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06자)

국회에서 꺼낸 해제 의견서, 서명은 공태경

던전 안전 감독관 · 피오담

12월 8일 수요일 아침 아홉 시⁠, 국회 본관 앞 계단에 눈이 얇게 깔려 있었다⁠. 검은 승합차에서 차무열이 내렸다⁠. 은빛 판금 갑옷에 검붉은 망토⁠, 목에는 빨간 오리 호루라기⁠. 출입구 앞에서 국회 방호 직원 둘이 동시에 손바닥을 들었다⁠.

“⁠선생님⁠, 갑옷은 안 됩니다⁠.⁠”

“⁠무기는 안 가져왔습니다⁠.⁠”

“⁠갑옷이 무기처럼 보이셔서요⁠. 그리고 탐지기가⁠…⁠…⁠.⁠” 직원이 금속 탐지기 문을 가리켰다⁠. 문은 사람 하나 겨우 지나는 폭이었고⁠, 무열의 어깨판은 그보다 넓었다⁠.

무열은 승합차로 돌아갔다⁠. 십 분 뒤에 내린 사람은 회색 정장 차림의 쉰 넘은 남자였다⁠. 넥타이 매듭이 비뚤었고⁠, 망토는 접어서 팔에 걸쳤다⁠. 갑옷을 벗으니 어깨가 반으로 줄었다⁠. 검은 수염만 그대로였다⁠. 왼손의 검은 가죽 장갑도 그대로였다⁠.

하늬가 태경 옆에서 작게 말했다⁠. “⁠갑옷 벗으시니까 동네 약국 아저씨 같아요⁠.⁠”

“⁠들려⁠.⁠”

“⁠칭찬이에요⁠. 약국 아저씨는 다 친절하잖아요⁠.⁠”

무열이 계단을 오르며 두 사람을 지나쳤다⁠. 넥타이 매듭 아래로 빨간 오리 호루라기가 대롱거렸다⁠. 태경이 손가락으로 제 목을 가리켰다⁠. 무열은 호루라기를 셔츠 안으로 밀어 넣으면서도 표정은 바꾸지 않았다⁠.

태경의 휴대전화가 떨었다⁠. 「⁠공씨네⁠」였다⁠.

「⁠엄마 : 태경아 국회나간다며 넥타이 매고가라 아빠꺼 있다⁠」

「⁠엄마 : 승재야 형 국회나간다 티비 틀어라⁠」

「⁠승재 : 형 떨지마 떨면 고리 비트는 손 보여줘 그럼 다들 무서워함⁠」

「⁠엄마 : 넥타이는⁠」

태경은 조끼 안에 맨 남색 넥타이를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 어머니가 엄지 그림을 세 개 보냈고⁠, 승재가 「⁠조끼에 넥타이 ㅋㅋ 공익광고 국회편⁠」이라고 달았다⁠. 하늬가 어깨 너머로 보다가 웃음을 삼켰다⁠.

계단 아래 눈 위에 황옥분이 팻말을 안고 서 있었다⁠. 오늘은 들지 않고 품에 안았다⁠. 방청 신청을 했다고 했다⁠. 옥분은 정장 차림의 무열을 한참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실은 생각보다 좁았다⁠. 의원석이 디귿 자로 둘러앉았고⁠, 가운데 참고인석에 마이크 셋이 나란히 놓였다⁠. 왼편부터 왕정만⁠, 차무열⁠, 공태경⁠. 뒤편 방청석에 옥분이 맨 앞줄에 앉았다⁠. 하늬와 갑수가 옥분 뒷줄에 앉았는데⁠, 갑수는 방청석 직원에게 호루라기를 맡기라는 말을 듣고 오리 호루라기를 순순히 내놓았다⁠. 직원이 호루라기를 받아 들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위원장이 개회를 알렸고⁠, 첫 질의는 석윤희 의원이었다⁠. 쉰 살쯤 된 여자로⁠, 질문지를 넘기는 손이 빨랐다⁠.

“⁠왕정만 회장님⁠. 엊그제 월요일 전국 휴업⁠, 무엇을 보여 주려고 하신 겁니까⁠?⁠”

“⁠길드 없이는 던전을 못 막는다는 겁니다⁠.⁠” 왕정만이 마이크를 당겼다⁠. “⁠하루 쉬었더니 시흥⁠, 평택⁠, 강화 던전 수위가 다 올라갔습니다⁠. 시민들이 불안해하셨죠⁠. 그런데 국회는 길드장을 감옥에 보내는 법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길드장들이 다 손을 떼면 누가 들어갑니까⁠?⁠”

“⁠짐꾼은 들어가던데요⁠. 송도 부두에 사백 명 왔다면서요⁠.⁠”

방청석 뒷줄에서 갑수가 헛기침을 했다⁠. 위원장이 방청석을 보았고⁠, 갑수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공태경 감독관님⁠.⁠”

태경은 해든운반 창고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작업대 위의 은색 스프레이 깡통⁠, 신품 스티커 묶음⁠, 은색 칠이 덜 마른 고리⁠. 다음 화면에 흑철 구매팀장의 메일이 떴다⁠. 태경은 마지막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감독관 점검은 부두에서만 합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석윤희가 물었다⁠.

“⁠지난해 강화 사고 때도 감독관 점검은 부두에서만 했습니까⁠?⁠”

“⁠네⁠.⁠”

“⁠왜요⁠?⁠”

“⁠공략조가 이미 아래층에 들어가 있었고⁠, 감독관은 부두에 새 고리 상자가 들어온 것을 보고 점검을 마쳤습니다⁠.⁠”

“⁠그 감독관이 누구였는지는⁠…⁠…⁠.⁠”

“⁠차무열 참고인⁠.⁠” 위원장이 시간을 이유로 질문을 넘겼다⁠. 석윤희가 입술을 깨물고 질문지를 넘겼다⁠.

무열이 마이크를 받았다⁠. 목소리는 부두에서와 같았다⁠. 낮고 느렸다⁠.

“⁠메일은 저희 구매팀장이 보낸 것이고⁠, 오늘부로 회사에 없습니다⁠. 책임은 저한테 있습니다⁠. 원청 길드장을 처벌하는 법이 통과되면 저부터 받겠습니다⁠.⁠” 무열이 잠깐 숨을 골랐다⁠. “⁠다만 송도는 열엿새⁠, 다음 주 목요일 아침에 넘칩니다⁠. 법은 사리를 미루지 못합니다⁠. 그날 감독관님이 또 공략을 멈추시면⁠, 이번에는 아파트 일층이 아니라 송도 해안 단지 전체가 잠깁니다⁠.⁠”

석윤희가 다시 마이크를 켰다⁠. “⁠참고인⁠, 지난주에 하청 업체를 끊고 짐꾼을 직접 고용하셨죠⁠? 왜 그러셨습니까⁠?⁠”

“⁠하청을 끼면 고리를 누가 샀는지 제가 모릅니다⁠. 모르면 제가 책임을 못 집니다⁠.⁠” 무열이 담담하게 말했다⁠. “⁠직접 고용하니 고리도 제가 삽니다⁠. 짐꾼 일당에서 빠지던 수수료도 없어졌고요⁠.⁠”

“⁠그럼 원청이 책임지는 게 가능하다는 말씀이네요⁠.⁠”

왕정만이 끼어들었다⁠. “⁠흑철은 큰 길드라 가능한 겁니다⁠. 대원 서른인 길드는 직접 고용을 못 합니다⁠. 업계의 현실은⁠…⁠…⁠.⁠”

“⁠업계의 현실은 고리가 삭는 거죠⁠.⁠” 석윤희가 왕정만의 말을 받았다⁠. 방청석에서 웃음이 났다가 위원장의 의사봉 소리에 그쳤다⁠.

여당 의원 하나가 손을 들었다⁠. “⁠감독관님⁠, 지금 길드장님 말씀이 맞습니까⁠? 개인 판단으로 도시를 위험에 빠뜨리시는 겁니까⁠?⁠”

“⁠제 판단은 고리를 비틀어 보고 한 겁니다⁠. 3조 고리 열에 넷이 삭았습니다⁠.⁠” 태경이 조끼 주머니에서 푸른 고리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국회 회의실 탁자 위에서 삭은 고리가 기울어 굴렀다⁠. “⁠이걸 찬 사람이 6층 줄길에 서른 명 있었습니다⁠.⁠”

왕정만이 웃음을 섞어 말했다⁠. “⁠그런데 해안은 잠겼죠⁠. 사람은 안 죽었는데 해안은 잠겼어요⁠. 감독관님은 그걸 안전이라고 하시는 거고⁠, 송도 주민들은 그걸 행정이라고 합니다⁠.⁠”

방청석에서 옥분이 의자 팔걸이를 쥐는 소리가 났다⁠. 위원장이 십 분 휴정을 알렸다⁠.

*

휴정 동안 회의실 문밖 복도에서 갑수가 방청석 직원에게 맡긴 호루라기를 돌려받고 있었다⁠. 직원이 호루라기를 돌려주기 전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정말 꽥 소리가 나요⁠? 뉴스에서 봤는데⁠.⁠”

“⁠불어 봐요⁠. 국회는 위험하면 안 멈춰요⁠?⁠”

직원이 주위를 둘러보고는 호루라기를 입에 대고 아주 살짝 불었다⁠. 꽥⁠. 복도 끝에서 의원 보좌관 둘이 돌아보았다⁠. 직원이 얼굴이 빨개져 호루라기를 갑수 손에 쥐여 주었다⁠. 갑수는 소매로 주둥이를 닦아 목에 걸고 말했다⁠.

“⁠이걸로 국회도 한 번 멈췄네⁠.⁠”

본관 계단참은 창이 크고 추웠다⁠. 태경은 창가에서 서류판을 무릎에 대고 다음 질의 메모를 고쳤다⁠. 계단 아래에서 무열이 올라왔다⁠. 정장 단추를 풀었고⁠, 셔츠 안에서 호루라기가 다시 삐져나와 있었다⁠.

“⁠석 의원이 다음에 강화 해제 과정을 물을 겁니다⁠.⁠” 무열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누가 무엇을 보고 풀었는지⁠. 다 말하실 겁니까⁠?⁠”

“⁠길드장님 구매팀장 메일은 다 말했습니다⁠.⁠”

“⁠제 메일 말고요⁠.⁠” 무열이 태경을 돌아보았다⁠. “⁠감독관님 서류판 말입니다⁠. 강화 때도 그걸 끼고 계셨죠⁠.⁠”

태경의 손이 서류판 위에서 멈췄다⁠. 창밖으로 눈발이 비스듬히 날렸다⁠.

“⁠송도는 열엿새입니다⁠.⁠” 무열이 말했다⁠. “⁠그날 감독관님이 또 멈추시면 이번엔 진짜로 잠깁니다⁠. 해안 단지에 아직 대피 안 하겠다는 집이 삼백 가구입니다⁠. 시청에서 받은 숫자예요⁠. 저는 그날 감독관님이 부두에 안 계셨으면 합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오늘 감독관님을 멈추려고 합니다⁠.⁠” 무열은 정장 안주머니를 손바닥으로 한 번 눌렀다⁠.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지금 석 의원 앞에서 직접 말씀하시면⁠, 저는 이걸 꺼낼 필요가 없습니다⁠.⁠”

“⁠길드장님이 6층 고리를 바꾸지 말라고 하신 것도 같이 말하면요⁠?⁠”

무열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계단을 두 칸 내려가다 멈추고 말했다⁠.

“⁠증거가 있는 쪽이 먼저 무너집니다⁠. 감독관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잖아요⁠. 기록이 말한다고⁠.⁠”

무열이 내려갔다⁠. 태경은 서류판 집게를 엄지로 눌렀다⁠. 쇠 집게가 손가락 밑에서 딸깍 소리를 냈다⁠.

*

속개된 질의에서 석윤희가 곧장 태경을 불렀다⁠.

“⁠감독관님⁠, 강화 공략 중지는 누가⁠, 무엇을 보고 해제했습니까⁠? 해제 의견서는 누가 썼습니까⁠?⁠”

태경은 마이크 앞에서 숨을 들이켰다⁠. 입을 열기 전에 옆에서 마이크가 켜지는 소리가 났다⁠.

“⁠위원장님⁠, 참고인 차무열입니다⁠. 자료를 하나 내겠습니다⁠.⁠”

위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열이 정장 안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내 탁자 위에 폈다⁠. 국회 직원이 받아 화면에 띄웠다⁠. 회의실 앞 화면에 한 장짜리 문서가 크게 떴다⁠.

「⁠강화 던전 공략 중지 해제 의견 — 부두 반입 새 고리 상자 확인⁠, 교체 이행으로 판단함 · 2026년 12월 10일 · 동행 감독관 공태경⁠」

“⁠지난해 강화 공략 중지를 풀어 준 해제 의견서입니다⁠. 사고는 다음 날⁠, 2026년 12월 11일 금요일 아침이었습니다⁠. 6층 줄길에서 짐꾼 열둘이 떨어졌습니다⁠.⁠” 무열의 목소리는 끝까지 낮았다⁠. “⁠제 구매팀장이 메일에 쓴 대로⁠, 감독관 점검은 부두에서만 했습니다⁠. 서명하신 분이 오늘 제 옆에 계십니다⁠.⁠”

회의실이 한꺼번에 술렁였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석윤희의 볼펜이 질문지 위에서 멈췄다⁠. 왕정만은 놀란 얼굴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알고 있던 얼굴이었다⁠.

방청석 맨 앞줄에서 옥분이 일어났다⁠. 직원이 앉아 달라고 했지만 옥분은 앉지 않았다⁠. 품에 안고 있던 팻말이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6층 고리는 누가 안 바꿨나⁠」⁠. 글씨가 위를 보고 떨어졌다⁠.

위원장이 태경을 불렀다⁠. “⁠공태경 참고인⁠, 사실입니까⁠?⁠”

태경은 화면 속 자기 이름을 보았다⁠. 지난해 겨울 강화 부두⁠, 바람 속에서 새 고리 상자 뚜껑을 열고 맨 위의 고리 몇 개를 비틀어 보았던 손가락이 기억났다⁠. 아래층에서 짐꾼들이 무엇을 차고 있는지는 내려가 보지 않았다⁠. 과장의 전화가 두 번 왔고⁠, 세 번째 전화를 받기 전에 서명했다⁠.

“⁠제가 썼습니다⁠.⁠” 태경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부두에서 상자만 보고 썼습니다⁠. 6층에는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옥분이 태경을 보았다⁠. 울지 않았다⁠. 갑수가 옥분 뒤에서 일어나 옥분의 어깨를 잡았고⁠, 옥분은 갑수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팻말을 하늬가 주워 옥분의 손에 쥐여 주었다⁠.

조끼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연달아 떨었다⁠. 태경은 꺼내 보지 않았다⁠. 화면이 켜졌다 꺼지기를 되풀이했고⁠, 위로 올라오는 알림 몇 줄이 주머니 천 너머로 비쳤다⁠. 과장 탁인규의 부재중 전화⁠, 그리고 승재의 메시지 한 줄⁠.

「⁠형 진짜야⁠?⁠」

위원장이 질의를 이어 가겠다고 했다⁠. 다음 의원이 무엇을 물었는지 태경은 끝까지 들었고⁠, 묻는 말마다 짧게 대답했다⁠. 제가 썼습니다⁠.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과장님 지시가 있었는지는 제가 서명한 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대답할 때마다 카메라 셔터가 다시 쏟아졌다⁠.

무열은 종이를 반으로 접어 안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넥타이 매듭 아래에서 빨간 오리 호루라기가 회의실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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