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38자)

단톡방에 무릎 사진 서른 장

헌터 전용 택배 기사 · 윤바로

9월 16일 목요일 밤 아홉 시⁠, 원룸 침대에 엎드려 기사 단톡방을 열었다⁠. 방장 길수 형님의 첫 메시지가 올라와 있었다⁠.

「⁠노조 얘기 전에 무릎부터⁠. 각자 무릎 사진 한 장씩 올릴 것⁠. 얼굴 말고 무릎⁠」

일 분 동안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이 분째에 첫 사진이 떴다⁠. 파스 네 장이 겹쳐 붙은 무릎이었다⁠. 사진 밑에 주인이 글을 달았다⁠. 「⁠무릎은 두 개인데 파스는 네 장⁠」⁠. 그다음부터 사진이 쏟아졌다⁠. 보호대 위에 테이프를 감은 무릎⁠, 계단 모서리에 찍힌 멍이 노랗게 바랜 무릎⁠, 수술 자국이 지퍼처럼 난 무릎⁠. 턱수염 기사는 부어오른 무릎 사진에 「⁠이건 무릎이 아니라 감자⁠」라고 달았다⁠. 웃음 이모티콘이 스무 개 붙었다⁠. 나도 내 무릎을 찍어 올렸다⁠. 아직 멍이 없는 무릎이었다⁠. 「⁠신입 무릎 깨끗하네 부럽다⁠」「⁠한 달 뒤에 다시 올려 봐⁠」가 달렸다⁠.

서른 장째 사진이 올라오자 길수 형님이 긴 글을 썼다⁠.

「⁠다들 봤지⁠. 지상 택배는 2021년에 회사랑 정부랑 합의라도 했다⁠. 하루 열두 시간⁠, 일주일 육십 시간 넘게 시키지 말자고⁠. 던전은 그런 거 없다⁠. 우리는 사장님이라 시간 제한이 없댄다⁠. 작년 3월부터 법이 바뀌어서 우리 같은 특수고용도 원청한테 교섭하자고 할 수 있다⁠. 던집이 우리 원청이다⁠. 노조 만들자⁠」

답이 바로 붙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하나씩 올라왔다⁠.

「⁠노조 하면 배차 끊김⁠. 지상에서 봤음⁠」 「⁠우리 사장님이라며 사장님이 무슨 노조⁠」 「⁠편의점 점주님들도 협회 만들던데⁠」 「⁠노조 하자⁠. 대신 뭐부터 할 건데⁠」

나는 낮에 받은 교육 자료 파일을 다시 열었다⁠. 첫 장 맨 위에 빨간 글씨가 있었다⁠. 첫 출근 날 화면에서 본 「⁠지하 10층⁠, 삼십 분⁠」 바로 앞 장이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장이었다⁠.

「⁠안전 수칙 1⁠. 던전 계단에서는 뛰지 않습니다⁠」

나는 빨간 글씨가 적힌 장을 찍어 단톡방에 올렸다⁠.

「⁠이거부터 지켜 보면 어때요⁠. 하루만⁠. 회사가 만든 규칙대로요⁠」

일 분 동안 조용하다가 웃음 이모티콘이 마흔 개 달렸다⁠. 턱수염 기사가 썼다⁠. 「⁠신입이 처음으로 쓸모 있는 말 함⁠」⁠.

*

9월 20일 월요일⁠, 던집 기사 아흔세 명이 던전 계단을 걸어서 내려갔다⁠. 4층 빛 우물을 지날 때는 줄을 맞춰 걸었다⁠. 정각이 아닐 때만 내려갔고⁠, 6층에서는 사 분을 다 기다렸고⁠, 5층 젖은 계단에서는 난간을 잡았다⁠. 교육 자료에 적힌 대로였다⁠. 소풍 가는 유치원 행렬 같았다⁠. 턱수염 기사는 걸으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두건이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느릿느릿 내려가자 몽둥이를 들고 나왔다가⁠, 뛰지 않는 나를 쫓지도 못하고⁠, 뽁뽁이를 받은 뒤에도 내 옆을 따라 계단 세 칸을 같이 걸었다⁠. 같이 걸어도 되는 일인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단말기는 쉬지 않고 울었다⁠.

「⁠지연 1건이 확인되었어요⁠. 정산 시 5⁠,000원이 차감됩니다⁠. 다음엔 더 빨리 만나요⁠!⁠」 「⁠앗⁠, 또 늦었네요⁠! 오늘 컨디션이 안 좋으신가요⁠? 힘내요⁠, 기사님⁠!⁠」 「⁠기사님⁠, 오늘 지연이 많아요⁠.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앱 말투가 점점 걱정하는 친구처럼 바뀌었다⁠. 길수 형님은 단톡방에 앱 알림 사진을 모아 올렸다⁠. 「⁠앱이 우리 걱정해 준다⁠. 회사보다 낫다⁠」⁠.

*

오후 한 시⁠, 태산 씨가 단말기 말고 내 휴대전화로 전화했다⁠. 목소리 뒤에서 진솔 씨가 울고 있었다⁠.

“⁠형님⁠, 진솔이가 7층에서 거미한테 팔 물렸어요⁠. 물약 시켰어요⁠. 형님 배차로 와요⁠. 빨리⁠, 25분에요⁠!⁠”

손목 단말기에 7층 배송이 떴다⁠. 「⁠남은 시간 25⁠:00⁠」⁠. 게이트를 지나는 순간 나는 첫 계단에서 멈췄다⁠. 아흔세 명이 걷기로 한 날이었다⁠. 뛰면 아흔두 명이 걷는 날이 되었다⁠.

“⁠태산 씨⁠, 고을 씨 바꿔 줘요⁠.⁠”

나는 걸으면서 전화를 귀에 붙이고 있었다⁠. 고을 씨에게 지혈하는 자리를 묻고⁠, 거미 독이 팔꿈치 위로 번지는지 보라고 하고⁠, 진솔 씨에게는 숨을 길게 쉬라고 했다⁠. 지상에서 배송 중에 쓰러진 할아버지를 본 적이 있었고⁠, 구급대원이 전화로 가르쳐 준 말을 그대로 옮겼다⁠. 4층에서 두건이가 따라붙었고⁠, 6층에서 사 분을 기다렸다⁠. 사 분이 사십 분 같았다⁠. 7층 계단참에 닿았을 때 단말기는 「⁠-06⁠:00⁠」이었다⁠. 31분이었다⁠.

진솔 씨 팔뚝이 보라색으로 부어 있었다⁠. 고을 씨 손바닥에서 초록빛이 흐릿하게 흘렀다⁠. 내가 파우치를 따서 건네자 진솔 씨가 물약을 팔에 부었다⁠. 물약은 아직 묽어지지 않았다⁠. 김이 피어오르고⁠, 보라색이 가장자리부터 빠졌다⁠. 진솔 씨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태산 씨가 방패를 바닥에 내리쳤다⁠. 쾅 소리가 계단을 울렸다⁠.

“⁠형님⁠, 25분에 오던 사람이 왜 31분이에요⁠!⁠”

“⁠오늘은 걷는 날이에요⁠. 기사들이 다 같이⁠…⁠…⁠.⁠”

“⁠그걸 왜 우리한테 해요⁠! 형님 시계가 우리 목숨이라고요⁠!⁠”

“⁠제 시계가 태산 씨 목숨이면⁠, 제 무릎은 누구 거예요⁠?⁠”

태산 씨 입이 벌어졌다가 닫혔다⁠. 갑옷 어깨가 들썩였다⁠. 진솔 씨가 태산 씨 팔을 잡아당겼다⁠. 고을 씨는 아무 말 없이 빈 파우치를 접었다⁠. 나는 무릎 보호대를 끌어올리고 돌아섰다⁠. 등 뒤에서 진솔 씨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기사님⁠, 별점 낮게 주면 기사님한테 벌점 가요⁠?⁠”

“⁠가요⁠. 별 하나 받으면 그 주 배차가 줄어요⁠.⁠”

“⁠저 지난주에 다른 기사님한테 별 하나 줬어요⁠. 삼각김밥이 눌려 와서요⁠.⁠”

나는 대답 대신 손을 한 번 흔들었다⁠. 진솔 씨가 휴대전화를 꺼내 무언가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

저녁 여섯 시⁠, 차정우 팀장이 나를 물류센터 옥상으로 불렀다⁠. 옥상에서는 송도 바다가 보였다⁠. 해가 갯벌 위로 넘어가고 있었다⁠. 물이 빠진 갯벌이 붉은 접시처럼 반짝였다⁠. 저 바다가 9층까지 내려온다고 생각하니 발밑이 이상했다⁠.

“⁠오늘 지연 이백열네 건입니다⁠.⁠” 차정우 팀장이 초시계를 손바닥 위에서 굴렸다⁠. “⁠7층 이상에서 피 흘린 채로 물약을 기다린 헌터가 셋입니다⁠. 어진솔 헌터도 그중 한 명입니다⁠.⁠”

“⁠죽은 사람은요⁠?⁠”

“⁠없습니다⁠. 오늘은⁠.⁠”

“⁠그럼 됐잖아요⁠.⁠”

“⁠오늘은⁠, 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차정우 팀장이 바다를 보았다⁠. “⁠도마루 기사님⁠. 다음 달부터 기사님을 골드 기사로 올리겠습니다⁠. 골드는 배차를 먼저 받고 거절해도 정지가 없습니다⁠. 삼각김밥 파티 배송은 기사님한테만 가게 따로 열어 드리겠습니다⁠. 앱에 없는 기능이지만 만들 수 있습니다⁠.⁠”

“⁠대신요⁠?⁠”

“⁠단톡방에서 나오십시오⁠. 준법 배송도 그만두시고요⁠.⁠”

나는 웃었다⁠. 지상 택배 사 년 동안 연습한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웃음이 나오는 동안 머리로 따져 보았다⁠. 골드 기사는 거절해도 정지가 없었다⁠. 월세 두 달이 한 달 반으로 줄었다⁠. 삼각김밥 파티는 다시 나를 형님이라고 부를 것이었다⁠.

“⁠팀장님⁠, 제가 골드 되면 다음 달에 제 길은 몇 분이 돼요⁠?⁠”

차정우 팀장이 초시계를 쥐었다⁠.

“⁠제가 빨라지면 또 다 같이 빨라지잖아요⁠. 25분이 20분 되고요⁠. 단톡방 무릎 사진 보셨어요⁠? 서른 장이에요⁠.⁠”

“⁠봤습니다⁠.⁠”

“⁠팀장님 무릎도 올리세요⁠. 서른한 장 되게⁠.⁠”

차정우 팀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갯벌 위로 해가 다 넘어갔다⁠. 옥상 난간에 앉은 갈매기 한 마리가 끼룩 울고 바다 위로 날아갔다⁠.

*

9월 22일 수요일 밤⁠, 원룸 1층 현관에서 집주인 할머니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이십만 원이었다⁠. 걷는 날 하루를 빼고⁠, 벌금을 빼고⁠, 운영비를 빼고 남은 돈에서 다시 밥값을 뺀 돈이었다⁠. 할머니가 침을 묻혀 지폐를 셌다⁠. 두 번 셌다⁠.

“⁠두 달 치에 이십만 원이면 몇 달 치예요⁠, 총각⁠.⁠”

“⁠사분의 일 달 치요⁠.⁠”

“⁠사분의 일⁠.⁠” 할머니가 봉투를 접었다⁠. “⁠요즘 젊은 사람은 월세도 쪼개 내네⁠. 피자처럼⁠.⁠”

“⁠다음 주엔 한 조각 더 드릴게요⁠.⁠”

할머니가 현관 신발장 위 텔레비전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녁 뉴스에 우리 단톡방 사진이 나오고 있었다⁠. 무릎 사진 서른 장을 누가 기자에게 넘겼는지⁠, 파스 붙은 무릎들이 바둑판처럼 화면에 깔려 있었다⁠. 아래 자막은 「⁠던전 배송 기사들⁠, 노조 결성 움직임 — 부산·대전 던전 기사들도 동참 검토⁠」였다⁠.

“⁠저기 금발 무릎이 총각 거죠⁠?⁠”

“⁠어떻게 아셨어요⁠?⁠”

“⁠제일 깨끗하잖아⁠.⁠” 할머니가 신발장 문을 열고 김치통 하나를 꺼냈다⁠. “⁠우리 영감이 시내버스 사십 년 몰았어⁠. 노조도 했고⁠. 노조는 회의보다 밥이야⁠. 같이 밥 먹은 사람끼리는 안 팔아⁠. 가져가서 나눠 먹어요⁠.⁠”

“⁠할머니⁠, 월세는 사분의 일 내는데 김치는 한 통을 주세요⁠?⁠”

“⁠김치는 쪼개 주면 맛이 없어⁠.⁠”

김치통은 무거웠다⁠. 계단 세 층을 올라가는 동안 무릎이 뽁 소리를 두 번 냈다⁠. 방에 들어와 김치통 뚜껑을 열자 묵은 고춧가루 냄새가 원룸에 가득 찼다⁠.

*

9월 24일 금요일 밤⁠, 물류센터 주차장 컨테이너에 기사 마흔 명이 모였다⁠. 길수 형님이 휴대용 버너 두 개에 할머니 김치로 김치전을 부쳤고⁠, 접시가 모자라 상자 뚜껑에 담아 돌렸다⁠. 단톡방 투표는 김치전을 먹는 동안 끝났다⁠. 「⁠던전 배송 기사 노동조합⁠」 만들기에 찬성 여든일곱⁠, 반대 여섯⁠. 위원장은 길수 형님이었다⁠. 대변인 투표에는 내 이름이 올라 있었다⁠. 내가 올린 적이 없었다⁠.

「⁠신입이 대변인 하는 거 반대함⁠」 「⁠얼굴 알려진 사람 신입밖에 없음⁠. 금발이라 멀리서도 보임⁠」 「⁠뽁뽁이 형님 영상 조회수 삼십만⁠」

찬성 일흔둘로 나는 대변인이 되었다⁠. 길수 형님이 축하 대신 문자를 보냈다⁠. 「⁠국회 의원실에서 연락 왔다⁠. 10월 7일 공청회에 기사 한 명 말할 자리 있대⁠. 너다⁠」⁠.

국회라는 말에 무릎보다 위가 먼저 쑤셨다⁠. 지상에서는 국회의사당 앞 도로에서 상자를 내려 본 적만 있었다⁠.

*

9월 27일 월요일 아침⁠, 게이트에 단말기를 댔는데 띵 소리가 나지 않았다⁠. 화면에 노란 상자가 떴다⁠.

「⁠기사님⁠, 계정 이용이 7일 동안 제한되었어요⁠. 사유⁠: 지연 누적 열한 건(⁠운영 정책 3조⁠)⁠. 10월 4일에 다시 만나요⁠! 기사님을 응원해요⁠!⁠」

뒤에 줄 서 있던 기사들이 화면을 넘겨다보았다⁠. 누가 낮게 욕을 했다⁠. 나는 곧장 운영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차정우 팀장이 큰 화면 앞에 서 있었다⁠. 화면에는 지난 월요일 지연 이백열네 건이 빨간 점으로 찍혀 있었다⁠.

“⁠칠 일이요⁠? 지연 열한 건이요⁠? 그날 다 같이 걸었어요⁠. 아흔세 명이요⁠. 저만 막혔어요⁠?⁠”

“⁠지연 열한 건을 넘은 기사가 다섯 명입니다⁠. 다섯 명 다 막혔습니다⁠. 앱이 막았습니다⁠.⁠”

“⁠앱은 팀장님이 만들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풀 수 있습니다⁠.⁠” 차정우 팀장이 몸을 돌렸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박자 빨랐다⁠. “⁠공청회 안 나가시면⁠, 오늘 오후에 풀겠습니다⁠.⁠”

운영실 안에서 키보드 소리가 멎었다⁠. 직원 둘이 모니터 뒤에서 우리를 보았다⁠. 나는 볼의 반창고를 한 번 눌렀다⁠. 새로 붙인 반창고였다⁠.

“⁠칠 일 쉬면 시간 많겠네요⁠.⁠” 나는 웃었다⁠. “⁠공청회 준비할게요⁠. 원고 다 쓰면 팀장님 먼저 보여 드릴까요⁠?⁠”

“⁠필요 없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갑니다⁠.⁠”

차정우 팀장이 큰 화면으로 돌아섰다⁠. 빨간 점 이백열네 개 위로 차정우 팀장의 그림자가 길게 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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