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75자)
영감은 안 팝니다
던전 철거 전문, 견적은 무료입니다 · 남시우
마종철은 쉰넷이 되도록 전화를 먼저 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3월 마지막 날 저녁 일곱 시, 휴대폰 화면에 「도강혁」 세 글자가 떴을 때 그는 영감의 집게를 내려놓고 화면이 꺼질 때까지 보고만 있었다. 하진이 단톡방에 올려 준 번호를 그 이름으로 저장해 두었다. 두 번째 전화가 왔을 때 받았다.
“마종철 선생님. 한빛 도강혁입니다. 소주 한잔 하시죠. 성수대교 밑 포장마차, 선생님 단골이라고 들었습니다.”
누가 그걸 알려 줬는지 마종철은 묻지 않았다. 한빛에는 묻지 않아도 아는 사람이 많았다.
“응.”
*
성수대교 북단 아래 포장마차는 비닐 천막이 강바람에 쉬지 않고 펄럭였다. 천막 안은 연탄 화덕 둘과 플라스틱 탁자 넷이 전부였고, 닭똥집 볶는 기름 냄새와 소주 냄새가 연탄 가스와 섞여 눈이 매웠다. 칠 년 전까지 마종철은 이 자리에서 염 사장과 한 달에 두 번 소주를 마셨다. 염 사장은 닭똥집을, 마종철은 오뎅 국물을 시켰다. 오늘 마종철은 오뎅 국물을 시켰다.
도강혁은 코트를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고 앉았다. 회색 코트 자락이 기름 밴 바닥에 닿았는데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닭똥집을 시키고, 소주 두 잔을 직접 따랐다.
“선생님, 저는 돌려 말하는 걸 싫어합니다. 한빛 폐쇄사업부에서 용접 반장을 맡아 주세요. 연봉 1억 2천. 따님 대학원 학비는 회사가 따로 냅니다.”
마종철은 소주잔을 들지 않았다. 오뎅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뜨거워서 혀끝이 데었다.
“딸 얘기는 어디서 들었어?”
“한빛은 사람을 뽑기 전에 사람을 압니다.” 도강혁이 닭똥집 하나를 집었다. “하나만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송이요. 성수 7호 건. 법정에서 한마디만 해 주시면 됩니다. 염가철거의 봉합 공법은 구청 신고 범위를 넘는 공법이었고, 현장 책임자는 그걸 알고도 했다. 선생님은 칠 년을 옆에서 보셨으니까 누구보다 정확하게 말씀하실 수 있죠.”
강바람이 천막을 들이받았다. 연탄 화덕 위의 불꽃이 한쪽으로 누웠다. 마종철은 작업복 가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뺐다.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묵직했다.
“하진이 감옥 가.”
“안 갑니다. 손해배상이니까 회사가 갚죠. 회사를 한빛이 사면, 한빛이 한빛에 갚는 셈이고요. 아무도 안 다칩니다.” 도강혁은 소주를 비웠다. “선생님, 솔직히 말씀드리죠. 분열은 한빛이 먼저 알았습니다. 2030년, 3호 때부터요. 하나를 닫으면 둘이 열리고, 열린 둘은 새 사냥터가 됩니다. 염 사장님은 그걸 끊으려 하셨어요. 뿌리째. 그게 성공하면 서울 게이트 서른넷이 한꺼번에 마릅니다. 한빛도 마르고, 서울 전기도 마르죠.”
“그래서 말렸어?”
“말렸습니다. 사 분 동안.” 도강혁은 빈 잔을 내려다보았다. “그분은 안 들으셨어요. 하진 씨도 안 들을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부탁드리는 겁니다. 하진 씨가 아버님처럼 되기 전에, 회사째 멈추게 해 주세요. 뿌리가 모이는 심이 어딘지 알면, 하진 씨는 거기 못 들어옵니다. 들어오면 안 되는 자리예요.”
“거기가 어딘데?”
도강혁은 웃었다. “그건 계약서에 서명하시면 말씀드리죠.”
천막 자락이 들리고 반석규가 들어왔다. 어깨에 내려앉은 강바람 냉기를 털지도 않고 도강혁 뒤에 섰다. 손에 서류철 하나가 들려 있었다. 도강혁이 고개를 까딱하자 반석규가 서류철을 펼쳐 마종철 앞에 놓았다. 응봉산 계단 사진이었다. 휜 궤도 판, 순자 운전석의 소미, 그리고 맨 아래에 「업무방해 고소장 · 피고소인 나소미」.
“소미 씨 건은 선생님이 오시면 취하하겠습니다.” 도강혁이 말했다. “스물여섯에 전과가 생기면 중장비 회사 차리기가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된 회사를 갖는 게 꿈이라면서요.”
마종철은 사진 속 소미의 얼굴을 보았다. 문짝에 어깨를 박은 채 레버를 놓지 않는 얼굴이었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그 얼굴을 위협하려고 찍었는데, 마종철 눈에는 그 얼굴이 자랑스러웠다.
“석규.” 마종철이 반석규를 올려다보았다.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순자 들었다며.”
“…예.”
“무거웠어?”
반석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강혁이 웃었다. “무거웠답니다. 석규가 그날 밤 팔에 파스를 붙였어요.”
마종철은 사진을 서류철에 도로 넣고 반석규 쪽으로 밀었다. 반석규가 서류철을 집어 들 때 마종철의 시선이 그의 오른팔 소매 끝에 머물렀다. 파스 가장자리가 하얗게 삐져나와 있었다.
그는 코트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한빛 로고가 찍혀 있었다. 「계약금」. 두께가 칠 년 전 봉투와 비슷했다.
마종철은 작업복 옆 주머니에서 누런 봉투를 꺼냈다. 공구함 영감 칸 밑에서 칠 년을 깔려 있던 봉투였다. 귀퉁이가 닳아 있었고, 볼펜으로 쓴 「위로금」 세 글자가 반쯤 지워져 있었다. 그는 두 봉투를 나란히 놓았다. 하나는 누렇고 하나는 하얬다.
“이건 안 썼어.” 마종철이 누런 봉투를 손가락으로 톡 쳤다. “칠 년.”
“압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먼저 왔습니다. 돈을 안 쓰는 분은 돈 말고 다른 걸로 움직이시니까요.”
마종철은 흰 봉투를 집어 누런 봉투 위에 겹쳐 놓았다. 그리고 두 봉투를 한꺼번에 작업복 옆 주머니에 넣었다. 도강혁이 소주를 한 잔 더 따랐다. 마종철은 그 잔을 비웠다. 소주가 목을 긁고 내려갔다.
“내일 계약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선생님.”
“응.”
포장마차를 나오는 길에 휴대폰이 울렸다. 스물다섯 살 딸 마은지였다.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딸은 아빠한테 일주일에 한 번 전화했다.
“아빠, 밥 먹었어?”
“응.”
“거짓말. 목소리가 술이야.” 딸이 웃었다. “아빠, 나 다음 학기 조교 됐어. 학비 반 깎아 준대. 아빠 이제 야근 좀 줄여.”
마종철은 강바람 속에 서서 휴대폰을 귀에 바짝 댔다. 딸의 목소리 뒤로 도서관인지 카페인지 사람들 소리가 작게 났다.
“잘했다.”
“어? 아빠가 두 글자 넘게 말했네. 진짜 취했구나.”
딸이 웃었다. 마종철도 웃었다. 성수대교 위로 지하철이 지나가며 다리가 낮게 울렸다.
*
자정 넘어 옥탑방에 돌아온 마종철은 불을 켜지 않았다. 창밖으로 성수동 공장 지붕들이 가로등에 희끗희끗 떠 있었다. 그는 작업복 옆 주머니에서 봉투 둘을 꺼내 앉은뱅이책상 서랍에 넣었고, 가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충전기에 꽂았다. 충전 불빛이 빨갛게 켜졌다. 그는 그 빨간 불을 한참 보다가 이불을 덮지 않고 벽에 기대 앉은 채로 잠들었다. 새벽에 한 번 깨서 휴대폰 화면을 켰다가 껐다.
*
다음 날 아침, 마종철은 사무실에 나가지 않았다. 대신 트럭이 서 있는 공방 주차장으로 갔다. 구덩이를 메운 자리의 새 아스팔트가 아침 햇빛에 검게 번들거렸다. 그는 트럭 짐칸에 올라 공구함을 열고, 영감 칸 밑의 빈자리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봉투가 사라진 자리에 칠 년 묵은 먼지가 직사각형으로 남아 있었다.
계단에서 뛰어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하진이었다. 작업복 앞섶이 열려 있었고, 머리를 묶지 않았다.
“마 씨.” 하진이 짐칸 아래에 섰다. “본길이가 어젯밤에 봤대요. 포장마차에서 도강혁이랑 있는 거. 봉투도.”
“응.”
“응이 아니라요. 받았어요?”
“받았어.”
하진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마종철은 그 얼굴을 칠 년 전 장례식장에서 한 번 봤다. 그때 하진은 울지 않았고, 지금도 울지 않았다.
“한빛 가요?”
“응.”
“법정 가서 증언도 해요? 우리 공법 무허가라고?”
마종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진이 짐칸 난간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아빠가 마 씨를 제일 먼저 뽑았어요. 아빠 장례식 때 마 씨가 관 들었고요. 칠 년 동안 위로금 안 썼잖아요. 근데 왜 이제 써요? 왜 하필 지금이요?”
“지금이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마종철은 공구함에서 영감을 꺼냈다. 손잡이 고무가 다 닳아 은색 쇠가 드러나 있었다. 그는 영감을 짐칸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하진의 발 앞이었다.
“영감은 두고 가.”
“영감도 팔아 버리지 그래요? 한빛에 좋은 용접기 많잖아요.”
“영감은 안 팔아.” 마종철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컸다. 공방 주차장 벽에 부딪혀 울렸다. 그는 스스로도 놀란 듯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낮게 말했다. “영감은 염가철거 거야.”
하진은 영감을 내려다보았다. 마종철은 짐칸에서 내려왔다. 하진 옆을 지나칠 때 하진이 그의 소매를 잡았다. 마종철은 뿌리치지 않았다. 대신 하진의 손등을 자기 손바닥으로 한 번 덮었다. 용접 화상으로 거칠어진 손바닥이었다.
“밥 먹어. 순자 할부 밀리지 말고.”
그는 손을 떼고 주차장을 걸어 나갔다. 하진은 따라가지 않았다. 영감을 두 팔로 안아 짐칸에서 내렸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날 단톡방에 탁 여사가 공지를 올렸다. 「공지. 마 씨 오늘 결근.」 소미가 「왜요?」를 올렸고, 본길이 「제가 마 씨 몫 들게요」를 올렸고, 아무도 「응」을 올리지 않았다. 방 인원수 옆의 숫자가 6에서 5로 바뀐 건 오후 세 시였다. 마 씨가 나갔다. 그 「6」에는 칠 년 동안 아무도 내보내지 않은 고 염 사장의 계정이 들어 있었다.
*
밤 열한 시, 구본길은 순자 궤도 판 두 장을 등에 지고 성수역 쪽 중장비 수리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판 한 장에 사십 킬로그램이었다. 지게 끈이 어깨를 파고들었지만, 이 시간에 이걸 지고 걷는 건 본길에게 기도 같은 일이었다. 무거운 걸 지면 마음이 덜 무거웠다.
수제화 골목 입구에서 본길은 걸음을 멈췄다. 골목 끝 공방 건물 앞에 검은 세단이 서 있었다. 번호판을 알았다. 카페 거리에서, 왕십리 시장에서, 응봉산 계단 밑에서 본 차였다.
세단 뒷문 옆에 마 씨가 서 있었다. 오른손에 공구함을 들고 있었다. 영감이 없는, 영감 칸이 빈 공구함이었다. 반석규가 운전석에서 내려 뒷문을 열어 주었다.
마 씨는 한 번 공방 이층 사무실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창문은 불이 꺼져 있었다. 그는 공구함을 뒷좌석에 먼저 밀어 넣고, 자기도 따라 올랐다. 문이 닫혔다. 세단이 골목을 빠져나가며 본길 옆을 지나갔다. 짙게 선팅된 유리창 너머로 마 씨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본길은 궤도 판을 진 채로 한참 서 있었다. 내려놓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휴대폰을 꺼내 단톡방을 열었다가, 하진에게만 따로 썼다. 손가락이 얼어서 오타가 셋 났다.
「반장님. 마 씨 한빛 차 탔어요. 지금. 공구함 들고.」
일 분 뒤 답이 왔다.
「알아. 들어와. 짐 내려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