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47자)
단톡방 공지
던전 철거 전문, 견적은 무료입니다 · 남시우
새벽 여섯 시, 탁정애
탁정애는 알람보다 십 분 먼저 일어나 쌀을 씻었다. 예순하나가 되자 알람이 필요 없어졌다. 몸이 먼저 깼다. 전기밥솥 취사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켜니 단톡방에 밤사이 쌓인 숫자가 서른둘이었다.
「반장 순자 내일 응봉 먼저?」 「응」 「제가 몰탈 들게요!」 「몰탈은 트럭이 들어」 「순자 씨 오늘 컨디션 별로예요」 「순자 컨디션 누가 알아」 「제가 알아요」
탁 여사는 서른두 줄을 다 읽고 공지 하나를 썼다.
「공지. 오늘 여덟 중 셋. 응봉 둘 소미·마 씨, 행당 하나 반장·본길. 나는 사무실에서 전화. 점심은 내가 김밥 들고 감. 본길이는 김밥 들지 말 것. 단 마 씨 것은 마 씨가 들 것. 마 씨 지난번에 김밥 남김.」
오 분 뒤에 마 씨가 답했다. 「응.」
일곱 시 반, 탁 여사는 사무실 아래 순댓국집에서 국밥을 시켜 놓고 벽걸이 텔레비전을 올려다보았다. 아침 뉴스 화면 아래로 자막이 흘렀다. 「성동구 하룻밤 새 게이트 여덟 개 ‘분열’ 확산… 철거업체 공법 논란」. 앵커가 「분열」이라는 말을 세 번 했고, 화면은 성수 7호를 닫던 날 반석규가 찍은 영상으로 넘어갔다. 하진이 흙손으로 몰탈을 바르는 장면 위에 「영구 폐쇄 후 16시간 만에」라는 큰 글씨가 붙었다. 그다음은 카페 거리에서 반석규가 족제비 목을 꺾는 장면이었다. 그 위에는 「시민 지킨 한빛 현장팀」.
국밥집 사장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탁 여사를 돌아보았다. “여사님네 반장이 저거 만들었다는 거예요?”
“만든 거 아니고 찾은 거예요. 방송국이 편집을 만들었지.”
아홉 시부터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욕하는 전화가 열한 통, 무료 견적이 진짜냐는 전화가 여섯 통, 보험 영업이 두 통. 그리고 열 시 십오 분에 한 통.
“염가철거죠? 광진구청 안전총괄과입니다. 구의동 쪽에 한빛이 털고 간 C급이 하나 있는데, 거기도 땅속이 이어져 있는지 봐 주실 수 있어요? 견적 무료라고 하셔서.”
탁 여사는 수화기를 어깨에 끼고 견적서 맨 위에 「광진구청」이라고 적었다. 성동구 하나였던 거래처가 둘이 되었다. 비고란에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처음으로 농담이 안 떠올랐다.
*
오전 열 시, 나소미
응봉동 게이트는 응봉산 산책로 계단 중간, 개나리 덤불 옆에 떠 있었다. 3월 초라 개나리는 아직 가지뿐이었는데, 금 가까운 가지만 하얗게 얼어 유리 공예품처럼 반짝였다.
한빛은 그 게이트를 이미 공략했다. 새로 열린 게이트에는 마물이 꽉 차 있어서, 비우지 않고는 몰탈이 테두리에 붙지 않았다. 그래서 한빛이 먼저 들어가 비우고, 비운 다음에 염가철거가 닫는 순서가 구청 명령서에 적혔다. 한빛은 첫 사냥을 공짜로 얻었다. 하진은 그 줄에 서명하면서 볼펜을 세게 눌렀다.
문제는 비운 다음이었다. 반석규가 펜스 앞에 서서 철수를 안 했다.
“잔당 확인 칠십이 시간입니다. 안에 남은 게 있을 수 있어요.”
“어제도 칠십이 시간이라고 하셨잖아요.” 소미가 순자 운전석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칠십이 시간이 매일 처음부터 시작해요?”
“확인할 때마다 다시 시작합니다.”
“그럼 영원히 확인하시겠네요.”
“필요하면요.”
소미는 순자를 펜스에 바짝 붙였다. 버킷이 펜스 철망에 닿기 직전에 멈췄다. 마 씨가 계단 아래에서 영감을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그는 끼어들지 않았다. 소미의 싸움이었다.
“아저씨, 저 이거 할부 넉 달에 수리비 열두 달이에요. 오늘 못 닫으면 내일 응봉산에 둘 더 생기고, 그럼 순자 씨는 또 얼어요. 비켜 주세요.”
반석규가 펜스를 넘어왔다. 그는 순자 왼쪽 궤도 앞에 쪼그려 앉더니, 두 손으로 궤도 밑을 받쳤다. B급 헌터의 팔뚝에 핏줄이 섰다. 순자의 왼쪽이 땅에서 뜨기 시작했다. 한 뼘, 두 뼘. 운전석이 오른쪽으로 기울었고 소미의 몸이 문짝에 부딪혔다.
“내려놓으세요!”
“기사님이 물러서면요.”
소미는 레버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대신 붐대를 기울어진 반대쪽으로 천천히 뻗었다. 버킷이 개나리 덤불 너머 계단 난간을 붙잡았다. 순자의 무게가 난간 쪽으로 옮겨 가자 반석규의 팔이 떨렸다. 3.5톤과 B급 헌터 한 명이 산책로 계단 위에서 서로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산책하던 노인 둘이 걸음을 멈추고 구경했다.
“저거 누가 이기나?” 한 노인이 물었다.
“포크레인이 이기지.” 다른 노인이 말했다. “저 아가씨가 안 내려.”
삼십 초쯤 버텼을 것이다. 반석규가 손을 놓았다. 순자의 왼쪽 궤도가 계단 위로 쿵 떨어졌고, 떨어지면서 궤도 판 두 장이 계단 모서리에 걸려 휘었다. 쇠 휘는 소리가 산을 울렸다.
반석규는 손바닥을 털고 휴대폰을 꺼냈다. “여보세요, 경찰이죠? 업무방해 신고하려고요. 사냥터 안전 확인 중인데 중장비로 밀고 들어옵니다.”
소미는 운전석에서 내려 휜 궤도 판을 맨손으로 만져 보았다. 쇠가 아직 뜨거웠다. 그리고 반석규를 올려다보았다.
“아저씨, 신고하세요. 저도 할게요. 순자 씨 들어 올린 거, 저 할아버지들이 다 봤어요.”
노인 하나가 손을 들었다. “봤어.”
반석규는 오 분 뒤에 팀원들을 데리고 철수했다. 경찰은 사십 분 뒤에 왔고, 양쪽 진술을 받아 갔다. 소미는 진술서 서명란에 이름을 쓰고, 그 옆에 작게 「순자」라고 덧붙였다가 경찰관이 지우라고 해서 지웠다.
경찰차가 떠나자 소미는 계단에 주저앉아 하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휜 궤도 판 사진을 먼저 보내고, 신호가 세 번 가는 동안 장갑을 벗었다 꼈다 했다.
“반장님, 순자 씨 다리 휘었어요. 그리고 저 신고당했어요.”
“너는? 안 다쳤어?”
“저는 문짝에 어깨 박았어요. 순자 씨가 더 아파요.” 소미는 코를 훌쩍였다. 추워서였다. “반장님, 업무방해면 벌금 나와요? 그거 순자 할부보다 비싸요?”
“벌금 나오면 비고란에 적어서 한빛에 청구할게. 「B급 헌터 포크레인 들어 올림, 들어 올린 쪽 부담」.”
소미가 웃었다. 웃다가 어깨가 아파서 인상을 썼다. 마 씨가 계단 아래에서 올라와 소미 옆에 말없이 앉더니, 영감 케이스에서 핫팩 하나를 꺼내 소미 어깨에 얹었다. 그날 응봉동 게이트는 해 지기 전에 닫혔다. 순자는 궤도 판 두 장이 휜 채로, 끝까지 버킷을 들었다.
*
오후 세 시, 구본길
행당동 게이트는 지하철 환기구 옆 화단에 있었다. 환기구에서 올라오는 더운 바람과 금에서 나오는 찬 바람이 화단 위에서 부딪혀, 그 자리만 안개가 꼈다. 본길은 몰탈 포대 두 개를 어깨에 지고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시멘트 가루가 목덜미에 들러붙어 땀과 섞였다.
반장님이 땅을 파라고 했다. 순자가 응봉산에서 다쳐서, 오늘은 삽이었다. 본길은 삽질이 좋았다. 등에 지는 것 다음으로 좋았다. 삽질을 하면 무섭다는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이 미터쯤 팠을 때 삽 끝이 검은 것에 닿았다. 본길은 삽을 놓고 한 발 물러섰다. 반장님이 구덩이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왜?”
“이거요, 반장님.” 본길은 장갑 낀 손으로 흙을 쓸었다. 뿌리의 혹이 푸르게 밝아졌다. 본길은 그 빛을 알았다. “3호 안에서 본 거랑 똑같아요. 그때 팀장님이 벽에 붙은 거 덮으라고 해서 덮개 들고 갔던 거. 덮개 밑에서 이렇게 빛났어요. 저 그때 무서워서 다른 데 봤는데, 다른 데 봐도 빛이 보였어요.”
반장님은 대답하지 않고 구덩이로 내려왔다. 장갑을 벗고 손바닥을 뿌리 위에 펼쳤다. 본길은 그 손바닥이 하얗게 질리는 걸 보았다.
“서쪽이야. 성수에서보다 세.”
본길은 몰탈 포대를 다시 지었다. 오늘 하루 지은 것 중에 이게 제일 무거웠다. 무섭다는 생각이 났다.
*
밤 아홉 시, 마종철
영감 불꽃이 행당동 화단 위로 튀었다. 마종철은 마스크 속에서 숨을 길게 쉬었다. 쇠 타는 냄새에 오존 냄새가 섞여 들어왔고, 마스크 안쪽이 땀으로 미끈거렸다. 서른 해 넘게 맡은 냄새였다.
고리 이음매는 열두 개였고, 하나가 남았다. 장갑 속 손가락 끝은 감각이 없을 만큼 시렸는데 영감 손잡이만 따뜻했다. 영감은 염 사장이 처음 회사를 차리던 해에 중고로 사 온 용접기였다. 그때 이미 늙어서 영감이라고 불렀고, 지금은 마종철이 더 늙었다.
마지막 이음매를 붙이고 마스크를 올렸다. 하진이 구덩이 안에서 흙손으로 몰탈을 바르고 있었다. 흙손을 눕히는 각도가 15도쯤이었고, 바르고 나서 손목을 한 번 털었다. 칠 년 전 염 사장이 그렇게 했다. 가르친 적도 없는 버릇이었다.
트럭으로 가서 공구함을 열었다. 영감을 넣는 칸 밑에 누런 봉투가 깔려 있었다. 봉투 귀퉁이에 한빛 로고가 찍혀 있었고, 그 위에 볼펜으로 「위로금」이라고 적혀 있었다. 염 사장 장례식 다음 날 도강혁의 비서가 사무실로 들고 온 봉투였다. 칠 년 동안 마종철은 그 봉투를 열지 않았고 버리지도 않았다. 딸 등록금 고지서가 날아온 날에도 열지 않았다.
마종철은 봉투 위에 영감을 눕히고 공구함 뚜껑을 닫았다. 뚜껑이 닫히는 소리가 평소보다 컸다.
“마 씨, 가요.” 하진이 구덩이에서 올라오며 불렀다.
“응.”
*
밤 열한 시 반, 탁정애
사무실 난로가 꺼져 가고 있었다. 탁 여사는 혼자 남아 고 염 사장이 쓰던 책상 서랍을 열었다. 칠 년 동안 아무도 정리하지 않은 서랍이었다. 녹슨 줄자, 고무줄로 묶은 영수증 다발, 반쯤 쓴 연필 세 자루, 그리고 은색 폴더폰 하나.
강 주무관이 말한 영상은 한빛이 가져갔을 것이다. 그래도 염 사장이 그날 누구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이 전화기 안에 남아 있을지 몰랐다. 탁 여사는 충전기를 찾느라 서랍 셋을 더 뒤졌고, 결국 책상 뒤 콘센트에 꽂힌 채 먼지를 뒤집어쓴 옛날 충전기를 찾아냈다.
전원이 들어오는 데 오 분이 걸렸다. 화면에 2030년 11월 14일이 떠 있었다. 시계가 그날에서 멈춰 있었다.
통화 목록을 열었다. 그날 오전에 집으로 한 통. 하진에게 두 통. 마 씨에게 한 통. 그리고 오후 두 시 이 분, 발신 한 통. 통화 시간 사 분 십 초. 이름은 저장돼 있지 않았고, 번호만 떠 있었다.
탁 여사는 그 번호를 휴대폰 메모장에 옮겨 적었다. 그리고 하진의 책상 위, 공책 사이에 끼워진 명함을 꺼내 비교했다. 「한빛 사업개발 이사 도강혁」. 휴대폰 번호 열한 자리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3호 사고 보고서에 적힌 사고 시각은 오후 두 시 십 분이었다. 강 주무관이 주차장 구덩이 사진을 찍던 밤에 지나가듯 말해 준 시각이었다.
탁 여사는 폴더폰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숫자는 그대로였다. 단톡방을 열었다가, 공지라고 치다가 지웠다. 하진에게만 따로 썼다.
「반장. 내일 아침에 나 좀 봐. 일찍. 김밥 말고 할 얘기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