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60자)
2030년 11월
던전 철거 전문, 견적은 무료입니다 · 남시우
아침 여덟 시, 염가철거 사무실 난로 앞에서 회의가 열렸다. 안건은 하나였다. 반장이 여의도에 가느냐 마느냐.
“가지 마.” 마 씨가 말했다. 그가 「응」과 「아니」 말고 다른 말로 회의를 시작한 건 처음이었다.
“영상이 있대요. 아빠 거.”
“그 사람이 보여 주는 거면, 보여 주고 싶은 것만 보여 줘.”
“그래도 봐야 돼요. 안 보면 평생 그 사람 말만 들어야 돼요.”
마 씨는 더 말하지 않고 영감 케이스를 열었다 닫았다. 소미가 순자 열쇠고리에 달린 작은 플라스틱 포크레인을 떼어 하진 손에 쥐여 주었다. “부적이에요. 순자 씨 분신.” 본길은 벌써 패딩을 입고 문가에 서 있었다.
“반장님, 제가 따라갈게요. 가방 들게요.”
“나 가방 없어.”
“그럼 반장님 마음의 짐 들게요.”
탁 여사가 보리차를 뿜었다. 하진은 웃지 않으려다 실패했다. 결국 본길은 사무실에 남았고, 하진은 탁 여사가 싸 준 보온병 하나와 플라스틱 포크레인 하나를 들고 지하철을 탔다. 트럭은 여의도 주차비가 아까워서 두고 갔다.
*
여의도 한빛 본사는 서른여덟 층짜리 유리 건물이었다. 로비 바닥이 너무 매끄러워서, 하진의 작업화 밑창에 박힌 시멘트 부스러기가 걸을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안내 데스크 직원이 그 소리를 듣고 하진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염가철거 염하진이요. 도강혁 이사님이랑 세 시.”
“삼십팔 층입니다. 신발에 묻은 것 좀….”
“이거 별도예요.”
엘리베이터 안의 화면에서 경제 뉴스가 흘렀다. 「한빛, 이달 서울 철거업체 열한 곳 인수… ‘게이트 폐쇄 사업 통합 관리’」. 하진이 아는 이름이 셋 있었다. 대성철거, 한강해체, 은평중기. 지난겨울까지 하진과 입찰에서 맞붙던 업체들이었다.
삼십팔 층 회의실은 사방이 유리였다. 한강이 발밑에 깔려 있었고, 강 건너 성수동 쪽은 오후 햇빛에 뿌옇게 바래 있었다. 하진은 유리벽 앞에 서서 성수동이 어디쯤인지 찾았다. 못 찾았다. 여기서는 세탁소 골목도 순댓국 골목도 보이지 않았다.
도강혁이 들어왔다. 노트북 하나와 투명 파일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는 둘 다 테이블에 내려놓고, 투명 파일을 하진 쪽으로 밀었다. 파일 안에 누런 종이 여섯 장이 들어 있었다. 한쪽 가장자리가 찢겨 들쭉날쭉했다. 연필 글씨였다. 하진은 그 글씨를 알았다. 트럭 옆구리의 삐뚤어진 페인트 글씨와 같은 손이었다.
“사고 현장에서 한빛이 회수했습니다.” 도강혁이 말했다. “아버님 공책의 뒤 절반이에요.”
하진은 파일에 손을 뻗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무언가에 서명하게 될 것 같았다.
*
노트북 화면에 영상이 떴다. 오른쪽 위에 「2030.11.14 13:47」. 안전모에 단 카메라라 화면이 걸음마다 흔들렸다.
얼음 동굴이었다. 성수 3호는 B급이었고, 공략이 끝난 빈집이었다. 벽마다 푸른 서리가 손가락 두께로 앉아 있었고, 카메라 앞에서 하얀 입김이 연달아 흩어졌다. 그리고 화면 왼쪽 아래로, 스물한 살의 하진이 지나갔다. 지금의 본길처럼 몰탈 포대를 등에 지고 있었다.
하진은 그 장면에서 숨을 멈췄다. 기억은 그 순간을 다르게 갖고 있었다. 기억 속에서 하진은 포대를 지지 않았고, 아버지 옆에 서 있었다. 화면 속의 하진은 아버지 뒤에서 세 걸음 떨어져, 춥다고 발을 구르고 있었다.
카메라가 동굴 벽 아래를 비췄다. 얼음이 깨진 자리에서 검은 것이 드러나 있었다. 팔뚝 두 개를 합친 굵기의 뿌리였다. 혹마다 푸른 빛이 차올랐다가 빠졌다.
화면 밖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칠 년 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생각보다 높았다.
“이사님, 염동수입니다. 3호 벽 밑에 이게 있어요. 땅 밑이 하나예요. 이걸 안 막고 문만 꿰매면, 꿰맬 때마다 옆이 터질 거예요. 지금 여기서 막아야 돼요.”
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녹음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대답만 들렸다.
“알아요, 공사 날짜 맞춰야 되는 거. 근데 이거 막으면 3호는 끝이에요. 한빛도 그거 알잖아요. … 아니, 계약서에 뭐라고 돼 있든요. … 이사님, 이게 몇 개까지 터질지 몰라요. 서울이 다 터질 수도 있어요.”
오른쪽 위의 숫자가 「14:02」에서 「14:06」으로 넘어가는 동안 아버지는 거의 혼자 말했다. 말리는 쪽의 목소리가 사 분 동안 무슨 말을 했는지, 화면은 알려 주지 않았다. 통화가 끊기자 아버지의 숨소리만 남았다.
카메라가 돌아섰다. 화면 가득 스물한 살의 하진이 있었다.
“하진아, 먼저 나가. 몰탈 두고 나가서 트럭 시동 걸어 놔.”
“아빠는?”
“금방 나가. 혹 하나만 바르고.”
화면 속의 하진이 무언가 말하려다 고개를 끄덕였다. 포대를 내려놓고 동굴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의 하진은 그 뒷모습을 보며, 그때 자기가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
화면 속 아버지는 혼자 남았다. 카메라가 아래를 향했다. 아버지가 장갑을 벗었다. 맨손을 뿌리 위로 내밀어 손바닥을 폈다.
하진은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당겼다. 손바닥을 펼치는 각도, 손가락을 살짝 오므리는 모양. 하진이 매일 하는 그 동작이었다. 아버지는 각성자가 아니었다. 적어도 하진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화면 속 아버지의 손바닥이 하얗게 질렸다. 아버지가 낮게 중얼거렸다.
“서쪽. 세네.”
아버지는 흙손으로 소금 몰탈을 떠서 가장 굵은 혹 위에 눌러 발랐다. 혹의 맥박이 느려졌다. 한 번 더 바르자 맥박이 멈출 듯하다가, 반대쪽 혹 셋이 동시에 하얗게 번쩍였다. 동굴 벽의 얼음이 위에서부터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는 도망치지 않았다. 카메라를 벗어 얼음 바닥에 내려놓았다. 렌즈가 비스듬히 아버지의 무릎과 흙손을 비췄다. 그리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분명하게 들렸다.
“탁 여사, 트럭 글씨 내가 다시 쓸게. 삐뚤어서 영 창피해.”
웃는 소리였다. 화면 위쪽에서 얼음이 무너져 내렸다. 숫자는 「14:10」에서 멈췄다.
회의실이 조용했다. 유리벽 너머 한강 위로 유람선 하나가 느리게 지나갔다. 하진은 테이블 모서리를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 트럭 글씨는 칠 년째 삐뚤어진 채였다. 아무도 다시 칠하지 않은 까닭을 하진은 이제 알았다.
*
“하진 씨.” 도강혁이 노트북을 반쯤 닫았다. “아버님은 뿌리를 막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혼자서는 못 막아요. 하진 씨도 혼자서는 못 막습니다. 지금 서울에 열려 있는 게이트가 몇 개인지 아세요? 서른넷입니다. 염가철거 다섯 명으로는 일 년이 걸려요. 그동안 분열은 계속되고요.”
그가 서류 한 장을 꺼내 투명 파일 위에 얹었다. 「주식회사 염가철거 인수 의향서」. 인수가 9억 원. 직원 전원 고용 승계. 염하진, 한빛 폐쇄사업부 팀장.
“한빛 밑으로 오세요. 장비도 사람도 드립니다. 이 공책 나머지 반도 하진 씨 겁니다. 아버님이 못 하신 걸 하진 씨가 끝내세요.”
“어디를 닫을지는요?”
“그건 한빛이 고릅니다.”
“3호는요?”
도강혁은 웃었다. “3호는 서울에서 마정석이 제일 많이 나오는 사냥터입니다. 그건 맨 마지막이겠죠.”
“맨 마지막이 언젠데요?”
“서울이 마정석 없이도 따뜻해지는 날이요.”
하진은 투명 파일을 내려다보았다. 찢긴 종이 맨 위 장의 첫 줄이 파일 너머로 비쳤다. 「뿌리는 한곳으로 모인다. 심을 찾아라」. 그다음 줄은 의향서 종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이사님. 아빠가 전화했을 때 뭐라고 말렸어요?”
“위험하다고요.”
“거짓말. 영상에서 아빠가 공사 날짜 얘기 했어요. 계약서 얘기 했어요. 이사님은 위험하다고 말린 게 아니라 막지 말라고 한 거예요.”
도강혁은 반쯤 닫은 노트북을 끝까지 닫았다. 탁 소리가 유리벽에 부딪혔다.
“하진 씨. 일주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는데, 같은 제안을 염가철거 직원분들께도 한 분씩 따로 드릴 겁니다. 회사는 반장 혼자 것이 아니니까요.”
하진은 일어섰다. 의향서는 손대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을 꺼내 투명 파일 위에 대고, 의향서에 가리지 않은 첫 줄을 찍었다. 도강혁은 막지 않았다.
“영상, 한 번만 더 봐요. 마지막 장면만.”
도강혁이 잠깐 하진을 보다가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 화면 오른쪽 위 숫자가 「14:09」였다. 아버지가 카메라를 내려놓기 직전, 렌즈가 동굴 벽을 한 번 쓸고 지나갔다. 하진은 화면을 멈춰 달라고 했다.
얼음벽 앞, 아버지가 서 있던 자리에서 열 걸음쯤 떨어진 곳에 노란 펜스 판 하나가 기대어 세워져 있었다. 동굴 안에 펜스를 들고 들어갈 일은 없었다. 쓰지 않을 펜스를 미리 갖다 둘 까닭도 없었다. 하진은 화면을 손가락 두 개로 벌려 키웠다. 판 가운데에 「한빛 성수 제4 사냥터」. 오른쪽 아래 귀퉁이, 작은 글씨.
「인쇄 2030.11.13」.
사고 전날이었다. 칠 년 전에도 한빛은 3호 옆에서 터질 다음 문의 번호를 먼저 찍어 두었다. 도강혁이 노트북을 닫았다. 이번에는 아주 조용히 닫았다.
*
밤 열 시, 하진은 성수동 사무실 앞 골목에서 트럭 옆에 서 있었다. 손에 페인트 붓과 흰 페인트 한 통이 들려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트럭 옆구리의 일곱 글자가 칠 년 전 모양 그대로 삐뚤었다. 「무」 자의 받침이 아래로 흘러내렸고, 「다」 자는 혼자 키가 컸다.
계단에서 슬리퍼 소리가 났다. 탁 여사가 패딩을 걸치고 내려왔다. 사무실 불이 꺼진 줄 알았는데, 탁 여사는 하진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칠하려고?”
“여사님한테 할 말이 있어서요.” 하진은 붓을 페인트 통 위에 걸쳐 놓았다. “아빠가 마지막에 여사님 불렀어요. 트럭 글씨 내가 다시 쓴다고. 삐뚤어서 창피하다고. 웃으면서요.”
탁 여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트럭 옆구리로 다가가 「무」 자의 흘러내린 받침을 손끝으로 쓸었다. 페인트가 칠 년 동안 비바람에 거칠어져 손끝에 까슬하게 걸렸다.
“그 양반이 이거 쓸 때 나 옆에 있었어.” 탁 여사가 말했다. “내가 삐뚤다고 했더니, 무료라는 말은 좀 삐뚤어야 사람들이 믿는다고 하더라. 반듯하면 사기 같다고.”
탁 여사는 오래 웃다가, 돋보기를 벗어 눈가를 닦았다. 하진은 붓을 페인트 통에 담그지 않고 뚜껑을 도로 닫았다.
“안 칠할게요. 아빠가 다시 쓴다 했으니까, 아빠 몫으로 둬요.”
“그래. 둬.”
둘은 한참 트럭 옆에 서 있었다. 탁 여사의 휴대폰이 울렸다. 저장하지 않은 번호에서 온 문자였다. 탁 여사는 화면을 하진에게 보여 주었다.
「탁정애 님, 한빛 사업개발실입니다. 따로 뵙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도강혁은 일주일을 기다리지 않았다. 첫날 밤부터 한 사람씩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