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671자)
보스방에서 온 마지막 주문
헌터 전용 택배 기사 · 윤바로
10월 29일 금요일 아침 여섯 시, 송도 던전 입구 돌계단에 주황 조끼 여든일곱 벌이 앉아 있었다. 조끼마다 손에 피켓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상자 뚜껑을 뜯어 매직으로 쓴 피켓이었다.
「무릎도 당일 배송해 주세요」 「25분은 물약 기준, 무릎 기준은?」 「사장님도 쉬고 싶다」
턱수염 기사의 피켓은 「감자 아님. 무릎임」이었다. 무릎 사진 서른 장 가운데 감자 무릎을 크게 뽑아 붙였다. 기자들이 감자 무릎 피켓만 열 번 넘게 찍었다.
나는 조끼가 없었다. 노조가 주황 티셔츠를 맞춰 주었고, 등판에 「대변인」 세 글자가 박혀 있었다. 길수 형님은 목발을 짚고 계단 맨 위에 서서 휴대전화로 단톡방을 보고 있었다. 부산 던전 입구 사진이 올라왔다. 거기도 계단에 주황색이 앉아 있었다. 대전에서도 올라왔다. 버너 두 개에서 김치전이 부쳐졌고, 할머니 김치통은 두 번째 통까지 비었다.
여덟 시, 운영실 유리벽 너머에 차정우 팀장이 서 있었다. 큰 화면에 오늘 배송 지도가 떠 있었다. 하얀 줄이 거의 없었다. 대체 인력 열 명이 그은 짧은 줄 몇 개가 4층 언저리에서 끊겨 있었다.
*
열한 시, 삼각김밥 파티가 계단을 올라왔다. 태산 씨는 편의점 유니폼 위에 중고 가죽 조끼를 입고 왼팔에 냄비뚜껑을 감고 있었다. 진솔 씨는 지팡이 대신 등산 스틱을, 고을 씨는 망토 대신 우비를 걸쳤다. 셋 다 커다란 배낭을 멨고, 고을 씨 배낭 옆구리에 휴대용 버너와 부탄가스 두 통이 매달려 덜렁거렸다.
기사들이 피켓을 내리고 박수를 쳤다. 태산 씨가 냄비뚜껑을 이마에 붙이며 경례를 했다.
“태산 씨, 들어가지 마요.” 나는 계단을 막고 섰다. “지금 들어가면 아무도 못 내려가요.”
“형님, 저희 안 불러요. 고을이가 보스방 앞에서 끓여요. 탕제 영상 일곱 개 봤어요.”
고을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는 얼굴이 하얬다.
“치킨 서른 마리.” 태산 씨가 내 어깨를 치고 옆으로 비켜 내려갔다. 냄비뚜껑이 내 팔꿈치에 텅 부딪혔다. 진솔 씨가 지나가며 작게 말했다. “형님, 영상은 안 찍을게요.”
게이트가 띵 울렸다. 셋의 뒷모습이 입구 돌계단 아래 어둠으로 들어갔다. 단톡방에 진솔 씨가 마지막 메시지를 올렸다. 「삼각김밥 파티 11:58 보스방 입장. 문 닫힘. 14:58에 열림」.
*
오후 한 시, 내 휴대전화가 떨었다. 던집 앱은 지워진 지 아흐레였다. 진솔 씨가 문자로 보낸 주문서였다.
「형님 마지막 주문이요. 물약 다섯, 해독제 둘. 보스가 독안개를 뿜어요. 고을이가 문 앞에서 끓인 물약도 사십 분 지나니까 다 묽어졌어요. 버너 가스는 두 통 다 썼어요. 고을이가 막을 치는데 한 시간 반 버틴대요. 문 열리려면 두 시간 남았어요. 삼각김밥은 됐어요. 형님 미안해요」
같은 주문이 던집 앱으로도 들어갔다. 운영실 큰 화면에 빨간 점 하나가 10층에서 깜빡였다. 대체 인력 한 명이 탕제실에서 물약을 받아 게이트를 지났다. 십삼 분 뒤 4층에서 무전이 올라왔다. 정각도 아닌데 두건이가 나와 상자를 털어 갔다고 했다. 뽁뽁이가 든 상자였다. 물약은 계단에 흩어졌다. 대체 인력은 흩어진 물약을 주워 다시 올라왔다. 다시 끓여야 했다.
운영실 문이 열렸다. 차정우 팀장이 바람막이 차림으로 입구 계단 맨 아래까지 걸어 나왔다. 기사 여든일곱 명 앞이었다. 기자들 카메라가 차정우 팀장의 얼굴로 돌아갔다.
“기사님들, 뛰어 주십시오.” 차정우 팀장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컸다. “대체 인력으로는 10층에 사십 분 넘게 걸립니다. 오늘 배송은 수수료 세 배, 벌금은 없습니다.”
“돈 얘기 하러 나왔어?” 길수 형님이 목발을 짚고 한 칸 내려섰다.
“아닙니다.” 차정우 팀장이 형님을 똑바로 보았다. “기사님들 말고는 방법이 없어서 나왔습니다.”
계단이 조용했다. 기자 하나가 마이크를 내밀다 거두었다. 나는 맨 앞에서 일어섰다.
“팀장님, 한 사람이 10층 뛰면 또 늦어요.”
“압니다.”
“팀장님이 제일 잘 알잖아요. 열네 시간째가 아니어도 사람 다리는 10층이 한계예요. 오늘 저희 중 하나가 25분에 10층 가다가 5층에서 미끄러지면요? 6층에서 박쥐 만나면요?” 나는 계단 위 기사들을 돌아보았다. 다들 나를 보고 있었다. “층마다 한 사람씩 서요. 물약 끓이는 이십 분 동안 다들 맨손으로 자기 층에 미리 내려가 있다가, 물약 오면 자기 층만 뛰어서 다음 사람 손에 넘겨요. 자기 층은 다들 눈 감고도 알잖아요. 한 층씩이면 다리가 안 떨려요.”
“이어달리기입니까?”
“이어달리기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나는 숨을 한 번 들이켰다. “오늘 배송은 노조가 해요. 던집 배송 아니에요. 수수료 안 받아요. 그리고 오늘부터 8층 아래는 아무도 혼자 안 뛰어요. 팀장님이 약속해 주세요.”
“그건 제 권한 밖입니다.”
“그럼 팀장님도 뛰세요. 8층이요. 팀장님 층이잖아요.”
차정우 팀장의 손이 바람막이 주머니 속 초시계를 쥐었다. 주머니 천이 불룩해졌다가 펴졌다. 차정우 팀장이 왼쪽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바지 아래 바랜 보호대 모양이 비쳤다. 계단 위에서 턱수염 기사가 피켓을 내려놓았다.
“팀장 무릎으로 8층 되냐?”
“한 층은 됩니다.” 차정우 팀장이 바람막이를 벗어 계단에 내려놓았다. 안에 입은 것은 주황 조끼였다. 신입용 새 조끼, 어깨가 조금 큰 조끼였다. 차정우 팀장이 손목에서 단말기를 풀어 나에게 내밀었다. “도마루 기사님은 계정이 없습니다. 게이트가 안 열립니다. 제 걸로 여십시오. 운영팀장 단말기는 모든 게이트가 열립니다.”
단말기가 손바닥 위에서 따뜻했다. 길수 형님이 단톡방에 투표를 올렸다. 「노조 배송 — 층마다 한 명, 이어달리기, 수수료 안 받음. 찬성?」. 삼 분 만에 여든한 명이 찬성을 눌렀다. 반대는 없었다.
*
입구 게이트는 길수 형님이 맡았다. 목발로는 계단을 못 내려갔다. 형님은 게이트 앞에 접이식 의자를 놓고 앉아 휴대전화 단톡방 음성 통화를 열었다. 층마다 맡을 사람을 형님이 불렀다. 1층부터 3층까지는 지상에서 넘어온 지 얼마 안 된 기사들, 4층은 턱수염 기사였다. 내가 남은 뽁뽁이 여섯 장을 턱수염 기사 조끼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이걸로 통과해요. 두건이는 몽둥이 내려놓고 받아요.”
“고블린한테 뇌물을 주는 날이 오다니.” 턱수염 기사가 주머니를 두드렸다.
6층은 박쥐 굴을 제일 오래 다닌 기사, 7층은 칠층 베테랑과 친한 기사가 맡았다. 8층은 차정우 팀장. 9층과 10층은 나였다. 9층은 물때가 있었다. 길수 형님이 물때표를 확인했다. 「인천 오늘 만조 14:31」.
“마루야, 9층은 지금 무릎까지 찼어. 조금 있으면 허벅지야.”
“허벅지면 수영이네요.”
“수영은 하냐?”
“지상에서 배운 건 계단밖에 없어요.”
기사 열 명이 맨손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상자 없이 내려가는 계단은 처음이었다. 몸이 가벼워서 오히려 발이 헛디뎌졌다. 탕제실에서는 물약 다섯과 해독제 둘이 끓고 있었다. 차정우 팀장이 내 옆에서 계단을 내려가다 4층 빛 우물에서 한 번 멈췄다. 두건이가 바위 위에 앉아 대체 인력에게서 털어 간 뽁뽁이를 마저 터뜨리고 있었다. 차정우 팀장이 호루라기를 꺼내려다 도로 넣었다.
“오늘은 기사님 방법으로 가겠습니다.”
*
오후 한 시 사십 분, 나는 9층 계단 맨 위 칸에 앉아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있었다. 계단 아래로 바닷물이 차올라 있었다. 갯벌 냄새, 소금 냄새가 지하 9층까지 내려와 있었다. 손목에는 차정우 팀장의 단말기가 있었다. 게이트에서 길수 형님 목소리가 들렸다.
“물약 나왔다. 게이트 통과.”
단말기 화면이 바뀌었다. 「남은 시간 30:00」. 숫자가 줄기 시작했다.
전화 속에서 계단 소리가 차례로 들렸다. 1층 기사가 2층 기사에게 넘기는 소리, 2층이 3층에게 넘기는 소리. 숨소리마다 “받았어!” “가!”가 붙었다. 3층 기사가 4층으로 내려가며 소리쳤다.
“턱수염! 지금 한 시 사십팔 분, 정각 아님!”
“정각 아닌데 두건이 나왔다!” 턱수염 기사 목소리였다. “뽁뽁이 줬다! 받았다! 몽둥이 내려놨다! 야, 이거 진짜 되네!”
뽁 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작게 터졌다. 단톡방 음성 통화에 끼어 있던 기사 여든 명이 동시에 웃었다.
5층은 젖은 계단을 마른 한 뼘씩 디뎠다. 6층에서는 기다리지 않았다. 박쥐가 내려오기 사십 초 전이라는 무전에 6층 기사가 왼쪽 벽에 등을 붙이고 옆걸음으로 지나갔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아침에 차정우 팀장이 보여 준 방법이었다. 7층에서 칠층 베테랑이 계단참에 서서 기사가 지나가도록 길을 터 주는 소리가 들렸다. “가라, 가!”
“8층!” 7층 기사가 외쳤다. “팀장님 받으세요!”
전화 속에서 숨소리가 하나 바뀌었다. 낮고 고른 숨이었다. 차정우 팀장이 뛰기 시작했다. 8층은 돌기둥 홀을 가로질러야 9층 계단이 나왔다. 홀 한가운데 국화가 묶인 돌기둥이 있었다. 전화 속 운동화 소리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삼 초도 멈추지 않았다.
계단 위에서 운동화 소리가 들렸다. 전화가 아니라 진짜 소리였다. 9층 계단 위 어둠에서 주황 조끼가 나타났다. 차정우 팀장이 은박 파우치가 든 그물주머니를 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왼쪽 무릎이 계단 한 칸마다 꺾일 듯 흔들렸다. 차정우 팀장은 마지막 세 칸을 앉은 채로 미끄러져 내려와 내 손에 주머니를 쥐여 주었다.
“십삼 분 남았습니다.”
“팀장님 무릎…….”
“가십시오.” 차정우 팀장이 계단 맨 위 칸에 등을 기댔다. 숨이 찢어지고 있었다. “오 년 전에 여기 앉아 있었습니다. 같은 칸입니다. 오늘은 뒤에 기사님이 있습니다. 가십시오.”
*
9층 바닷물은 허벅지까지 차 있었다. 차가웠다. 한 걸음마다 물이 바지를 끌어당겼다. 그물주머니를 머리 위로 들고 걸었다. 무릎 보호대가 물을 먹어 무거워졌다. 물 밑 계단이 몇 칸인지 보이지 않아 발끝으로 더듬었다. 지상 사 년, 던전 두 달 동안 센 계단 수가 하나도 소용없었다.
「남은 시간 07:40」
10층 계단은 말라 있었다. 젖은 운동화가 돌계단에서 미끄러졌다. 무릎이 돌에 박혔다. 보호대가 대신 박혔다. 일어나서 뛰었다. 보스방 문은 높이가 내 키 세 배쯤 되는 검은 돌문이었다. 문 옆 벽에 손바닥만 한 틈이 나 있었다. 틈 안쪽에서 초록 안개가 새어 나왔고, 안개 너머에서 텅, 텅, 냄비뚜껑 소리가 들렸다.
“태산 씨! 진솔 씨! 고을 씨!”
“형님?” 진솔 씨 목소리가 틈 너머에서 갈라졌다. “형님 파업이잖아요!”
“노조 배송이에요! 수수료 안 받아요! 손 내밀어요!”
틈으로 파우치를 하나씩 밀어 넣었다. 물약 다섯, 해독제 둘. 틈 너머에서 손이 하나씩 받아 갔다. 손가락이 차가웠다. 마지막 해독제를 받아 간 손이 내 손가락을 한 번 꽉 쥐었다 놓았다. 진솔 씨 손이었다.
“형님, 배송 완료 눌러 주세요. 별 다섯 개 줄게요.”
나는 차정우 팀장의 단말기를 보았다. 「남은 시간 06:12」. 「배송 완료」를 눌렀다. 단말기가 띵동 울었다.
「배송 완료! 오늘도 고객님의 하루를 지켜 주셨어요!」
틈 너머에서 태산 씨가 고함을 질렀다. 무엇이라고 지른 고함인지는 몰랐다. 고함 끝에 냄비뚜껑이 보스의 무언가를 막는 소리가 텅 하고 크게 울렸다. 나는 보스방 문에 등을 대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젖은 바지에서 바닷물이 흘러나와 돌바닥에 고였다.
휴대전화 속 음성 통화에서 여든 명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길수 형님 목소리가 제일 컸다. 환호 사이로 9층 위 계단 끝에서 차정우 팀장 목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전화에 대고 하는 말이었다.
“대표님이 내일 송도로 오십니다. 저도 가져갈 것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