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256자)
녹음
던전 철거 전문, 견적은 무료입니다 · 남시우
이틀 동안 공방 이층 사무실은 난로를 켜지 않았다. 탁 여사가 켜자고 하지 않았고 하진도 켜지 않았다. 영감은 마 씨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누가 거기 둔 것도 아닌데 다들 그 책상을 피해 걸었다.
4월 3일 새벽 다섯 시 사십 분, 사무실 문이 열렸다. 하진은 그때 사무실에 있었다. 이틀 밤을 사무실 소파에서 잤다. 마 씨가 한빛 차에 오르던 밤에도 하진은 불 꺼진 이 창가에 앉아 있었고, 골목 끝 세단과 공구함을 다 보았다. 내려가지 않았다.
마종철이 문간에 서 있었다. 같은 작업복, 같은 공구함이었다. 그는 공구함을 바닥에 내려놓고 누런 봉투와 하얀 봉투를 하진 앞 탁자에 나란히 올렸다. 하얀 봉투는 봉인이 뜯기지 않은 채였다.
그다음 접힌 종이 몇 장을 꺼냈다. 「고용 계약서 · 한빛 폐쇄사업부 용접 반장」. 서명란이 비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휴대폰을 꺼내 탁자 위 봉투 옆에 올렸다.
“틀어 봐.”
하진은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녹음 파일이 셋이었다. 3월 31일 저녁 일곱 시 사십이 분의 포장마차, 4월 1일 밤 열한 시 팔 분의 한빛 차 안, 4월 2일 오전 열 시 십오 분의 여의도.
“차에서는 반석규가 떠들었어. 여의도에서는 계약서 쓰기 전에 공책 보여 달라 했어. 보면 서명한다고.” 마 씨가 말을 이어 갔다. 하진은 그가 한 번에 이렇게 길게 말하는 걸 처음 들었다. “삼십팔 층 금고에 있어. 도강혁이 보여 주고 다시 넣었어. 그리고 서명하라 해서, 영감 두고 와서 손이 안 맞는다 했어.”
“그게 뭐예요?”
“용접공은 손이 안 맞으면 서명 안 해.”
하진은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마 씨는 자기 책상으로 걸어가 영감을 집어 들었다. 손잡이를 손바닥으로 한 번 쓸었다.
“단톡방, 다시 넣어.”
탁 여사가 그때 계단을 올라왔다. 문간에서 마 씨를 보고 장바구니를 떨어뜨렸다. 양파 셋이 바닥을 굴렀다. 본길이 그 뒤에서 뛰어 들어와 양파를 주우려다 마 씨를 보고 양파를 든 채 굳었다.
일 분 뒤 단톡방에 「마종철 님이 들어왔습니다」가 떴다. 탁 여사가 공지를 올렸다. 「공지. 마 씨 복귀. 오늘 아침 소고깃국. 양파는 본길이가 다 주움.」
마 씨가 한 줄을 올렸다. 「응.」
소미가 연달아 셋을 올렸다. 「응이요?」 「이틀 만에 와서 응이요?」 「순자 씨도 기다렸어요.」
본길은 양파 셋을 든 채로 울고 있었다. 탁 여사가 그 양파를 받아 도마에 올렸다. 매운 건 양파 탓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
4월 4일 오후 두 시,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칠 층 대회의실. 서울시 게이트 대책회의라는 이름이 붙은 자리였다. 긴 타원형 테이블에 서울시 안전실장, 기후환경본부장, 그리고 게이트가 열린 자치구 열한 곳의 담당 과장들이 앉았다. 한쪽 끝에 도강혁과 한빛 법무팀, 다른 쪽 끝에 하진과 마 씨와 강 주무관. 탁 여사는 회의실 뒤쪽 벽에 기대 섰다. 이번에도 화장실 위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강 주무관이 먼저 자료를 띄웠다. 2030년 성수 3호 사고 보고서 원본의 첨부 목록. 「현장 촬영 영상 1건 · 구청 미제출」. 그리고 인쇄 날짜가 찍힌 펜스 판 사진 셋. 2030년 11월 13일, 2038년 2월 11일, 2038년 2월 11일.
“여분 펜스입니다.” 도강혁이 말했다. 지난번과 같은 목소리였다.
“그럼 이걸 들어 주세요.” 하진이 노트북에 마 씨의 휴대폰을 연결했다.
회의실 스피커에서 포장마차 천막 펄럭이는 소리가 먼저 나왔고, 연탄 화덕이 타닥거리는 소리와 소주잔 내려놓는 소리가 뒤따랐다. 그리고 도강혁의 목소리가 낮고 느리게 흘러나왔다.
목소리는 분열을 한빛이 칠 년 전 3호 때부터 알았다고 했다. 하나를 닫으면 열리는 둘이 고스란히 한빛의 새 사냥터가 된다고 했다. 회의실 사람들은 그 대목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하진은 재생을 멈췄다가 뒤쪽 대목으로 넘겼다. 이번에는 뿌리가 모이는 심이 어딘지 알면 염하진은 거기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들어오면 안 되는 자리라는 말이 그 뒤에 붙었다.
녹음이 끝나도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기후환경본부장이 펜을 내려놓았다. 용산구 과장이 마포구 과장과 눈을 마주쳤다. 도강혁은 테이블 위에 두 손을 포개 놓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동의 없는 녹음입니다.” 한빛 법무팀장이 말했다.
“대화 당사자가 녹음한 건 불법이 아닙니다.” 강 주무관이 화면을 넘기며 말했다. “확인해 봤습니다.”
도강혁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그는 마 씨를 보았다. 회의실 전체를 가로지르는 시선이었다.
“마종철 선생님. 소주가 맛있으셨기를 바랍니다.”
“오뎅 국물 먹었어.”
회의실 뒤에서 탁 여사가 기침으로 웃음을 덮었다. 도강혁은 웃지 않았다. 그는 안전실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실장님. 한빛은 오늘 자정부터 서울 전역의 사냥을 전면 중단합니다. 녹음에서 들으신 대로, 분열은 위험한 현상입니다.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한빛 헌터는 서울 게이트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마정석 공급은 내일부터 지금의 절반이 됩니다. 남은 비축분으로 사흘쯤 버틸 겁니다.”
안전실장의 얼굴이 하얘졌다. 기후환경본부장이 휴대폰을 들고 회의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건 협박입니다.” 하진이 말했다.
“안전 조치입니다. 하진 씨가 원하던 거죠. 열린 게이트에 아무도 안 들어가는 거.” 도강혁은 코트를 집어 들며 일어섰다. “다만 닫는 건 하진 씨 다섯 분이 하셔야 합니다. 서른네 곳을요. 그리고 닫을수록 서울은 추워지겠죠. 사월이라 다행입니다.”
그는 문 앞에서 한 번 돌아섰다.
“하진 씨, 이번엔 서류를 들고 오셨네요. 그래서 저도 서류로 답했습니다. 중단 공문은 한 시간 안에 시에 도착할 겁니다.”
*
그날 밤 서울 아파트 단지 여섯 곳이 순환 정전을 겪었다. 한 단지에 두 시간씩. 성수동은 아니었지만 금호동 언덕 위 아파트가 그중 하나였다. 텔레비전 뉴스는 정전 화면 위에 「한빛 사냥 중단… 분열 녹음 파문」을 붙였다. 앵커가 처음으로 「분열」과 「한빛」을 한 문장에 넣었다.
염가철거 사무실 전화는 밤새 울렸다. 욕하는 전화가 아홉 통, 응원하는 전화가 열네 통.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아홉 시부터 열한 시까지, 다른 전화가 일곱 통 왔다.
탁 여사가 한 통씩 받아 견적서 맨 위에 구청 이름을 적었다. 성동구청과 광진구청이 다시 왔고, 용산구청, 마포구청, 영등포구청, 동작구청, 강서구청이 새로 왔다. 일곱 장이 탁자 위에 나란히 깔렸다. 한 달 전 영이던 거래처가 일곱이 되었다.
“일곱 구청에 서른넷이면, 우리 다섯이 몇 달이야?” 탁 여사가 돋보기를 이마 위로 밀어 올렸다.
“한빛이 철거업체 열한 곳 샀잖아요.” 소미가 말했다. “거기 기사들, 한빛이 사냥 멈춰서 지금 다 놀고 있대요. 대성철거 포크레인 기사 언니가 저한테 전화했어요. 염가철거 일 있으면 하루씩이라도 뛰겠대요.”
“한빛 소속이잖아.”
“한빛이 철거업체를 산 건 철거 안 하려고 산 거래요. 언니가 그랬어요. 산 다음에 일을 하나도 안 줬대요. 그 언니도 할부 있어요.”
하진은 일곱 장의 견적서를 내려다보았다. 비고란은 일곱 장 다 비어 있었다. 탁 여사가 볼펜을 들었다가 하진을 보았다.
“반장, 비고란에 뭐 적어?”
“「한빛 출신 기사 환영. 할부 있는 사람 우대」요.”
탁 여사는 일곱 장에 다 그렇게 적었다.
*
오후 세 시, 용산구 이촌동 한강변 공원의 게이트 앞에 순자와 낯선 포크레인 한 대가 나란히 섰다. 대성철거의 노란 포크레인이었고,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서른둘의 여자 기사 은 씨였다. 은 씨는 소미에게 손을 흔들고 하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일당은 무료 아니죠?”
“일당은 별도예요.”
은 씨가 웃었다. 두 대가 게이트 양쪽에서 동시에 파 들어가자, 한 대로 반나절 걸리던 뿌리가 한 시간 반 만에 드러났다. 소미가 운전석 창문으로 은 씨에게 외쳤다. “언니, 버킷 각도 15도만 더 눕혀요! 뿌리 긁으면 얼어요!” 은 씨는 군말 없이 버킷을 눕혔다.
그때 공원 산책로 쪽에서 반석규가 걸어왔다. 한빛 조끼가 아니라 평상복 패딩 차림이었다. 사냥이 멈춰 할 일이 없어진 B급 헌터는 펜스도 팀원도 없이 혼자였다. 그는 구덩이 가장자리에 서서 은 씨의 포크레인을 한참 보았다.
“대성 기사네요. 한빛 소속인데.”
“한빛이 일을 안 줬대요.” 하진이 말했다. “팀장님도 오늘 일 없으시죠?”
반석규는 그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사흘이에요, 반장님. 비축분이 사흘이에요. 사흘 지나면 정전이 아파트 여섯 곳이 아니라 육십 곳이 돼요. 그럼 서울 사람들이 누구를 원망할 것 같아요?”
“사냥 멈춘 사람이요.”
“닫은 사람이요. 원래 그래요.” 반석규가 손을 패딩 주머니에 넣었다. 오른팔 소매 끝으로 파스가 아직 보였다. “이사님은 그걸 압니다. 반장님보다 사람을 잘 알아요.”
“그럼 사흘 안에 닫을게요. 원망은 그다음에 받을게요.”
반석규는 대답하지 않고 돌아섰다. 몇 걸음 가다가 멈춰, 구덩이 바닥에서 푸르게 맥박 치는 뿌리를 돌아보았다. 그는 그 빛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오래 보았다. 그리고 산책로 쪽으로 걸어갔다.
*
밤 열 시, 사무실 벽에 서울 지도가 붙었다. 강 주무관이 시청에서 뽑아 온, 벽 하나를 다 덮는 크기의 지도였다. 강 주무관은 퇴근길에 와서 형광 조끼를 입은 채 의자 위에 올라섰다.
“반장님이 닫은 곳마다 손바닥으로 방향 재셨죠?”
“재기만 했지 적지는 않았어요.”
“제가 적었어요.” 강 주무관이 노트북을 열었다. “현장 갈 때마다 반장님이 「서쪽」「세네」「남서」 하신 거, 다 받아 적었어요. 구청 일지에요. 근거가 필요했거든요.”
하진은 강 주무관을 올려다보았다. 강 주무관은 대답 대신 빨간 펜 뚜껑을 열었다.
성수 7호에서 서쪽으로 화살표 하나. 8호와 9호에서 남서로. 왕십리 시장에서 서쪽으로, 아주 굵게. 금호, 옥수, 마장, 응봉, 행당, 구의. 강 주무관이 하나씩 그었다. 소미와 본길이 지도 앞에 바짝 붙어 서서 화살표가 늘어날 때마다 숨을 들이쉬었다. 마 씨는 영감을 무릎에 올려놓고 뒤에서 보았다.
열다섯 번째 화살표를 긋고 나서 강 주무관이 의자에서 내려왔다. 다들 한 발 물러나 지도를 보았다.
화살표들은 저마다 다른 동네에서 출발했지만, 연장하면 모두 한강 한 점에서 만났다. 서강대교와 마포대교 사이. 강이 크게 굽는 자리, 강 한가운데에 섬처럼 떠 있는 땅.
“여의도.” 본길이 말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마 씨가 영감 손잡이를 쥐었다. 하진은 지도 앞으로 걸어가 화살표들이 만나는 점에 손바닥을 댔다. 종이였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그래도 손바닥 한가운데가 따끔했다.
삼십팔 층 금고가 있는 유리 건물이 정확히 그 점 위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