 조끼를 보고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부교 입구에서 갑옷 소리가 다가왔다⁠. 차무열이었다⁠. 무열은 검사 줄을 따라 걷다가 노란 안전모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조끼의 「⁠41⁠」을 한참 보았다⁠.

“⁠감독관님이 왜 거기 계십니까⁠?⁠”

“⁠짐꾼입니다⁠. 새벽인력에서 계약했습니다⁠. 일당 칠십⁠.⁠”

“⁠감독관님 대신 짐꾼 하나가 더 들어가 봐야 송도에 득 될 게 없습니다⁠.⁠”

“⁠저는 일하러 들어갑니다⁠. 위험이 우려되면 멈추고 대피합니다⁠. 원청에 멈추라고 요구도 합니다⁠. 근로자라서요⁠.⁠” 태경은 목에 건 오리 호루라기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길드장님이 국회에서 저를 멈추셨으니 이제는 짐꾼 한 사람으로 들어갑니다⁠.⁠”

무열이 웃었다⁠. 소리가 나지 않는 웃음이었다⁠.

“⁠짐꾼이면 짐을 지셔야죠⁠. 9층 줄길에 박을 쇠말뚝입니다⁠. 마흔 킬로⁠.⁠” 무열이 대원에게 손짓했다⁠. 대원이 쇠말뚝 묶음을 태경의 지게에 올렸다⁠. 태경의 무릎이 잠깐 꺾였다가 펴졌다⁠. “⁠핵 조와 같이 갑니다⁠. 제 옆에서 지십시오⁠. 감독관님이 어디 계신지 제가 알아야 하니까⁠.⁠”

“⁠동생은요⁠?⁠”

“⁠핵 조입니다⁠. 저랑 같이⁠.⁠”

*

입장 십 분 전⁠, 철망 밖에서 누가 태경을 불렀다⁠. 황옥분이었다⁠. 검은 패딩에 털모자⁠, 손에 작은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 갑수가 철망 문을 열어 주었다⁠.

옥분은 태경 앞에 서서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안에 은색 쇠 호루라기 하나가 들어 있었다⁠. 끈이 해져 있었고⁠, 주둥이 둘레가 푸르게 변해 있었다⁠.

“⁠우리 진구 거예요⁠. 강화에서 나왔어요⁠. 6층 바위턱에서⁠. 안에서 삭아서 소리는 못 내요⁠.⁠”

태경은 호루라기를 받아 들었다⁠. 쇠가 손바닥 안에서 가벼웠다⁠.

“⁠감독관님 용서한 거 아니에요⁠.⁠” 옥분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평평했다⁠. “⁠그 사람도 용서 안 했어요⁠.⁠” 옥분은 부교 앞의 무열을 보았다⁠. 무열은 옥분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내려가요⁠. 내려가서 보고 와요⁠.⁠”

태경은 진구의 호루라기를 오리 호루라기 옆에 함께 걸었다⁠. 플라스틱과 쇠가 가슴에서 부딪혔다⁠.

*

내려가는 길은 길었다⁠. 쇠말뚝 마흔 킬로가 지게 끈을 타고 어깨뼈를 눌렀다⁠. 4층에서 첫 고리 교체를 했고⁠, 갑수가 짐꾼들 고리를 비트는 동안 태경은 지게를 내려놓고 숨을 골랐다⁠. 짐꾼이 되고 보니 감독관일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고리 교체 시간에만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교체하는 동안 물을 마시고 핫팩을 갈고 오줌을 누어야 했다⁠. 교체를 건너뛰면 쉬는 시간도 함께 없어졌다⁠.

6층 줄길 입구에서 무열이 잠깐 멈추었다⁠. 말뚝은 지난번에 새로 박은 것이었다⁠. 무열은 말뚝 머리를 가죽 장갑 낀 손으로 한 번 쓸었다⁠. 태경이 뒤에서 무열의 손을 보았다⁠. 무열은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강화도 6층이 제일 길었습니다⁠.⁠”

“⁠압니다⁠.⁠”

“⁠감독관님은 아십니까⁠? 6층 줄길 한가운데서 아래를 보면⁠, 물이 하늘처럼 보입니다⁠.⁠” 무열이 고리를 위쪽 밧줄에 채웠다⁠. “⁠열엿새 지나고 말씀드리겠다고 했죠⁠.⁠”

무열은 줄길을 건넜다⁠. 망토가 낭떠러지 위에서 바람을 받아 크게 부풀었다⁠. 태경은 뒤따라 고리를 채웠다⁠. 줄길 아래 푸른 물이 정말로 하늘처럼 멀고 밝았다⁠.

*

12월 16일 목요일 새벽 일곱 시 사십 분⁠, 9층⁠. 바위 벽 전체가 숨을 쉬고 있었다⁠. 맨 아래층은 동굴이라기보다 거대한 종 안이었다⁠. 한가운데 높은 바위턱에 사람 키 두 배만 한 푸른 핵이 박혀 있었고⁠, 핵이 부풀었다 가라앉을 때마다 바위 바닥이 발밑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바위턱에서 낮은 굴까지는 폭 두 걸음짜리 바위 다리 하나가 이었다⁠. 짐꾼들은 낮은 굴에 고리 상자와 식량을 부렸고⁠, 핵 조는 바위턱에서 쇠말뚝을 박아 줄길을 냈다⁠.

태경은 바위턱에서 무열 옆에 쇠말뚝을 내려놓았다⁠. 어깨가 지게 끈에 쓸려 화끈거렸다⁠. 핵에서 소금기 섞인 더운 바람이 밀려왔다⁠.

낮은 굴 바닥에서 물이 스며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발목⁠, 곧 정강이⁠. 갑수가 굴 입구에서 오리 호루라기를 물었다⁠.

꽥⁠, 꽥⁠, 꽥⁠.

“⁠굴 바닥에 물 올라와⁠! 짐 다 놓고 올라간다⁠!⁠”

짐꾼 열하나가 상자를 내려놓고 바위 다리로 향했다⁠. 굴 안쪽 깊은 데서 오씨가 다리를 끌며 나왔다⁠. 무릎까지 물이었다⁠. 핵 조 대원들은 바위턱에서 망치를 고쳐 쥐었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대원은 호루라기가 없었다⁠. 무열이 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핵 조는 위치 지킨다⁠.⁠”

승재가 망치를 내려놓았다⁠. 대원 하나가 승재의 팔을 잡았다⁠. 승재는 팔을 뿌리치고 바위 다리를 건너 굴로 뛰어갔다⁠. 오씨의 겨드랑이에 어깨를 넣어 일으켰다⁠.

“⁠공승재⁠! 위치⁠!⁠” 무열이 외쳤다⁠.

“⁠나 원래 짐꾼이에요⁠!⁠” 승재가 외쳐 받았다⁠. 반 판금 가슴판의 끈을 풀어 굴 바닥에 던졌다⁠. 은빛 판이 물에 잠기며 푸른 김을 피웠다⁠. “⁠계약 위반이면 일당에서 까세요⁠!⁠”

핵이 크게 부풀었다⁠. 바위 종 전체가 낮게 울었다⁠. 바위 다리 가운데에 금이 갔다⁠. 금은 소리보다 먼저 보였다⁠. 머리카락만 한 선이 다리 위를 가로질렀고⁠, 다음 순간 다리 한가운데가 통째로 아래로 꺼졌다⁠. 바위 덩어리가 굴 앞 물속으로 떨어지며 물기둥을 세웠다⁠. 다리 양 끝만 바위턱과 굴 입구에 이빨처럼 남았다⁠.

굴 입구에 승재와 갑수⁠, 오씨를 비롯한 짐꾼 열하나가 남았다⁠. 열둘이었다⁠. 사이는 십 미터⁠. 아래는 푸른 물이 끓는 낭떠러지였다⁠.

태경은 바위턱 끝에 무릎을 꿇었다⁠. 굴 입구의 승재와 눈이 마주쳤다⁠. 승재가 웃으려다 말았다⁠.

“⁠형⁠, 이거 특혜 아니지⁠?⁠”

무열이 손목의 시계를 보았다⁠. 만조까지 한 시간 십 분이었다⁠. 무열은 핵 앞에서 대원들이 들고 있던 망치 하나를 받아 쥐었다⁠. 쇠 망치 머리가 핵의 빛을 받아 푸르게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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