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372자)
견적은 무료입니다
던전 철거 전문, 견적은 무료입니다 · 남시우
성수동 수제화 골목 끝, 구두 공방 이층에 세 든 염가철거의 1톤 트럭은 옆구리에 페인트로 「견적은 무료입니다」를 써 붙이고 다녔다. 글씨가 삐뚤었다. 칠 년 전 고 염 사장이 붓으로 직접 쓴 글씨였고, 아무도 다시 칠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2038년 2월, 영하 6도인 아침이었다. 염하진은 트럭 조수석 문을 발로 닫으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염가철거입니다. 견적 무료고요. 어디세요?”
“세탁소야. 장미세탁소. 뒷골목에 그게 있잖아. 한빛인지 뭔지가 털고 간 거.”
“언제 털고 갔어요?”
“보름 됐나? 그 뒤로 보일러실 벽에 성에가 껴. 밤에는 짐승 냄새가 나고. 한빛에 전화했더니 관리비를 달라네. 한 달에 팔십만 원.”
하진은 수첩에 팔십을 적고 동그라미를 쳤다. 길드가 공략을 끝낸 던전도 문은 닫히지 않는다. 핵을 뽑아 간 빈집에 사십 일쯤 지나면 마물이 다시 차오르고, 길드는 그때를 기다려 같은 집을 또 턴다. 그동안 옆집 사람은 보일러실에 성에를 맞는다.
“할머니, 저희가 가서 닫아 드릴게요. 아예 안 열리게요.”
“아예? 그게 돼?”
“D급까지는 돼요. 가서 보고 말씀드릴게요.”
전화를 끊자 트럭 짐칸에서 구본길이 고개를 내밀었다. 스물넷인 막내는 시멘트 포대 두 개를 이미 어깨에 지고 있었다.
“반장님, 현장이에요? 제가 들게요!”
“아직 아무것도 안 정했어. 내려놔.”
본길은 내려놓지 않았다.
*
장미세탁소 뒷골목은 어른 둘이 어깨를 맞대면 꽉 차는 폭이었다. 골목 막다른 벽, 세탁소 보일러실의 붉은 벽돌 위에 사람 키보다 조금 큰 금이 공중에 떠 있었다. 금은 세로로 길쭉했고 가장자리가 물에 젖은 종이처럼 일렁였으며, 틈 안쪽은 빛이 아니라 깊이로 까맸다. 틈에서 나온 바람이 벽돌에 닿는 자리마다 하얀 성에가 손가락 길이로 자라 있었다. 오존 냄새, 젖은 털 냄새, 그리고 썩은 감자 같은 냄새가 차례로 코를 쳤다.
골목 입구에는 노란 펜스가 둘러져 있었다. 펜스 가운데 판에 「한빛 성수 제7 사냥터 · 관계자 외 출입 금지 · 재충전 예정 3월 13일」이 인쇄돼 있었다.
“재충전 예정이래.” 나소미가 펜스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포크레인 기사 소미는 스물여섯이었고, 미니 굴착기 「순자」를 트럭 뒤에 매달고 왔다. “순자 씨, 여기 좁아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포크레인에게 존댓말을 쓰는 사람은 이 업계에 소미 하나였다.
하진은 펜스 틈으로 들어가 금에서 두 걸음 떨어진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왼손 장갑을 벗고 손바닥을 금 쪽으로 펼쳤다. F급 각성자가 가진 힘은 칼을 휘두르는 힘이 아니었다. 손바닥이 마기가 흐르는 쪽을 안다. 그것뿐이었고, 열여덟에 각성 판정을 받은 날 담당관은 이 등급으로는 길드 짐꾼도 어렵다고 말했다.
손바닥 한가운데가 따끔하다가 왼쪽 가장자리로 열이 몰렸다.
“테두리 왼쪽이 두꺼워. 바람이 오른쪽 아래로 빠지고.” 하진은 적외선 온도계를 금 가장자리에 댔다. “테두리 영하 11도. 안쪽은 못 재. 마 씨, 고리 지름 이 미터 이십.”
“응.”
용접공 마종철은 쉰넷이었고 대답의 구할이 「응」과 「아니」였다. 그는 트럭에서 은도금 철근 다발을 내려 무릎에 대고 휘기 시작했다. 휘는 손이 빨랐다. 철근 끝이 서로 만나는 자리마다 용접기 「영감」의 불꽃이 짧게 튀었다.
*
탁정애는 세탁소 카운터에 앉아 견적서를 썼다. 예순하나인 경리 담당은 젊을 때 구청 건축과에서 일했고, 지금은 견적서와 단톡방과 직원들 밥때를 쥐고 있었다.
“할머니, 여기 이름 쓰시고 도장. 건물주 동의서예요. 이건 구청 폐쇄 신고 접수증, 오늘 아침에 받아 왔고요.”
장미세탁소의 윤순례 할머니는 돋보기를 코끝에 걸고 견적서를 위에서부터 읽었다. 금액 칸에 「0원」. 그 아래 비고란에 볼펜 글씨로 「드래곤 뼈 처리비 별도」.
“드래곤 뼈가 나와?”
“안 나와요. 나오면 받는다는 거예요.”
“그럼 너희는 뭘 먹고 살아?”
“구청에서 폐쇄 한 건에 지원금이 나와요. 할머니한테는 안 받아요.” 탁 여사는 도장 밥을 꾹 눌러 할머니 손에 쥐여 주었다. “그리고 반장이 원래 공짜를 좋아해요. 남 주는 공짜를.”
할머니가 웃다가 기침을 했다. 세탁소 안은 스팀 다리미 냄새로 따뜻했는데, 보일러실 쪽 문틈으로 찬 바람이 실처럼 새 들어와 발목을 감았다. 할머니는 그 문 위에 테이프를 세 겹으로 발라 놓았다.
*
검은 세단이 골목 입구에 선 것은 열한 시 조금 전이었다. 뒷좌석에서 내린 남자는 회색 코트 차림이었고, 구두가 골목의 얼음 위에서도 미끄러지지 않았다. 대형 길드 「한빛」의 사업개발 이사 도강혁, 마흔일곱. 전직 A급 헌터였고, 이제는 서울 게이트의 절반을 사냥터로 등록해 굴리는 사람이었다. 그 뒤에 어깨가 문짝만 한 사내가 하나 따라 내렸다.
“염하진 씨.” 도강혁은 펜스 바깥에 서서 이름을 불렀다. 낮고 느린 목소리였다. “여긴 한빛 사냥터입니다. 재충전까지 이십육 일 남았어요.”
하진은 장갑을 다시 끼며 펜스 안쪽에서 마주 섰다. 둘 사이에 노란 펜스 하나가 있었다.
“땅 주인이 닫아 달래요. 동의서 있고, 구청 접수증 있어요. 사냥터 등록은 공략하는 동안만이고, 공략 끝나면 건물주가 폐쇄를 신청할 수 있어요. 이사님이 저보다 잘 아실 텐데요?”
“압니다. 그래서 할머님께 관리비를 제안드렸죠.”
“한 달 팔십이요?”
“그게 싸다는 걸 곧 아실 겁니다.” 도강혁은 할머니가 서 있는 세탁소 뒷문 쪽으로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그리고 다시 하진에게 눈을 돌렸다. “하진 씨, 여기서 나오는 마정석이 재충전 한 번에 몇 개인지 아세요? 이 동네 집 이백 채가 한 달 쓰는 전기예요. 닫으면 그 전기가 사라집니다.”
마정석은 마물 몸속에서 나오는 푸른 돌이었다. 서울 전기의 삼분의 일이 그 돌을 태워 나왔다.
“그 전기, 할머니 집엔 안 가잖아요. 할머니 집엔 성에가 가요.”
“닫는다고 끝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무슨 뜻이에요?”
도강혁은 대답 대신 웃었다. 그리고 코트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펜스 철망 틈에 꽂았다.
“아버님 일은 유감입니다. 성수 3호, 그날 저도 근처에 있었어요.”
하진의 손이 펜스 철망을 쥐었다. 장갑 속에서 손가락 마디가 하얘지는 게 느껴졌다. 칠 년 전 11월, 아버지는 한빛과 계약을 맺고 성수 3호 게이트 안에 철근을 박으러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했다. 그날 하진은 스물하나였고 같은 현장에 있었다. 3호는 지금도 열려 있었고, 한빛 성수 제3 사냥터라는 이름으로 석 달마다 털렸다.
“반장.” 뒤에서 마 씨가 불렀다. 그것 하나로 충분했다.
하진은 명함을 뽑아 작업복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버리지 않았다.
“이사님, 견적 필요하시면 전화 주세요. 무료예요.”
도강혁은 소송장을 준비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차에 올랐다. 문짝만 한 사내는 펜스 앞에 남아 팔짱을 끼고 섰다. 「한빛 현장팀 반석규」라고 적힌 명찰이 가슴에 붙어 있었다.
“저 사람 B급이에요.” 본길이 시멘트 포대를 진 채로 속삭였다. “저 한빛 짐꾼 할 때 저 사람 가방 들었어요. 무거웠어요.”
“지금 네가 진 게 더 무거워.”
“네.”
*
봉합은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아버지의 공책 앞 절반에 연필로 적혀 있던 그 순서를, 하진은 칠 년 동안 아홉 번 써먹었다.
소미가 순자의 버킷으로 금 둘레 바닥에 구덩이 여섯 개를 팠다. 여섯 개가 정확히 같은 간격이어야 했다. 하나라도 틀어지면 고리가 기울고, 기운 고리는 문을 꿰매지 못하고 찢는다. 마 씨가 휜 은도금 고리를 세웠고, 본길이 고리 다리 여섯 개를 구덩이에 꽂는 동안 하진은 손바닥으로 테두리를 짚으며 「왼쪽, 한 뼘 더」「됐어」를 불렀다. 고리가 테두리에 닿자 금 가장자리의 일렁임이 고리 쪽으로 빨려 들 듯 한 번 출렁였다.
“영감님, 갑니다.” 마 씨가 용접 마스크를 내렸다.
고리와 테두리가 만나는 자리마다 푸른 불꽃이 튀었다. 쇠 타는 냄새에 오존 냄새가 섞였고, 금 안에서 무언가가 짐승처럼 낮게 울었다. 빈 던전에서도 울음은 났다. 차오르는 것들의 소리였다.
본길이 소금 몰탈을 개어 양동이로 날랐다. 굵은 천일염과 시멘트, 마정석을 태우고 남은 잿가루를 셋 대 둘 대 하나로 섞은 회색 반죽이었다. 하진이 흙손으로 반죽을 고리 안쪽 테두리에 눌러 발랐다. 반죽이 닿는 자리마다 금의 가장자리가 상처가 아물 때처럼 안쪽으로 오그라들었다. 이 미터 이십이던 틈이 일 미터가 되고, 팔뚝 길이가 되고, 손바닥만 해졌다.
마지막 손바닥만 한 틈 앞에서 하진은 장갑을 벗었다. 맨손을 틈에 대자 안쪽에서 바람이 손금을 따라 빠져나갔다. 차가웠다. 영하 11도보다 훨씬 차가운 것이 손바닥에 들러붙었다가, 흙손에 남은 마지막 반죽이 틈을 덮는 순간 툭 끊겼다.
골목이 조용해졌다. 보일러실 벽의 성에가 끝에서부터 물방울이 되어 떨어졌다. 똑, 하고 하나. 조금 있다가 둘.
“닫혔어요?” 할머니가 세탁소 뒷문을 반쯤 열고 물었다.
“닫혔어요. 이제 안 열려요.”
할머니는 대답 없이 뒷문 위의 테이프 끝을 손톱으로 긁었다. 세 겹이라 잘 안 떨어졌다. 하진이 가서 같이 긁었다. 테이프가 다 떨어지자 할머니는 보일러실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안에서 데워진 공기가 골목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손등으로 느꼈다.
“우리 영감 살았을 때 이 문 열어 놓고 담배 피웠어.” 할머니가 말했다. “그 뒤로 처음 열었네.”
반석규가 펜스 밖에서 그 장면을 휴대폰으로 찍고 있었다.
*
밤 아홉 시, 염가철거 단톡방에 탁 여사의 공지가 올라왔다.
「공지. 성수 7호 폐쇄 완료. 할머니가 귤 한 상자 주심. 내일 아침 일곱 시 반 사무실. 본길이는 귤 상자 들고 오지 말 것. 이미 들고 감.」
「제가 들게요!」
「이미 들었다고.」
「순자 씨 오늘 고생했어요.」
「소미야 순자는 단톡방에 없어.」
「응.」
마 씨의 「응」이 뭐에 대한 대답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하진은 사무실 난로 앞에서 아버지의 공책을 펼쳤다. 앞 절반에는 고리 지름 공식과 몰탈 비율과 손바닥으로 테두리 짚는 법이 연필로 빼곡했다. 뒤 절반은 누가 뜯어 간 것처럼 찢겨 나갔고, 찢긴 자리 맨 끝에 「뿌리」 두 글자만 남아 있었다. 그 두 글자 뒤에 무엇이 오는지, 칠 년 동안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다.
공책 옆에는 도강혁의 명함이 놓여 있었다. 하진은 명함을 공책 마지막 장 사이에 끼워 덮었다.
*
다음 날 아침 일곱 시 십 분,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장미세탁소 할머니」.
“하진아.” 할머니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 집은 괜찮아. 근데 저기, 구두 공방 골목 쪽에.”
하진은 패딩을 걸치고 이층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공방 골목 하수구 옆에 세로로 길쭉한 금이 공중에 떠 있었다. 어제 닫은 것과 같은 높이였다. 그 너머 카페 거리 쪽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하진이 돌아보자 카페 유리창 앞 보도 위에도 금이 하나 더 떠 있었고, 금 둘레의 보도블록이 하얗게 얼어 있었다.
어제 하나였던 문이 둘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