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10자)

공청회에 보존식을 들고 갔다

던전 급식 조리사 · 윤바로

4월 29일 목요일 새벽 여섯 시⁠, 급식소 부엌 바닥에서 봉춘이 아이스박스에 드라이아이스를 채우고 있었다⁠. 파란 장갑 위에 목장갑을 한 겹 더 꼈다⁠. 드라이아이스 덩이를 집을 때마다 하얀 연기가 장갑 사이로 흘러내렸다⁠.

“⁠반장님⁠, 두 개 다 넣었습니다⁠. 4/22 두레 하나⁠, 용태 씨 거 하나⁠. 이름표도 붙였습니다⁠.⁠”

아이스박스 안에서 봉지 두 개가 드라이아이스 사이에 누워 있었다⁠. 하나에는 「⁠4/22 두레 A — 보존식⁠」⁠, 하나에는 「⁠4/22 두레 B — 하용태 잔반⁠」⁠. 봉춘의 글씨는 크고 삐뚤었다⁠. 「⁠잔반⁠」 두 글자만 유난히 또박또박했다⁠.

“⁠144시간 지났는데 안 버렸다고 협회에서 뭐라 하면 어떡합니까⁠?⁠”

“⁠144시간은 최소예요⁠. 더 두는 건 괜찮아요⁠.⁠”

“⁠아⁠.⁠” 봉춘이 뚜껑을 닫았다⁠. “⁠반장님⁠, 저도 공청회 가 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점심 이백 식은 누가 해요⁠?⁠”

봉춘이 아이스박스 뚜껑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소원을 접는 손길이었다⁠. “⁠다녀오세요⁠. 제가 분홍 끼고 하겠습니다⁠.⁠”

“⁠고기는 파랑⁠.⁠”

“⁠고기 할 때만 파랑⁠.⁠”

*

한 시 사십 분⁠, 헌터협회 회관 승강기 안에서 도윤이 태분의 아이스박스를 내려다보았다⁠. 승강기에는 둘뿐이었다⁠. 층수 숫자가 하나씩 올라갔다⁠.

“⁠그 안에 뭐가 있습니까⁠?⁠”

“⁠도시락이요⁠.⁠”

“⁠드시려고요⁠?⁠”

“⁠보여 주려고요⁠.⁠”

도윤이 층수 숫자를 올려다보았다⁠. “⁠제 자료를 뒤집으시겠다는 겁니까⁠?⁠”

“⁠이사님 자료 중에 온도는 맞아요⁠. 하한도 맞고요⁠. 사람 숫자만 틀렸어요⁠.⁠”

“⁠사람 숫자가 틀리면 나머지 숫자도 다시 따져야 합니다⁠. 사람이 늘면 하한 사천 원으로는 안 됩니다⁠.⁠”

“⁠그건 이사님이 따지세요⁠. 난 85도만 따져요⁠.⁠”

승강기 문이 열렸다⁠. 도윤이 먼저 내리지 않고 열림 단추를 눌러 주었다⁠. 태분은 아이스박스를 들고 먼저 내렸다⁠. 등 뒤에서 도윤이 한마디를 보탰다⁠. “⁠드라이아이스는 회의실 안에서 열지 마십시오⁠. 연기 납니다⁠.⁠”

*

오후 두 시⁠, 헌터협회 회관 3층 대회의실은 의자가 모자랐다⁠. 앞줄에 큰 길드 대표들이 앉았다⁠. 맨 가운데 헌터 천 명을 거느린 흑랑의 대표가 말끔한 회색 양복을 입고 다리를 꼬고 있었다⁠. 뒷줄에는 작은 길드 대장들이 앉았다⁠. 반딧불 대장은 가죽 갑옷 위에 앞치마를 두른 채 왔다⁠. 벽 앞에는 기자 몇이 사진기를 들고 섰다⁠. 두레마수가공 대표는 업계 대표석에 앉아 태분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다⁠.

단상 옆에 주선애가 섰다⁠. 남색 정장⁠, 클립보드⁠, 협회 측정기⁠.

청운 자리에는 도윤과 태분이 나란히 앉았다⁠. 도윤 앞에 태블릿⁠, 태분 발치에 아이스박스⁠. 맨 뒷줄 벽 앞에 1공략대 훈련복을 입은 준기가 서 있었다⁠. 현장 헌터 의견 순서에 이름이 올라 있었다⁠. 준기는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임에 아무 뜻도 실려 있지 않았다⁠.

*

첫 발언은 흑랑 대표였다⁠.

“⁠끼니 식품비 하한 사천 원은 시장을 모르는 숫자입니다⁠. 저희는 삼천 원 외주로 헌터 천 명을 먹입니다⁠. 하한을 삼천 원으로 내리면 길드마다 한 해 수억 원을 아낍니다⁠. 그 돈으로 헌터 장비를 삽니다⁠.⁠”

뒷줄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도윤이 손을 들었다⁠. 주선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흑랑이 삼천 원으로 버티시는 건 헌터가 천 명이라서입니다⁠. 천 명이면 업체가 값을 깎아 줍니다⁠. 헌터 열둘인 길드에는 아무도 안 깎아 줍니다⁠.⁠” 도윤이 태블릿 화면을 단상 화면에 띄웠다⁠. 큰 길드와 작은 길드의 끼니 원가가 막대 두 개로 나란히 떴다⁠. “⁠하한이 삼천 원이면 큰 길드가 그 숫자로 시장을 끌고 내려가고⁠, 작은 길드는 따라 내려가다 바닥이 꺼집니다⁠. 2025년 백야가 그렇게 꺼졌습니다⁠. 사천 원은 바닥입니다⁠.⁠”

흑랑 대표가 다리를 풀었다⁠. 반딧불 대장이 뒷줄에서 앞치마 주머니의 계산기를 꼭 쥐었다⁠. 태분은 도윤의 옆얼굴을 보았다⁠. 이 사람이 숫자로 싸울 때는 태분과 같은 편일 때도 있었다⁠.

“⁠하한 사천 원은 초안대로 갑니다⁠.⁠” 주선애가 클립보드에 적었다⁠. “⁠다음⁠, 조리 인력 기준⁠. 청운 급식소 사례를 근거로 조리원 1인당 하루 250식입니다⁠.⁠”

도윤이 태블릿을 넘겼다⁠. “⁠청운 급식소는 석 주 동안 하루 오백 식을 조리원 두 명이 냈습니다⁠. 급식소 밥에서 난 사고는 없습니다⁠.⁠”

“⁠현장 조리사 의견 듣겠습니다⁠. 청운 급식소 엄태분 조리사님⁠.⁠”

*

태분은 아이스박스를 들고 단상으로 나갔다⁠. 뚜껑을 열자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하얗게 쏟아져 단상 바닥을 덮었다⁠. 앞줄 큰 길드 대표 하나가 의자를 뒤로 뺐다⁠. 청운 자리에서 도윤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열지 말라던 뚜껑이 단상 한가운데서 열려 있었다⁠.

“⁠몬스터 냄새입니까⁠?⁠”

“⁠드라이아이스예요⁠.⁠”

기자 사진기가 일제히 번쩍였다⁠. 태분은 연기 속에서 봉지 두 개를 꺼내 단상 탁자에 나란히 놓았다⁠. 주선애에게 측정기를 빌려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주선애가 측정기를 건넸다⁠. 무겸 것보다 두 배 큰 협회 측정기였다⁠.

“⁠4월 22일 두레마수가공 도시락이에요⁠. 왼쪽은 그날 아침 제가 검수하면서 떠 둔 보존식이고⁠, 오른쪽은 6층에서 쓰러진 헌터가 반 먹다 남긴 거예요⁠. 동기 헌터가 등짐에 넣어 들고 올라왔어요⁠.⁠”

측정기를 왼쪽 봉지에 댔다⁠. 유리판이 맑았다⁠. 오른쪽 봉지에 댔다⁠. 유리판 한가운데 보랏빛이 진하게 차올랐다⁠. 앞줄에서 누가 “⁠어⁠” 하고 소리를 냈다⁠. 두레 대표가 고개를 숙였다⁠.

“⁠같은 날⁠, 같은 업체⁠, 공장 라인만 달라요⁠. 저는 그날 예순 개 중 하나를 열었어요⁠. 하나 연 게 A라인이었어요⁠.⁠”

태분은 측정기를 주선애에게 돌려주었다⁠.

“⁠250식이면 예순 개 중에 하나밖에 못 열어요⁠. 하나 열어서 B라인을 놓쳤어요⁠. 사고 없는 석 주는 운이 좋았던 석 주예요⁠. 학교 급식실은 초등학교가 백오십 명에 한 사람이에요⁠. 학생보다 헌터가 덜 먹지는 않잖아요⁠.⁠”

뒷줄에서 웃음이 조금 났다⁠. 태분은 웃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두 가지만 넣어 주세요⁠. 업체 도시락은 라인마다 따로 검수하고⁠, 업체도 라인마다 보존식을 떠서 협회가 볼 수 있게 할 것⁠. 그리고 조리원 숫자는 사고 안 난 숫자 말고 검수할 수 있는 숫자로 정할 것⁠.⁠”

태분은 반딧불 대장을 보았다⁠. 대장이 앞치마 자락을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더요⁠. 헌터 열둘인 길드 조리원은 누가 대 줘요⁠? 기준을 만들면 그것도 같이 정해 주세요⁠.⁠”

주선애의 볼펜이 한참 움직였다⁠. 도윤은 태블릿을 내려다본 채 엄지를 움직이지 않았다⁠.

*

“⁠현장 헌터 의견⁠. 청운 1공략대 신입 대표 엄준기 씨⁠.⁠”

준기가 맨 뒷줄에서 걸어 나왔다⁠. 단상까지 걷는 동안 의자 사이 통로가 길었다⁠. 준기는 단상 앞에 서서 초안 부록 3이 띄워진 화면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자기 이름과 4월 2일이 크게 떠 있었다⁠.

“⁠부록 3 의견서는 제가 서명했습니다⁠.⁠” 준기의 목소리가 처음엔 작았다⁠. “⁠보스 공략 명단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250이 뭔지 모르고 했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250은 저희 급식소 조리사님 손목에 붙은 파스 네 장입니다⁠. 4월 22일에 제 동기가 B라인 도시락을 먹고 6층에서 쓰러졌을 때⁠, 조리사님은 예순 개 중 한 개밖에 못 열어 보신 걸 자기 탓으로 아셨습니다⁠.⁠” 준기가 숨을 골랐다⁠. “⁠의견서를 거둬들이겠습니다⁠. 청운 급식소는 현 인력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앞줄에서 흑랑 대표가 웃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조리사님이 어머니신가 보네⁠. 어머니가 시키셨나⁠?⁠”

“⁠엄마는 시킨 적 없습니다⁠.⁠” 준기가 흑랑 대표를 똑바로 보았다⁠. “⁠엄마는 제 자리는 제가 정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했습니다⁠.⁠”

기자 사진기가 다시 번쩍였다⁠. 태분은 단상 옆 자리에서 아이스박스 뚜껑을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뚜껑 틈으로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가늘게 새어 나왔다⁠.

*

네 시⁠, 주선애가 결정을 읽었다⁠.

“⁠몬스터 고기 조리 온도⁠, 85도 삼 분은 초안대로 갑니다⁠. 업체 도시락 라인별 검수와 업체 보존식 공개 조항을 새로 넣습니다⁠. 끼니 식품비 하한 사천 원은 초안대로 갑니다⁠.⁠” 주선애가 클립보드를 넘겼다⁠. “⁠조리 인력 기준은 보류합니다⁠. 청운 사례가 근거였는데⁠, 근거가 된 현장에서 다른 말이 나왔습니다⁠. 5월 중에 현장을 다시 보고 정하겠습니다⁠. 청운 보스 공략이 5월 6일이지요⁠? 그날 급식소에 가서 직접 보겠습니다⁠.⁠”

흑랑 대표가 먼저 일어나 나갔다⁠. 반딧불 대장이 뒷줄에서 태분에게 계산기를 흔들어 보였다⁠.

회의실을 나서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봉춘이었다⁠.

“⁠반장님⁠, 점심 이백 식 다 나갔습니다⁠. 85도 삼 분 하나도 안 빼먹었습니다⁠. 장갑도 갈았습니다⁠.⁠”

“⁠잘했어요⁠.⁠”

“⁠그리고 국은 100도까지 끓였습니다⁠.⁠” 봉춘의 목소리가 자랑스러웠다⁠. “⁠온도계로 쟀습니다⁠. 끓는 국에 온도계 꽂는 사람은 저밖에 없을 겁니다⁠.⁠”

“⁠있어요⁠. 학교 급식실에⁠.⁠”

“⁠아⁠.⁠” 봉춘이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럼 저도 급식실 사람입니까⁠?⁠”

태분은 대답하는 대신 웃었다⁠. 복도 끝 창가에 도윤과 준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웃음이 입가에서 멎었다⁠.

*

복도 끝 창가에서 도윤이 준기 앞에 섰다⁠. 태분은 몇 걸음 뒤에서 아이스박스를 든 채 멈췄다⁠. 도윤은 태블릿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엄준기 씨⁠. 보스 공략 명단에서 빠집니다⁠. 수습 평가는 보류합니다⁠. 공청회에서 길드가 낸 자료를 뒤집은 건 사내 규정으로 징계 사유입니다⁠.⁠”

“⁠알겠습니다⁠.⁠”

“⁠징계 사유인 걸 알고 하셨습니까⁠?⁠”

“⁠알고 했습니다⁠.⁠”

도윤이 준기를 한참 보았다⁠. 계산기를 켜지 않았다⁠. 도윤은 태분에게 고개를 돌렸다⁠.

“⁠조리사님이 이기신 게 아닙니다⁠. 인력 기준이 보류됐으니 급식소 사람은 그대로입니다⁠. 다음 주 목요일 새벽⁠, 공략대 서른 명이 큰어미한테 내려갑니다⁠. 오백 식도 그대로 나갑니다⁠.⁠”

“⁠알아요⁠.⁠”

도윤이 주머니에서 삼각김밥을 꺼냈다⁠. 비닐을 뜯다 말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서서 먹지 않고 걸어 나갔다⁠.

*

밤 열한 시⁠, 급식소 불을 끄기 전에 준기가 뒷문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문틀을 넘어 부엌 바닥까지 들어왔다⁠. 노란 테이프 바로 앞에서 운동화 앞코를 맞추고 멈춰 섰다⁠.

“⁠엄마⁠, 나 보스에서 빠졌어⁠.⁠”

“⁠알아⁠. 들었어⁠.⁠”

“⁠용태가 문자 했어⁠. 「⁠잘했다⁠, 근데 바보냐⁠?⁠」⁠” 준기가 웃다가 말았다⁠. “⁠용태는 지난주에 손에 불 다시 붙었다고 단톡방에 영상 올렸다가 2공략대장님한테 혼났대⁠. 나는 이제 수습도 보류야⁠. 다음 주 목요일엔 할 일이 없어⁠.⁠”

태분은 창고 선반에서 하늘색 앞치마 하나를 꺼냈다⁠. 새것이라 접힌 자국이 반듯했다⁠. 앞치마를 준기 가슴에 대 보았다⁠. 길이가 무릎까지 왔다⁠.

“⁠그럼 그날 너 내 밑에서 일해⁠. 새벽 세 시⁠.⁠”

“⁠뭐 하는데⁠?⁠”

“⁠비늘 육십 장 벗겨⁠.⁠” 태분이 분홍 장갑 한 켤레를 앞치마 주머니에 꽂아 주었다⁠. “⁠노란 줄 넘을 땐 장갑 갈고⁠.⁠”

준기가 앞치마를 내려다보았다⁠. 테이프 앞에 멈춰 있던 발이 노란 줄을 넘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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