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41자)

오리 호루라기 사백 개가 부두에 모였다

던전 안전 감독관 · 피오담

12월 3일 금요일 아침 아홉 시⁠, 남동공단의 이층짜리 조립식 건물 앞에 짐꾼 여섯이 나란히 있었다⁠. 저마다 목에 빨간 오리 호루라기를 걸었고⁠, 오씨는 두 손을 패딩 주머니에 넣은 채 발을 굴렀다⁠. 간판에 「⁠해든운반 · 인력 · 장비⁠」⁠. 밤사이 영장이 나왔다⁠. 감독관은 노동 법령 위반을 수사하는 특별사법경찰이었고⁠, 태경은 수사관 둘과 하늬를 데리고 계단을 올랐다⁠.

해든운반 사장은 사무실 문을 반쯤 열고 영장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감독관님⁠, 저희는 시키는 대로 한 거예요⁠.⁠”

“⁠누가 시켰습니까⁠?⁠”

사장이 입을 다물었다⁠. 계단 아래에서 갑수가 오리 호루라기를 물었다⁠. 꽥⁠. 사장이 움찔했다⁠.

“⁠반장님⁠, 지금은 부시면 안 됩니다⁠.⁠” 하늬가 계단 아래로 말했다⁠.

“⁠거짓말하면 하나씩 불기로 했어⁠. 우리끼리⁠.⁠”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얼굴이 거짓말이었어⁠.⁠”

사장은 문을 끝까지 열었다⁠.

*

창고는 건물 뒤편 가건물이었다⁠. 문을 열자 시큼한 쇠 냄새와 페인트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 나왔다⁠. 긴 작업대 위에 은색 스프레이 깡통이 줄지어 있었고⁠, 플라스틱 통에는 푸르게 삭은 고리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작업대 끝에 「⁠신품 · 해든운반⁠」 스티커 묶음이 놓여 있었다⁠. 바닥에는 은색 칠이 덜 마른 고리들이 신문지 위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태경은 칠이 덜 마른 고리 하나를 집어 비틀었다⁠. 손가락에 은색 페인트가 묻었고 잠금쇠가 물렀다⁠. 수사관이 사진을 찍었다⁠. 하늬의 드론이 창고 천장 아래를 한 바퀴 돌았다⁠.

“⁠고철상에서 삭은 고리를 킬로그램으로 사 오셨습니까⁠?⁠”

“⁠고리가 없었어요⁠. 공장 두 군데가 다 밀렸어요⁠.⁠” 사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길드에서는 단가를 맞추래요⁠. 새 고리 값으로 받아서 재생 고리를 넣으면 그 차이로 짐꾼 일당을 맞춰요⁠.⁠”

“⁠짐꾼 일당은 길드가 줍니다⁠.⁠”

“⁠길드가 주는 일당이 우리한테 오는 데까지 이것저것 빠져요⁠.⁠”

사무실 컴퓨터에서 수사관이 메일 한 통을 찾아 화면을 돌렸다⁠. 보낸 사람은 흑철 길드 구매팀장이었다⁠.

「⁠송도 건 고리 단가 지난번 강화 수준으로 맞춰 주세요⁠. 상자 스티커는 신품으로⁠. 감독관 점검은 부두에서만 합니다⁠」

태경은 마지막 문장을 오래 보았다⁠. 부두에서만⁠. 지난해 겨울 강화 부두에서 새 고리 상자를 열어 보던 자기 손이 떠올랐다⁠. 화면을 사진으로 찍는 수사관의 손이 대신 움직였다⁠.

*

열한 시⁠, 건물 앞에 검은 승합차가 멈췄다⁠. 차무열이 내렸다⁠. 갑옷 대신 검은 패딩을 입었는데⁠, 패딩 아래로 쇠 정강이받이가 보였다⁠. 왼손에는 여전히 가죽 장갑이었다⁠. 짐꾼 여섯이 호루라기를 입에 대고 무열을 보았다⁠. 아무도 불지 않았다⁠.

무열은 사무실 계단 아래에서 태경과 마주했다⁠. 수사관이 들고 나온 상자 안의 은색 고리를 내려다보았다⁠.

“⁠구매팀장이 보낸 메일이 있습니다⁠.⁠” 태경이 말했다⁠. “⁠‘⁠감독관 점검은 부두에서만 합니다⁠.⁠’ 강화 때도 이렇게 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무열은 대답을 바로 하지 않았다⁠. 바람이 공단 골목을 쓸고 지나가며 빈 깡통을 굴렸다⁠.

“⁠구매팀장은 오늘부로 정리하겠습니다⁠.⁠”

“⁠팀장 한 사람이 정한 겁니까⁠?⁠”

“⁠제가 몰랐다고 하면 감독관님은 안 믿으실 거고⁠, 알았다고 하면 오늘 이 자리에서 수갑을 꺼내시겠죠⁠.⁠” 무열이 정강이받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면 저를 넣으십시오⁠. 원청 길드장이 책임지게 하는 법이라면서요⁠. 그런데 오늘은 12월 3일이고⁠, 송도는 16일에 넘칩니다⁠.⁠”

“⁠그래서 삭은 고리는 덮으시겠다는 겁니까⁠?⁠”

“⁠아니요⁠. 해든운반과 계약을 오늘 끊습니다⁠.⁠” 무열이 짐꾼 여섯을 돌아보았다⁠. “⁠송도 짐꾼은 흑철이 직접 고용합니다⁠. 일당은 칠십 그대로⁠. 하청 수수료가 빠지니 손에 쥐는 건 더 많을 겁니다⁠. 잘린 여섯도 월요일부터 나오십시오⁠. 호루라기는 그대로 차고⁠.⁠”

짐꾼들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오씨가 호루라기를 입에서 떼고 물었다⁠.

“⁠그럼 이제 고리는 누가 사요⁠?⁠”

“⁠흑철이 삽니다⁠. 감독관님이 비틀어 보시고요⁠.⁠” 무열은 태경을 보았다⁠. “⁠부두에서만 말고⁠, 아래에서도⁠.⁠”

해든운반 사장이 계단 위에서 무열을 불렀지만 무열은 돌아보지 않고 승합차에 올랐다⁠. 차가 떠난 뒤 갑수가 오리 호루라기를 한 번 불었다⁠. 꽥⁠. 하늬가 돌아보자 갑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번 건 거짓말이라서가 아니고⁠, 좋아서⁠.⁠”

*

12월 4일 토요일 저녁⁠, 구월동 반찬가게⁠. 태경이 가게 문을 열자 어머니가 대파 한 단을 들고 서 있었다⁠. 계산대 위 작은 텔레비전에서 저녁 뉴스가 해든운반 압수수색 화면을 다시 틀고 있었다⁠. 짐꾼들이 공단 건물 앞에 모인 장면이 지나갔고⁠, 짐꾼들 한가운데에서 등판에 「⁠해든 일용 27⁠」이 박힌 조끼가 또렷이 보였다⁠.

“⁠물류센터가 공단에 있니⁠? 조끼에 숫자 달고⁠?⁠”

승재는 이미 가게 안쪽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가 대파로 승재의 어깨를 한 번 쳤다⁠. 대파 끝이 꺾였다⁠.

“⁠엄마⁠, 대파 아까워요⁠.⁠”

“⁠아까운 줄 아는 놈이 바다 밑에를 들어가⁠?⁠” 어머니가 꺾인 대파를 태경에게 내밀었다⁠. “⁠너도 알았지⁠. 형이란 게⁠.⁠”

태경은 대파를 받아 들었다⁠. 어머니가 의자에 털썩 앉았다⁠. 가게 안에 멸치 볶는 냄새가 남아 있었다⁠.

“⁠보증 때문이면 가게 내놓으면 된다⁠. 엄마가 장사 십오 년 했는데 가게 하나 못 팔겠니⁠?⁠”

“⁠가게 팔면 엄마는 뭐 해요⁠?⁠” 승재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 가게 팔아서 내 빚 갚는 거⁠, 그게 제일 싫어서 들어간 거예요⁠. 형은 공무원이라 안 되고⁠, 엄마는 가게라 안 되고⁠. 그럼 나는 뭐가 돼요⁠?⁠”

어머니가 입을 다물었다⁠. 태경도 말하지 못했다⁠. 텔레비전 속에서 앵커가 다음 소식으로 넘어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송도 사태 현안 질의를 연다는 소식이었다⁠.

어머니가 일어나 반찬통 두 개를 꺼냈다⁠. 이번에는 둘 다 장조림이었다⁠.

“⁠싸울 거면 똑같은 거 먹고 싸워⁠.⁠”

*

12월 5일 일요일 오후⁠, 흑철이 새로 들인 고리 상자가 부두 컨테이너 앞에 쌓였다⁠. 태경은 갑수와 승재⁠, 오씨를 불러 상자 앞에 앉혔다⁠. 짐꾼이 고리 검사에 붙는다는 말을 갑수가 먼저 꺼냈고⁠, 무열이 오후에 그러자고 했다⁠.

“⁠엄지는 잠금쇠 등에⁠, 검지는 안쪽에⁠. 비틀 때 손목을 쓰지 말고 손가락만 씁니다⁠.⁠” 태경이 고리 하나를 들어 보였다⁠. “⁠무르면 손가락 끝이 먼저 들어갑니다⁠. 쇠가 아니라 껌을 누르는 느낌입니다⁠.⁠”

“⁠껌⁠.⁠” 오씨가 따라 했다⁠. “⁠나는 틀니라 껌을 안 씹어⁠.⁠”

“⁠그럼 떡이요⁠.⁠”

“⁠떡은 알지⁠.⁠”

승재가 고리 하나를 비틀다가 손가락을 찧었다⁠. “⁠형⁠, 이거 일곱 해 했다고⁠? 손가락 안 아파⁠?⁠”

“⁠처음 두 해는 아팠어⁠.⁠” 태경이 승재 손에서 고리를 받아 각도를 고쳐 쥐여 주었다⁠. “⁠삼 년째부터는 쇠가 먼저 말을 해⁠.⁠”

“⁠쇠가 뭐라는데⁠?⁠”

“⁠나 삭았다⁠.⁠”

갑수가 웃다가 상자에서 고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 비틀자 잠금쇠가 말랑하게 들어갔다⁠. 갑수의 얼굴이 굳었다⁠. 태경이 받아 비틀어 보았다⁠. 새 상자에서 나온 무른 고리 하나였다⁠. 공장에서 처음부터 잘못 나온 것이었다⁠.

“⁠천 개에 하나는 이래요⁠. 그래서 하나씩 봐야 합니다⁠.⁠”

오씨가 무른 고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이거 하나가 사람 하나네⁠.⁠”

넷은 해가 질 때까지 상자 열 개를 비틀었다⁠. 승재의 손가락 끝이 빨갛게 부었고⁠, 오씨는 떡이라는 말을 서른 번쯤 했다⁠.

*

12월 6일 월요일 아침⁠, 전국의 길드가 문을 닫았다⁠. 시흥에서도 강화에서도 평택에서도 공략조가 부두에 나오지 않았다⁠. 텔레비전은 휴업한 던전의 수위 예보를 하나씩 띄웠고⁠, 길드 연합은 「⁠길드가 멈추면 나라가 멈춘다⁠」는 성명을 냈다⁠.

송도 부두는 오히려 붐볐다⁠. 아침 일곱 시부터 버스와 승합차가 해안 도로에 줄지어 멈췄다⁠. 휴업으로 일을 잃은 다른 던전의 짐꾼들이었다⁠. 하나같이 목에 빨간 오리 호루라기를 걸고 있었다⁠. 하늬가 드론으로 위에서 헤아리다 포기했다⁠.

“⁠선배⁠, 사백은 넘어요⁠. 오리가 사백 마리예요⁠.⁠”

갑수가 부교 입구의 새 차단봉 앞에 짐꾼들을 모았다⁠. 컨테이너 사무실 앞 철제 계단 위에서 무열이 내려다보았다⁠. 이번에는 갑옷 차림이었다⁠. 은빛 판금 위로 검붉은 망토⁠, 왼손만 검은 가죽 장갑⁠.

무열이 부두로 내려와 갑수 앞에 멈췄다⁠. 무열 뒤에 대원 스물⁠, 갑수 뒤에 짐꾼 사백⁠. 태경은 두 무리 사이에 있었다⁠. 누구도 태경에게 비켜 달라고 하지 않았다⁠.

“⁠다른 길드 짐꾼까지 모아서 송도를 막겠다는 겁니까⁠?⁠” 무열이 물었다⁠.

“⁠막는 거 아니고 같이 들어가자는 거요⁠.⁠” 갑수가 말했다⁠. “⁠열엿새 아침에 짐꾼 쉰은 필요할 거 아니오⁠. 해든 없으니 사람 구하기 힘들 거고⁠. 우리가 들어가 줄게⁠. 대신 세 가지⁠. 고리는 여섯 시간⁠. 호루라기 불면 멈춘다⁠. 그리고 고리 검사할 때 우리 짐꾼 하나가 감독관 옆에 붙는다⁠.⁠”

“⁠짐꾼이 고리를 검사한다고요⁠?⁠”

“⁠손가락은 우리가 더 많이 써⁠.⁠” 갑수가 손등 흉터를 내보였다⁠. “⁠하청 짐꾼도 원청한테 멈추라고 할 수 있다면서요⁠. 사월부터⁠. 감독관님이 그랬어⁠.⁠”

무열이 태경을 보았다⁠. 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법에 있습니다⁠. 요구를 받으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들어줘야 합니다⁠.⁠”

무열은 한동안 짐꾼 사백의 얼굴을 훑었다⁠. 바닷바람에 망토가 펄럭였다⁠. 대원들이 숨을 죽였다⁠. 무열이 손을 내밀었다⁠.

“⁠호루라기 하나 주십시오⁠.⁠”

갑수가 제 목에서 오리 호루라기를 풀어 건넸다⁠. 무열은 은빛 갑옷 차림 그대로 빨간 플라스틱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불었다⁠.

꽥⁠.

부두가 웃음으로 뒤집혔다⁠. 대원들도 참지 못했다⁠. 무열은 웃지 않고 호루라기를 목에 걸었다⁠.

“⁠세 가지 다 받겠습니다⁠. 16일 새벽 다섯 시에 모입니다⁠. 지금 이 사람들 중에서 쉰⁠.⁠”

“⁠일당은요⁠?⁠” 뒤에서 누가 외쳤다⁠.

“⁠칠십⁠.⁠”

“⁠휴업한 우리 길드는 사십 주는데⁠!⁠”

웃음이 한 번 더 터졌다⁠. 무열은 돌아서 부교로 걸어갔다⁠. 망토 아래 목에 걸린 빨간 호루라기가 갑옷 가슴판에 딸깍딸깍 부딪혔다⁠.

*

오후 세 시⁠, 태경의 휴대전화에 국회 공문이 왔다⁠. 「⁠환경노동위원회 현안 질의 — 12월 8일 수요일 열 시 · 참고인 공태경⁠, 차무열⁠, 왕정만⁠」⁠.

곧 모르는 번호가 울렸다⁠. 석윤희 의원이었다⁠. 「⁠던전 중대재해법⁠」을 낸 의원이었다⁠.

“⁠감독관님⁠, 강화 사고 기록 전부 보셨죠⁠? 수사하신 분이니까요⁠.⁠” 석윤희의 목소리는 빠르고 또렷했다⁠. “⁠공장에서 스물세 명이 죽은 사건도 일심에서 십오 년 나온 게 이심에서 사 년이 됐어요⁠. 유족과 합의했다고요⁠. 법이 사람을 지켜 주려면 처음부터 원청을 넣어야 합니다⁠. 수요일에 강화 공략 중지가 어떻게 풀렸는지까지 말씀해 주셔야 통과됩니다⁠.⁠”

“⁠어떻게 풀렸는지요⁠?⁠”

“⁠해제 과정이요⁠. 누가 무엇을 보고 풀었는지⁠.⁠”

전화를 끊자마자 과장 탁인규의 전화가 왔다⁠. 인규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국회 나가서 송도 이야기만 해⁠. 강화는 끝난 사건이야⁠.⁠”

“⁠의원실이 강화 해제 과정을 묻습니다⁠.⁠”

“⁠태경아⁠.⁠” 인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거 너도 다쳐⁠.⁠”

전화가 끊겼다⁠. 부두 너머 바위 절벽에서 푸른빛이 맥을 쳤다⁠. 태경은 조끼 주머니 속 오리 호루라기를 손가락으로 쥐었다⁠. 플라스틱이 손바닥 안에서 미지근하게 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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