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468자)

안전 고리 하나에 S급 공략을 멈춘 감독관

던전 안전 감독관 · 피오담

2027년 11월 28일 일요일 아침 여덟 시⁠, 송도 해안 임시 부두의 콘크리트는 밤새 내린 눈이 얼어 반들거렸다⁠. 공태경은 짐꾼 줄 맨 앞에서 장갑을 벗었다⁠. 해든운반 직원이 상자에서 꺼내 나눠 주는 안전 고리를 하나씩 받아 엄지와 검지로 잠금쇠를 비틀어 보고 돌려주었다⁠. 일곱 해 동안 손에 붙은 버릇이었다⁠. 쇠가 삭았는지는 눈보다 손가락이 먼저 알았다⁠.

바다 위에는 바위 절벽 하나가 솟아 있었다⁠. 한 달 전까지 갯벌이던 자리였다⁠. 해안에서 이백 미터쯤 떨어진 물 위로 회색 바위가 밀려 올라와 버티고 있었고⁠, 한가운데가 동굴처럼 뚫려 푸른빛을 흘렸다⁠. 송도 던전이었다⁠. 부두에서 입구까지 부교가 놓였고⁠, 부교 끝에 노랑과 검정으로 칠한 차단봉 두 개가 밧줄을 물고 있었다⁠. 해안 너머 아파트 단지가 겨울 햇빛에 하얗게 번쩍였다⁠.

“⁠선배⁠, 한 장만요⁠.⁠”

후배 감독관 문하늬가 드론을 띄웠다⁠. 드론 몸통에는 하늬가 붙인 「⁠안전이⁠」 스티커가 있었다⁠. 현장 기록을 찍을 때마다 하늬는 태경을 화면 한가운데에 넣었다⁠. 화면을 돌려 보이며 하늬가 말했다⁠.

“⁠선배는 찍기만 하면 공익광고예요⁠.⁠”

화면 속에 마르고 키 큰 남자가 있었다⁠. 짧게 친 검은 머리에 노란 안전모를 눌러 쓰고⁠, 각진 안경 너머로 눈을 가늘게 떴다⁠. 남색 작업 셔츠 위에 형광 주황 조끼를 걸쳤고 겨드랑이에 서류판을 끼고 있었다⁠. 서른다섯 살 감독관보다는 공장 벽에 붙은 표준 작업자 그림에 가까웠다⁠.

“⁠표어도 넣어 드려요⁠? ‘⁠고리는 생명⁠’ 어때요⁠?⁠”

“⁠찍었으면 고리나 같이 봐⁠.⁠”

열네 번째 고리에서 손이 멈췄다⁠. 은색 도장이 반짝이는데 잠금쇠가 손가락 밑에서 물렀다⁠. 조금 더 비틀자 소리도 없이 휘었고⁠, 한 번 더 비틀자 두 동강이 났다⁠. 끊어진 자리 안쪽이 푸르스름했다⁠. 삭은 쇠 위에 은색 칠을 새로 입힌 고리였다⁠. 태경은 반 토막 난 고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언 콘크리트 위에서 쇳조각이 짤그랑 굴렀다⁠.

“⁠사장님⁠, 이 상자 신품입니까⁠?⁠”

해든운반 사장이 패딩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다가왔다⁠. 상자 옆면에 「⁠신품 · 해든운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신품이죠⁠. 어제 들어온 건데⁠.⁠”

태경은 상자 세 개를 더 열었다⁠. 열 개를 비틀면 셋이 물렀다⁠. 하늬가 드론을 내려 끊어진 고리를 가까이 찍었다⁠. 짐꾼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컵라면 국물을 후후 불던 사람이 젓가락을 멈췄다⁠.

태경은 서류판을 펴고 볼펜을 눌렀다⁠. 「⁠송도 던전 공략 전체 중지 — 안전 고리 불량⁠, 급박한 위험 우려⁠」⁠. 공략 중지는 감독관이 현장에서 바로 명할 수 있었고⁠, 풀려면 길드가 해제를 신청해 심의를 받아야 했다⁠. 컨테이너 사무실 벽에 기대 둔 빨간 팻말을 들고 나와 부교 입구에 꽂았다⁠. 하얀 글씨로 「⁠작업 중지⁠」⁠. 바닷바람에 팻말이 덜컹거렸다⁠.

“⁠감독관님⁠.⁠”

줄 가운데에서 쉰 넘은 남자가 손을 들었다⁠. 털모자 아래 귀가 빨갛게 얼었고⁠, 오른손 손등에 밧줄에 쓸린 흉터가 길게 나 있었다⁠. 짐꾼 반장 방갑수였다⁠. 태경은 흉터 난 손등을 알아보았다⁠. 지난해 겨울 강화의 병원 복도에서 진술서를 받던 손이었다⁠.

“⁠오늘 일당은요⁠?⁠”

“⁠공략 중지는 사업주 사정입니다⁠. 일당은 해든운반이 줘야 합니다⁠.⁠”

해든운반 사장이 먼 바다를 보았다⁠. 갑수가 혀를 찼다⁠.

“⁠줄 사람이 바다를 보네⁠. 감독관님⁠, 강화 때 그 양반 맞죠⁠? 손가락으로 쇠 비트는 거 보고 알았어⁠.⁠”

태경은 대답 대신 줄 끝을 보았다⁠. 짐꾼 마흔 명이 한 줄로 서 있었고⁠, 맨 끝 사람이 넥워머를 코까지 끌어올리고 있었다⁠. 조끼 등판에 「⁠해든 일용 27⁠」⁠. 넥워머 위로 보이는 눈이 태경과 마주치자마자 바다로 돌아갔다⁠. 스물아홉 해를 본 눈이었다⁠.

태경은 줄을 따라 끝까지 걸었다⁠.

“⁠너 여기서 뭐 해⁠?⁠”

“⁠일하지⁠.⁠” 공승재가 넥워머를 내렸다⁠. “⁠형 이름 대지 마⁠. 나 여기선 그냥 27번이야⁠.⁠”

“⁠물류센터 야간 한다며⁠.⁠”

“⁠엄마한테 한 말이고⁠.⁠” 승재는 형의 서류판을 손가락으로 툭 쳤다⁠. “⁠그거 빨리 풀어 줘⁠. 여기 일당이 칠십이야⁠. 보름이면 빚 절반이 날아가⁠.⁠”

“⁠빚⁠?⁠”

승재가 입을 다물었다⁠. 대신 갑수가 뒤에서 크게 물었다⁠.

“⁠어⁠, 감독관님 동생이요⁠? 형제가 얼굴이 똑같네⁠. 동생이 좀 덜 깐깐하게 생겼고⁠.⁠”

짐꾼들이 웃었다⁠. 해든운반 사장도 웃었고⁠, 하늬는 드론을 띄운 채 입을 틀어막았다⁠.

*

부교가 출렁였다⁠. 던전 입구의 푸른빛 속에서 사람 하나가 걸어 나왔다⁠. 은빛 판금 갑옷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번쩍였고⁠, 등 뒤로 검붉은 망토가 바닷바람에 크게 펄럭였다⁠. 검은 수염 아래 입이 꾹 닫혀 있었다⁠. 흑철 길드장 차무열이었다⁠. 무열은 차단봉 앞까지 와서 「⁠작업 중지⁠」 팻말을 내려다보고는 팔짱을 꼈다⁠. 쇠 팔이 쇠 가슴에 부딪혀 철컥 울렸다⁠.

“⁠또 감독관님이군요⁠.⁠”

“⁠고리가 삭았습니다⁠. 열 개에 셋입니다⁠.⁠”

“⁠그럼 삭은 셋을 빼고 일곱을 쓰면 됩니다⁠.⁠”

“⁠상자가 신품이라고 붙어 있습니다⁠. 신품 상자에 재생품이 들었으면 나머지 일곱도 믿을 수 없습니다⁠.⁠”

무열은 대답 대신 손짓으로 길드 대원 하나를 불렀다⁠. 대원이 내민 태블릿 화면에 관측소 예보가 떠 있었다⁠.

「⁠송도 던전 수위 예보 — 12월 1일 수요일 새벽 네 시 사십 분 사리 만조 · 넘침 확률 구십 퍼센트 · 예상 범위 송도 해안 단지⁠」

사리는 한 달에 두 번 바닷물이 가장 높이 차는 때였다⁠. 던전 맨 아래층의 핵은 물때를 따라 숨을 쉬었고⁠, 사리의 만조에 가장 크게 부풀었다⁠. 만조 전에 핵을 깨지 못하면 던전 안의 푸른 물이 입구로 쏟아졌다⁠.

“⁠사흘 남았습니다⁠. 핵은 9층에 있고 우리는 4층까지 길을 냈습니다⁠. 넘치면 저 아파트 단지 마흔 동이 일층부터 잠깁니다⁠.⁠” 무열은 해안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인천시와 맺은 계약서에 기한이 있습니다⁠. 넘기면 위약금 이백억입니다⁠. 그럼 길드가 문을 닫습니다⁠. 대원 사백 명이 집에 갑니다⁠.⁠”

“⁠사람을 내려보내서 송도를 지키겠다는 말씀이시죠⁠. 삭은 고리를 달고요⁠.⁠”

“⁠계산은 맞습니다⁠.⁠” 무열이 팔짱을 풀었다⁠. “⁠그래서 하루 당기겠습니다⁠. 화요일 해 지기 전에 핵을 깹니다⁠. 만조 열 시간 전에 끝내야 물이 차오를 때 사람이 안 남습니다⁠.⁠”

“⁠지금 고리로는 한 사람도 못 내려갑니다⁠.⁠”

“⁠지난해 강화에서도 감독관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죠⁠.⁠” 무열의 목소리가 한 칸 낮아졌다⁠. “⁠그리고 하루 뒤에 푸셨고⁠.⁠”

태경은 서류판 모서리를 쥐었다⁠. 바닷바람이 안경알에 소금기를 뿌렸다⁠.

“⁠해제 신청하십시오⁠. 심의를 받으시면 됩니다⁠.⁠”

무열은 대답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등을 돌리자 망토 끝이 차단봉 밧줄에 감겼다⁠. 무열이 두 번 당겼다가 세 번째에 대원이 달려와 풀어 주었다⁠. 짐꾼 줄에서 누군가 웃음을 삼키다 기침을 했다⁠.

*

점심은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컵라면이었다⁠. 하늬는 물을 붓다가 태경의 눈치를 보았다⁠. 태경이 컵 안쪽 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선 넘었어⁠.⁠”

“⁠선배⁠, 라면 물에도 기준선 들이대시면 친구 없어요⁠.⁠”

“⁠기준선 지키면 맛있어⁠.⁠”

벽걸이 텔레비전에서 낮 뉴스가 흘렀다⁠. 네덜란드 제방 앞바다 던전이 넘쳐 마을 셋이 잠겼다는 소식 뒤로⁠, 국회 화면이 지나갔다⁠. 「⁠‘⁠던전 중대재해법⁠’ 발의 1년째 환경노동위원회 계류⁠」⁠. 일하다 사람이 죽으면 원청의 경영책임자까지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이미 있었지만⁠, 나라와 시가 맡긴 던전 공략은 재난 대응이라는 이유로 빠져 있었다⁠. 지난해 강화 사고 뒤 원청 길드를 넣자는 법안이 올라왔고⁠, 일 년 동안 회의 안건에서 미끄러지기만 했다⁠.

하늬의 휴대전화가 연달아 떨었다⁠. 송도 주민들에게 간 재난 문자였다⁠. 「⁠송도 해안 단지 주민께서는 12월 1일 새벽 대피 안내에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태경의 휴대전화도 떨었다⁠. 가족 단톡방 「⁠공씨네⁠」였다⁠.

「⁠엄마 : 태경아 승재 요새 새벽에 어디가니 너는 아니⁠」

「⁠엄마 : 물류쎈타 야간이라는데 손이 다 텃어⁠」

「⁠엄마 : 둘다 밥은 먹엇니⁠」

태경은 창밖을 보았다⁠. 승재가 부두 끝 철제 난간에 걸터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갑수가 옆에 앉아 뭐라고 하자 승재가 국물을 뿜을 듯이 웃었다⁠. 태경은 답을 쓰다 지웠다⁠. 「⁠먹었어요⁠」만 보냈다⁠.

곧바로 과장 탁인규의 전화가 왔다⁠.

“⁠일요일 아침부터 위에서 전화 왔다⁠. 인천시장이 장관한테 직접 했대⁠.⁠”

“⁠고리가 삭았습니다⁠, 과장님⁠.⁠”

“⁠알아⁠. 사진 봤어⁠.⁠” 인규가 한숨을 길게 쉬었다⁠. “⁠시가 긴급 공략 지정을 한다⁠. 해제 심의는 내일 아침 아홉 시⁠, 부두 컨테이너에서⁠. 내가 위원장이야⁠. 태경아⁠, 이번엔 깔끔하게 하자⁠.⁠”

‘⁠이번엔⁠’이라는 말이 귀에 남았다⁠. 전화가 끊긴 뒤에도 태경은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지 않았다⁠.

오후 세 시쯤 갑수가 컨테이너 문을 반쯤 열고 얼굴만 들이밀었다⁠. 털모자에 눈이 녹아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감독관님⁠, 해든 사장이 오늘 일당은 반만 준대⁠. 공략이 안 열렸으니 반도 은혜라고⁠.⁠”

“⁠다 받으셔야 합니다⁠. 일하러 나와서 대기하신 겁니다⁠.⁠”

“⁠그 말 사장 앞에서 한 번만 더 해 줘요⁠. 내가 하면 내일부터 안 불러⁠.⁠” 갑수가 손등 흉터를 문질렀다⁠. “⁠근데 감독관님⁠, 강화 때도 고리 상자는 새거였어⁠. 부두에 놓인 상자는⁠.⁠”

태경은 볼펜을 내려놓았다⁠. 갑수는 더 말하지 않고 문을 닫았다⁠. 문 너머에서 짐꾼 하나가 “⁠반장님⁠, 반이라도 받으면 치킨 반 마리⁠!⁠” 하고 외치는 소리⁠, 갑수가 “⁠너는 닭 다리 하나⁠.⁠” 하고 받는 소리가 들렸다⁠. 태경은 수사 기록 보관함을 열지 않았다⁠. 열지 않아도 강화 사고 기록의 첫 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았다⁠.

*

해가 지자 부두의 조명탑에 불이 들어왔다⁠. 바다는 검어졌는데 던전 입구만은 더 푸르게 떴다⁠. 오후 다섯 시에 인천시 공문이 들어왔다⁠. 「⁠송도 던전 긴급 공략 지정 — 공략 중지 해제 심의 11월 29일 월요일 아홉 시⁠」⁠.

여섯 시에 무열이 컨테이너 문을 두드렸다⁠. 갑옷은 그대로였고⁠, 문틀이 낮아 고개를 숙이며 들어왔다⁠. 망토가 문짝에 쓸렸다⁠. 무열은 태경의 책상 위에 종이 한 장을 내려놓았다⁠. 내일 밤 공략조 편성표였다⁠.

“⁠해제되면 바로 들어갑니다⁠. 고리는 제 돈으로 새로 사겠습니다⁠. 감독관님 말씀대로⁠.⁠”

태경은 편성표를 훑었다⁠. 1조⁠, 맨 앞에서 줄길을 내고 짐을 받아 내려가는 조⁠. 조장 방갑수 밑으로 열 명⁠. 「⁠27 공승재⁠」가 세 번째 줄에 있었다⁠.

“⁠왜 이 사람을 1조에 넣으셨습니까⁠?⁠”

“⁠감독관님 동생이라면서요⁠. 짐꾼들이 다 압니다⁠.⁠” 무열은 장갑 낀 손으로 편성표를 툭 쳤다⁠. “⁠형이 이 정도면 안전하다고 하실 길입니다⁠. 맨 앞이 제일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빼 주십시오⁠.⁠”

“⁠해든운반 일용직입니다⁠. 원청 길드장이 하청 일용직 하나를 골라 빼면⁠, 그게 감독관님 말씀하시는 불이익입니다⁠.⁠”

무열은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이번에는 망토가 문에 걸리지 않았다⁠. 문틈으로 찬 바람이 들어와 편성표 귀퉁이를 들썩였다⁠.

태경은 조끼 주머니에서 낮에 주운 반 토막 고리를 꺼냈다⁠. 끊어진 자리 안쪽이 형광등 밑에서도 푸르스름했다⁠. 창밖 부두 끝에서 승재가 휴대전화 불빛에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짐꾼들 단톡방에 편성표가 벌써 돈 모양이었다⁠. 승재가 고개를 들어 컨테이너 창을 보았고⁠, 엄지를 들어 보였다⁠. 태경은 반 토막 고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오래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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