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500자)
작업중지 호루라기가 꽥 하고 울었다
던전 안전 감독관 · 피오담
11월 29일 월요일 아침 아홉 시, 부두 컨테이너 회의실의 난로가 웅웅 돌았다. 접이식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심의위원 셋이 앉았다. 가운데가 위원장인 과장 탁인규, 왼편이 인천시 재난안전실장, 오른편이 대학에서 던전 암석을 연구한다는 교수였다. 교수는 등산복 위에 구명조끼를 입고 고무장화를 신고 왔다. 회의실에 들어서며 처음 한 말이 “오늘 안에 들어가 보는 거죠?”였다.
맞은편에는 차무열이 갑옷 차림으로 앉았다. 의자가 갑옷 무게에 끽 소리를 냈다. 옆에서 흑철 길드 법무팀장이 노트북을 열었다.
“새 고리 사백 개를 제 돈으로 주문했습니다. 오늘 저녁에 들어옵니다.” 무열이 말했다. “삭은 건 하청 업체 잘못이고, 길드가 바로잡았습니다. 해제해 주십시오. 만조까지 마흔세 시간 남았습니다.”
재난안전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안 단지 대피는 하루에 다 못 합니다. 어르신 계신 집이 많아서요.”
인규가 태경을 보았다. “공 감독관 의견은?”
“새 고리 상자도 열어 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부두에서 멀쩡한 고리가 아래에서 어떻게 되는지 보셔야 합니다.” 태경은 서류판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1층까지만 같이 내려가시죠. 한 시간이면 됩니다.”
교수가 먼저 일어났다. 구명조끼 끈이 의자에 엉켜 의자째 따라 일어났다.
*
부교는 발을 디딜 때마다 출렁였다. 입구에 들어서자 바깥의 겨울바람이 끊기고 축축한 냉기가 얼굴에 붙었다. 바위 벽 틈에서 푸른 빛가루가 먼지처럼 떠다녔고, 숨을 쉴 때마다 혀끝에 짠맛이 남았다. 발밑으로 바위 계단이 아래로 꺾였고, 계단 옆 낭떠러지 위로 밧줄 두 가닥이 나란히 이어져 있었다. 줄길이었다. 짐꾼은 허리 벨트의 고리를 위쪽 밧줄에 걸고, 아래쪽 밧줄을 밟고 낭떠러지를 건넜다.
태경은 위쪽 밧줄에 고리 셋을 나란히 채웠다. 무열이 견본으로 가져온 새 고리 하나, 어제 해든 상자에서 나온 재생 고리 하나, 태경이 일곱 해 동안 써 온 고리 하나. 하늬가 드론으로 고리 셋을 찍고 시간을 불렀다. “아홉 시 사십이 분.”
기다리는 동안 갑수와 짐꾼 둘이 시연을 하러 내려왔다. 해든운반 사장이 짐꾼 장비라며 비닐봉지에서 호루라기를 꺼내 하나씩 나눠 주었다. 빨간 플라스틱 호루라기였다.
“위험하다 싶으면 세 번 부는 거요.” 갑수가 위원들에게 말했다. “그럼 다 멈춰. 사월부터는 법도 그래. 위험이 확실해야 멈추는 게 아니고, 위험하겠다 싶기만 해도 멈출 수 있게 바뀌었다니까. 한번 불어 볼게요.”
갑수가 호루라기를 물고 힘껏 불었다.
꽥.
바위 벽이 소리를 받아 되돌려 보냈다. 꽥, 꽥. 교수가 웃음을 터뜨렸고, 재난안전실장은 고개를 돌렸다. 갑수가 호루라기를 입에서 떼어 들여다보았다. 플라스틱 몸통 옆에 노란 오리 그림이 찍혀 있었다.
“사장님, 이거 어디서 샀어요?”
“제일 싼 걸로…….” 해든운반 사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문구 도매상에서.”
“고리도 제일 싼 걸로 사셨죠.” 태경이 말했다.
해든운반 사장은 대답 대신 오리 호루라기 봉지를 등 뒤로 감췄다. 갑수가 한 번 더 불었다. 꽥. 줄 끝에 모여 있던 짐꾼 둘이 정말로 하던 일을 멈추고 벽에 붙었다.
“봐요, 듣긴 들어.”
재난안전실장은 휴대전화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1층에는 전파가 거의 닿지 않았다. 교수는 바위 벽에 손전등을 대고 푸른 빛가루를 병에 담다가 무열에게 혹시 9층 바위도 한 조각 가져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무열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핵 깨고 나면 바위째 가라앉습니다. 그 전에 오시면 드리죠.” 교수는 진지하게 일정을 확인했다.
태경은 고리 셋 앞을 떠나지 않았다. 무열이 갑옷을 철컥거리며 옆으로 왔다. 둘 다 고리를 보고 서로는 보지 않았다.
“강화 때도 이렇게 한 시간을 기다리셨습니까?” 무열이 낮게 물었다.
“아니요.”
“그때도 이렇게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때 6층 고리를 누가 바꿨는지, 길드장님은 아십니까?”
무열은 대답하지 않았다. 망토 자락에 붙은 빛가루를 손으로 털고 계단 위로 올라갔다. 쇠 장갑이 망토를 털 때마다 푸른 가루가 흩날렸다.
열 시 사십 분, 한 시간이 지났다. 태경은 재생 고리를 먼저 풀었다. 은색 칠 틈으로 푸른 녹이 꽃처럼 피어 있었다. 엄지와 검지로 잠금쇠를 비틀자 과자처럼 바스러졌다. 위원 셋이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새 고리는 멀쩡했고, 다만 쇠 빛깔 위에 푸른 기운이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1층에서 한 시간입니다.” 태경이 말했다.
무열이 대답을 이었다. 숨기지 않았다. “아래로 갈수록 빠릅니다. 9층에서는 새것도 여섯 시간이면 저렇게 됩니다. 그래서 여섯 시간마다 바꾸는 겁니다.”
교수가 수첩에 무언가를 적다가 고개를 들었다. “칼이나 갑옷은요? 다 쇠잖아요.”
“삭습니다. 대원들은 공략 한 번에 칼을 두 자루씩 버립니다.” 무열은 왼손 쇠 장갑을 들어 보였다. 손등 판에 푸른 얼룩이 번져 있었다. “이것도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
컨테이너로 돌아와 심의가 다시 열렸다. 교수의 고무장화에서 바닷물이 뚝뚝 떨어졌다.
인규가 종이 한 장을 앞으로 밀었다. “조건부 해제로 하겠습니다. 고리는 전부 새것, 여섯 시간마다 교체, 짐꾼 작업중지는 길드가 막지 않는다. 그리고 감독관 동행.” 인규는 태경을 보지 않고 말했다. “멈춘 사람이 같이 내려가서 보세요. 공 감독관이 동행하고, 해제 의견서에 동행 감독관 서명.”
태경의 볼펜이 멈췄다. 해제 의견서. 「위 조건 이행을 확인함 — 동행 감독관」. 서명란 옆 빈자리가 형광등 아래 하얗게 비었다.
“새 고리가 다 들어온 걸 보고 서명하겠습니다. 부두에서 상자만 보고 하지 않겠습니다. 아래로 가져가는 고리를 제가 비틀어 보겠습니다.”
무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감독관님 손가락을 믿죠.”
“길드장님은 조건을 못 지키면 다시 멈춥니다. 만조가 몇 시간 남았든.”
“만조 열 시간 전에 끝낼 겁니다.” 무열이 일어났다. 의자가 갑옷에서 풀려나며 탁 소리를 냈다. “감독관님이 내려가시니 오히려 잘됐습니다. 이번엔 같이 책임지시면 되니까.”
재난안전실장이 서류철을 덮었고, 교수는 다음에도 불러 달라며 명함을 두 장 남겼다. 하나는 젖어 있었다.
*
점심때 태경은 구월동 시장 골목의 반찬가게로 갔다. 간판에 「공씨네 반찬」. 어머니가 가게 안에서 멸치를 볶다가 주걱을 들고 나왔고, 가게 뒷문 앞 플라스틱 의자에 승재가 앉아 있었다. 어머니가 둘 다 불러 놓은 것이었다.
“너희 둘이 같은 데서 일한다며? 승재가 말 안 했으면 몰랐네. 물류센터가 바다에 있니?”
승재가 형을 보며 눈썹을 올렸다. 어디까지 말했는지 알아서 맞추라는 얼굴이었다. 태경은 뒷문 밖으로 승재를 끌고 나갔다. 골목에 생선 상자 얼음 녹은 물이 흘렀다.
“빚이 얼마야?”
“삼천.” 승재는 담배를 꺼냈다가 형 눈을 보고 도로 넣었다. “부평 카페. 일 년 버텼어. 대출에 엄마 가게 보증 들어가 있어.”
“나한테 말을 했어야지.”
“형한테 말하면 형이 갚아 줄 거야? 형 월급으로?” 승재가 웃었다. 웃음이 짧았다. “내가 갚을 거야. 보름이면 반이야. 형은 고리나 열심히 비틀어. 형이 비틀어서 괜찮다고 하면 나는 내려가.”
“1조에서 빠져.”
“무열이 아저씨가 넣었다며. 빠지면 해든이 다음부터 안 불러. 반장님이 그랬어. 짐꾼은 한 번 빠지면 끝이래.”
“무열이 아저씨라고 부르지 마.”
“그럼 뭐라고 불러? 회장님?”
어머니가 뒷문을 열고 비닐봉지 두 개를 내밀었다. 멸치볶음과 장조림이 든 반찬통에 노란 쪽지가 붙어 있었다. 「던전에서 데워 먹어라」. 어머니가 물었다.
“거기 전자레인지는 있니?”
“없어요.”
“그럼 핫팩에 대 놔. 둘이 싸우지 말고. 싸우면 반찬 도로 내놔.”
승재가 반찬통을 품에 안고 먼저 골목을 빠져나갔다. 태경의 휴대전화에 「공씨네」 알림이 떴다. 「엄마 : 장조림은 형꺼 멸치는 동생꺼 바꿔먹지마」.
*
저녁 일곱 시, 부두 조명탑 아래로 길드 트럭이 들어왔다. 해든운반 직원들이 상자를 내렸다. 태경은 상자를 하나씩 열어 개수를 셌다. 이백팔십 개였다.
“사백이라고 하셨습니다.”
해든운반 사장이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공장에 그것밖에 없대요. 나머진 모레 와요.”
모레면 만조 뒤였다. 무열이 부교 입구에서 걸어왔다. 망토에 눈이 얹혀 하얗게 얼룩졌다. 무열은 상자를 내려다보며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세더니 곧 정했다.
“1조와 2조는 9층까지 내려갑니다. 여섯 시간마다 새것. 3조와 4조는 5층 위에서 짐을 받아 넘깁니다. 위층은 덜 삭으니 열두 시간마다.”
“조건은 여섯 시간입니다.”
“조건은 고리를 바꾸라는 겁니다. 몇 시간인지는 현장 판단입니다.” 무열이 태경을 보았다. “감독관님이 같이 내려가시잖습니까. 위층 고리는 감독관님이 수시로 비틀어 보시면 됩니다. 삭으면 바꾸고요.”
“그럼 해제 의견서에 서명 못 합니다.”
“서명 안 하시면 동행 조건이 안 채워지고, 공략은 못 들어갑니다. 그럼 수요일 새벽에 넘칩니다.” 무열은 조명탑 너머 아파트 불빛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불 다 끄라고 하실 겁니까?”
태경은 이백팔십 개를 한 번 더 비틀었다.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일이었다. 짐꾼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고,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다. 하나도 무르지 않았다. 태경은 해제 의견서 아래에 한 줄을 손으로 덧붙였다. 「3·4조 교체 주기 열두 시간은 동행 감독관이 동의하지 않음」. 그리고 서명했다.
아홉 시 반, 부두 철망 너머에 주민 몇이 모여 있었다. 패딩 위에 담요를 두른 노인이 강아지를 안고 철망에 얼굴을 댔다. 하늬가 다가가자 노인이 먼저 물었다.
“아가씨, 넘칩니까, 안 넘칩니까? 우리 집 일층이야. 대피소 가라는데 개는 못 데려온대.”
“오늘 밤에 들어가서 핵을 깨려고요. 넘치기 전에요.” 하늬가 대답하고는 태경을 돌아보았다. 태경은 철망으로 갔다.
“모레 새벽에는 대피소로 가 주십시오. 개는 제가 시청에 물어보겠습니다.”
“감독관 양반이 개도 봐 줘요?”
“사람이 대피를 안 하면 위험해지니까요.”
노인은 강아지 귀를 쓸어 주며 웃었다. 하늬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길드 연합의 저녁 성명이 떠 있었다. 「한국던전길드연합회 — 현장 공략을 멈추는 과도한 행정이 도시를 위험에 빠뜨린다」. 성명 아래 댓글창에는 「감독관 신상」이라는 말이 벌써 몇 개 올라왔다. 하늬가 화면을 꺼서 주머니에 넣었다.
밤 열 시, 공략조가 부교를 건넜다. 1조가 맨 앞이었다. 갑수가 오리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 앞장섰고, 승재가 세 번째로 따라갔다. 승재 등의 배낭에서 반찬통이 달그락거렸다. 2층으로 꺾이는 계단참에서 승재가 고개를 돌렸다.
“형, 내 고리도 비틀어 봤어?”
“네 거는 두 번 봤어.”
“역시. 형은 공평하지가 않아.” 승재가 갑수에게 큰 소리로 일렀다. “반장님, 감독관이 동생 거만 두 번 봤대요. 이거 특혜 아니에요?”
“그럼 내 거는 세 번 봐 달라고 해.” 갑수가 앞에서 받았다. “나이 많은 사람 거부터.”
짐꾼들이 낮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한참 뒤에 돌아왔다. 태경은 1조 바로 뒤에서 고리를 위쪽 밧줄에 채웠다. 밧줄이 손바닥 안에서 차갑게 떨었다. 등 뒤에서 무열의 갑옷 소리가 철컥, 철컥 따라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