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48자)
철거반이 만든 거 아니에요?
던전 철거 전문, 견적은 무료입니다 · 남시우
아침 일곱 시 반, 구두 공방 골목의 하수구 옆에 뜬 금은 세탁소 뒷골목에서 어제 닫은 금보다 한 뼘쯤 작았다. 크기만 작았지 바람은 더 셌다. 금 둘레의 아스팔트에 하얀 얼음꽃이 동그랗게 퍼졌고, 공방 사장이 내놓은 가죽 쓰레기 봉투가 꽁꽁 얼어 돌처럼 굴렀다.
하진은 장갑을 벗고 손바닥을 폈다. 손바닥 한가운데가 따끔하다가 아래쪽으로 열이 빠졌다. 어제 7호에서는 열이 테두리 왼쪽으로 몰렸다. 오늘은 땅 쪽이었다. 바람이 금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땅에서 금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반장님, 카페 쪽도 똑같아요.” 본길이 숨을 몰아쉬며 뛰어왔다. 등에 아무것도 안 지고 있었다. 너무 급해서 잊고 왔다. “아, 제가 뭐 들고 올까요?”
“숨이나 들고 와.”
여덟 시에 하얀 경차가 골목 입구에 섰다. 성동구청 안전재난과의 강유나 주무관은 서른셋이었고, 패딩 위에 형광 조끼를 입고 폴리스 라인 테이프를 한 롤 들고 내렸다. 어제 아침 염가철거의 폐쇄 신고를 받아 준 사람이 그녀였다.
강 주무관은 테이프를 전봇대에 감다가 하진을 보고 손을 멈췄다.
“염 반장님. 어제 7호 닫으셨죠?”
“닫았어요.”
“열여섯 시간 만에 이백 미터 안에서 두 개가 열렸어요.” 강 주무관이 휴대폰 지도를 내밀었다. 빨간 점 둘과, 이제는 회색으로 바뀐 점 하나가 삼각형을 이루고 있었다. “철거반이 만든 거 아니에요?”
“게이트를 만드는 철거반이 있으면 저도 좀 소개해 주세요. 견적 잘 나오겠네.”
“농담하실 때가 아니에요. 열 시에 긴급회의 있습니다. 반장님도 오세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무엇이든.”
*
오전 열 시, 성동구청 사 층 소회의실은 유리벽이었다. 천장 난방구에서 마른 바람이 정수리로 쏟아졌고, 테이블마다 종이컵 커피가 식어 가고 있었다. 창밖으로 성수대교 쪽 하늘이 뿌옇게 보였다.
테이블 한쪽에 안전재난과장과 강 주무관, 다른 쪽에 한빛 법무팀 셋과 도강혁. 하진은 그 사이, 테이블 끝 보조 의자에 앉았다. 탁 여사가 따라와 하진 뒤에 섰다. 예순하나의 전직 구청 공무원은 이 건물 화장실 위치를 과장보다 잘 알았다.
도강혁이 리모컨을 눌렀다. 벽 화면에 어제 세탁소 뒷골목이 떴다. 반석규가 펜스 밖에서 찍은 영상이었다. 마 씨의 용접 불꽃, 하진의 흙손, 손바닥만 한 틈이 닫히는 순간. 영상 오른쪽 아래에 시각이 찍혀 있었다. 오후 두 시 사십일 분. 다음 화면은 오늘 아침 구두 공방 골목이었고, 시각은 오전 여섯 시 오십팔 분이었다.
“열여섯 시간 십칠 분입니다.” 도강혁이 말했다. 목소리에 화가 하나도 없었다. “한빛은 성수 7호를 정식 사냥터로 등록해 두었습니다. 재충전까지 이십육 일이 남아 있었고, 예상 수익은 재충전 열두 번에 3억 2천만 원입니다. 그걸 염가철거가 허가 범위를 넘는 공법으로 영구히 닫았고, 그 직후 같은 동네에 위험 게이트 둘이 생겼습니다. 저희는 손해배상을 청구합니다.”
법무팀 막내가 하진 앞에 서류 봉투를 밀었다. 두꺼웠다.
“허가 범위를 넘는다는 게 뭐예요?” 하진이 물었다. “구청 폐쇄 신고에 공법 칸 없어요. 닫으라고만 돼 있어요.”
“보통은 콘크리트로 메우죠.” 도강혁이 과장을 보며 말했다. “몇 달 막혔다가 다시 열립니다. 그동안 구는 안전하고, 길드는 다음 재충전을 기다리고요. 그게 이 업계의 순리였습니다. 하진 씨가 하는 건 순리가 아니라 수술이에요. 수술하면 부작용이 납니다.”
“부작용 날 거 알았어요?”
“짐작이야 했죠. 땅속이 하나라는 소문은 오래됐으니까요.”
과장이 볼펜으로 테이블을 톡톡 쳤다. 강 주무관은 노트북에 무언가를 받아 적었다. 하진은 서류 봉투를 열지 않고 손바닥으로 덮었다.
“그럼 이사님은 짐작하고 할머니한테 관리비 팔십을 받으려 했네요. 닫는 사람이 문을 만든다면, 열어 두는 사람은 뭘 만드는데요?”
“돈을 만들죠.” 도강혁은 웃지도 않았다. “서울 전기의 삼분의 일을요.”
과장이 손을 들었다. “자, 그래서 구 입장은 이렇습니다. 원인 조사가 끝날 때까지 염가철거의 신규 폐쇄 신고는 보류합니다. 7호 폐쇄 지원금도 조사 뒤에 지급하고요. 새로 생긴 두 곳은, 한빛에서 무상으로 공략과 관리를 맡아 주신다고 하니까.”
“무상이요?” 하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커졌다. “공략하면 핵이 나와요. 핵은 마정석이고요. 그걸 무상이라고 해요?”
“구 예산이 안 드니까 무상입니다.” 강 주무관이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반장님, 저는 반장님 편도 아니고 한빛 편도 아니에요. 저는 성동구에서 사람이 안 다치는 편이에요.”
“어제 할머니가 보일러실 문 열었어요. 칠 년 만에.”
“그것도 적었습니다.”
탁 여사가 하진의 어깨를 한 번 눌렀다. 일어나자는 손이었다. 하진은 서류 봉투를 들고 일어섰다. 회의실을 나가기 전에 돌아보자, 도강혁이 식은 종이컵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있었다. 그는 커피가 식은 것도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
정오, 구청 지하 주차장은 배기가스 냄새와 형광등 소리로 차 있었다. 탁 여사가 화장실에 간 사이 하진이 트럭 문을 열자, 뒤에서 구두 굽 소리가 빠르게 다가왔다. 강 주무관이 형광 조끼를 벗어 팔에 걸고 서 있었다.
“반장님, 회의실에서 못 한 말이 있어서요.”
“한빛 편 아니라면서요. 회의실에서 하시지.”
“회의실에선 기록이 남잖아요.” 강 주무관은 주차장 기둥 쪽을 한 번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저 작년에 게이트 담당 오면서 성수 3호 사고 보고서 원본을 봤어요. 구청 보관본 말고, 한빛이 처음 낸 거요. 거기 생존자 명단에 반장님 이름이 있었어요. 먼저 나온 사람으로.”
하진은 트럭 문손잡이를 쥔 채 서 있었다. 주차장 천장의 배관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트럭 지붕을 똑똑 두드렸다.
“그게 왜요?”
“보고서에 염 사장님이 3호 안에서 뭘 하다가 돌아가셨는지가 한 줄도 없었어요. 철근 박으러 들어갔다는 것만요. 근데 첨부 목록에는 「현장 촬영 영상 1건」이 있었고, 영상은 구청에 안 왔어요.” 강 주무관이 조끼를 다시 입었다. “반장님이 원인이 아니라는 걸 저한테 보여 주세요. 그럼 저도 보류를 풀 근거가 생겨요. 지금은 없어요.”
“주무관님은 맨날 근거만 찾네요.”
“제가 근거 없이 도장 찍으면, 다음에 다치는 사람은 근거 없이 다쳐요.”
강 주무관은 구두 굽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돌아갔다. 하진은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지 않고 한참 앉아 있었다. 칠 년 전 3호 안에서 아버지는 「먼저 나가」라고 말했다. 하진은 그 말대로 했다. 영상이 있다면, 그다음이 찍혀 있을 터였다.
*
오후 두 시, 염가철거 사무실 난로 위에서 보리차 주전자가 끓었다. 탁 여사가 소장을 한 장씩 넘기며 소리 내어 읽었고, 나머지 넷은 난로 둘레에 둘러앉아 귤을 깠다.
“청구 금액 삼억 이천만 원.” 탁 여사가 돋보기를 올렸다. “우리 통장에 영을 몇 개 붙이면 되나 세어 봤는데, 붙이는 걸로는 안 되겠어. 앞자리를 바꿔야 돼.”
“순자 팔면요?” 본길이 물었다.
“순자 할부가 넉 달 밀렸어.” 소미가 귤껍질을 순자 모양으로 찢으며 말했다. “순자를 팔면 우리가 돈을 내야 돼요.”
“영감은 빼.” 마 씨가 말했다. 아무도 용접기를 팔자고 하지 않았다.
계단에서 발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고 장미세탁소 윤순례 할머니가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장바구니 안에 반찬통 셋과, 빨간 인주가 묻은 나무 도장 하나가 들어 있었다.
“소송 걸렸다며. 동네에 다 났어.” 할머니는 도장을 탁 여사 앞에 내려놓았다. “내가 시킨 거라고 법원에 가서 말할게. 도장 찍을 데 있으면 찍고. 내 집 문을 내가 닫아 달라 했는데 그게 죄야?”
“할머니, 그거 증인 서는 거예요. 법원 가셔야 돼요.”
“법원이 어디 저승이야? 가면 가는 거지.” 할머니는 반찬통 뚜껑을 열었다. 멸치볶음과 깻잎이었다. “밥들이나 먹어. 얼굴이 다 시멘트 색이야.”
하진은 반찬통을 받아 들었다. 깻잎 양념에서 마늘 냄새가 올라왔다. 소장 첫 장 위에 반찬통을 올려놓자 서류가 반찬통 무게만큼 납작해졌다. 탁 여사가 그걸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본길이 일어서서 말했다. “할머니, 반찬통 제가 들어 드릴게요.”
“앉아. 다 먹고 들어.”
*
저녁 여섯 시, 카페 거리의 새 금에서 처음으로 마물이 나왔다. 고양이만 한 하얀 족제비처럼 생긴 놈이었다. 털끝마다 서리가 맺혀 있었고, 그것이 지나간 보도블록 위로 발자국 모양의 얼음이 남았다. 카페 손님들이 유리창 안에서 비명을 질렀다.
한빛 현장팀이 그때 맞춰 도착했다. 반석규가 앞장서 들어가 족제비의 목을 맨손으로 꺾었다. 카페 안에서 박수가 나왔다. 누군가 그걸 찍어 올렸고, 삼십 분 만에 한빛 공식 계정에 「성수동 시민을 지킨 한빛 현장팀」이 떴다.
하진은 길 건너에서 그걸 보고 있었다. 반석규가 족제비 사체를 자루에 넣고, 팀원 둘이 카페 앞 보도에 노란 펜스를 둘렀다. 펜스 가운데 판에 「한빛 성수 제8 사냥터」. 구두 공방 골목에도 같은 펜스가 섰다. 「제9 사냥터」.
검은 세단이 길가에 섰고 도강혁이 내렸다. 그는 하진을 먼저 발견하고 길을 건너왔다. 둘은 제8 사냥터 펜스 앞에서 마주 섰다.
“보셨죠, 하진 씨. 열어 두면 지킬 수 있습니다.”
“열어 두니까 나온 거죠.”
“닫으니까 둘이 된 겁니다.” 도강혁이 펜스 기둥을 손바닥으로 툭 쳤다. “다음에 닫으면 넷이 될지도 모르고요. 그때도 할머님이 도장을 들고 오실까요?”
할머니가 사무실에 온 건 두 시간 전이었다. 하진은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소송은 소송이고, 이사님. 이 두 개, 저 줘요. 견적 무료로.”
“구청이 보류했잖아요.” 도강혁은 다정하게 말했다. “하진 씨, 아버님도 고집이 세셨어요. 3호 안에서도 그러셨고.”
그는 돌아서서 차에 올랐다. 세단의 후미등이 카페 거리 끝에서 꺾였다.
*
밤 열한 시, 거리는 비어 있었다. 하진은 혼자 다시 나와 제8 사냥터 펜스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손바닥을 펼치자 이번에도 열이 아래로, 땅 쪽으로 빠졌다. 펜스 안쪽 보도블록 틈에서 하얀 김이 가늘게 올라왔다.
펜스 판의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작은 글씨가 인쇄돼 있었다. 휴대폰 손전등을 대고 읽었다.
「제작 한빛 시설팀 · 인쇄 2038.02.11」
어제였다. 7호를 닫던 날. 분열이 일어나기 열여섯 시간 전에, 한빛은 제8 사냥터와 제9 사냥터 펜스를 이미 찍어 두었다.
하진은 휴대폰으로 그 귀퉁이를 세 번 찍었다. 손이 얼어서 세 장 중 두 장이 흔들렸다. 구두 공방 골목으로 걸어가 제9 사냥터 펜스 귀퉁이도 비춰 보았다. 같은 날짜였다.
탁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사님, 내일 소미 순자 몰고 일곱 시. 판다.」
일 분 뒤 답이 왔다. 「공지로 올릴까?」
「아니요. 우리끼리만.」
「알았어. 근데 뭘 파?」
하진은 발밑의 보도블록을 내려다보았다. 틈에서 올라오는 하얀 김이 두 금 사이, 정확히 한가운데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