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409자)

초시계를 누르는 고블린

헌터 전용 택배 기사 · 윤바로

10월 29일 금요일 오후 두 시 오십팔 분⁠, 10층 보스방 검은 돌문이 바닥을 긁으며 열렸다⁠. 나는 문 옆 벽에 기대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젖은 바지가 다리에 들러붙어 차가웠다⁠. 문틈으로 초록 안개가 한 번 훅 빠져나오고⁠, 안개 뒤로 사람 셋이 걸어 나왔다⁠.

태산 씨는 왼팔에 냄비뚜껑을 감고 있었다⁠. 냄비뚜껑 한가운데가 주먹만 하게 우그러져 있었다⁠. 진솔 씨는 등산 스틱 두 개를 목발처럼 짚었고⁠, 고을 씨는 태산 씨 등에 업혀 잠들어 있었다⁠. 막을 한 시간 반 동안 친 손바닥이 아직 초록빛으로 희미하게 빛났다⁠.

“⁠형님⁠.⁠” 태산 씨가 오른손을 들었다⁠. 손바닥 위에 달걀만 한 보라색 돌이 놓여 있었다⁠. “⁠보스 두꺼비요⁠. 냄비뚜껑으로 독침 막고 진솔이가 불 질렀어요⁠. 해독제 아니었으면 셋 다 두꺼비 밥이었어요⁠.⁠”

“⁠치킨 서른 마리⁠.⁠” 진솔 씨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이 배달하면 안 돼요⁠?⁠”

“⁠그날 배송비는 받을게요⁠.⁠”

우리는 넷이서 계단을 올라갔다⁠. 9층 바닷물은 만조를 지나 무릎 아래로 빠져 있었다⁠. 8층 계단 맨 위 칸에 차정우 팀장이 아까 앉은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 등을 벽에 기대고⁠, 왼쪽 다리를 쭉 뻗고⁠, 손에 은색 초시계를 쥐고 있었다⁠.

태산 씨가 고을 씨를 진솔 씨에게 맡기고 차정우 팀장 앞에 등을 대고 쪼그려 앉았다⁠. 길수 형님 때와 같은 자세였다⁠.

“⁠팀장님⁠, 업히세요⁠.⁠”

“⁠괜찮습니다⁠. 걸을 수 있습니다⁠.⁠”

“⁠아니에요⁠. 저 이거 해 봤어요⁠.⁠” 태산 씨가 고개만 돌렸다⁠. “⁠팀장님은 생수 열 묶음이에요⁠. 길수 형님보다 두 묶음 많아요⁠.⁠”

차정우 팀장이 태산 씨 등을 한참 보다가 팔을 둘렀다⁠. 태산 씨가 일어서며 끙 소리를 냈다⁠. 8층 돌기둥 홀을 지날 때⁠, 태산 씨 등에 업힌 차정우 팀장이 국화 묶인 기둥을 지나가며 고개를 돌렸다⁠. 마른 국화 옆에 오늘 아침에는 없던 하얀 국화 한 송이가 끼워져 있었다⁠. 누가 꽂았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

10월 30일 토요일 오전 열 시⁠, 물류센터 2층 회의실에 던집 대표가 앉아 있었다⁠. 화면 속이 아니라 진짜 의자에⁠. 흰 셔츠에 소매를 걷었고⁠, 화면에서보다 키가 작았다⁠. 옆에 법무팀장⁠, 맞은편 끝자리에 차정우 팀장이 앉았다⁠. 차정우 팀장은 무릎에 압박 붕대를 감고 목발 하나를 의자 옆에 세워 두었다⁠. 회사 사람들 줄에 앉아 있었는데⁠, 의자를 회사 사람들보다 한 뼘 떨어뜨려 놓았다⁠.

노조 자리에는 길수 형님과 턱수염 기사⁠, 그리고 내가 앉았다⁠. 나는 기사가 아니었고⁠, 등판에 「⁠대변인⁠」이 박힌 주황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회의실 창밖 주차장에 기자 차가 세 대 서 있었다⁠.

“⁠어제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었어요⁠.⁠” 대표가 두 손을 모았다⁠. “⁠기사님들이 파업 중에도 헌터를 살리셨잖아요⁠. 던집이 이 이야기를 크게 알리고 싶어요⁠. 그래서 제안드려요⁠. 파업은 오늘로 정리하시고⁠, 다음 달부터 안전 보너스 건당 이백 원 드릴게요⁠. 25분은 헌터분들이 원하시니까 그대로 가고요⁠. 도마루 기사님 재계약도 해 드릴게요⁠. 광고만 한 편 찍어 주시면⁠.⁠”

“⁠벌금은요⁠?⁠” 길수 형님이 물었다⁠.

“⁠벌금이 없으면 늦어도 되는 줄 아시는 분들이 생겨요⁠. 그건 기사님들도 아시잖아요⁠.⁠” 대표가 웃었다⁠. “⁠2인 1조는 기사가 두 배 필요해요⁠. 그 돈이면 던집은 문 닫아요⁠. 문 닫으면 기사님들 일자리도 없어지고요⁠. 숫자로 보시면 제 말이 맞아요⁠.⁠”

턱수염 기사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대표의 말에는 틀린 숫자가 없었다⁠. 나는 대답을 찾지 못하고 볼의 반창고를 손끝으로 눌렀다⁠.

차정우 팀장이 목발을 짚고 일어섰다⁠.

“⁠대표님⁠, 숫자 하나를 더 보셔야 합니다⁠.⁠”

차정우 팀장이 서류철 하나를 탁자 가운데로 밀었다⁠. 귀퉁이가 닳아 둥글어진 서류철이었다⁠. 법무팀장의 얼굴이 굳었다⁠. 대표는 서류철을 보고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웃음이 얼굴에 그대로 붙어 굳었다⁠.

“⁠2022년 10월 14일 송도 던전 배차 기록입니다⁠.⁠” 차정우 팀장이 첫 장을 넘겼다⁠. 「⁠기사 차정우 — 접속 13시간 58분 · 묶음 배차 3건(⁠8층·3층·6층⁠) · 거절 2회 후 자동 수락⁠」⁠. “⁠세 번째 묶음은 제가 누르지 않았습니다⁠. 거절 두 번 뒤에는 앱이 알아서 수락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단말기를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턱수염 기사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 길수 형님이 목발 손잡이를 꽉 쥐었다⁠.

“⁠다음 장은 회사 대응 문서입니다⁠.⁠” 「⁠배차 기록은 소송에 제출하지 않음⁠. 기사 개인의 과실로 대응⁠. 합의 시 기사에게 운영 업무 채용을 제안하고 비밀 유지를 조건으로 함⁠」⁠. 문서 아래에 당시 사업본부장의 서명이 있었다⁠. 대표의 이름이었다⁠.

“⁠합의금은 제가 냈습니다⁠. 빚을 냈습니다⁠. 회사는 저를 운영팀에 넣었고⁠, 저는 입을 닫았습니다⁠.⁠” 차정우 팀장이 서류철을 덮었다⁠. “⁠안에 있어야 시계를 고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오 년 동안 벌금을 만들었습니다⁠. 늦은 기사가 저 혼자였다면 벌금으로 고칠 수 있었습니다⁠. 이 기록을 다시 볼 때마다 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열네 시간째였고⁠, 아무도 누르지 않은 세 번째 묶음이 있었습니다⁠.⁠”

“⁠차 팀장님⁠.⁠” 대표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이거 나가면 팀장님도 끝이에요⁠. 합의서에 비밀 유지 조항 있는 거 아시죠⁠?⁠”

“⁠압니다⁠. 어제 9층 계단에서 국회 의원실에 같은 서류를 보냈습니다⁠. 고새벽 헌터 어머님께도 오늘 오후에 직접 갖다 드리겠습니다⁠. 오 년 전에 먼저 드렸어야 했습니다⁠.⁠” 차정우 팀장이 목에서 사원증을 벗어 탁자 위에 놓았다⁠. 사원증 옆에 은색 초시계를 놓았다⁠. “⁠삼십 분은 지켜야 합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약은 사십 분이면 묽어집니다⁠. 다만 한 사람의 다리로 지키지 않겠습니다⁠. 어제 열 사람이 한 층씩 뛰어 23분에 10층에 갔습니다⁠. 무릎이 떨린 사람은 저 하나였습니다⁠.⁠”

대표가 법무팀장을 보았다⁠. 법무팀장이 고개를 아주 조금 저었다⁠. 창밖 주차장에서 기자 하나가 회의실 창을 올려다보며 카메라를 들었다⁠.

“⁠대표님⁠.⁠” 내가 말했다⁠. “⁠기사가 두 배 되면 던집 문 닫는다고 하셨잖아요⁠. 기사가 두 배 되면 헌터 물약도 두 배 안전하게 가요⁠. 헌터협회가 던집 말고 다른 플랫폼 쓰자고 하면 그때는 진짜 문 닫아요⁠. 진솔 씨 서명 글에 사천 명 넘었어요⁠. 헌터들이요⁠.⁠”

대표가 탁자 위 초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바늘이 째깍째깍 돌고 있었다⁠. 한참 뒤 대표가 펜을 들었다⁠. 교섭은 오후 세 시까지 이어졌다⁠. 지연 벌금은 없어졌다⁠. 8층 아래 배송은 두 사람이 한 조로 뛰고⁠, 하루 열두 시간이 넘는 배차는 앱이 내주지 않기로 했다⁠. 묶음 자동 수락은 사라지고⁠, 배차를 무슨 기준으로 주는지 기사들이 볼 수 있게 됐다⁠. 내 계약은 광고 없이 되살아났다⁠. 삼십 분은 그대로 남았고⁠, 한 사람이 아니라 한 조가 함께 지키는 시간이 되었다⁠.

대표가 합의서 맨 아래에 서명하고 펜을 내려놓았다⁠. 손목시계를 한 번 보았다⁠. 대표도 시간을 재는 사람이었다⁠.

*

교섭이 끝나고 입구 돌계단에 차정우 씨와 나란히 앉았다⁠. 이제 팀장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사원증은 회의실 탁자 위에 두고 나왔다⁠. 목발이 계단 두 칸에 걸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이제 뭐 하세요⁠?⁠”

“⁠기사 등록을 다시 했습니다⁠. 아까 반납 창구에서요⁠.⁠” 차정우 씨가 손목을 들어 보였다⁠. 새 단말기가 채워져 있었다⁠. “⁠노조에서 2인 1조 짝이 모자란다고 들었습니다⁠. 8층 아래요⁠.⁠”

“⁠무릎은요⁠?⁠”

“⁠의사가 두 번 갈기 전에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한 층씩이면 안 갑니다⁠. 기사님이 증명하셨습니다⁠.⁠”

증명이라는 말이 이번에는 아프지 않았다⁠. 나는 웃었다⁠. 지상에서 연습한 웃음이 아니었다⁠.

“⁠차정우 기사님⁠, 노조 가입서는 길수 형님한테 내세요⁠. 김치전도 같이 드세요⁠. 밥 같이 먹어야 안 판대요⁠.⁠”

“⁠누가 그럽니까⁠?⁠”

“⁠우리 전 집주인 할머니요⁠.⁠”

*

같은 날 오후 다섯 시⁠, 나는 연수구의 오래된 아파트 앞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었다⁠. 차정우 씨는 목발 하나와 귀퉁이가 닳은 서류철을 들고 103동 현관으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 차정우 씨가 혼자 가겠다고 했고⁠, 나는 계단을 대신 올라 줄 사람으로만 따라왔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동이었다⁠.

사십 분이 지났다⁠. 놀이터 그네가 바람에 혼자 삐걱거렸다⁠. 현관 유리문이 열리고 차정우 씨가 나왔다⁠. 손에 서류철이 없었다⁠. 뒤따라 키 작은 여자가 현관 앞까지 나왔다⁠. 회색 카디건을 입고⁠, 서류철을 가슴에 두 손으로 안고 있었다⁠. 고새벽 헌터의 어머니였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서류철을 안은 채 고개를 아주 조금 숙였다⁠. 차정우 씨는 목발을 짚은 채 허리를 깊이 숙였고⁠, 오래 숙이고 있었다⁠. 어머니가 먼저 들어갔다⁠. 유리문이 닫힌 뒤에도 차정우 씨는 허리를 펴지 않았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네가 한 번 더 삐걱거렸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차정우 씨는 창밖만 보았다⁠. 송도에 거의 다 와서 한마디 했다⁠.

“⁠합의금은 받으셨지만 기록은 처음 보셨답니다⁠. 오 년 동안 늦은 기사 이름만 아셨답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버스 창밖으로 던전 입구 돌계단이 지나갔다⁠.

*

11월 1일 월요일 아침 아홉 시 사십팔 분⁠, 게이트가 띵 울렸다⁠. 손목 단말기 두 개가 동시에 바뀌었다⁠.

「⁠남은 시간 30⁠:00⁠」 「⁠남은 시간 30⁠:00⁠」

내 손목과 차정우 씨 손목이었다⁠. 둘 다 주황 조끼였다⁠. 차정우 씨 조끼는 토요일에 새로 받은 것이라 아직 빳빳했고⁠, 나는 반납했던 조끼를 도로 받아 입었다⁠. 주머니에는 포장실 아주머니가 새로 챙겨 준 뽁뽁이가 들어 있었다⁠. 둘이서 상자 다섯 개를 나눠 안았다⁠. 셋은 내가⁠, 둘은 차정우 씨가⁠. 4층 쉼터 배송이었다⁠. 맨 위 상자는 「⁠삼각김밥 파티 — 치킨 서른 마리(⁠나눠서 열 마리씩⁠)⁠, 요청 사항⁠: 형님들이 직접 오세요⁠」였다⁠.

열 시 정각⁠, 4층 빛 우물에 들어섰다⁠. 천장 구멍으로 햇빛이 비스듬히 쏟아져 돌계단을 하얗게 데웠다⁠. 바위틈에서 초록 머리가 쑥 나왔다⁠. 빨간 두건⁠, 노란 눈⁠. 두건이가 몽둥이 대신 빈손을 내밀었다⁠.

나는 뽁뽁이 한 장을 던졌다⁠. 두건이가 받았다⁠. 차정우 씨가 조끼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은색 초시계였다⁠. 회의실 탁자에서 다시 집어 온 모양이었다⁠. 차정우 씨가 몸을 숙여 두건이 목에 초시계 줄을 걸어 주었다⁠. 두건이가 초시계를 내려다보고⁠, 단추를 엄지로 눌렀다⁠.

딸깍⁠.

두건이 눈이 커졌다⁠. 한 번 더 눌렀다⁠. 딸깍⁠. 뽁뽁이를 터뜨리고⁠, 초시계를 누르고⁠, 다시 뽁뽁이를 터뜨렸다⁠. 뽁⁠, 딸깍⁠, 뽁⁠, 딸깍⁠. 바위틈에서 고블린 셋이 고개를 내밀고 부러운 얼굴로 두건이를 보았다⁠.

계단 아래 쉼터에서 태산 씨가 새 방패를 번쩍 들고 팔을 크게 흔들었다⁠. 방패 한가운데에 우그러진 냄비뚜껑이 훈장처럼 박혀 있었다⁠. 진솔 씨는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내렸고⁠, 고을 씨는 벌써 삼각김밥을 뜯고 있었다⁠.

“⁠가시죠⁠.⁠” 차정우 씨가 말했다⁠.

나는 상자를 고쳐 안고 계단을 한 발로 뛰어내렸다⁠. 옆에서 바랜 보호대를 찬 무릎이 같은 박자로 내려왔다⁠. 등 뒤 빛 우물 아래에서 두건이가 초시계를 누르는 소리가 볕 속으로 딸깍딸깍 올라갔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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