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406자)

주황 조끼를 반납하는 날

헌터 전용 택배 기사 · 윤바로

10월 18일 월요일 저녁⁠, 노조 컨테이너 접이식 탁자 위에 노트북 하나가 펼쳐져 있었다⁠. 화면 속 지방노동위원회 조정 회의실에 의자가 둘 비어 있었다⁠. 던집 사람들이 앉을 자리였다⁠. 조정위원이 두 번 시계를 보고 세 번째로 시계를 본 뒤 결렬을 알렸다⁠. 길수 형님이 노트북을 덮었다⁠.

“⁠29일이다⁠.⁠”

단톡방에 길수 형님 공지가 올라갔다⁠. 아흔 명 넘게 읽었다⁠. 부산 던전 기사 단톡방⁠, 대전 던전 기사 단톡방에서도 같은 날짜가 올라왔다⁠. 광주는 이틀 늦게 따라온다고 했다⁠. 국회에서는 던전 노동법이 상임위 소위에 올라갔다는 짧은 뉴스가 떴다⁠. 소위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컨테이너 안에 없었다⁠. 턱수염 기사가 검색해 보고 말했다⁠. 법안을 먼저 뜯어보는 작은 회의라고 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고⁠, 다들 그게 언제 끝나는지는 몰랐다⁠.

밤 열 시⁠, 원룸 1층 현관에 집주인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화분 대신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총각⁠, 아들이 방 빼래요⁠. 다음 달 말까지⁠.⁠”

할머니는 미안한 얼굴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얼굴이었다⁠. 휴대전화 화면에 아들 문자가 떠 있었다⁠. 「⁠엄마 그 방 석 달 밀렸으면 정리해⁠. 다음 세입자 구해 놨어⁠」⁠.

“⁠석 달이 아니라 두 달 반이에요⁠. 사분의 일 냈잖아요⁠.⁠”

“⁠아들은 피자를 몰라⁠.⁠” 할머니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김치통은 갖고 있어요⁠. 이사 가서 쓰게⁠.⁠”

*

10월 20일 수요일 아침 여덟 시⁠, 차정우 팀장이 나를 운영실로 불렀다⁠. 큰 화면에는 송도 던전 지도 대신 낯선 지도 열한 장이 바둑판처럼 떠 있었다⁠. 부산⁠, 대전⁠, 광주⁠, 대구⁠. 전국 던전 열한 곳이었다⁠. 지도마다 주황 줄이 하나씩 그어져 있었다⁠. 송도 지도의 주황 줄이 가장 굵었다⁠.

“⁠던집 안전교육팀장 자리입니다⁠.⁠” 차정우 팀장이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정규직입니다⁠. 월급과 4대 보험⁠, 퇴직금이 있습니다⁠. 하시는 일은 열한 곳 던전 기사들에게 추천 경로와 4층 뽁뽁이를 가르치는 겁니다⁠.⁠”

나는 서류를 받았다⁠. 월급 칸 숫자를 보았다⁠. 지상 사 년⁠, 던전 한 달 반 동안 한 번도 통장에 찍혀 본 적 없는 숫자였다⁠. 월세 석 달이 한 달 치 월급 안에 다 들어갔다⁠.

“⁠조건은요⁠?⁠”

“⁠노조에서 나오시고⁠, 29일 파업에서 빠지시고⁠, 광고 하나를 찍으시면 됩니다⁠.⁠” 차정우 팀장이 화면 구석을 가리켰다⁠. 광고 시안이었다⁠. 빛 우물 아래에서 웃는 내 얼굴 위로 큰 글씨가 박혀 있었다⁠. 「⁠25분의 기사 — 던집이 함께 달립니다⁠」⁠.

“⁠제 얼굴이 왜 벌써 들어가 있어요⁠?⁠”

“⁠진솔 헌터 영상에서 땄습니다⁠. 허락은 받겠습니다⁠.⁠”

나는 서류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손바닥에 땀이 묻어 서류 귀퉁이가 우글거렸다⁠.

“⁠팀장님은 왜 운영팀으로 들어갔어요⁠? 형님 말로는 팀장님을 버린 회사라던데요⁠.⁠”

“⁠안에 있어야 시계를 고칠 수 있어서요⁠.⁠” 차정우 팀장이 초시계를 손바닥에 올렸다⁠. “⁠밖에서는 늦은 기사였고⁠, 안에서는 늦지 않게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 년 동안 송도 던전에서 물약이 늦어 죽은 헌터는 없습니다⁠. 기사님이 열한 곳에 가서 가르치시면 열한 곳이 그렇게 됩니다⁠. 기사님은 저보다 잘하실 겁니다⁠. 고블린이 기사님을 좋아하니까요⁠.⁠”

“⁠고쳐졌어요⁠? 시계요⁠.⁠”

차정우 팀장이 대답하지 않았다⁠. 초시계 바늘이 손바닥 위에서 째깍째깍 돌았다⁠.

“⁠팀장님⁠, 제가 정규직 되면요⁠.⁠” 나는 광고 시안 속 내 얼굴을 보았다⁠. 웃는 얼굴이 낯설었다⁠. “⁠저 혼자 월급 받고⁠, 아흔두 명은 그대로 25분이잖아요⁠. 제 길 들고 열한 곳 가서 가르치면 열한 곳이 다 25분 되고요⁠. 그다음엔 20분이요⁠. 팀장님이 오 년 동안 고친 게 그거잖아요⁠. 늦은 기사는 없어졌는데 무릎은 서른 장이 됐어요⁠.⁠”

“⁠그 서른 장을 기사님이 줄이실 수 있습니다⁠.⁠”

“⁠못 줄여요⁠. 저 혼자 뛰면 서른한 장 돼요⁠.⁠”

*

운영실 큰 화면 한가운데에 화상 창이 하나 열렸다⁠. 던집 대표였다⁠. 흰 셔츠에 소매를 걷은 차림 그대로였다⁠. 대표가 화면 너머에서 손을 흔들었다⁠.

“⁠아⁠, 도마루 기사님⁠! 공청회 잘 봤어요⁠. 말씀 재밌게 하시던데요⁠.⁠” 대표가 밝게 웃었다⁠. “⁠차 팀장님⁠, 제안은 드렸어요⁠?⁠”

“⁠드렸습니다⁠. 기사님이 거절하셨습니다⁠.⁠”

“⁠아쉽네⁠.⁠” 대표는 아쉬운 얼굴을 하지 않았다⁠. “⁠그럼 우리 파트너십을 재검토해야겠네요⁠. 기사님⁠, 브랜드 훼손이랑 지연 누적으로 위탁계약 해지할게요⁠. 기사님은 사장님이시니까 다른 플랫폼에서 더 잘되실 거예요⁠.⁠”

“⁠대표님⁠.⁠” 차정우 팀장이 화면을 보았다⁠. “⁠도마루 기사님 지연은 해지 기준에 못 미칩니다⁠.⁠”

“⁠그럼 브랜드로만 하세요⁠, 팀장님⁠. 국회 가서 회사 욕한 거⁠, 그거면 충분하잖아요⁠.⁠” 대표가 고개를 갸웃했다⁠. “⁠팀장님도 국회에서 하실 말씀 다 하셨으니까⁠, 이건 팀장님이 처리해 주세요⁠. 그래야 공평하죠⁠.⁠”

화상 창이 닫혔다⁠. 운영실 직원 둘이 모니터 뒤에서 숨을 죽였다⁠. 차정우 팀장이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한참 멈춰 있었다⁠. 그러다 몇 글자를 쳤다⁠. 프린터가 웅 울면서 종이 한 장을 뱉었다⁠.

「⁠위탁계약 해지 통지 — 도마루⁠」

차정우 팀장이 종이를 나에게 내밀었다⁠.

“⁠제가 정한 일은 아닙니다⁠. 말리지도 못했습니다⁠.⁠” 목소리가 평소처럼 짧았다⁠. “⁠조끼와 단말기는 반납 창구에 내시면 됩니다⁠.⁠”

나는 종이를 받았다⁠. 종이가 얇았다⁠. 교섭 거부 답신과 같은 종이였다⁠.

“⁠무릎 보호대는요⁠? 이것도 반납해요⁠?⁠”

“⁠가져가십시오⁠.⁠” 차정우 팀장이 내 무릎을 보았다⁠. “⁠그건 기사님 겁니다⁠.⁠”

*

반납 창구 아주머니가 주황 조끼를 받아 들고 탈탈 털었다⁠. 주머니에서 뽁뽁이가 여섯 장 나왔다⁠. 아주머니가 뽁뽁이를 도로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이건 개인 물품이죠⁠.⁠”

“⁠네⁠, 고블린 통행료요⁠.⁠”

단말기를 창구 위에 올려놓기 직전에 화면이 켜졌다⁠. 앱이 마지막 알림을 보냈다⁠.

「⁠도마루 기사님⁠, 그동안 함께해서 행복했어요⁠! 언제든 다시 만나요 :⁠) 던집은 기사님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합니다⁠!⁠」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창구 아주머니도 웃었다⁠. 웃는 동안 목이 따끔거렸다⁠. 단말기 화면이 꺼지기 직전⁠, 습관처럼 오른쪽 위를 보았다⁠. 「⁠남은 시간⁠」 칸에 아무 숫자도 없었다⁠.

게이트 앞에 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누가 말을 퍼뜨렸는지 스무 명이 넘었다⁠. 턱수염 기사가 내 어깨를 쳤다⁠.

“⁠컨테이너에서 자⁠. 접이식 의자 두 개 붙이면 침대 된다⁠.⁠”

“⁠냄새나요⁠?⁠”

“⁠김치전 냄새⁠.⁠” 턱수염 기사가 말했다⁠. “⁠신입⁠, 너 처음에 우리가 욕한 거 다 취소다⁠. 대변인 계속해⁠.⁠”

*

10월 24일 일요일⁠, 원룸 짐을 쌌다⁠. 상자가 모자라서 물류센터에서 얻어 온 빈 상자를 썼다⁠. 옷⁠, 이불⁠, 전기밥솥⁠, 지상 시절 무릎 보호대⁠, 김치통⁠. 상자 옆면마다 「⁠던집 당일 배송⁠」이 찍혀 있었다⁠. 내 살림이 당일 배송 상자 일곱 개에 다 들어갔다⁠. 진솔 씨와 고을 씨가 상자를 날라 주었다⁠. 태산 씨는 편의점 야간 근무에 들어갔다고 했다⁠. 방패 살 돈을 모은다고 했다⁠.

할머니가 보증금 봉투를 내밀었다⁠. 밀린 월세를 빼고 남은 돈이었다⁠. 봉투가 얇았다⁠.

“⁠총각⁠, 어디 가요⁠?⁠”

“⁠노조 사무실이요⁠. 컨테이너요⁠.⁠”

“⁠우리 영감도 파업할 때 차고에서 잤어⁠.⁠” 할머니가 내 손에 봉투를 쥐여 주고 손등을 두 번 두드렸다⁠. “⁠밥 같이 먹는 사람 있으면 괜찮아요⁠.⁠”

진솔 씨가 마지막 상자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다 멈췄다⁠. “⁠기사님⁠, 저 이 계단 몇 칸인지 세 봤어요⁠. 마흔두 칸이요⁠.⁠”

“⁠마흔두 칸이면 4층 빛 우물 반도 안 돼요⁠.⁠”

“⁠그러니까요⁠. 기사님은 이 계단 내려가는데 왜 무릎에서 소리가 나요⁠?⁠”

나는 대답 대신 마지막 칸에서 무릎을 한 번 굽혀 보았다⁠. 뽁 소리가 났다⁠. 진솔 씨가 웃었다⁠.

*

10월 26일 화요일 오후⁠, 나는 게이트 바깥 철망에 기대 던전 입구를 보고 있었다⁠. 기사가 아닌 사람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철망 너머에서 던집이 뽑은 대체 인력 열 명이 연습 배송을 하고 있었다⁠. 헌터 짐꾼 알바를 하던 젊은 사람들이었다⁠. 새 주황 조끼가 다들 빳빳했다⁠.

차정우 팀장이 입구 계단 위에서 쇠 호루라기 부는 법을 가르쳤다⁠. 짧게 한 번⁠, 길게 한 번⁠, 짧게 두 번⁠. 대체 인력 열 명이 따라 불었다⁠. 열 가지 소리가 났다⁠. 하나도 같지 않았다⁠.

열두 시 정각에 내려간 두 사람이 사십일 분 만에 올라왔다⁠. 한 사람은 조끼 등판에 고블린 이빨 자국이 나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상자 대신 빈 뽁뽁이 비닐을 들고 있었다⁠. 4층에서 두건이에게 상자를 통째로 털렸다고 했다⁠. 상자 안 뽁뽁이만 빼 가고 물약은 계단에 버려 두었다고 했다⁠. 두건이는 물약에 관심이 없었다⁠.

차정우 팀장이 초시계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구 계단을 내려오다가 철망 너머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차정우 팀장은 다시 대체 인력들에게 돌아가 호루라기를 불었다⁠. 이번에는 열한 가지 소리가 났다⁠.

*

10월 27일 수요일 밤⁠, 비가 왔다⁠. 컨테이너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박쥐 떼 날갯짓 같았다⁠. 나는 접이식 의자 두 개를 붙인 침대에 누워 단톡방 공지를 읽고 있었다⁠. 「⁠29일 아침 여섯 시⁠, 입구 계단⁠. 피켓은 각자⁠. 김치전은 노조가⁠」⁠.

문을 두 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길수 형님은 집에 가고 없었다⁠. 문을 열자 차정우 팀장이 서 있었다⁠. 우산 없이 바람막이 모자만 썼고⁠, 어깨가 다 젖어 있었다⁠.

“⁠들어오세요⁠. 안에 김치전 있어요⁠.⁠”

“⁠여기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차정우 팀장이 휴대전화 화면을 내밀었다⁠. 헌터협회 던전 입장 신청 목록이었다⁠. 「⁠10월 29일 금요일 11⁠:00 — 송도 던전 10층 보스방 — 삼각김밥(⁠3인⁠)⁠」⁠. “⁠협회 입장 신청은 회사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날 기사가 계단에 앉아 있으면 10층에 물약이 못 갑니다⁠. 회사는 대체 인력을 쓰겠지만⁠, 대체 인력은 4층 정각도 못 넘습니다⁠. 말리십시오⁠. 기사님 말은 듣습니다⁠.⁠”

나는 문간에 선 채 태산 씨에게 전화를 걸고 스피커를 켰다⁠. 편의점 계산대 바코드 소리가 먼저 들렸다⁠.

“⁠형님⁠! 웬일이세요⁠? 저 지금 일해요⁠. 손님 없어요⁠.⁠”

“⁠태산 씨⁠, 29일 10층 가지 마요⁠. 그날 아무도 못 내려가요⁠.⁠”

“⁠안 불러요⁠, 형님⁠. 물약 미리 사 가요⁠.⁠”

“⁠던전 들어가면 사십 분이면 묽어진다니까요⁠!⁠”

“⁠그래서 보스방 문 앞에서 끓여요⁠. 휴대용 버너 있잖아요⁠. 고을이가 탕제 영상 보고 공부했어요⁠.⁠” 태산 씨 목소리가 밝았다⁠. 바코드 소리가 삑 울렸다⁠. “⁠형님은 형님 일 하세요⁠. 저희는 저희 일 할게요⁠. 보스 잡고 치킨 서른 마리요⁠. 약속⁠.⁠”

전화가 끊겼다⁠. 빗소리가 컨테이너 지붕을 계속 두드렸다⁠. 차정우 팀장이 젖은 휴대전화를 바람막이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속에서 초시계가 휴대전화에 부딪혀 딸각 소리를 냈다⁠.

“⁠29일⁠, 저는 운영실에 있겠습니다⁠.⁠” 차정우 팀장이 말했다⁠. “⁠기사님은 계단에 앉아 계십시오⁠. 둘 중 한 사람은 틀렸을 겁니다⁠.⁠”

차정우 팀장이 빗속으로 돌아섰다⁠. 왼쪽 다리를 끌었다⁠. 나는 문을 닫지 못하고 서 있었다⁠. 비에 젖은 아스팔트 너머 던전 입구 돌계단 위로 가로등 불빛이 번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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