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221자)

전기장판

던전 철거 전문, 견적은 무료입니다 · 남시우

은색 폴더폰은 사무실 책상 위에서 화면을 연 채 놓여 있었다. 2030년 11월 14일 오후 두 시 이 분, 사 분 십 초. 아침 일곱 시, 하진은 탁 여사가 내민 그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난로 위의 보리차 주전자가 끓어 넘쳐 쉬익 소리를 냈고, 아무도 불을 줄이지 않았다.

“아빠가 마지막에 도강혁한테 전화했네요.”

“두 시 이 분에. 사고는 두 시 십 분.” 탁 여사가 주전자 불을 껐다. “반장, 이거 들고 어디 가서 뭘 하려고?”

“오늘 저녁에 방송 나가요. 「시사 맞짱」. 도강혁도 나온대요.”

“거기서 이걸 꺼내려고?”

하진은 폴더폰을 닫아 작업복 주머니에 넣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반장.” 탁 여사가 돋보기를 벗었다. “나 구청 다닐 때 배운 게 하나 있어. 서류는 회의실에서 꺼내고, 사연은 밥상에서 꺼내. 순서 바뀌면 사연이 서류를 잡아먹어.”

“그 사람이 아빠 사연을 들고 와서 칠 년 동안 3호를 털었어요.”

“알아.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

열다섯 곳이었다. 성수동에서 시작해 성동구 여덟과 광진구 구의동까지, 염가철거가 3월 중순까지 꿰매 닫은 게이트의 수였다. 닫을 때마다 분열이 따라왔지만 새로 열리는 수는 조금씩 줄고 있었다. 뿌리째 닫은 곳 근처에서는 둘이 아니라 하나만 열리기도 했다. 하진은 그게 좋은 신호인지 아직 몰랐다.

나쁜 신호는 분명했다. 3월 15일 아침 신문 일 면에 「4월 전기 요금 18% 인상 예고」가 실렸다. 마정석 발전 단가가 오른 탓이라고 했고, 기사 셋째 문단에 「성동구 일대 영구 폐쇄로 마정석 공급 감소」라는 문장이 있었다.

열 시, 하진은 장미세탁소에 들렀다. 견적 무료를 처음 맡긴 손님이었고, 하진은 현장이 끝난 뒤에도 그 집에 일주일에 한 번은 들렀다. 세탁소 안이 평소보다 서늘했다. 스팀 다리미 셋 가운데 하나만 김을 뿜고 있었다.

“다리미 고장 났어요?”

“아니. 전기 아끼느라.” 윤순례 할머니가 다리미를 와이셔츠 깃에 꾹 눌렀다. “방에 전기장판도 껐어. 내복 두 벌 입으면 돼. 영감 살았을 때는 연탄 땠는데 그때보다는 낫지.”

카운터 위에 고지서가 펼쳐져 있었다. 3월분이 2월분보다 만 사천 원 많았다. 하진은 그 숫자를 오래 보았다.

세탁소 문이 열리고, 같은 골목 반지하에 사는 박 씨가 와이셔츠 두 장을 들고 들어왔다. 쉰 살쯤 된 택배 기사였다. 그는 하진을 보더니 와이셔츠를 카운터에 탁 내려놓았다.

“당신이 그 철거반이지? 테레비에 나온.”

“네.”

“우리 집 반지하야. 해가 안 들어. 전기난로 하나로 겨울 나. 그 전기 요금이 오른대.” 박 씨의 목소리가 높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아팠다. “닫는 거 좋지. 무서운 거 없어지면 좋지. 근데 그 값을 왜 우리 집이 먼저 내?”

하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다리미를 내려놓고 박 씨의 와이셔츠를 받았다. “박 씨, 이 아가씨 아니었으면 내 보일러실은 아직 얼음이야.”

“할머니 보일러실 녹은 값을 우리 난로가 내는 거잖아요.”

박 씨는 와이셔츠 값을 내고 나갔다. 문에 달린 종이 오래 흔들렸다.

*

저녁 여덟 시, 여의도 방송국 지하 분장실. 분장사가 하진의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두드리다가 손을 멈췄다.

“피부가 원래 이 색이에요?”

“시멘트 가루요. 아침에 몰탈 개고 왔어요.”

“세수는 하셨어요?”

“두 번이요.”

분장사는 한숨을 쉬고 물티슈를 다섯 장 뽑았다. 옆 의자에서는 도강혁이 눈을 감은 채 분장을 받고 있었다. 그는 분장사에게 고맙다는 말을 두 번 했다. 하진은 한 번도 안 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스튜디오는 유리와 조명이었다. 머리 위 조명 열두 개가 뜨거워서, 방송 시작 오 분 만에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반원형 테이블 가운데에 사회자가, 왼쪽에 도강혁과 마정석 발전 업계 협회장이, 오른쪽에 하진과 시민단체 활동가가 앉았다. 방청석에 쉰 명. 화면 오른쪽 위에 실시간 시청자 투표 막대가 떠 있었다. 「영구 폐쇄, 계속해야 한다 / 멈춰야 한다」.

도강혁은 첫 발언부터 숫자를 들고 나왔다. 화면에 도표가 떴다.

“염가철거가 닫은 게이트는 열다섯 곳입니다. 그 결과 서울 마정석 공급이 4% 줄었습니다. 4%가 작아 보이시죠? 발전 단가로는 11%, 요금으로는 18%입니다. 그리고 요금이 오르면 가장 먼저 추운 곳은 반지하입니다. 한빛은 지키면서 공급하는 길을 제안드립니다. 열어 두고, 지키고, 털고. 그게 서울을 따뜻하게 합니다.”

투표 막대가 왼쪽으로 기울었다.

하진은 마이크를 당겼다. 손바닥에 땀이 차서 마이크 대가 미끄러웠다.

“열어 두면 사십 일마다 마물이 차요. 그 옆에 사는 사람은 보일러실에 성에가 껴요. 따뜻한 건 한빛 발전소고, 추운 건 게이트 옆집이에요. 그리고 땅속이 이어져 있다는 거, 한빛은 알고 있었어요. 제가 성수 7호를 닫기 전날 한빛은 다음 게이트 펜스를 찍어 뒀어요.”

“여분 펜스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도강혁이 사회자를 보며 웃었다. 방청석에서 작은 웃음이 났다.

사회자가 하진에게 다시 마이크를 넘겼다. 하진은 주머니 속 폴더폰을 쥐었다. 탁 여사의 말이 떠올랐다. 서류는 회의실에서, 사연은 밥상에서. 하진은 폴더폰을 꺼냈다.

“제 아버지는 칠 년 전 성수 3호에서 돌아가셨어요. 한빛과 계약하고 들어가셨고요. 이게 아버지 전화기예요. 사고 팔 분 전,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이 도강혁 이사님이에요. 이사님, 그때 무슨 얘기 하셨어요?”

스튜디오가 조용해졌다. 조명 열두 개가 윙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도강혁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테이블 위의 물컵을 들었다가 마시지 않고 내려놓았다. 그리고 하진이 아니라 카메라를 보았다.

“네. 저였습니다.” 목소리가 처음으로 낮게 갈라졌다. “염 사장님이 3호 안에서 땅을 파 보겠다고 전화하셨습니다. 저는 위험하다고, 나오시라고 말렸습니다. 사 분을 말렸어요. 그 통화를 끊고 팔 분 뒤에 사고가 났습니다. 저는 칠 년째 그 사 분을 후회합니다. 더 세게 말렸어야 했다고.”

방청석에서 누군가 숨을 들이쉬었다. 투표 막대가 왼쪽으로 크게 움직였다.

“그리고 하진 씨.” 도강혁이 처음으로 하진을 보았다. 다정한 얼굴이었다. “하진 씨도 그날 3호 안에 계셨죠. 아버님이 먼저 나가라고 하셨고, 하진 씨는 나가셨어요. 저는 하진 씨를 탓하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나갔을 겁니다. 다만, 아버님 일을 이렇게 방송에서 꺼내시는 건 하진 씨에게도 아버님에게도 좋지 않아 보입니다.”

하진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마이크가 그 숨소리까지 잡았다.

방송이 끝났을 때 투표 막대는 「멈춰야 한다」 69, 「계속해야 한다」 31이었다.

*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둘만 탔다. 문이 닫히자 거울 벽에 두 사람의 얼굴이 나란히 비쳤다. 도강혁의 얼굴에는 분장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하진의 이마에는 물티슈로 못 지운 시멘트 가루가 한 줄 남아 있었다.

“사 분 동안 정말 말렸어요?” 하진이 거울 속 도강혁에게 물었다.

“말렸습니다.”

“아빠는 말린다고 멈추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이사님도 알았잖아요. 근데 왜 사 분이나 통화했어요? 말리는 데 사 분이 걸려요?”

엘리베이터가 지하 이 층을 지났다. 도강혁은 거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진 씨는 오늘 진 게 아니라, 틀린 자리에서 싸운 겁니다. 방송은 사연을 좋아해요. 저는 사연을 하진 씨보다 먼저 꺼냈을 뿐이고요.”

“그 사연, 이사님 거 아니에요.”

“이제는 제 것이기도 합니다. 칠 년을 들고 다녔으니까요.” 문이 열렸다. 도강혁은 먼저 내리면서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하진 씨, 다음엔 서류를 들고 오세요. 그럼 저도 서류로 답하겠습니다.”

그는 탁 여사와 같은 말을 했다. 하진은 엘리베이터 안에 남아 문이 다시 닫힐 때까지 서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아홉 시, 성동구청 과장이 전화했다. 강 주무관이 아니라 과장이었다.

“염 반장, 미안한데 당분간 신규 폐쇄는 쉬죠. 여론이 이래서야 구가 버틸 수가 없어요. 진행 중인 응봉 하나만 마무리하고.”

“분열은요? 어제도 송정동에 하나 열렸잖아요.”

“한빛이 관리하기로 했어요. 무상으로.”

전화가 끊겼다. 십 분 뒤 광진구청에서 문자가 왔다. 「구의동 후속 건은 검토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거래처 둘이 하룻밤 사이에 영이 되었다.

단톡방은 조용했다. 정오가 지나서야 탁 여사가 한 줄을 올렸다. 「공지. 오늘 일 없음. 다들 밥은 먹을 것.」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마 씨조차 「응」을 하지 않았다.

*

저녁 일곱 시, 하진은 트럭 짐칸에 등유 난로 하나를 싣고 장미세탁소로 갔다. 마정석 전기가 아니라 기름으로 도는, 할아버지들이 경로당에서 쓰던 낡은 원통형 난로였다. 사무실 창고에서 꺼내 마 씨가 오후 내내 심지를 갈고 닦았다. 등유 한 말은 탁 여사가 샀다. 본길이 따라와 난로를 지고 계단을 올랐다. 이번에는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할머니 방은 세탁소 뒤쪽 단칸방이었다. 방바닥에 꺼진 전기장판이 깔려 있었고, 할머니는 내복 위에 조끼를 두 벌 껴입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하진은 할머니가 어젯밤 그 방송을 봤는지 묻지 않았다.

본길이 난로를 방 구석에 내려놓았다. 하진이 심지에 불을 붙였다. 등유 타는 냄새가 처음엔 매캐하다가, 불꽃이 파랗게 서자 고소해졌다. 난로 둥근 몸통이 천천히 붉어졌다.

“이거 기름 값은 누가 내?” 할머니가 물었다.

“견적 무료예요.”

“너는 맨날 무료래.” 할머니는 난로 앞으로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손바닥을 펼쳤다. 손바닥이 불빛에 붉게 비쳤다. 손금 사이에 다리미 화상 자국이 오래된 줄처럼 그어져 있었다. “하진아. 어제 그 사람 말, 반은 맞아.”

하진은 난로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무릎이 뜨거웠다.

“너희 아버지가 먼저 나가라 했으면, 나간 게 맞아. 그거 하나는 그 사람이 맞게 말했어. 근데 그 사람이 그걸 테레비에서 꺼낸 건, 맞는 말을 나쁘게 쓴 거야.” 할머니는 난로에 손바닥을 바짝 댔다가 떼었다. “맞는 말을 나쁘게 쓰는 사람한테는 지는 거 아니야. 잠깐 밀리는 거지.”

하진은 고개를 숙였다. 난로 불빛이 작업복 무릎의 시멘트 얼룩 위에서 흔들렸다. 할머니가 하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다리미를 오래 쥔 손이라 따뜻했다.

본길이 방 문가에서 코를 훌쩍이다가 말했다. “할머니, 등유통 제가 들어 드릴게요.”

“들지 마. 놔둬.”

세탁소를 나와 트럭에 오르자 휴대폰이 울렸다. 저장하지 않은 번호였지만, 열한 자리를 하진은 이제 외우고 있었다.

「하진 씨, 어제는 미안했습니다. 내일 오후 세 시 여의도 본사로 오세요. 3호 영상,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버님이 남기신 나머지 반쪽도요.」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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