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98자)

팀장님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헌터 전용 택배 기사 · 윤바로

9월 16일 목요일 아침 여섯 시 오십 분⁠, 송도 던전 입구 계단에 주황 조끼가 스무 개쯤 앉아 있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고⁠, 배차가 들어오기 전이었고⁠, 다들 컵라면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먹으려고 든 컵라면이 아니었다⁠. 턱수염 기사가 계단 맨 위에서 매직을 들고 컵라면 뚜껑마다 글씨를 썼다⁠.

「⁠팀장 25분 안 — 열한 개⁠」 「⁠팀장 못 함 — 스물세 개⁠」

“⁠신입은 어디 걸래⁠?⁠” 턱수염 기사가 물었다⁠.

“⁠저는 같이 뛰는데 어떻게 걸어요⁠.⁠”

“⁠뛰는 놈이 제일 잘 알지⁠.⁠”

나는 컵라면을 하나 받아 「⁠못 함⁠」 무더기에 올려놓았다가 도로 내렸다⁠. 차정우 팀장의 왼쪽 다리가 떠올랐고⁠, 묶음 세 건을 수락했다는 차분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컵라면을 두 무더기 사이 계단에 내려놓았다⁠. 턱수염 기사가 혀를 찼다⁠.

“⁠이도 저도 아니네⁠. 그래서 신입이 길을 뺏기지⁠.⁠”

길수 형님은 계단 옆 난간에 기대 목발을 짚고 있었다⁠. 어제 밤 병원에서 인대가 늘어났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산재 신청서는 서명해서 아침에 차정우 팀장 책상에 놓고 왔다고 했다⁠. 형님은 컵라면을 걸지 않았다⁠.

일곱 시 이 분 전⁠, 게이트 앞에 차정우 팀장이 나타났다⁠. 남색 바람막이 대신 주황 배송 조끼를 입고 있었다⁠. 신입용 새 조끼였는데 어깨가 조금 컸다⁠. 손목에는 기사 단말기⁠, 목에는 초시계⁠. 바지 밑단을 한 번 접어 올렸고⁠, 접힌 바짓단 위로 무릎 보호대가 보였다⁠. 검은 천이 바래서 회색에 가까웠고⁠, 가장자리 실밥이 몇 군데 터져 있었다⁠. 내 보호대와 모양이 달랐다⁠. 옛날 것이었다⁠.

계단에 앉은 기사들이 웅성거렸다⁠. 누가 휘파람을 불었다⁠. 차정우 팀장은 휘파람 소리가 난 곳을 한 번 보고 탕제실 창구에서 상자 세 개를 받았다⁠. 3층 하나⁠, 6층 하나⁠, 8층 하나⁠. 어제 길수 형님이 든 묶음과 같은 층이었다⁠. 내 단말기에도 8층 한 건이 떴다⁠.

“⁠도마루 기사님⁠.⁠” 차정우 팀장이 초시계에 엄지를 얹었다⁠. “⁠뒤처지시면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팀장님이나 늦지 마세요⁠.⁠”

딸깍⁠. 게이트가 띵 울었다⁠.

「⁠남은 시간 25⁠:00⁠」

*

1층부터 3층까지 차정우 팀장은 말이 없었다⁠. 숨소리도 크지 않았다⁠. 계단 한 칸에 발 하나⁠, 발바닥 앞부분만 디디고 뒤꿈치는 내려놓지 않았다⁠. 지상에서 사 년 뛴 나보다 계단을 덜 시끄럽게 내려갔다⁠. 3층 굴 입구 궤짝에 상자 하나를 내려놓는 데 오 초도 쓰지 않았다⁠. 받는 헌터가 사인을 하려고 펜을 꺼내자 차정우 팀장이 먼저 말했다⁠.

“⁠사인은 앱으로 하시면 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헌터가 펜을 든 채 우리 뒷모습을 보았다⁠.

4층 빛 우물에 들어선 시각은 일곱 시 칠 분이었다⁠. 정각이 아니었다⁠. 고블린이 나올 시간이 아니었다⁠. 그런데 바위틈에서 빨간 두건이 쑥 나왔다⁠. 두건이였다⁠. 두건이는 몽둥이도 안 들고 두 손을 내밀며 나에게로 뛰어왔다⁠. 뽁뽁이를 달라는 손이었다⁠. 정각이 아니어도 내가 지나가면 나오기 시작한 지 사흘째였다⁠.

두건이 뒤로 초록 머리가 둘 더 나왔다⁠. 둘은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나를 처음 보는 고블린들이었다⁠. 노란 눈 넷이 차정우 팀장의 주황 조끼에 멈췄다⁠.

차정우 팀장이 조끼 안주머니에서 쇠 호루라기를 꺼냈다⁠. 짧게 한 번⁠, 길게 한 번⁠, 짧게 두 번 불었다⁠. 높고 가는 소리가 빛 우물 벽을 타고 올라갔다⁠. 몽둥이를 든 고블린 둘이 귀를 감싸 쥐고 바위틈으로 쏙 들어갔다⁠. 두건이만 남아서 나와 호루라기를 번갈아 보며 끼익거렸다⁠.

“⁠그거 어떻게 아세요⁠?⁠” 나는 뽁뽁이 한 장을 두건이 손에 쥐여 주며 물었다⁠.

“⁠교육 자료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아시냐고요⁠!⁠”

“⁠숨 아끼십시오⁠.⁠” 차정우 팀장이 계단을 뛰어내렸다⁠. “⁠기사님은 오늘 뽁뽁이 한 장 쓰셨고 저는 호루라기 한 번 불었습니다⁠. 비긴 겁니다⁠.⁠”

뒤에서 뽁뽁 소리가 났다⁠. 두건이가 볕 아래 앉아 있었다⁠.

*

5층 기사 계단은 오늘도 젖어 있었다⁠. 어제 길수 형님이 미끄러진 자국 위로 슬라임 물이 얇게 번들거렸다⁠. 차정우 팀장은 젖은 계단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돌마다 마른 곳이 한 뼘씩 있었고⁠, 차정우 팀장의 운동화는 마른 한 뼘만 골라 디뎠다⁠. 계단 하나하나를 외우고 있는 발이었다⁠. 나는 같은 자리를 따라 밟으려다 두 번 미끄러질 뻔했다⁠.

“⁠팀장님⁠, 여기 몇 번 와 보셨어요⁠?⁠”

“⁠기사님 질문은 언제나 시간이 듭니다⁠.⁠”

“⁠그럼 빨리 대답해 주시면 되잖아요⁠.⁠”

“⁠많이 와 봤습니다⁠.⁠”

6층 굴 입구에서 차정우 팀장은 멈추지 않았다⁠. 초시계를 보며 입속으로 숫자를 셌다⁠. 박쥐가 내려오기 사십 초 전이었다⁠. 나는 늘 사 분을 기다리던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지금 들어가면 박쥐랑 만나요⁠!⁠”

“⁠벽에 붙으면 삼십 초 안에 지나갑니다⁠. 박쥐는 굴 가운데로만 내려옵니다⁠.⁠”

차정우 팀장이 왼쪽 벽에 등을 붙이고 옆걸음으로 굴을 지나갔다⁠. 나는 잠깐 서 있다가 따라 붙었다⁠. 등 뒤 돌이 차가웠다⁠. 굴 가운데로 검은 바람이 쏟아져 내려온 것은 우리가 굴 끝 계단에 닿고 칠 초쯤 뒤였다⁠. 날개 소리가 귀를 쓸고 지나갔다⁠. 나는 계단에 주저앉을 뻔했다⁠.

“⁠이거 위험한 거잖아요⁠! 교육 때는 기다리라면서요⁠!⁠”

“⁠그래서 교육 때는 기다리라고 합니다⁠.⁠” 차정우 팀장이 6층 상자를 굴 안 궤짝에 놓고 돌아섰다⁠. “⁠기사님한테는 기다리라고 하고⁠, 저는 안 기다렸습니다⁠. 25분이 그래서 25분입니다⁠. 기다리는 사 분을 넣어도 됩니다⁠.⁠”

“⁠그럼 팀장님만 되는 거잖아요⁠!⁠”

차정우 팀장이 대답하지 않고 7층 계단으로 내려갔다⁠. 대답 대신 숨소리가 처음으로 크게 들렸다⁠.

*

8층 돌기둥 홀에 들어섰을 때 단말기는 「⁠남은 시간 01⁠:40⁠」이었다⁠. 받는 헌터는 홀 끝에 있었다⁠. 이십 초면 닿을 거리였다⁠. 차정우 팀장은 홀 한가운데에서 멈췄다⁠. 마른 국화가 묶인 돌기둥 앞이었다⁠.

삼 초였다⁠. 초시계를 누르지도 않았고 꽃을 만지지도 않았다⁠. 손등이 바지 옆에서 한 번 떨렸다⁠. 나는 앞서 뛰다가 뒤돌아보았다⁠. 차정우 팀장이 다시 뛰었다⁠. 홀 끝에서 상자를 건넸을 때 차정우 팀장의 단말기는 「⁠00⁠:10⁠」⁠, 내 단말기는 「⁠00⁠:58⁠」이었다⁠.

24분 50초⁠.

“⁠됩니다⁠.⁠” 차정우 팀장이 말했다⁠. 숨을 고르지 않고 한 말이라 끝이 찢어졌다⁠.

차정우 팀장은 계단 첫 칸에 앉았다⁠. 접어 올린 바짓단 아래로 왼쪽 무릎이 덜덜 떨렸다⁠. 바랜 보호대 가장자리로 길게 꿰맨 흉터 끝이 삐져나와 있었다⁠. 수술 자국이었다⁠. 나는 차정우 팀장 앞에 쪼그려 앉았다⁠.

“⁠팀장님⁠, 다리 떨려요⁠.⁠”

“⁠떨려도 됩니다⁠.⁠”

“⁠안 돼요⁠. 떨리면 다음 계단에서 미끄러져요⁠. 어제 형님처럼요⁠.⁠”

“⁠압니다⁠.⁠” 차정우 팀장이 무릎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떨림이 손바닥 밑에서 멎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서 앉아 있는 겁니다⁠. 다음 배차가 없으니까요⁠.⁠”

“⁠기사들은 다음 배차가 있어요⁠.⁠”

차정우 팀장이 고개를 들었다⁠. 처음으로 내 얼굴을 오래 보았다⁠.

“⁠도마루 기사님⁠, 8층에 국화 묶은 사람 누군지 아십니까⁠?⁠”

“⁠고새벽 씨 아는 분이요⁠?⁠”

차정우 팀장의 눈이 움직이지 않았다⁠. “⁠누구한테 들었습니까⁠?⁠”

“⁠칠층 베테랑이요⁠. 오 년 전에 물약이 십일 분 늦어서 죽은 헌터라고요⁠.⁠”

“⁠그분 말이 맞습니다⁠.⁠”

대답은 한 줄뿐이었다⁠. 차정우 팀장은 난간을 짚고 일어나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가 어깨를 내밀자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8층에서 입구까지 나란히 걸어 올라갔다⁠. 올라가는 데는 사십 분이 넘게 걸렸다⁠. 묽어질 물약이 없는 길이라 아무도 시간을 재지 않았다⁠.

7층 계단참에서 차정우 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도마루 기사님 월세가 얼마입니까⁠?⁠”

“⁠갑자기요⁠? 사십팔만 원이요⁠. 두 달 밀렸고요⁠.⁠”

“⁠지연 벌금 오천 원이 아흔여섯 번이면 사십팔만 원입니다⁠.⁠” 차정우 팀장이 난간을 짚고 한 칸 올라갔다⁠. “⁠안 늦으시면 월세가 안 새 나갑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그것뿐입니다⁠.⁠”

“⁠팀장님은요⁠?⁠”

“⁠저는 무엇입니까⁠?⁠”

“⁠팀장님 무릎은 몇 번 갈아 끼우면 팀장 돼요⁠?⁠”

차정우 팀장이 계단 한가운데서 멈췄다⁠. 나는 말을 뱉어 놓고 무릎 보호대를 만지작거렸다⁠. 6층 박쥐가 아래에서 한 바퀴 도는 소리가 들렸다⁠. 차정우 팀장은 화를 내지 않았다⁠. 숨을 두 번 고르고 다시 올라갔다⁠.

“⁠한 번입니다⁠.⁠”

“⁠네⁠?⁠”

“⁠한 번 갈았습니다⁠. 두 번 갈기 전에 그만두라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차정우 팀장이 4층 빛 우물 아래에 다다르자 고개를 들어 햇빛을 보았다⁠. 두건이가 볕 아래에서 뽁뽁이를 다 터뜨리고 빈 비닐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 차정우 팀장이 아주 짧게 웃었다⁠. “⁠기사님은 한 번도 갈지 마십시오⁠.⁠”

“⁠그러면서 25분이요⁠?⁠”

“⁠물약은 사십 분을 버팁니다⁠. 25분에 닿으면 십오 분이 남습니다⁠. 피 흘리는 헌터가 손을 떨면서 파우치를 따는 데 그 정도는 걸립니다⁠. 저는 그 십오 분을 사는 겁니다⁠.⁠”

“⁠그 십오 분⁠, 기사 무릎에서 떼 오는 거잖아요⁠.⁠”

“⁠기사님 길로 가면 됩니다⁠. 기사님이 증명했습니다⁠.⁠”

증명이라는 말이 무릎보다 아팠다⁠. 나는 입구까지 남은 이백 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입구 계단에 올라서자 기사들이 일어섰다⁠. 턱수염 기사가 「⁠25분 안⁠」 무더기를 내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24분 50초⁠.⁠” 내가 말했다⁠.

계단에 한숨과 환호가 동시에 터졌다⁠. 컵라면 스물세 개가 열한 명 품으로 옮겨 갔다⁠. 차정우 팀장은 조끼를 벗어 팔에 걸고 기사들 앞에 섰다⁠.

“⁠25분은 그대로 갑니다⁠.⁠” 웅성거림이 커졌다⁠. 차정우 팀장이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8층 이상 묶음 배차는 오늘부터 두 건까지로 줄입니다⁠. 세 건 묶음은 앱에서 막겠습니다⁠.⁠”

“⁠두 건이면 다리가 안 아파요⁠?⁠” 턱수염 기사가 외쳤다⁠.

“⁠덜 아픕니다⁠.⁠”

“⁠덜 아픈 걸로 월세 냅니까⁠?⁠”

차정우 팀장은 대답하지 않고 운영실로 걸어갔다⁠. 왼쪽 다리를 감추지 않고 끌었다⁠. 운영실 유리벽 너머로 차정우 팀장이 의자에 앉아 무릎에 얼음주머니를 올리는 것이 보였다⁠. 구석 텔레비전에서는 추석 연휴 던전 헌터 부상이 지난해보다 크게 줄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앵커는 배송 시간이 짧아진 효과라고 말했다⁠. 화면 아래로 「⁠국회 던전 노동법 공청회 10월 7일⁠」 자막이 지나갔다⁠.

휴대전화가 떨었다⁠. 태산 씨였다⁠. 「⁠형님 이겼어요⁠? 진솔이가 25분 안에 걸어서 컵라면 받는대요⁠」⁠. 진솔 씨는 4층 쉼터에서 단톡방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몰랐다⁠. 헌터 게시판에는 이미 「⁠던집 팀장 직접 뜀⁠」이라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대기실에서 길수 형님이 목발을 옆에 세워 두고 앉아 있었다⁠. 형님은 운영실 유리벽을 보고 있었다⁠.

“⁠형님⁠, 팀장님 무릎 보호대 보셨어요⁠? 엄청 오래된 거던데요⁠.⁠”

“⁠2021년이야⁠.⁠” 형님이 말했다⁠. “⁠센터 처음 열 때 기사들한테 하나씩 나눠 준 거⁠. 지금은 안 나와⁠.⁠”

“⁠기사들한테요⁠?⁠”

형님이 입을 다물었다⁠. 손바닥으로 목발 손잡이를 쓸었다⁠. 대답하기 싫은 얼굴이었고⁠, 대답을 아는 얼굴이었다⁠.

“⁠팀장님 기사였어요⁠?⁠”

“⁠내 입으로는 못 한다⁠.⁠” 형님이 휴대전화를 꺼내 단톡방을 열었다⁠. 엄지가 화면 위에서 오래 멈췄다가 움직였다⁠. 「⁠오늘 밤 아홉 시⁠. 쉼터 사람들 다 들어올 것⁠. 25분 얘기 아님⁠. 노조 얘기임 — 방장⁠」

형님이 보내기를 눌렀다⁠. 단톡방 숫자가 순식간에 올라갔다⁠. 백열두 명 중 아흔 명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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