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289자)
순자, 파 봐
던전 철거 전문, 견적은 무료입니다 · 남시우
구두 공방 건물 뒤편의 주차장은 차 네 대가 겨우 들어가는 시멘트 마당이었다. 바닥 갈라진 틈마다 지난가을의 은행잎이 검게 박혀 있었고, 한쪽 벽에는 공방에서 쓰다 버린 구두 골 수십 개가 마대 자루에 담겨 쌓여 있었다. 그 마당 한가운데가 구두 공방 골목의 9호와 카페 거리의 8호 사이, 정확히 한가운데였다.
“여기요?” 공방 사장 곽 사장이 슬리퍼 차림으로 내려와 물었다. 염가철거가 세 든 건물의 주인이었다. “내 주차장을 왜 파?”
“사장님, 땅속에 뭐가 있나 보려고요. 다 보고 메워 드려요. 아스팔트도 새로 깔아 드리고요.”
“지난달 월세는?”
“그것도 메워 드릴게요.”
곽 사장은 동의서에 서명하면서 비고란에 무언가를 적어 달라고 했다. 탁 여사가 적었다. 「월세 메우는 것과 땅 메우는 것은 별도」.
아침 일곱 시 반, 소미가 순자에 올랐다. 순자는 3.5톤짜리 미니 굴착기였고, 버킷 이빨 다섯 개 중 하나가 작년에 깨져 용접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소미는 운전석 문을 닫기 전에 계기판을 손바닥으로 두 번 쓸었다.
“순자 씨, 오늘 깊게 갈 거예요. 무서우면 말하세요.”
“순자가 어떻게 말을 해?” 본길이 말했다.
“엔진 소리가 바뀌어. 너도 무서우면 말 많아지잖아.”
본길은 그 말에 반박하려다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
여덟 시에 반석규가 왔다. 한빛 현장팀장은 어제 카페 앞에서 족제비 목을 꺾은 손으로 주차장 철문을 밀어 열었다. 그 뒤로 한빛 조끼를 입은 팀원 둘이 따라 들어왔다.
“굴착 중지하세요.” 반석규가 서류 한 장을 흔들었다. “사냥터 등록 조건이요. 등록 게이트 반경 삼십 미터 안에서는 길드 허락 없이 땅 못 팝니다. 지반이 흔들리면 게이트가 불안정해져요.”
“여기 삼십 미터 밖인데요.” 하진이 말했다.
“안인데요.”
“본길아, 줄자.”
본길이 오십 미터 줄자를 들고 뛰었다. 구두 공방 골목 9호 펜스 기둥에 줄자 끝을 걸고, 주차장 철문을 지나, 소미가 버킷을 대 놓은 자리까지 끌고 왔다. 모두가 숫자를 들여다보았다.
“삼십일 미터 이십.”
“펜스 기둥에 걸고 쟀잖아요.” 반석규가 말했다. “게이트 중심에서 재야죠. 펜스 기둥이 아니라.”
“게이트 중심까지 들어가면 사냥터 무단출입인데요?”
반석규가 대답을 못 했다. 그 사이 소미가 순자의 궤도를 철컥철컥 삼 미터쯤 뒤로 물렸다.
“삼십사 미터요.” 소미가 창문을 열고 말했다. “순자 씨가 양보했어요.”
반석규의 팀원 하나가 웃음을 참다가 기침을 했다. 반석규가 그쪽을 노려보았다.
*
버킷이 시멘트 바닥을 깨는 소리가 마당을 울렸다. 시멘트 밑에 자갈, 자갈 밑에 누런 흙이 나왔다. 처음 일 미터는 여느 땅이었다. 흙에서 젖은 지렁이 냄새가 났고, 옛날 수도관 토막이 하나 걸려 나왔다.
일 미터 반쯤에서 흙 색이 바뀌었다. 누런 흙이 회색으로 변하더니, 버킷에 담겨 올라온 흙덩이 겉에 하얀 서리가 앉아 있었다. 하진이 구덩이 가장자리에 엎드려 손바닥을 아래로 내밀었다. 손바닥 한가운데가 얼음을 쥔 것처럼 시렸다. 시린 기운은 구덩이 바닥에서 위로 올라오다가, 동쪽과 북쪽 두 갈래로 꺾여 8호와 9호 쪽으로 흘렀다.
“더 아래야. 소미야, 천천히.”
“천천히 하면 순자 씨가 더 추워해요.”
“빨리 해도 추워.”
이 미터, 이 미터 반. 구덩이 벽이 하얗게 얼어 반짝였다. 소미의 숨이 운전석 유리를 뿌옇게 덮었고, 그녀는 소매로 유리를 문질러 가며 레버를 밀었다. 순자의 엔진 소리가 한 음 낮아졌다.
반석규가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그는 구덩이 가장자리를 성큼 건너 버킷 팔에 한 발을 올리고, 두 손으로 붐대를 붙잡았다. B급 헌터의 몸무게가 실리자 순자의 팔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내리세요!” 소미가 창문을 열고 외쳤다.
“멈추세요. 이 밑에 뭐가 있는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파는 거잖아요! 내리세요, 순자 씨 무거워해요!”
“기사님 다쳐요.”
“제가 다쳐도 순자 씨는 안 다치게 할 거예요. 근데 아저씨가 매달리면 둘 다 다쳐요.”
소미는 레버를 놓지 않았다. 대신 붐대를 아주 천천히, 반석규가 매달린 채로 위로 올렸다. 버킷이 땅에서 빠져나오자 반석규의 발이 공중에 떴다. 그는 B급이라 떨어져도 안 다칠 것이었지만, 순자의 붐대 끝에 매달려 구덩이 위 삼 미터에서 흔들리는 그림은 B급에게도 썩 좋은 그림이 아니었다. 한빛 팀원 둘이 휴대폰을 꺼냈다가 반석규의 눈치를 보고 도로 집어넣었다.
“내려 드릴게요. 철문 쪽으로.” 소미가 붐대를 돌렸다. 버킷이 반석규를 주차장 철문 앞 시멘트 위에 정중하게 내려놓았다.
반석규는 코트 앞자락을 털고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사님, 굴착 못 막았습니다.”
*
삼 미터, 그리고 삼 미터 반에서 버킷 이빨이 무언가에 걸렸다. 쇳소리가 아니었다. 굵은 고무 호스를 칼로 긁는 것 같은, 질기고 낮은 소리가 땅 밑에서 올라왔다.
“멈춰.”
소미가 레버를 놓았다. 하진은 사다리를 구덩이 벽에 걸고 내려갔다. 마 씨가 위에서 사다리를 붙잡았고, 본길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손전등 셋과 삽 둘과 보온병 하나를 등에 지고 따라 내려왔다.
구덩이 바닥은 영하 20도 아래였다. 숨을 들이쉬면 콧속 털이 얼어 따끔했다. 하진은 장갑 낀 손으로 버킷이 긁어 놓은 자리의 흙을 쓸어 냈다. 흙 밑에서 검은 것이 나왔다.
어른 팔뚝만 한 굵기의, 칡뿌리처럼 꼬인 검은 덩굴이었다. 겉은 젖은 숯처럼 윤이 났고, 마디마다 주먹만 한 혹이 맺혀 있었다. 하진이 손전등을 들이대자 혹 안쪽에서 푸른 빛이 아주 느리게, 맥박처럼 밝아졌다가 어두워졌고, 사 초쯤 있다가 또 한 번 밝아졌다.
“숨 쉬어요.” 본길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반장님, 이거 숨 쉬어요. 저 짐꾼 할 때 B급 던전 안에서 이런 거 본 적 없어요. 아니 비슷한 건 있었는데 이건 아니고, 그때는 벽에 붙어 있었는데—”
“본길아.”
“네.”
“말 많아졌어.”
“네. 무서워요.”
하진은 장갑을 벗었다. 맨손바닥을 뿌리 위 한 뼘 높이에 펼쳤다. 차가운 기운이 손바닥을 할퀴듯 지나갔다. 뿌리 안에서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동쪽 갈래는 9호로, 북쪽 갈래는 8호로. 그리고 두 갈래가 만나는 자리에서 굵은 줄기 하나가 서쪽으로 뻗어 있었다. 손바닥 열이 그 줄기를 따라 끌려갔다. 서쪽, 성수대교가 있고 한강이 있는 쪽이었다.
*
오후 세 시쯤 주차장 철문 밖에 사람이 모였다. 공방 직원들, 카페 손님들, 그리고 셀카봉을 든 젊은 남자 하나가 「성수동 땅속 괴물 실시간」이라고 떠들며 철문 틈으로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탁 여사가 철문 앞에 접이식 의자를 펴고 앉았다.
“구경은 무료예요. 근데 철문 안으로 한 발 들어오면 안전 관리비 오만 원. 비고란에 다 적혀 있어요.”
“무슨 비고란이요?”
“내가 지금 적을 비고란.”
셀카봉 남자는 한 발 물러섰다. 구경꾼 몇이 웃었고, 탁 여사는 의자에 앉은 채 보온병의 보리차를 따라 마셨다.
구덩이 둘레에 난간을 세우던 마 씨가 용접 마스크를 올리고 하진을 불렀다. 쉰넷의 용접공이 먼저 하진을 부르는 일은 드물었다.
“하진아.”
“네.”
“니 아버지도 이거 파자 했어.” 마 씨는 영감의 집게를 내려놓고 장갑을 벗었다. 손등에 오래된 화상 자국이 지도처럼 번져 있었다. “3호 들어가기 전날. 땅 밑을 봐야 된다고. 한빛이 안 된다 했어. 공사 날짜 맞춰야 된다고.”
“왜 지금 말해요?”
“지금 팠으니까.”
마 씨는 장갑을 도로 끼고 마스크를 내렸다. 영감의 불꽃이 다시 튀었다. 하진은 그 등을 오래 보았다. 칠 년 동안 이 사람은 「응」과 「아니」 사이에 그 말을 넣어 두고 있었다.
*
해가 진 뒤에도 구덩이는 덮지 않았다. 마 씨가 구덩이 둘레에 철근으로 난간을 세웠고, 탁 여사가 컵라면 다섯 개에 물을 부어 왔다. 컵라면에서 오르는 김이 구덩이 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게 보였다.
순자는 저녁 여섯 시에 멈췄다. 뿌리 근처에서 세 시간을 버틴 유압 호스가 얼어서 터졌고, 붐대 관절에서 기름이 검게 흘러 시멘트 위에 얼어붙었다. 소미가 운전석에서 내려와 터진 호스 끝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한참 서 있었다. 장갑 낀 손가락 끝이 기름에 젖어 반짝였다.
“순자 씨, 잘했어요.” 소미가 말했다. 그리고 하진을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호스 하나 얼마예요?”
“사십만 원쯤.”
“관절 씰까지 나갔으면요?”
“삼백.”
소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부 넉 달 위에 삼백이 얹히는 셈을 하는 얼굴이었다. 하진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소미 옆에 서서 같이 순자를 보았다.
하진은 사무실에서 아버지의 공책을 가지고 다시 내려왔다. 컵라면을 무릎에 올려놓고 찢긴 마지막 장을 손전등으로 비췄다. 「뿌리」 두 글자. 그 아래 지금까지는 연필 자국이 번진 얼룩인 줄 알았던 자리에, 아주 흐린 선이 있었다. 꼬인 덩굴 하나, 마디마다 동그라미 하나, 그리고 두 갈래로 갈라지는 줄기.
구덩이 바닥의 뿌리와 같은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이걸 봤다. 칠 년 전에, 어디선가.
하진은 공책을 무릎에 놓고 컵라면을 먹었다. 면이 다 불어 있었다. 끝까지 먹었다.
*
밤 열 시, 검은 세단이 주차장 철문 앞에 섰다. 도강혁이 내려 구덩이 난간 앞까지 걸어왔다. 그는 코트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고 구덩이 바닥의 푸른 맥박을 내려다보았다. 삼 초쯤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덮으세요, 하진 씨.”
“이사님 땅 아니에요. 곽 사장님 땅이에요.”
“하진 씨 감당 못 합니다.” 도강혁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지만, 처음으로 느리지 않았다. “이게 어디까지 가는지 알면, 하진 씨 같은 업체는 내일부터 일을 못 해요. 구청도 서울시도 그걸 원하지 않습니다.”
“이사님은 어디까지 가는지 알아요?”
도강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반석규를 돌아보았다. “석규야, 버킷에 매달렸다며.”
“예.”
“다음엔 매달리지 마라. 그림이 안 좋다.”
반석규가 고개를 숙였다. 도강혁은 다시 하진을 보았다. “덮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 이걸 찍어 간 사람들이 문제를 만들 겁니다. 그게 하진 씨에게 좋을지 나쁠지는 모르겠네요.”
그가 돌아서자 철문 쪽에서 구두 굽 소리가 들렸다. 형광 조끼를 입은 강 주무관이 휴대폰 손전등을 켜고 들어오고 있었다. 탁 여사가 저녁에 전화로 불러 둔 사람이었다. 강 주무관은 도강혁에게 고개를 까딱하고, 난간을 붙잡고 구덩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손전등 불빛이 뿌리의 혹 위에서 멈췄다. 혹이 푸르게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강 주무관이 휴대폰 카메라를 켰다. 셔터 소리가 열두 번 났다.
“반장님.” 강 주무관은 사진을 넘겨 보며 말했다. “이게 어디로 가요?”
하진은 손바닥을 서쪽으로 펼쳐 보였다. 성수동 지붕들 너머, 한강 쪽 하늘이 마정석 발전소 불빛으로 푸르스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