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74자)
국회에는 고블린이 없다
헌터 전용 택배 기사 · 윤바로
10월 7일 목요일 아침 일곱 시, 송도에서 여의도로 가는 광역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데 바지가 자꾸 흘러내렸다. 길수 형님 사위가 결혼식 때 입은 양복이었다. 사위는 키가 백팔십오였다. 나는 허리띠 구멍을 송곳으로 두 개 더 뚫었고, 소매는 두 번 접었다. 금발에 반창고 붙인 얼굴이 양복 위에 얹히니 버스 유리창 속 내가 결혼식 하객 알바 같았다.
“형님, 넥타이 비뚤어졌어요.”
옆자리 진솔 씨가 손을 뻗어 넥타이를 고쳐 주었다. 진솔 씨는 팔에 아직 붕대를 감고 있었다. 고을 씨는 창가에 앉아 삼각김밥 포장을 뜯고 있었다. 이번에는 한 번에 뜯었다. 태산 씨는 오지 않았다. 진솔 씨는 태산 씨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기사님, 저 별 하나 준 거 지웠어요.” 진솔 씨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리뷰가 삭제되었습니다」. “그 기사님 찾아서 사과 문자도 보냈어요. 답장은 ‘ㅇㅋ’ 한 글자 왔어요.”
“ㅇ이랑 ㅋ 두 글자요.”
“형님, 지금 그게 중요해요?”
앞자리의 길수 형님이 목발을 무릎 사이에 끼운 채 원고를 다시 읽고 있었다. 내가 쓰고 형님이 고친 원고였다. 빨간 펜 자국이 내 글씨보다 많았다. 단톡방은 아침부터 시끄러웠다. 「대변인 바지 안 흘러내리게 기도함」「국회에 뽁뽁이 들고 가라」. 부산 던전 기사들이 보낸 응원 사진도 올라와 있었다. 부산 기사들도 주황 조끼였다.
길수 형님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원고 첫 줄은 내가 지웠다. 존경하는 의원님들, 그런 말은 빼. 너 존경 안 하잖아.”
“형님, 그런 말은 버스에서도 하면 안 돼요.”
“국회 안에서 하는 것보다는 낫지.” 형님이 빨간 펜 뚜껑을 딸깍 닫았다. 버스 기사님이 백미러로 우리를 한 번 보았다.
*
의원회관 로비에서 나는 습관처럼 계단으로 걸어갔다. 계단 입구에서 경비원이 손을 들었다.
“어디 가세요?”
“3층 회의실이요.”
“엘리베이터 타세요. 계단은 비상용입니다.”
“계단이 비상용이에요?”
경비원이 이상한 사람을 보는 얼굴로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고을 씨가 웃음을 참다가 삼각김밥 김을 떨어뜨렸다. 문이 열리자 복도에 정장 입은 사람들이 서류를 들고 빠르게 걸었다. 누구도 뛰지 않았다. 바닥은 반들반들했고 미끄러운 데가 없었고 몬스터도 없었다.
회의실 앞 복도에 차정우 팀장이 서 있었다. 회색 정장에 넥타이를 맸고, 목에는 초시계 대신 출입증 줄을 걸고 있었다. 초시계는 정장 주머니 밖으로 줄 끝만 나와 있었다. 차정우 팀장이 내 양복을 위아래로 한 번 보았다.
“바지가 깁니다.”
“사위 거예요. 형님 사위요.”
“밟고 넘어지지 마십시오. 발표 시간은 칠 분입니다.”
“원고 보여 드려요?”
“지난번에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차정우 팀장이 회의실 문을 열어 주었다. “칠 분 넘기면 의원님이 끊습니다. 저도 칠 분입니다.”
문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진솔 씨가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휴대전화 화면을 내 코앞에 들이밀었다. 헌터 게시판에 올라온 서명 글이었다. 「기사님 무릎도 지켜 주세요 — 25분은 고맙지만 혼자 뛰게 하지는 말아 주세요」. 아래에 서명한 헌터 수가 이천삼백을 넘어 있었다.
“어젯밤에 제가 올렸어요. 칠층 베테랑 아저씨가 첫 번째로 서명했고요.”
“진솔 씨가요? 헌터 게시판에 기사 편드는 글 올리면 욕먹잖아요.”
“욕도 먹었어요. 반은 욕이에요.” 진솔 씨가 붕대 감은 팔을 들어 보였다. “근데 저 31분 걸려서 왔을 때 물약 아직 안 묽어졌었어요. 그 말도 같이 써야 공평하잖아요.”
차정우 팀장이 문 앞에서 화면을 넘겨다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먼저 들어갔다.
*
공청회장은 생각보다 작았다. 기다란 탁자 하나를 가운데 두고 한쪽에 진술인 넷, 맞은편에 의원 몇과 보좌관들이 앉았다. 뒤쪽 의자에는 기자와 방청객이 서른 명쯤. 정면 벽에 「던전 노동 보호를 위한 법률안 공청회」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위원장석에 앉은 의원이 마이크를 두드렸다.
진술인은 넷이었다. 헌터협회 안전이사, 던집 대표, 차정우 팀장, 그리고 나. 던집 대표는 판교 본사에서 화상으로 들어왔다. 화면 속 대표는 흰 셔츠에 소매를 걷었고 뒤로 「던집 — 전국 던전 배송 1위」라는 글자가 보였다.
“우리 기사님들은 던집의 소중한 파트너입니다.” 대표가 밝게 말했다. “출근 시간도, 쉬는 날도 스스로 정하시는 자유로운 사업자분들이시고요. 던집은 그분들이 더 많이 버실 수 있게 길을 연구합니다. 추천 경로 도입 이후 기사님들 시간당 수입이 늘었습니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그래프가 떴다. 선이 오른쪽 위로 올라갔다. 그래프 어디에도 무릎은 없었다.
헌터협회 안전이사는 은발을 짧게 깎은 여자였다. 이사는 서류 대신 사진 한 장을 들었다. 헌터 장례식 사진이었다.
“삼십 분 보장 전후로 던전 안에서 물약을 기다리다 죽은 헌터 수가 크게 줄었습니다. 기사분들 사정 압니다. 그래도 파업이나 준법 배송으로 지연이 늘면 다음 장례식은 저희 몫입니다.”
방청석에서 진솔 씨가 고개를 숙였다. 이사의 말이 틀린 데가 없었다.
*
내 차례였다. 마이크 앞에 앉자 바지가 의자에 걸려 접혔다. 원고를 펼쳤다. 첫 줄이 빨간 펜으로 지워져 있었다. 형님이 지운 줄이었다. 나는 원고를 내려놓고 단톡방에서 뽑아 온 종이를 들었다. 무릎 사진 서른 장을 한 장에 모아 뽑은 종이였다.
“던전 배송 기사 노동조합 대변인 도마루입니다. 이건 저희 무릎이에요.”
뒤에서 기자들 카메라가 찰칵거렸다.
“저희는 사장님이에요. 출근 시간은 제가 정하는데 퇴근 시간은 앱이 정해요. 상자 하나 놓으면 사천이백 원 받고, 늦으면 오천 원 내요. 하나 늦으면 상자 두 개를 공짜로 나르는 거예요. 8층은 25분이에요. 처음엔 30분이었는데, 제가 22분에 간 길을 회사가 가져가서 25분이 됐어요. 제 길이에요. 그래서 제가 여기 앉아 있어요.”
위원장석의 의원이 볼펜을 내려놓았다.
“지상 택배 기사님들은 2021년에 하루 열두 시간, 일주일 육십 시간 넘게 일 안 시키기로 약속을 받았어요. 저희는 지하에 있어서 그런지 그 약속이 안 내려왔어요. 저희가 바라는 건 크지 않아요. 벌금 대신 사람을 늘려 주세요. 8층 아래는 두 사람이 같이 뛰게 해 주세요. 배차를 무슨 기준으로 주는지 보여 주세요. 거절 세 번에 정지는 없애 주세요.”
칠 분 중 오 분이 지나 있었다. 나는 숨을 한 번 쉬었다.
“헌터분들 죽는 거 저희도 싫어요. 저 삼각김밥 파티 단골이에요. 그런데 늦어서 사람이 죽으면 다들 늦은 기사만 봐요. 그 기사가 몇 시간째 뛰고 있었는지, 상자를 몇 개 들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안 물어봐요. 늦은 기사만 탓하면 다음 기사도 늦어요.”
말을 마치자 방청석에서 박수가 몇 번 났다가 위원장의 손짓에 멎었다.
위원장이 화면 속 대표에게 물었다. 배차 기준을 기사들에게 공개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대표가 웃었다.
“배차 방식은 저희 회사 핵심 기술이라서요. 영업 비밀로 보호받는 부분입니다.”
나는 웃음이 터질 뻔했다. 운영실에서 내가 차정우 팀장에게 한 말이었다. 4층을 어떻게 지났냐는 물음에 영업 비밀이라고 답했고, 차정우 팀장은 기사님도 개인사업자니까 영업 비밀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사장님 둘이 서로 영업 비밀을 지키는 동안 무릎은 아무도 지켜 주지 않았다.
헌터협회 이사가 마이크를 당겼다. “도마루 진술인께 묻겠습니다. 지난달 20일 준법 배송 날, 7층 이상에서 피를 흘리며 물약을 기다린 헌터가 셋입니다. 그중 한 명은 진술인 단골 파티 헌터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날 진술인은 걸어서 갔습니까?”
방청석의 진솔 씨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댔다.
“걸어서 갔어요. 31분 걸렸어요.”
“다친 헌터 앞에서 걸었다는 겁니까?”
“네. 그날 뛰었으면 저 혼자 뛴 거예요. 다음 날도 저 혼자 뛰었을 거고요. 그러다 제 무릎이 나가면 그다음엔 누가 7층에 가요?” 나는 무릎 사진 종이를 다시 들었다. “이 서른 명 중에 열 명은 벌써 8층 배차를 못 받아요. 무릎 때문에요. 기사가 줄면 헌터분들 물약은 더 늦게 가요.”
이사는 대답하지 않고 장례식 사진 위에 손을 얹었다. 방청석 어디선가 셔터 소리가 한 번 났다.
*
마지막 진술인이 차정우 팀장이었다. 차정우 팀장은 원고가 없었다. 주머니에서 은색 초시계를 꺼내 한 번 누르고 탁자 위에 내려놓은 뒤, 초시계 앞에 두 손을 포개 놓았다. 칠 분을 재는 딸깍이었다.
“던집 송도 던전 운영팀장 차정우입니다. 물약은 던전 공기에서 사십 분이 지나면 묽어집니다. 삼십 분은 그 사십 분에서 나왔습니다. 25분은 남는 십오 분으로 헌터가 물약을 따서 마실 시간을 사려고 만들었습니다.”
목소리가 평소대로 짧고 정중했다.
“2022년 10월 14일, 송도 던전 8층에서 고새벽이라는 스물여섯 살 헌터가 죽었습니다. 거미 독이었습니다. 시킨 물약이 십일 분 늦게 도착했습니다. 도착했을 때 물약은 아직 묽어지지 않았는데, 받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유족은 소송을 냈습니다.”
공청회장이 조용해졌다. 헌터협회 이사가 장례식 사진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나는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사위의 양복이 땀을 먹었다.
“도마루 진술인 말씀이 맞습니다. 늦은 기사가 몇 시간째였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습니다.” 차정우 팀장이 고개를 들었다. 나를 보지 않고 정면 현수막을 보았다. “유족의 소송장에도, 회사의 답변서에도 그 기사의 이름만 있었습니다. 회사는 기사가 개인사업자라고 답했습니다. 기사는 혼자 피고석에 앉았습니다.”
위원장이 마이크를 당겼다. “차정우 진술인, 그 기사분은 지금 어떻게 지내십니까? 오늘 진술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여쭙니다.”
차정우 팀장이 포갠 손을 풀고 초시계 단추 위에 엄지를 올렸다. 누르지 않았다. 화면 속 던집 대표가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늦은 기사는 저였습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한꺼번에 멎었다.
“2022년 10월 14일, 저는 8층에 십일 분 늦었습니다. 유족은 저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그래서 압니다. 늦으면 어떻게 되는지.” 차정우 팀장이 초시계에서 엄지를 뗐다. “늦은 기사가 저였기 때문에 저는 삼십 분을 만들고 벌금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기사가 늦지 않게. 저처럼 되지 않게.”
화면 속 대표가 말했다. “위원장님, 그 건은 개인 간의 합의로 이미 정리된…….”
위원장이 손을 들어 대표의 말을 막았다. 방청석 맨 뒤에서 길수 형님이 목발을 짚고 일어섰다가, 다시 앉았다. 진솔 씨는 휴대전화를 내리고 있었다. 찍지 않았다. 고을 씨 손에서 삼각김밥이 무릎 위로 떨어졌다.
나는 탁자 너머 차정우 팀장의 손을 보았다. 2021년에 나눠 준 무릎 보호대, 4층 호루라기, 마른 한 뼘만 골라 디디던 운동화, 8층 국화 앞의 삼 초. 다 한 사람 것이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공청회장에서 초시계 째깍거리는 소리가 탁자 마이크를 타고 스피커로 퍼졌다. 칠 분 가운데 사 분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