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48자)

방패 대신 냄비뚜껑

헌터 전용 택배 기사 · 윤바로

10월 11일 월요일 아침⁠, 대기실 텔레비전에 차정우 팀장 얼굴이 나왔다⁠. 공청회장 탁자 앞⁠, 초시계 위에 두 손을 포갠 장면이었다⁠. 자막은 「⁠“⁠늦은 기사는 저였습니다⁠” — 배송 지연 사망 사건 당사자⁠, 플랫폼 팀장 됐다⁠」⁠. 앵커가 다음 소식으로 넘어가기 전에 누가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껐다⁠.

대기실은 공청회 전보다 조용했다⁠. 조용한데 시끄러웠다⁠. 단톡방이 쉬지 않고 떨었다⁠.

「⁠팀장도 피해자였네⁠」 「⁠피해자가 벌금 만들면 가해자지⁠」 「⁠오 년 동안 벌금 걷은 사람이 이제 와서 저였습니다⁠?⁠」 「⁠우리도 언제든 저였습니다 될 수 있음⁠」

헌터 게시판도 둘로 갈라졌다⁠. 어떤 헌터들은 늦은 기사가 시간을 관리하는 회사는 믿을 수 없다고 했고⁠, 다른 헌터들은 늦어 본 사람이라서 삼십 분을 지킨 거라고 했다⁠. 진솔 씨 서명 글은 삼천 명을 넘었다⁠. 던집은 일요일 밤에 짧은 입장을 냈다⁠. 「⁠차정우 팀장의 공청회 발언은 개인 의견이며⁠, 2022년 건은 당사자 간 합의로 종결된 사안입니다⁠」⁠.

차정우 팀장은 월요일에도 출근했다⁠. 운영실 유리벽 너머에서 큰 화면을 보며 초시계를 눌렀다⁠. 공청회 전과 똑같았다⁠. 아무도 운영실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

점심때 주차장 컨테이너에 김치전 냄새가 남아 있었다⁠. 노조 사무실이 된 컨테이너였다⁠. 길수 형님은 목발을 벽에 세워 두고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무릎은 붓기가 빠졌지만 아직 8층 배차는 받지 못했다⁠.

“⁠형님⁠, 알고 계셨죠⁠.⁠”

“⁠알았지⁠.⁠” 형님이 종이컵 커피를 두 손으로 감쌌다⁠. “⁠센터 처음 열 때 둘이 같이 들어왔어⁠. 2021년 봄⁠. 정우가 서른둘이었나⁠. 송도 일등 기사였어⁠. 4층 호루라기도 정우가 처음 불었어⁠. 고블린이 그 소리를 싫어하는 거 찾아낸 게 정우야⁠.⁠”

“⁠뽁뽁이는 제가 처음이에요⁠.⁠”

“⁠그래⁠, 너는 뽁뽁이 일등이다⁠.⁠” 형님이 웃다가 말았다⁠. “⁠2022년 10월 14일⁠, 정우하고 나는 새벽 여섯 시에 같이 들어왔어⁠. 그날 물량이 터졌어⁠. 저녁 여덟 시에 정우 단말기에 묶음이 세 개 떴어⁠. 8층⁠, 3층⁠, 6층⁠. 열네 시간째였어⁠. 나는 무릎이 나가서 여섯 시에 들어갔고⁠. 정우는 받았어⁠. 그 무렵엔 거절 두 번이면 정지였거든⁠.⁠”

컨테이너 문틈으로 바람이 들어와 종이컵 위 김을 흩었다⁠.

“⁠정우가 8층에 닿았을 때 헌터는 벌써 죽어 있었어⁠. 정우가 8층 계단에 앉아 있는 걸 밤 열한 시에 구조대가 데리고 올라왔어⁠. 무릎이 다 나가서 자기 발로 못 올라왔대⁠.⁠”

“⁠회사는요⁠?⁠”

“⁠기사는 개인사업자다⁠, 회사는 길만 알려 줬다⁠. 그게 회사 답이었어⁠. 유족은 회사랑 정우 둘 다 걸었는데 회사는 빠지고 정우만 남았어⁠. 정우가 빚내서 합의금 냈다는 말이 돌았지⁠.⁠” 형님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 이 년 뒤에 정우가 운영팀으로 들어왔어⁠. 저를 버린 회사 사무실로 걸어 들어간 거야⁠. 내가 물었지⁠. 미쳤냐고⁠. 정우가 그러더라⁠. 안에 들어가야 시계를 고칠 수 있다고⁠.⁠”

“⁠고친 게 벌금이에요⁠?⁠”

형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이번에는 들어갔다⁠.

*

10월 12일 화요일 오후⁠, 노조가 던집에 교섭을 요구한 지 엿새 만에 답이 왔다⁠. 답을 들고 온 사람은 차정우 팀장이었다⁠. 컨테이너 문을 두 번 두드리고 들어와 종이 한 장을 접이식 탁자 위에 놓았다⁠.

「⁠던전 배송 기사님들은 던집과 위탁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로⁠, 던집은 교섭 의무가 있는 사용자가 아닙니다⁠」

컨테이너 안에 기사 열 명이 있었다⁠. 아무도 종이를 집지 않았다⁠. 내가 집었다⁠. 종이가 얇았다⁠.

“⁠팀장님이 이걸 왜 들고 와요⁠?⁠”

“⁠제가 들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왜요⁠?⁠”

“⁠다른 사람이 들고 오면 기사님들이 화낼 데가 없으니까요⁠.⁠” 차정우 팀장이 탁자 앞에 섰다⁠. 공청회 때 입은 회색 정장 대신 남색 바람막이였다⁠. “⁠저한테 하십시오⁠.⁠”

“⁠팀장님도 이 말 들으셨잖아요⁠. 개인사업자라서 회사는 빠진다는 말이요⁠. 그 말 듣고 혼자 피고석에 앉으셨잖아요⁠. 그 말을 왜 팀장님 손으로 우리한테 줘요⁠?⁠”

턱수염 기사가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길수 형님은 목발을 짚고 일어섰다⁠. 차정우 팀장은 내 얼굴을 보았다⁠.

“⁠회사가 맞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년 3월부터 법이 바뀌었으니 노동위원회에 가시면 됩니다⁠. 가셔야 합니다⁠.⁠” 차정우 팀장의 손이 바람막이 주머니 속 초시계를 쥐었다⁠. 주머니 천이 불룩해졌다⁠. “⁠다만 파업은 하지 마십시오⁠. 기사님들이 계단에 앉아 있는 동안 헌터가 죽습니다⁠. 저는 그걸 봤습니다⁠. 도마루 기사님은 못 보셨습니다⁠.⁠”

“⁠팀장님은 열네 시간째에 봤잖아요⁠.⁠”

차정우 팀장의 손이 주머니 안에서 멈췄다⁠. 길수 형님을 한 번 보았다⁠. 형님이 눈을 피하지 않았다⁠.

“⁠노동위원회 조정 신청하시고⁠, 조정이 안 되면 그때 정하십시오⁠.⁠”

“⁠조정 신청 오늘 했어요⁠.⁠” 길수 형님이 말했다⁠. “⁠안 되면 29일 금요일이다⁠. 부산⁠, 대전 기사들도 같은 날 계단에 앉기로 했어⁠.⁠”

차정우 팀장은 고개를 한 번 숙이고 컨테이너를 나갔다⁠. 문이 닫히고 나서 턱수염 기사가 말했다⁠.

“⁠저 사람 우리 편이야⁠, 회사 편이야⁠?⁠”

“⁠헌터 편이야⁠.⁠” 길수 형님이 말했다⁠. “⁠오 년째 그래⁠.⁠”

*

10월 13일 수요일⁠, 4층 쉼터에 물약을 놓으러 갔다가 낯선 남자를 보았다⁠. 회색 정장에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던전 바닥을 디딘 사람이었다⁠. 목에 「⁠철벽길드 후원팀 실장⁠」 출입증을 걸고 있었다⁠. 삼각김밥 파티의 장비를 대 주는 길드였다⁠. 태산 씨 방패 뒷면⁠, 진솔 씨 지팡이 손잡이⁠, 고을 씨 망토 안감에 철벽길드 무늬가 찍혀 있었다⁠.

실장이 진솔 씨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어려운 거 아니에요⁠. 이대로 읽고 찍어서 올리면 돼요⁠. 「⁠기사 파업은 헌터의 목숨을 볼모로 잡는 일입니다⁠. 삼각김밥 파티는 파업에 반대합니다⁠」⁠. 삼십 초면 돼요⁠.⁠”

진솔 씨가 종이를 받지 않았다⁠. 태산 씨가 대신 받았다⁠. 종이가 태산 씨 갑옷 손가락 사이에서 바스락거렸다⁠. 태산 씨가 나를 보았다⁠. 나는 궤짝 위에 물약을 내려놓고 앱에서 「⁠배송 완료⁠」를 눌렀다⁠. 「⁠완료⁠」 소리가 쉼터에 크게 울렸다⁠.

“⁠형님⁠.⁠” 태산 씨가 나를 불렀다⁠. 지난번 31분 이후로 처음이었다⁠. “⁠파업하는 날 저희는 어떻게 해요⁠?⁠”

“⁠그날은 던전에 들어가지 마요⁠.⁠”

“⁠들어가지 말라고요⁠?⁠” 실장이 웃었다⁠. “⁠헌터가 던전에 안 들어가면 길드는 장비를 왜 대 줍니까⁠?⁠”

“⁠태산 씨가 결정할 거예요⁠. 실장님 말고요⁠.⁠”

실장이 나를 처음으로 똑바로 보았다⁠. 내 조끼에 박힌 던집 로고와 볼의 반창고를 차례로 보았다⁠.

“⁠아⁠, 뽁뽁이 기사님⁠. 영상 잘 봤어요⁠. 기사님이 헌터 길 안내하다 저희 애들 다치면⁠, 그 책임은 기사님 몫인 거 아시죠⁠? 개인사업자시니까⁠.⁠”

실장의 말이 차정우 팀장의 말과 똑같았다⁠. 다른 입에서 나오니 훨씬 싸게 들렸다⁠. 태산 씨가 종이를 접었다⁠.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어 갑옷 허리춤에 끼웠다⁠.

“⁠실장님⁠, 내일까지 올릴게요⁠.⁠”

*

10월 14일 목요일 밤 아홉 시⁠, 삼각김밥 파티 채널에 영상이 올라왔다⁠. 제목은 「⁠삼각김밥 파티⁠, 철벽길드 나갑니다⁠」였다⁠.

화면 속 태산 씨는 4층 쉼터 빛 우물 아래에 서 있었다⁠. 진솔 씨가 찍고 고을 씨가 옆에 섰다⁠. 태산 씨는 종이를 읽지 않았다⁠.

“⁠저희 처음 6층 갔을 때 길 잃고 4층으로 도로 올라왔어요⁠. 8층은 택배 형님 따라가서 처음 가 봤어요⁠. 형님 무릎이 계단에 쿵쿵 박히는 소리 들으면서요⁠. 형님 단톡방 무릎 사진도 봤어요⁠. 서른 장이요⁠. 저희가 25분에 물약 받는 동안 그 무릎들이 뛰었어요⁠. 그래서 파업 반대 영상은 못 찍겠어요⁠. 길드 나갑니다⁠. 파업 날 저희는 물약 안 시킬게요⁠.⁠”

영상 끝에서 두건이가 빛 우물 위에 앉아 뽁뽁이를 터뜨렸다⁠. 진솔 씨가 일부러 찍은 장면이었다⁠. 조회수는 자정 전에 이십만을 넘었다⁠. 댓글 절반은 응원이었고 절반은 「⁠신입 파티가 무슨 수로 장비를 사냐⁠」였다⁠.

길드는 금요일 아침에 답했다⁠. 철벽길드 후원팀 실장이 직접 4층 쉼터에 내려와 장비 목록을 읽었다⁠. 방패 하나⁠, 판금 갑옷 한 벌⁠, 지팡이 하나⁠, 힐러 망토 하나⁠, 천막 두 동⁠. 전부 길드 것이었다⁠. 나는 마침 6층 배송을 들고 4층을 지나다가 태산 씨가 갑옷을 벗는 것을 보았다⁠.

갑옷을 벗은 태산 씨는 회색 편의점 유니폼 차림이었다⁠. 각성 전에 입던 옷이라고 했다⁠. 가슴에 「⁠야간⁠」이라고 쓴 명찰이 아직 붙어 있었다⁠. 진솔 씨는 지팡이를 내주고 빈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고을 씨는 망토를 접어 실장 팔에 얹고 나서 망토 주머니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꺼내 도로 챙겼다⁠.

실장이 방패를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구두가 빛 우물 계단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두건이가 바위 위에서 끼익 웃었다⁠.

태산 씨는 쉼터 궤짝 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휴대용 버너와 함께 늘 굴러다니던 라면 냄비의 뚜껑이었다⁠. 스테인리스 뚜껑을 왼팔에 대 보고⁠, 손잡이에 끈을 묶어 팔뚝에 감았다⁠.

“⁠태산 씨⁠, 그걸로 뭐 막아요⁠?⁠”

“⁠일단 국물은 막아요⁠.⁠” 태산 씨가 냄비뚜껑으로 자기 가슴을 쳤다⁠. 갑옷 소리 대신 텅 하고 가벼운 소리가 났다⁠. 진솔 씨가 웃다가 울었다⁠. 우는 얼굴로 휴대전화를 들었다⁠.

*

10월 15일 금요일 저녁⁠, 태산 씨가 노조 컨테이너로 찾아왔다⁠. 편의점 유니폼 위에 냄비뚜껑을 차고 있었다⁠. 컨테이너 안 기사들이 김치전을 먹다 말고 태산 씨를 보았다⁠. 턱수염 기사가 김치전 한 장을 상자 뚜껑에 담아 내밀었다⁠. 태산 씨가 두 손으로 받았다⁠.

“⁠형님⁠, 저희 장비 살 돈이 없어요⁠.⁠” 태산 씨가 김치전을 한 입 먹고 말했다⁠. “⁠편의점 다시 나가면 반년이면 방패 하나 사요⁠. 반년 동안 레벨이 떨어지고요⁠. 방법이 하나 있어요⁠. 10층 보스방이요⁠. 보스 잡으면 마석 하나 나오는데⁠, 사백만 원이래요⁠.⁠”

“⁠10층이요⁠? 삼각김밥 파티가 8층 넘어 본 게 한 번이에요⁠.⁠”

“⁠형님 길로 8층까지는 가 봤잖아요⁠. 9층은 물때만 맞추면 돼요⁠.⁠”

“⁠보스방은 문 닫히면 세 시간 안 열려요⁠. 돌 틈으로 물약만 들어가요⁠. 들어갔다 물약 떨어지면⁠…⁠…⁠.⁠”

“⁠그래서 물약 많이 들고 가요⁠. 미리 사서요⁠.⁠”

“⁠던전에서 사십 분이면 묽어진다니까요⁠.⁠”

태산 씨가 김치전을 마저 먹었다⁠. 상자 뚜껑에 기름 자국만 남았다⁠.

“⁠언제 가는데요⁠?⁠”

“⁠29일이요⁠.⁠”

컨테이너 안이 조용해졌다⁠. 길수 형님이 목발을 짚은 채 몸을 돌렸다⁠. 턱수염 기사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날 파업이에요⁠, 태산 씨⁠. 그날은 배송이 없어요⁠.⁠”

“⁠알아요⁠. 그러니까 그날 가요⁠.⁠” 태산 씨가 냄비뚜껑을 고쳐 찼다⁠. “⁠그날은 저희가 형님들 안 부르면 되잖아요⁠. 저희 때문에 형님들 파업 망치기 싫어요⁠. 보스 잡고 나와서 치킨 쏠게요⁠. 서른 마리요⁠.⁠”

태산 씨는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갔다⁠. 문이 닫히면서 냄비뚜껑이 문틀에 텅 부딪혔다⁠. 길수 형님이 닫힌 문을 오래 보았다⁠.

“⁠막아야 돼⁠.⁠” 형님이 말했다⁠.

“⁠무엇으로요⁠? 이제 저 사람들 손님도 아니에요⁠. 장비도 없고요⁠.⁠”

나는 컨테이너 창밖으로 던전 입구를 보았다⁠. 저녁 해가 입구 돌계단을 비스듬히 비추고 있었다⁠. 2주 뒤 금요일⁠, 저 계단에 주황 조끼들이 앉아 있을 것이었다⁠. 계단 아래 10층 밑⁠, 냄비뚜껑을 찬 편의점 야간 알바 셋이 보스방 문을 밀고 들어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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