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39자)

갑옷 서른 벌 앞에서 삭은 고리를 들었다

던전 안전 감독관 · 피오담

12월 2일 목요일 아침⁠, 송도 해안 도로에는 아직 무릎 아래까지 물이 고여 있었다⁠. 태경은 장화를 신고 물을 헤치며 걸었다⁠. 바닥에 깔린 모래와 해초가 장화 밑창에 미끈거렸고⁠, 상가 셔터마다 허리 높이에 갈색 물자국이 줄을 그었다⁠. 편의점 앞에서 직원이 젖은 라면 상자를 하나씩 들어 밖으로 내놓고 있었다⁠. 하늬는 한 손에 우산⁠, 한 손에 드론 가방을 들고 뒤따랐다⁠.

아파트 단지 정문 앞에서 패딩 차림의 여자 셋이 길을 막았다⁠. 맨 앞의 여자가 휴대전화 화면을 태경 얼굴 옆에 들이댔다⁠.

“⁠이분 맞죠⁠?⁠”

화면에는 입주민 단톡방 「⁠송도 해안 3단지⁠」가 열려 있었다⁠. 노란 안전모에 형광 주황 조끼⁠, 서류판을 낀 태경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고⁠, 아래에 「⁠이 사람이 공략 멈춤⁠」이라는 글과 화난 얼굴 그림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일요일 아침 부두에서 하늬가 드론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하늬가 작게 말했다⁠. “⁠선배⁠, 저 아니에요⁠. 노동부 홍보팀이 블로그에 올린 거예요⁠.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로⁠.⁠”

“⁠지하 주차장에 차가 열한 대 잠겼어요⁠.⁠” 여자가 말했다⁠. “⁠하루만 안 멈췄으면 안 잠겼다면서요⁠. 뉴스에서 그랬어요⁠.⁠”

“⁠하루를 안 멈췄으면 삭은 고리를 단 사람들이 6층에서 떨어졌을 겁니다⁠.⁠” 태경이 말했다⁠. “⁠다음 만조는 16일 아침입니다⁠. 그날은 꼭 대피하십시오⁠.⁠”

“⁠그날은 안 멈출 거죠⁠?⁠”

태경은 대답하지 못했다⁠. 여자들이 길을 비켜 주면서도 화면을 내리지 않았다⁠. 등 뒤에서 누군가 태경을 찍는 셔터 소리가 났다⁠.

*

길드 연합 긴급 총회는 송도의 전시장 홀에서 열렸다⁠. 입구에 「⁠무기 맡기는 곳⁠」과 「⁠망토 걸이⁠」 안내판이 나란히 붙어 있었고⁠, 망토 걸이에는 검은 것⁠, 붉은 것⁠, 금실을 두른 것까지 망토 스무 벌이 빽빽이 매달려 있었다⁠. 길드장 서른 명이 저마다 갑옷을 입고 앉자 접이식 의자가 차례로 끽끽 울었다⁠. 맨 앞줄에서 의자 하나가 아예 주저앉았고⁠, 진행 요원이 철제 벤치를 끌고 왔다⁠.

「⁠무기 맡기는 곳⁠」 앞에서 태경은 차무열과 마주쳤다⁠. 무열은 허리에 찬 망치를 풀어 탁자에 올려놓았다⁠. 맡는 직원이 망치를 들다가 무게에 손목이 꺾여 두 손으로 다시 들었다⁠. 무열의 왼손에는 검은 가죽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장갑 목 위로 붕대가 보였다⁠.

“⁠보고서에 쓰셨습니까⁠?⁠” 무열이 물었다⁠. “⁠핵이 쇠를 먹는다는 거⁠.⁠”

“⁠어젯밤에 썼습니다⁠.⁠”

“⁠그럼 이제 길드 사람만 아는 게 아니게 됐군요⁠.⁠” 무열은 맡김 번호표를 받아 갑옷 틈에 끼웠다⁠. “⁠감독관님 보고서는 누가 읽습니까⁠?⁠”

“⁠과장님이요⁠. 그다음은 모릅니다⁠.⁠”

“⁠지난해 강화 보고서도 그렇게 올라갔겠죠⁠.⁠” 무열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홀 안으로 들어갔다⁠. 망토 걸이 앞을 지나면서도 망토를 벗지 않았다⁠. 직원이 따라가며 망토는 걸어 달라고 했고⁠, 무열은 못 들은 척했다⁠.

단상에는 연합 회장 왕정만이 올라왔다⁠. 갑옷이 아니라 회색 양복이었고⁠, 옷깃에 금빛 연합 배지가 반짝였다⁠. 목소리가 마이크에 매끄럽게 실렸다⁠.

“⁠업계의 현실은 이렇습니다⁠. 감독관 한 명의 판단으로 공략이 멈추고⁠, 도시가 잠깁니다⁠. 그런데 국회는 지금 길드장을 감옥에 보내는 법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이미 지난 4월부터 일 년에 세 명 이상 죽으면 영업이익의 오 퍼센트까지 과징금으로 내는 법이 시행됐는데도요⁠. 우리는 12월 6일 월요일 하루⁠, 전국 공략을 멈추겠습니다⁠. 길드가 멈추면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국회가 보게 될 겁니다⁠.⁠”

박수가 쇳소리로 울렸다⁠. 쇠 장갑끼리 부딪는 소리였다⁠.

“⁠노동부 설명 순서입니다⁠.⁠”

태경은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를 조금 올렸다⁠. 키가 큰 사람이 오면 늘 하는 일이었다⁠. 갑옷 서른 벌이 한꺼번에 태경을 보았다⁠. 태경은 조끼 주머니에서 6층에서 받은 고리를 꺼내 들었다⁠. 홀 조명 아래에서 푸른 녹이 선명했다⁠.

“⁠송도 던전 3조 짐꾼이 차고 있던 고리입니다⁠. 신품 상자에서 나왔습니다⁠. 이 고리를 판 업체는 해든운반입니다⁠.⁠” 태경은 객석을 둘러보았다⁠. “⁠해든운반에서 고리와 짐꾼을 받는 길드가 연합에 몇 곳입니까⁠?⁠”

객석이 조용해졌다⁠. 왕정만이 마이크를 끌어당겼다⁠.

“⁠감독관님⁠, 오늘은 정부 입장을 설명하러 오신 걸로 압니다⁠. 하청 업체 하나의 문제를 업계 전체로 넓히지 마시죠⁠.⁠”

“⁠일곱 곳으로 압니다⁠. 회장님이 소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뒷줄에서 누가 야유를 했다⁠. 왕정만은 웃었다⁠. 웃음에 틈이 없었다⁠.

가운데 줄에서 흰머리 길드장 하나가 손을 들었다⁠. 청동빛 갑옷의 가슴판이 낡아 군데군데 푸른 얼룩이 앉아 있었다⁠.

“⁠감독관님⁠, 고리를 여섯 시간마다 바꾸면 한 번 공략에 고리만 몇 천 개입니다⁠. 고리 공장이 나라에 둘입니다⁠. 둘 다 이번 달 물량이 끝났어요⁠. 바꾸고 싶어도 고리가 없습니다⁠. 그건 아십니까⁠?⁠”

“⁠압니다⁠. 그래서 고리가 모자라면 공략조를 줄이셔야 합니다⁠. 짐꾼 고리를 아끼면 안 됩니다⁠.⁠”

“⁠조를 줄이면 기한을 넘깁니다⁠. 기한을 넘기면 위약금입니다⁠.⁠” 흰머리 길드장이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길드 대원이 서른입니다⁠. 위약금 한 번이면 서른 집이 끝납니다⁠.⁠”

“⁠짐꾼 한 사람이 떨어지면 한 집이 끝납니다⁠.⁠”

흰머리 길드장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옆자리 길드장에게 무엇인가를 귓속말했고⁠, 귓속말이 줄을 따라 번졌다⁠.

“⁠감독관이 정원의 칠 할밖에 없다는 건 아십니까⁠? 다들 바빠서 현장에 못 가요⁠. 그러니 길드가 스스로 안전을 챙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짐을 나르는 일은 전문 업체가 하는 게 효율입니다⁠. 그걸 위험의 외주화라고 부르시면 곤란합니다⁠.⁠”

“⁠효율이 좋으려면 고리부터 바꿔야 합니다⁠. 6층에서 열에 넷이 삭았습니다⁠. 짐꾼이 오리 호루라기를 불어서 멈췄습니다⁠. 안 멈췄으면 지금 이 홀에서 장례 절차를 이야기하고 계셨을 겁니다⁠.⁠”

“⁠오리요⁠?⁠”

객석 어디선가 웃음이 터졌다⁠. 태경은 조끼 다른 주머니에서 빨간 오리 호루라기를 꺼내 고리 옆에 들었다⁠.

“⁠이것도 해든운반이 샀습니다⁠. 제일 싼 걸로요⁠.⁠”

웃음이 더 커졌다가 왕정만의 얼굴을 보고 잦아들었다⁠. 왕정만이 마이크를 내려놓고 단상 아래로 손짓했다⁠. 진행 요원이 태경의 마이크를 껐다⁠.

맨 뒷줄에서 갑옷 소리가 났다⁠. 차무열이 일어났다⁠. 왼손에는 분홍 고무장갑 대신 검은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다⁠. 무열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마이크 없이도 홀 끝까지 들렸다⁠.

“⁠흑철은 6일 휴업에 안 갑니다⁠.⁠”

길드장들이 고개를 돌렸다⁠. 왕정만의 얼굴이 처음으로 굳었다⁠.

“⁠차 길드장님⁠, 연합 결의입니다⁠.⁠”

“⁠송도는 16일 아침에 넘칩니다⁠. 우리가 하루 쉬어도 핵은 하루 쉬지 않습니다⁠.⁠” 무열이 팔짱을 풀었다⁠. “⁠휴업은 국회가 보라고 하는 거고⁠, 핵은 국회를 안 봅니다⁠. 흑철은 들어갑니다⁠.⁠”

“⁠혼자 빠지시면 연합에서 빠지시는 겁니다⁠.⁠”

“⁠빠지겠습니다⁠.⁠”

무열은 망토 걸이에서 검붉은 망토를 찾아 어깨에 걸었다⁠. 금실 두른 망토가 함께 딸려 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무열은 그것을 주워 걸이에 도로 걸고 나갔다⁠. 출입문을 지나며 단상을 한 번 돌아보았다⁠.

“⁠감독관님 편 든 거 아닙니다⁠. 계산이 다를 뿐입니다⁠.⁠”

*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하늬가 휴대전화를 들고 소리를 냈다⁠. “⁠선배⁠, 이거 보세요⁠. 짐꾼 커뮤니티요⁠.⁠”

화면에 오리 호루라기 사진이 줄줄이 올라왔다⁠. 시흥 던전 부두⁠, 강화 던전 부두⁠, 평택 던전 부두⁠. 짐꾼들이 빨간 오리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 찍은 사진이었다⁠. 제목은 「⁠송도 오리 챌린지 — 위험하면 꽥꽥꽥⁠」⁠. 문구 도매상의 오리 호루라기가 오늘 아침 동났다는 글에 댓글이 수백 개였다⁠.

「⁠우리 현장도 고리 비틀어 봤더니 둘 물렀음 꽥함⁠」

「⁠반장님이 처음엔 웃더니 지금 목에 걸고 다님⁠」

「⁠쇠 호루라기는 안에서 삭는데 오리는 플라스틱이라 안 삭음 ㅋㅋ 이게 진짜 기술⁠」

“⁠오늘만 이백 개 넘게 팔렸대요⁠.⁠” 하늬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내렸다⁠. “⁠외신도 있어요⁠. 칠레 광산 던전 짐꾼들이 지난주부터 일을 멈췄대요⁠. 고리 문제로요⁠. 선배⁠, 우리 오리가 수출되면 어떡하죠⁠?⁠”

“⁠오리는 해든운반이 샀어⁠.⁠”

“⁠그럼 해든운반 덕분이네요⁠. 감사패라도⁠…⁠…⁠.⁠” 하늬는 태경의 얼굴을 보고 말을 접었다⁠.

*

차가 홀 앞 광장을 빠져나가기 전에 태경은 차를 세우게 했다⁠. 광장 끝 가로등 아래에 예순 넘은 여자가 혼자 팻말을 들고 있었다⁠. 검은 패딩에 털모자⁠, 손에 낀 목장갑 끝이 해져 있었다⁠. 팻말에는 매직으로 쓴 굵은 글씨가 있었다⁠. 「⁠강화 던전 짐꾼 열둘 — 6층 고리는 누가 안 바꿨나⁠」⁠.

황옥분이었다⁠. 지난해 겨울 태경은 강화의 장례식장에서 옥분을 처음 보았고⁠, 수사 결과를 설명하던 날 두 번째로 보았다⁠. 열두 가족 가운데 옥분 혼자 합의서에 도장을 찍지 않았다⁠.

태경이 다가가자 옥분이 팻말을 내리지 않고 말했다⁠.

“⁠감독관님⁠, 오늘 저 안에서 고리 들었다면서요⁠. 뉴스에 나왔어요⁠.⁠”

“⁠네⁠.⁠”

“⁠우리 진구 고리는 누가 봤어요⁠? 6층에 감독관 중에 누가 내려가 봤어요⁠?⁠”

태경은 서류판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아무도 안 내려갔습니다⁠.⁠”

옥분이 오래 태경을 보았다⁠. 털모자 아래 눈가가 바람에 빨갰다⁠.

“⁠그럼 이번엔 누가 내려가요⁠?⁠”

“⁠제가 내려갔습니다⁠. 동생도 내려갔습니다⁠.⁠”

옥분이 처음으로 팻말을 조금 내렸다⁠. 그리고 다시 들었다⁠. “⁠그때도 누가 내려갔으면 좋았을 텐데⁠.⁠”

태경은 고개를 숙이고 차로 돌아왔다⁠. 하늬는 한동안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와이퍼가 앞유리의 눈을 두 번 밀어냈다⁠. 신호에 멈추었을 때 하늬가 핸들을 쥔 채 앞만 보고 물었다⁠.

“⁠선배⁠, 강화 때 공략 중지 누가 풀었어요⁠? 저 그때 신규 연수 중이었잖아요⁠.⁠”

“⁠심의위원회⁠.⁠”

“⁠의견서는요⁠? 동행 감독관 서명 같은 거요⁠.⁠”

신호가 바뀌었다⁠. 뒤차가 짧게 경적을 울렸다⁠. 태경은 창밖의 물 고인 도로를 보았다⁠.

“⁠기록 보면 다 있어⁠.⁠”

하늬는 더 묻지 않고 차를 출발시켰다⁠. 대신 라디오를 켰다⁠. 교통 정보 다음에 국회 소식이 이어졌다⁠. 환경노동위원회가 송도 사태를 두고 다음 주 현안 질의를 검토한다고 했다⁠. 하늬는 볼륨을 한 칸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

밤 열 시⁠, 갑수의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가 시끄러웠다⁠. 포장마차에서 거는 전화였고⁠, 뒤에서 승재 목소리도 들렸다⁠.

“⁠감독관님⁠, 해든 사장이 문자를 돌렸어⁠. 6층에서 호루라기 분 3조 여섯은 내일부터 나오지 말래⁠.⁠”

“⁠문자 그대로 보내 주십시오⁠.⁠”

곧 사진이 왔다⁠. 「⁠해든운반 — 현장 지시 불이행 인원은 송도 현장 배치에서 제외합니다⁠」⁠. 아래에 짐꾼 번호 여섯 개가 있었다⁠. 오씨의 번호가 맨 위였다⁠.

“⁠오리 분 놈들은 이제 안 부른다는 거지⁠.⁠” 갑수가 웃었다⁠. 웃음 끝이 거칠었다⁠. “⁠나도 불었는데 나는 반장이라 빼 줬대⁠. 반장이 없으면 줄이 안 서니까⁠. 감독관님⁠, 이거 감독관님이 말한 불리한 처우 맞죠⁠?⁠”

“⁠맞습니다⁠.⁠”

“⁠그럼 내일 와요⁠. 해든 사무실 남동공단에 있어⁠. 우리 여섯이 같이 갈게⁠. 오리 들고⁠.⁠”

전화 너머에서 승재가 소리쳤다⁠. “⁠형⁠, 나도 간다⁠! 나 오늘 일당 다 받은 사람으로 증인 설게⁠!⁠”

태경은 전화를 끊고 서류판을 폈다⁠. 내일 날짜를 쓰고⁠, 날짜 밑에 해든운반의 주소를 썼다⁠. 볼펜을 쥔 손가락이 아직 6층의 젖은 손목을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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