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36자)

뽁뽁이 한 장이면 4층 통과

헌터 전용 택배 기사 · 윤바로

9월 7일 화요일 아침⁠, 옥련동 원룸 건물 3층 계단을 내려가는데 무릎에서 뽁 소리가 났다⁠. 왼쪽이었다⁠. 한 칸 더 내려가자 오른쪽에서도 났다⁠. 1층 현관 앞에서 집주인 할머니가 화분에 물을 주다가 고개를 들었다⁠.

“⁠총각⁠, 무릎에서 소리가 나네⁠.⁠”

“⁠관절이 출근 인사하는 거예요⁠.⁠”

“⁠월세는 인사 안 하던데⁠.⁠” 할머니가 물뿌리개를 내려놓았다⁠. “⁠던전 일 한다며⁠. 계단 뛰는 거⁠. 우리 건물 계단으로 연습하고 가요⁠. 하루 열 번⁠.⁠”

“⁠할머니⁠, 그럼 무릎이 월세보다 먼저 나가요⁠.⁠”

할머니는 웃지 않고 화분에 물을 마저 부었다⁠. 물이 흙에 스미는 소리가 났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정류장까지 뛰었다⁠. 뛰면서 무릎을 셌다⁠. 왼쪽⁠, 오른쪽⁠, 왼쪽⁠. 소리가 나지 않는 걸음이 더 많았다⁠.

*

아홉 시 사십오 분⁠, 4층 계단 밑 쉼터에 삼각김밥 파티가 서 있었다⁠. 태산 씨는 방패를 등에 메고⁠, 진솔 씨는 휴대전화 짐벌을 들고⁠, 고을 씨는 어제 못 뜯은 삼각김밥 포장을 드디어 뜯어 우물거리고 있었다⁠. 내 단말기에는 6층 배송이 떠 있었다⁠. 물약 한 병⁠, 받는 사람은 6층 북쪽 굴의 다른 파티였다⁠.

“⁠형님⁠, 저희는 형님 엉덩이만 봅니다⁠.⁠”

“⁠엉덩이 말고 발을 봐요⁠. 제가 디딘 데만 디뎌요⁠.⁠”

헌터들이 다니는 큰 계단은 5층 큰 방 셋을 지나야 6층으로 내려갔다⁠. 방마다 몬스터가 있었고⁠, 헌터는 방을 하나씩 치우며 내려갔다⁠. 기사들은 큰 계단 옆 바위틈에 난 좁은 계단으로 다녔다⁠. 던전이 처음 열렸을 때 조사단이 쓰던 옛 계단이었고⁠, 기사들은 기사 계단이라고 불렀다⁠. 어깨 넓이가 겨우 나오는 틈이라 몬스터도 잘 안 들어왔다⁠.

태산 씨가 틈 앞에서 멈췄다⁠.

“⁠형님⁠, 이거 사람 다니는 길 맞아요⁠?⁠”

“⁠기사 다니는 길이요⁠.⁠”

태산 씨가 몸을 옆으로 돌려 틈에 들어갔다⁠. 어깨 갑옷이 바위에 긁히는 소리가 끽 났고⁠, 세 칸 내려가서 방패가 끼었다⁠. 앞으로도 뒤로도 안 움직였다⁠. 진솔 씨가 짐벌을 들이밀었다⁠.

“⁠우리 탱커가 던전에 박혔습니다⁠. 구독 누르고 탱커 꺼내 주세요⁠.⁠”

“⁠진솔아⁠, 찍지 말고 당겨⁠.⁠”

고을 씨가 삼각김밥을 입에 문 채 태산 씨 허리띠를 잡고⁠, 나는 아래에서 방패 모서리를 비틀었다⁠. 셋이 한 번에 힘을 주자 방패가 빠지면서 태산 씨가 나를 깔고 앉았다⁠. 내 무릎 보호대가 돌에 박히는 소리가 났다⁠. 셋이 낑낑대는 동안에도 단말기는 착실하게 돌았다⁠.

「⁠남은 시간 19⁠:02⁠」

6층 계단 끝 굴 입구에서 나는 손바닥을 펴서 셋을 세웠다⁠. 천장에서 뭔가 바스락거렸다⁠.

“⁠박쥐는 십오 분마다 천장에서 내려와요⁠. 막 한 바퀴 돌았으니까 여기서 기다려요⁠. 숨도 크게 쉬지 마요⁠. 소리 따라와요⁠.⁠”

“⁠몇 분이요⁠?⁠” 고을 씨가 속삭였다⁠.

“⁠사 분이요⁠.⁠”

넷이 바위 구멍에 끼어 앉아 사 분을 기다렸다⁠. 진솔 씨는 숨을 참다가 사 분 동안 세 번 터뜨렸고⁠, 터질 때마다 태산 씨가 갑옷 손으로 진솔 씨 입을 막았다⁠. 갑옷 손바닥은 차가웠는지 진솔 씨가 끼익 소리를 냈다⁠. 박쥐 떼가 검은 천처럼 머리 위를 쓸고 지나갔다⁠. 날개 바람에 반창고 끝이 들썩였다⁠. 바람이 지나가고 굴이 조용해졌을 때 나는 일어났다⁠.

“⁠가요⁠.⁠”

6층 북쪽 굴에 물약을 놓았을 때 단말기는 「⁠남은 시간 06⁠:10⁠」이었다⁠. 삼각김밥 파티는 6층 바닥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태산 씨가 바닥에 엎드려 돌에 입을 맞추려다 고을 씨에게 뒷덜미를 잡혔다⁠.

“⁠형님⁠, 저희 이제 형님 단골이에요⁠. 평생 단골⁠.⁠”

“⁠평생은 무릎이 안 돼요⁠. 삼 년만 해요⁠.⁠”

고을 씨가 처음으로 길게 입을 열었다⁠. “⁠기사님⁠, 들고 오신 물약 남는 거 있으면 저희도 하나만요⁠. 돈은 드릴게요⁠.⁠”

“⁠주문은 앱으로 해요⁠. 제 배낭에 든 건 다 주인이 있어요⁠. 주인 없는 물약 들고 다니면 그게 바로 벌금이에요⁠.⁠”

*

9월 8일 수요일⁠, 4층 정각을 또 만났다⁠. 이번에는 배차가 아니라 내 탓이었다⁠. 3층 계단참에서 운동화 끈이 풀렸고⁠, 끈을 묶는 동안 열한 시가 왔다⁠.

빨간 두건이 나왔다⁠. 두건이는 오늘도 몽둥이를 들고 노란 눈을 끔뻑였다⁠. 나는 상자를 안고 계단을 뛰었다⁠. 세 칸째에서 맨 위 상자 귀퉁이가 바위에 찢어지면서 안에 감아 둔 뽁뽁이가 한 장 삐져나왔다⁠. 뽁뽁이가 계단에 떨어졌고⁠, 두건이가 뽁뽁이를 밟았다⁠.

뽁⁠.

두건이가 멈췄다⁠. 한 발을 들고⁠, 내려다보고⁠, 다시 밟았다⁠. 뽁⁠. 노란 눈이 커졌다⁠. 두건이는 몽둥이를 계단에 내려놓고 쪼그려 앉아 뽁뽁이를 두 손으로 집어 들었다⁠. 손가락 끝으로 한 알을 눌렀다⁠. 뽁⁠. 두건이 얼굴에 볕보다 환한 것이 떠올랐다⁠.

바위틈에서 초록 머리가 셋 더 나왔다⁠. 셋 다 몽둥이를 든 채 두건이 손을 쳐다보았다⁠. 나는 숨을 죽이고 상자를 내려놓았다⁠. 찢어진 상자에서 뽁뽁이를 한 장 더 꺼내 계단에 깔았다⁠. 고블린 넷이 동시에 몽둥이를 내려놓았다⁠.

뽁⁠. 뽁뽁⁠. 뽁⁠.

빛 우물 아래 돌계단에서 초록 고블린 넷이 햇볕을 쬐며 뽁뽁이를 터뜨렸다⁠. 나는 상자를 다시 안고 고블린들 옆을 지나갔다⁠. 두건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몽둥이 대신 뽁뽁이를 든 손을 한 번 흔들었다⁠. 아는 사람에게 하는 손짓이었다⁠.

수요일 오후 나는 물류센터 포장실에서 남은 뽁뽁이를 한 아름 얻어 조끼 주머니마다 접어 넣었다⁠. 포장실 아주머니가 왜 가져가냐고 물었다⁠.

“⁠고블린 통행료요⁠.⁠”

아주머니는 나를 한참 보다가 뽁뽁이를 한 롤 더 주었다⁠.

*

9월 9일 목요일⁠, 길수 형님이 대기실에서 휴대전화를 눈앞에 바짝 대고 물때표를 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인천 오늘 만조 14⁠:12⁠」가 떠 있었다⁠.

“⁠형님 낚시 다니세요⁠?⁠”

“⁠9층 다니지⁠.⁠” 길수 형님이 화면을 내게 내밀었다⁠. “⁠9층은 송도 앞바다랑 같이 숨 쉬어⁠. 밀물이면 계단 아래까지 바닷물이 차⁠. 만조 앞뒤 한 시간은 9층 가는 배차 받으면 무릎까지 젖는다⁠. 9층 배송 붙으면 물때표부터 봐⁠.⁠”

“⁠바다가 지하 9층까지 와요⁠?⁠”

“⁠던전 생긴 자리가 갯벌 메운 땅이야⁠. 바다가 원래 자기 땅이라고 들어오는 거지⁠.⁠”

목요일 오후 삼각김밥 파티는 내 배송 길을 따라 8층까지 내려갔다⁠. 4층은 뽁뽁이로⁠, 5층은 기사 계단으로⁠, 6층은 박쥐 사이 사 분으로⁠, 7층은 베테랑이 알려 준 마른 굴로 지났다⁠. 8층 계단 홀은 돌기둥이 숲처럼 서 있는 넓은 방이었다⁠. 기둥 하나에 마른 국화 한 다발이 노끈으로 묶여 있었다⁠. 꽃잎이 바래서 종이처럼 보였다⁠. 누가 묶었는지 물으려다 단말기를 보았다⁠.

「⁠남은 시간 07⁠:20⁠」

8층까지 이십이 분 사십 초였다⁠. 태산 씨가 방패를 바닥에 내려놓고 두 팔을 들었다⁠.

“⁠삼각김밥 파티⁠, 8층 도착⁠!⁠”

진솔 씨는 태산 씨의 만세를 찍어 밤에 헌터 커뮤니티에 올렸다⁠. 영상 제목은 「⁠금발 택배 형님 따라 8층 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조회수가 십만을 넘었다⁠. 댓글 맨 위에는 「⁠저 형님 어느 플랫폼임⁠?⁠」⁠, 두 번째 줄에는 「⁠4층 고블린이 뽁뽁이 터뜨리는 거 실화냐⁠」가 달려 있었다⁠. 내 단말기에는 「⁠지정 기사 요청⁠」 알림이 열네 개 쌓였다⁠. 던집 앱에는 지정 기능이 없었는데도 헌터들은 요청 사항 칸에 「⁠금발 형님으로 부탁해요⁠」를 써 넣었다⁠.

*

9월 10일 금요일 아침 일곱 시⁠, 대기실 텔레비전 대신 휴대전화 하나에 기사 다섯이 머리를 모으고 있었다⁠. 진솔 씨 영상이었다⁠. 화면 속 내가 빛 우물 아래에서 고블린 넷 사이를 지나가자 누가 휘파람을 불었다⁠. 다른 누가 혀를 찼다⁠.

“⁠신입⁠, 뽁뽁이 그거 어디서 배웠어⁠?⁠”

턱수염을 기른 기사가 물었다⁠. 9층 배송을 삼 년 했다는 사람이었다⁠. 말은 물었는데 얼굴은 묻는 얼굴이 아니었다⁠.

“⁠배운 게 아니라 고블린이 밟았어요⁠. 우연이요⁠.⁠”

“⁠우연을 영상으로 올리면 우연이 아니지⁠.⁠” 턱수염 기사가 휴대전화를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여기는 한 사람이 빨라지면 다 같이 시간이 줄어⁠. 지상에서도 그랬잖아⁠. 잘 뛰는 애 하나 들어오면 다음 달 구역이 넓어지고⁠.⁠”

“⁠에이⁠, 설마요⁠. 고블린 통행료 정도로 무슨⁠…⁠…⁠.⁠”

길수 형님이 파스를 붙이다 말고 나를 보았다⁠. 웃음기가 없었다⁠.

“⁠설마가 우리 무릎 다 가져갔어⁠.⁠”

대기실이 조용해졌다⁠. 냉장고 모터 소리만 웅웅 울렸다⁠. 나는 웃으며 조끼 지퍼를 올렸다⁠. 조끼 주머니에서 뽁뽁이 한 알이 눌려 뽁 소리를 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

같은 날 아홉 시⁠, 차정우 팀장이 나를 운영실로 불렀다⁠. 운영실 큰 화면에 송도 던전 지도가 떠 있었다⁠. 하얀 줄이 수백 개 엉켜 있었고⁠, 하얀 줄 사이로 주황 줄 하나가 또렷하게 빛났다⁠. 주황 줄 끝에 「⁠도마루 — 8층 22분 40초⁠」가 붙어 있었다⁠.

“⁠어제 8층 배송 때 헌터 셋이 기사님 뒤에 붙어 있었습니다⁠.⁠” 차정우 팀장이 화면을 가리켰다⁠. “⁠단말기 위치에 헌터 셋의 협회 단말기가 같이 찍혀 있습니다⁠. 동행 금지 공지 보셨지요⁠.⁠”

“⁠동행 안 했어요⁠. 같은 길로 걸었어요⁠.⁠”

“⁠같은 길로 걸으면 동행입니다⁠.⁠”

“⁠계단이 하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요⁠. 따로 걸으려면 한 명은 벽 타고 내려가요⁠?⁠”

차정우 팀장이 초시계를 눌렀다⁠. 딸깍⁠.

“⁠기사님 뒤에서 헌터가 다치면 누가 소송을 당합니까⁠?⁠”

“⁠헌터가 자기 발로 걸어왔는데요⁠?⁠”

“⁠법정에서는 그렇게 정리가 안 됩니다⁠.⁠” 차정우 팀장 목소리가 반 박자 느려졌다⁠. “⁠기사님이 앞장선 길이었다는 말 한 줄이면 기사님이 피고석에 앉습니다⁠. 던집은 거기 같이 앉지 않습니다⁠. 기사님은 개인사업자니까요⁠.⁠”

나는 차정우 팀장의 얼굴을 보았다⁠. 화를 내는 얼굴이 아니었다⁠. 아는 얼굴이었다⁠.

“⁠팀장님은 그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대답 대신 초시계가 한 번 더 딸깍 울었다⁠. 차정우 팀장은 화면의 주황 줄을 손가락으로 따라 내려갔다⁠. 4층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4층 정각을 어떻게 지나갔습니까⁠? 어제 열한 시 정각에 지났는데 속도가 줄지 않았습니다⁠.⁠”

“⁠영업 비밀이요⁠.⁠”

“⁠기사님은 개인사업자니까 영업 비밀이 있으실 수 있습니다⁠.⁠” 차정우 팀장이 처음으로 입꼬리를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웃음이라고 하기엔 짧았다⁠. “⁠이 길⁠, 좋습니다⁠.⁠”

운영실 구석 텔레비전에서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던전 노동법 공청회를 다음 달 연다는 뉴스가 흘렀다⁠. 화면 아래 자막에 「⁠전국 던전 배송 기사 약 4천 명⁠, 대부분 개인사업자⁠」가 지나갔다⁠. 나는 운영실을 나오며 조끼 주머니의 뽁뽁이를 손으로 눌렀다⁠. 소리가 나지 않게 살살 눌렀다⁠.

*

금요일 밤 열한 시⁠, 원룸 침대에 누워 무릎에 얼음팩을 올려놓고 있는데 단말기가 띵동 울었다⁠.

「⁠추석 연휴 특별 운영 안내⁠! 던집이 기사님들의 길을 연구했어요⁠. 오늘부터 ‘⁠던집 추천 경로⁠’를 따라가면 지하 8층까지 25분이면 충분해요⁠. 9월 15일부터 8층 이상 배송은 목표 시간 25분으로 바뀝니다⁠. 우리 함께 더 빨라져요⁠!⁠」

공지 아래 지도가 붙어 있었다⁠. 4층에서 빛 우물 옆으로 붙고⁠, 5층에서 바위틈으로 빠지고⁠, 6층 굴 입구에서 한 번 멈추는 주황 줄이었다⁠. 오늘 아침 운영실 화면에서 본 줄이었다⁠. 내 줄이었다⁠.

얼음팩이 무릎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휴대전화가 연달아 떨었다⁠. 길수 형님이 기사 단톡방에 나를 초대했다는 알림⁠, 그리고 단톡방 첫 화면에 올라온 말이었다⁠.

「⁠25분 이거 누구 길이냐⁠」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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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책상2026.11.06· 2화

    고블린이 몽둥이 내려놓고 뽁뽁이 터뜨리는 장면 너무 귀여워요. 근데 마루가 뛴 길이 바로 「추천 경로」랑 25분 목표가 되는 거 보고 소름 돋았어요. 배달 앱 쓰는 사람이면 다 아는 느낌이에요.

    • 윤바로작가2026.11.06

      내가 찾은 지름길이 다음 주에는 남의 시계가 되는 일이에요. 마루가 그 시계를 어떻게 돌려받는지 계속 봐 주세요.

뽁뽁이 한 장이면 4층 통과 · 헌터 전용 택배 기사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