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03자)

김장 버무리다 동생이 길드 대원이 됐다

던전 안전 감독관 · 피오담

12월 9일 목요일 아침⁠, 노동부 인천 사무소 과장실의 블라인드가 반쯤 내려와 있었다⁠. 책상 위에 감찰 통보서가 놓였고⁠, 옆에 식은 믹스커피가 종이컵째 굳어 있었다⁠. 탁인규는 통보서를 태경 앞으로 밀었다⁠. 손등에 검버섯이 두어 개 앉은 손이었다⁠.

“⁠감찰 끝날 때까지 직무에서 빠진다⁠. 송도 현장도⁠, 해든운반 수사도 넘겨⁠. 감독관증은 서랍에 넣어 두고⁠.⁠”

태경은 통보서를 읽지 않고 접었다⁠. “⁠과장님⁠.⁠”

“⁠알아⁠.⁠”

“⁠지난해 강화에서 상자만 보고 쓰라고 하신 건 과장님이었습니다⁠.⁠”

인규는 블라인드 틈으로 주차장을 보았다⁠. 기자 둘이 정문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성였다⁠.

“⁠그래⁠, 내가 그랬다⁠. 위에서 전화가 세 번 왔어⁠. 장관실에서 한 번⁠, 강화군에서 두 번⁠. 그날 공략 안 열면 이틀 뒤에 강화 바닷가 마을 이백 가구가 잠긴다고 했어⁠. 너는 6층까지 내려가겠다고 했고⁠, 내려가면 반나절이었지⁠. 반나절이면 그 마을 대피를 못 끝냈어⁠.⁠” 인규가 태경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상자 보고 쓰라고 했다⁠. 네가 썼고⁠. 이름은 네 거지⁠.⁠”

“⁠국회에서 과장님 지시가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고맙다고 해야 하니⁠?⁠” 인규가 웃었다⁠. 웃는데 입꼬리만 움직였다⁠. “⁠말했어도 똑같아⁠. 지시한 사람은 서명이 없고⁠, 서명한 사람은 이름이 있어⁠. 기록이 그래⁠.⁠”

태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송도 조건은요⁠?⁠”

“⁠동행 감독관은 뺀다⁠. 너 말고는 갈 사람이 없어⁠. 문하늬는 이 년 차야⁠. 그 애를 9층에 내려보낼 순 없잖아⁠.⁠” 인규가 서류철을 덮었다⁠. “⁠고리 여섯 시간⁠, 짐꾼 고리 검사 참여⁠, 호루라기는 남긴다⁠. 그건 차 길드장이 먼저 받겠다고 했으니까⁠.⁠”

“⁠감독관 없이 내려가면 아래층 고리는 누가 봅니까⁠?⁠”

“⁠짐꾼들이 본다며⁠. 손가락은 자기들이 더 많이 쓴다고⁠.⁠” 인규가 의자를 돌려 등을 보였다⁠. “⁠태경아⁠, 너도 아래까지 안 내려갔잖아⁠. 그때는⁠.⁠”

태경은 감독관증을 서랍에 넣지 않았다⁠. 조끼 안주머니에 도로 넣고 과장실을 나왔다⁠. 복도에서 하늬가 서류 상자를 안고 서 있었다⁠. 해든운반 수사 기록이었다⁠. 하늬는 상자를 든 채 태경을 막았다⁠.

“⁠기록 보면 다 있다면서요⁠.⁠”

“⁠다 있었지⁠.⁠”

“⁠그러니까 왜 저한테는 말을 안 했냐고요⁠.⁠” 하늬의 목소리가 떨렸다⁠. 상자 모서리를 쥔 손가락이 하얬다⁠. “⁠저 선배 사진 찍어서 공익광고라고 했잖아요⁠. 그 사진 아직 블로그에 있어요⁠.⁠”

“⁠내려 달라고 해⁠.⁠”

“⁠안 내릴 거예요⁠.⁠” 하늬가 상자를 고쳐 안았다⁠. “⁠내리면 진짜 없었던 사람이 되잖아요⁠.⁠”

*

12월 10일 금요일 밤⁠, 태경의 원룸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갑수와 오씨가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봉지 안에서 소주병이 부딪혔다⁠.

“⁠직무 정지면 이제 우리랑 같은 신세네⁠. 일당 없는 날⁠.⁠” 갑수가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일당 없는 날엔 원래 소주야⁠.⁠”

원룸에는 의자가 하나뿐이었다⁠. 셋은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오씨가 봉지에서 순대와 귤을 꺼냈다⁠. 텔레비전에서 밤 뉴스가 흘렀다⁠. 칠레 광산 던전 짐꾼들이 열흘 만에 일을 다시 시작했고⁠, 원청 회사가 짐꾼 고리를 직접 사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이어서 국회 소식⁠. 「⁠‘⁠던전 중대재해법⁠’ 12월 20일 법안심사소위 상정⁠」⁠.

“⁠칠레도 고리네⁠.⁠” 오씨가 귤을 까며 말했다⁠. “⁠고리는 어디나 삭나 봐⁠.⁠”

갑수는 소주를 반 잔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손등 흉터를 엄지로 문질렀다⁠.

“⁠감독관님⁠, 국회에서 그거 들었을 때 나 솔직히 욕 나왔어⁠. 근데 집에 가는 버스에서 생각해 보니까⁠, 강화 때 무전 생각이 나더라고⁠.⁠”

“⁠무전이요⁠?⁠”

“⁠6층 내려가기 전에 대원 무전기로 위에서 지시가 왔어⁠. 6층 교체 건너뛴다⁠, 시간 없다⁠, 부두에 새 상자 들어왔으니 감독관 점검은 끝났다⁠. 내가 대원 옆에 있어서 들었어⁠.⁠” 갑수가 잔을 다시 들었다⁠. “⁠길드장 목소리였어⁠. 저 낮은 목소리⁠. 그때는 몰랐는데 송도 부두에서 처음 듣자마자 알았지⁠.⁠”

“⁠진술하시겠습니까⁠?⁠”

“⁠무전은 녹음이 없대⁠. 강화 수사 때 감독관님이 찾아봤잖아⁠. 나 혼자 들은 거야⁠.⁠” 갑수가 웃었다⁠. “⁠늙은 짐꾼 하나 귀하고 길드장 입하고⁠, 어느 걸 믿겠어⁠?⁠”

태경은 대답하지 못했다⁠. 오씨가 순대를 집어 태경 손에 쥐여 주었다⁠.

“⁠일단 먹어요⁠. 감독관님 얼굴이 고리 삭은 색이야⁠.⁠”

갑수가 웃음을 터뜨렸고⁠, 태경도 처음으로 따라 웃었다⁠. 웃다가 순대를 떨어뜨렸다⁠. 셋은 자정까지 신문지 위에서 귤껍질을 쌓았다⁠. 돌아가면서 갑수가 현관에서 오리 호루라기를 하나 꺼내 태경의 신발장 위에 놓고 갔다⁠.

*

12월 11일 토요일 아침⁠, 구월동 반찬가게 뒷마당에 배추가 산처럼 쌓였다⁠. 해마다 어머니의 김장은 백 포기였다⁠. 가게에서 팔 것 팔십⁠, 집에서 먹을 것 스물⁠. 큰 고무 대야 두 개에 소금에 절인 배추가 숨이 죽어 누웠고⁠, 평상 위에는 고춧가루와 젓갈을 버무린 양념이 붉게 퍼져 있었다⁠. 마늘과 생강 냄새가 담장 너머 골목까지 넘어갔다⁠.

어머니가 두 아들에게 빨간 고무장갑을 한 켤레씩 던졌다⁠.

“⁠국회고 던전이고 오늘은 김장이다⁠. 싸우면 소금물에 넣는다⁠.⁠”

형제는 대야 양쪽에 마주 앉았다⁠. 승재가 배춧잎을 한 장씩 들추며 양념을 넣었고⁠, 태경은 다 버무린 배추를 반으로 접어 김치통에 담았다⁠.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배춧잎 사이로 양념 문지르는 소리만 났다⁠. 승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형도 상자만 봤구나⁠.⁠”

태경은 배추를 접던 손을 멈췄다⁠.

“⁠나한텐 고리 두 번 비틀어 봤다며⁠.⁠” 승재가 고무장갑으로 배춧잎을 쓸었다⁠. 양념이 손목까지 튀었다⁠. “⁠강화 아저씨들한테는 한 번도 안 비틀어 봤으면서⁠.⁠”

“⁠그래서 송도에서는 하나씩 다 봤어⁠.⁠”

“⁠그래⁠, 그래서 송도 아저씨들은 형한테 고마워⁠. 나도 고맙고⁠.⁠” 승재가 배추 한 포기를 다 버무리고 장갑 낀 손을 대야 위에 털었다⁠. 붉은 양념이 떨어졌다⁠. “⁠근데 형은 이제 직무 정지잖아⁠. 형 없이 내려가야 돼⁠.⁠”

승재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고무장갑을 벗지 않아서 종이 귀퉁이에 양념 손자국이 찍혔다⁠.

「⁠흑철 길드 정규 대원 계약서 — 공승재 · 송도 던전 9층 핵 조⁠」

“⁠무열이 아저씨가 6층에서 짐꾼 고리 바꿔 준 거 봤대⁠. 대원 할 사람이래⁠. 계약금으로 빚 삼천 먼저 갚아 준대⁠. 엄마 가게 보증도 풀리고⁠.⁠”

“⁠대원은 짐꾼이 아니야⁠. 호루라기가 없어⁠.⁠”

“⁠알아⁠. 대원은 안 멈춰⁠. 멈추면 대원이 아니래⁠.⁠” 승재가 종이를 형 앞으로 내밀었다⁠. “⁠형이 멈출 수 있을 때는 나도 멈췄어⁠. 이제 형이 못 멈추잖아⁠. 그럼 나는 내 일을 해야지⁠.⁠”

“⁠9층 핵 조면 맨 아래야⁠. 거기는 고리가 여섯 시간 못 가⁠.⁠”

“⁠형이 그랬잖아⁠. 하나씩 보면 된다며⁠.⁠” 승재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형은 하나씩 안 봤으면서⁠!⁠”

어머니가 마루에서 내려왔다⁠. 양념 묻은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두 아들의 등을 차례로 한 대씩 쳤다⁠. 등판에 붉은 손바닥 자국이 하나씩 찍혔다⁠.

“⁠소금물에 넣는다고 했지⁠.⁠” 어머니가 숨을 몰아쉬었다⁠. 눈가가 빨갰다⁠. 고춧가루 때문인지 아닌지 태경은 묻지 않았다⁠. “⁠승재야⁠, 그거 엄마 가게 보증 때문이면 엄마가 안 받는다⁠.⁠”

“⁠엄마 때문 아니에요⁠. 내 빚이에요⁠.⁠” 승재가 고무장갑을 벗어 평상에 던졌다⁠. 장갑이 양념 그릇 옆에 뒤집혀 떨어졌다⁠. “⁠형⁠, 나 화요일부터 흑철 교육이야⁠. 열엿새에 핵 조로 들어가⁠. 형은 부두에서 보든가⁠.⁠”

승재가 골목으로 나갔다⁠. 태경은 따라가지 않았다⁠. 대야 안에 반쯤 버무리다 만 배추가 남아 있었다⁠. 어머니가 승재의 장갑을 주워 끼고 승재 자리에 앉았다⁠.

“⁠나머지 마저 하자⁠.⁠”

둘은 해가 기울 때까지 배추를 버무렸다⁠. 어머니는 한 번도 승재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마지막 김치통 뚜껑을 닫고 나서야 어머니가 말했다⁠.

“⁠승재 몫은 네가 갖다 줘라⁠. 흑철인지 뭔지 숙소로⁠.⁠”

*

밤 열 시⁠, 태경은 송도 부두 철망 밖에 서 있었다⁠. 직무 정지라 철망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김치통 하나가 차 조수석에 실려 있었다⁠. 바다 위 바위 절벽이 푸른빛을 맥박처럼 흘렸다⁠. 지난번보다 맥이 빨랐다⁠. 부교는 새로 놓였고⁠, 입구 앞에 노랑과 검정 차단봉이 다시 줄지어 있었다⁠. 「⁠작업 중지⁠」 팻말은 없었다⁠.

철망 안쪽에서 갑옷 소리가 다가왔다⁠. 차무열이었다⁠. 무열은 철망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철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보았다⁠.

“⁠동생은 숙소에 있습니다⁠. 오늘 대원 장비 받았어요⁠. 칼이 무겁다고 투덜대더군요⁠.⁠”

“⁠왜 꺼내셨습니까⁠?⁠” 태경이 물었다⁠. “⁠의견서요⁠.⁠”

“⁠말씀드렸잖습니까⁠. 감독관님이 열엿새에 부두에 계시면 송도가 잠깁니다⁠. 감독관님은 또 멈추실 분이니까⁠.⁠” 무열의 입김이 철망 사이로 하얗게 퍼졌다⁠. “⁠감독관님이 깨끗하지 않다는 걸 보여야 감독관님 말이 멈춥니다⁠. 그러니 꺼냈습니다⁠.⁠”

“⁠길드장님도 깨끗하지 않습니다⁠. 강화 6층 고리 교체를 건너뛰라고 하신 게 길드장님입니다⁠. 해든 창고 메일에 ‘⁠지난번 강화 수준으로⁠’라고 있었습니다⁠.⁠”

“⁠구매팀장 메일입니다⁠.⁠”

“⁠구매팀장은 공략 일정을 모릅니다⁠. 6층 교체를 건너뛰면 반나절이 준다는 계산은 공략을 지휘하는 사람이 합니다⁠.⁠”

무열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을 들어 철망을 쥐었다⁠. 검은 가죽 장갑 속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

“⁠열엿새가 지나고 이야기합시다⁠.⁠” 무열이 말했다⁠. “⁠그날 송도가 안 잠기면⁠, 감독관님이 묻는 말 다 대답하겠습니다⁠. 국회에서든 어디서든⁠.⁠”

“⁠그날 누가 떨어지면요⁠?⁠”

“⁠안 떨어지게 하겠습니다⁠. 감독관님 동생도요⁠.⁠”

“⁠강화 때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무열이 철망에서 손을 떼었다⁠. 돌아서다 말고 태경의 차 조수석을 보았다⁠. 김치통 뚜껑 위에 노란 쪽지가 붙어 있었다⁠. 「⁠승재 꺼 형이 먹지마⁠」⁠.

“⁠김치는 대원 숙소 앞에 두고 가십시오⁠. 제가 전해 주겠습니다⁠.⁠”

“⁠제가 직접 줍니다⁠.⁠”

“⁠그러시든가요⁠.⁠” 무열이 망토를 여미며 부교로 걸어갔다⁠. 목에 건 빨간 오리 호루라기가 갑옷 가슴판에 딸깍 부딪혔다⁠.

*

자정 넘어 두 개의 문자가 연달아 왔다⁠. 먼저 하늬였다⁠.

「⁠선배 오늘 심의에서 동행 감독관 조건 빠졌어요 대신 짐꾼 대표가 고리 검사 참여 남았고요 호루라기도 남았어요 차 길드장이 끝까지 안 뺐대요⁠」

「⁠근데 저는 동행 안 시켜 준대요 이 년 차라서요 저 화나요⁠」

다음은 모르는 번호였다⁠. 인력 사무소에서 일당직 등록자에게 보내는 단체 문자였다⁠.

「⁠새벽인력 — 흑철 송도 던전 마지막 공략 짐꾼 쉰 명 모집 · 12월 15일 밤 열 시 입장 · 일당 칠십만 원 · 13일 새벽 다섯 시 사무소에서 계약⁠」

태경은 차 안에서 휴대전화를 오래 보았다⁠. 몇 해 전 해든운반 수사 때 일용직 계약서를 보려고 새벽인력에 등록해 두었던 번호였다⁠. 조수석의 김치통에서 마늘 냄새가 올라왔다⁠. 태경은 안주머니의 감독관증을 꺼내 운전대 위에 올려놓았다⁠. 사진 속 노란 안전모의 자기 얼굴이 계기판 불빛에 파랗게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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