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30자)

라면만 끓이는 길드

던전 급식 조리사 · 윤바로

4월 23일 금요일 아침 일곱 시⁠, 아침 배식이 끝난 급식소 배식대 앞에 도윤이 섰다⁠. 태분이 불러서 온 것이었다⁠. 태분은 휴대전화 화면을 도윤 앞에 내밀었다⁠. 협회 초안 세 번째 장이었다⁠.

“⁠조리원 1인당 하루 250식⁠. 이거 어디서 나온 숫자예요⁠?⁠”

“⁠청운 급식소입니다⁠. 오백 식을 두 분이 내십니다⁠.⁠”

“⁠해낸 게 아니라 버틴 거예요⁠.⁠”

“⁠버틴 것도 숫자입니다⁠.⁠” 도윤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조리사님이 버티신 석 주 동안 사고는 업체 도시락 하나였습니다⁠. 급식소 밥에서는 한 건도 없었습니다⁠.⁠”

“⁠그 석 주 동안 봉춘 씨 무릎 보호대가 두 개가 됐어요⁠.⁠”

“⁠무릎 보호대는 협회가 세지 않습니다⁠.⁠”

태분은 화면을 넘겼다⁠. 「⁠끼니 식품비 하한 4⁠,000원⁠」⁠. 손가락으로 숫자를 톡 쳤다⁠.

“⁠이건요⁠? 깎자던 사람이 하한을 넣었어요⁠?⁠”

“⁠흑랑 같은 큰 길드는 삼천 원짜리 외주를 씁니다⁠. 하한이 없으면 큰 길드가 삼천 원으로 시장을 깎고⁠, 작은 길드는 따라가다 무너집니다⁠. 사천 원 하한은 청운을 지키는 숫자입니다⁠. 청운 같은 길드를 지키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도윤이 처음으로 화면에서 눈을 들었다⁠. “⁠사천 원은 바닥입니다⁠. 바닥이 있어야 아무도 그 밑으로 안 떨어집니다⁠.⁠”

틀린 데가 없었다⁠. 태분은 화면을 한 장 더 넘겼다⁠. 부록 3⁠. 준기의 서명⁠.

“⁠애를 보스 자리로 샀어요⁠?⁠”

“⁠자리를 드렸습니다⁠. 준기 씨가 원한 자리입니다⁠.⁠” 도윤은 말을 고르지 않았다⁠. “⁠서명은 준기 씨가 직접 했습니다⁠. 의견서도 읽고 했습니다⁠.⁠”

“⁠스물두 살짜리가 그걸 읽으면 뭘 알아요⁠?⁠”

“⁠스물두 살에 백야 헌터들은 갈 데가 없어서 허가 없는 던전에 들어갔습니다⁠.⁠” 도윤이 휴대전화를 태분 손에 돌려주었다⁠. “⁠준기 씨는 갈 데를 고른 겁니다⁠.⁠”

도윤이 나갔다⁠. 태분은 배식대 위에 휴대전화를 엎어 놓았다⁠. 화면이 대리석 위에서 미끄러졌다⁠. 개수대 앞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봉춘이 다가와 파란 장갑 낀 손으로 휴대전화를 집어 화면이 위로 오게 뒤집어 놓았다⁠. 태분은 말없이 다시 엎었다⁠.

*

4월 24일 토요일 오전 열 시⁠, 태분은 뚝섬역 뒤 골목을 걸어 반딧불 길드를 찾았다⁠. 간판은 없었다⁠. 낡은 상가 반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벽에 매직으로 「⁠반딧불 — 헌터 12인⁠」이라고 쓴 종이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라면 냄새가 먼저 올라왔다⁠.

반지하 사무실 한 귀퉁이가 부엌이었다⁠. 가스버너 둘⁠, 양은 냄비 다섯⁠, 물약이 가득 찬 냉장고 하나⁠, 냉장고 옆에 중고 전자레인지⁠. 헌터 열둘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냄비째 라면을 먹고 있었다⁠. 첫 출근 날 청운 급식소 개수대에 포개져 있던 양은 냄비와 똑같은 냄비였다⁠.

“⁠조리사님이 여기까지 어떻게⁠…⁠…⁠.⁠” 반딧불 대장이 젓가락을 든 채 일어섰다⁠.

“⁠도시락 끊으신다길래 뭐 드시나 보러 왔어요⁠.⁠”

“⁠보시다시피요⁠.⁠”

대장이 의자를 하나 끌어다 주었다⁠. 태분은 앉지 않고 부엌을 한 바퀴 돌았다⁠. 전자레인지 문에 두레 도시락 뚜껑이 끼어 있었다⁠. 지난주까지 받던 칠천 원짜리 대신 이번 주부터 사천오백 원짜리를 받기로 한 증거였다⁠.

“⁠협회 기준 초안 보셨어요⁠?⁠”

“⁠봤습니다⁠. 끼니 사천 원 하한⁠.⁠” 대장이 라면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조리사님⁠, 저희는 그 기준이 무섭습니다⁠. 기준이 생기면 길드마다 급식을 기준대로 대야 협회 공략 허가를 제때 받는답니다⁠. 우리는 조리원 한 명 쓸 돈도 없어요⁠. 사천 원으로 열둘 먹이는 건 할 수 있어도 조리원 월급은 못 냅니다⁠.⁠”

“⁠그럼 기준이 없는 게 나아요⁠?⁠”

“⁠기준이 없으면 두레 같은 데가 B라인 도시락을 우리한테 팝니다⁠.⁠” 대장이 웃었다⁠. 웃는 입가가 떨렸다⁠. “⁠둘 다 무섭습니다⁠.⁠”

“⁠흑랑은요⁠?⁠”

“⁠흑랑은 공청회에서 하한을 삼천 원으로 내리자고 할 거랍니다⁠. 헌터 천 명 길드니까 천 원 내리면 하루에 삼백만 원이 남죠⁠.⁠” 대장이 앞치마 주머니에서 계산기를 꺼내 보여 주었다⁠. “⁠저도 이건 칠 줄 압니다⁠. 하한이 삼천 원이 되면 우리 같은 데는 그 밑에서 삽니다⁠.⁠”

태분은 냄비 하나를 들여다보았다⁠. 라면 국물 위에 달걀 하나가 반쯤 익은 채 떠 있었다⁠. 헌터 하나가 젓가락으로 노른자를 찔렀다⁠. 노른자가 흘러나와 국물에 풀렸다⁠.

“⁠달걀 몇 판 있어요⁠?⁠”

“⁠두 판이요⁠.⁠”

“⁠버너 두 개 다 켜요⁠. 냄비 제일 큰 거⁠.⁠”

십오 분 뒤 반지하 부엌에 달걀국 냄새가 퍼졌다⁠. 라면 스프 대신 멸치 한 줌과 파 한 단⁠, 대장이 냉장고 물약 사이에서 찾아낸 두부 반 모가 들어갔다⁠. 태분은 국자 대신 대장의 커다란 수저를 들었다⁠.

“⁠줄⁠!⁠”

헌터 열둘이 동시에 일어섰다⁠. 식판이 없어서 냄비 뚜껑을 들고 줄을 섰다⁠. 맨 앞 헌터가 뚜껑을 기울여 들었다⁠.

“⁠뚜껑 똑바로 들어⁠. 국 흘러⁠.⁠”

“⁠조리사님⁠, 여기 청운 아닌데요⁠.⁠”

“⁠국은 어디서나 흘러요⁠.⁠”

열두 명이 뚜껑에 달걀국을 받아 갔다⁠. 대장은 맨 뒤에 섰다⁠. 국을 받으며 대장이 낮게 말했다⁠.

“⁠공청회 가시면 조리원 숫자 말고⁠, 우리 같은 데 조리원은 누가 대 주는지도 물어봐 주십쇼⁠.⁠”

태분은 냄비 바닥을 수저로 긁어 대장의 뚜껑에 마지막 국을 부었다⁠. 두부 한 조각이 딸려 들어갔다⁠.

*

오후 세 시⁠, 급식소 부엌에 비린내와 단내가 섞인 냄새가 퍼졌다⁠. 봉춘이 국솥 하나에 성한 보라 비늘 여섯 장을 넣고 물을 끓이고 있었다⁠. 탐침이 85에서 깜빡였다⁠.

“⁠봉춘 씨⁠, 뭐 해요⁠?⁠”

“⁠대장님 말씀이 맞는지 보려고요⁠. 비늘 물⁠.⁠” 봉춘이 측정기를 솥 위에 댔다⁠. 유리판이 보랏빛으로 일렁이다 삼 분이 지나자 맑아졌다⁠. “⁠고기랑 똑같습니다⁠. 85도 삼 분⁠. 제 첫 대장님은 이걸 그냥 끓는 물에 대충 우려 드셨을 겁니다⁠. 그래서 사흘 가셨고요⁠.⁠”

태분은 솥 위에 고개를 숙였다⁠. 김에서 7층 멧돼지를 처음 수레에서 내렸을 때의 냄새가 났다⁠. 비늘 냄새가 고기 냄새보다 몇 배 짙었다⁠.

“⁠이걸 사람이 마셔요⁠?⁠”

“⁠제가 마셔 보겠습니다⁠.⁠” 봉춘이 국자를 들었다⁠.

“⁠봉춘 씨는 던전 못 내려가잖아요⁠. 마셔 봤자 멧돼지가 물지 안 물지 어떻게 알아요⁠?⁠”

봉춘이 국자를 든 채 멈췄다⁠. 뒷문이 열리고 무겸이 들어왔다⁠. 무겸은 솥을 보고⁠, 측정기를 보고⁠, 봉춘의 국자를 보았다⁠.

“⁠내일 1공략대가 7층 들어갑니다⁠. 지원자 셋을 받겠습니다⁠. 실패하면 셋이 사흘 쉬고⁠, 보스 공략에서 빠집니다⁠.⁠”

“⁠그걸 누가 지원해요⁠?⁠”

“⁠제가 하나입니다⁠.⁠” 무겸이 말했다⁠. “⁠나머지 둘은 지원자를 받겠습니다⁠.⁠”

봉춘이 국자를 내려놓고 손을 들었다⁠. “⁠하나 더 있습니다⁠, 대장님⁠. 제 첫 대장님이 그러셨어요⁠. 비늘 물은 우려서 바로 마셔야 한다고⁠. 삼십 분 넘기면 멧돼지 냄새가 빠진다고⁠.⁠”

“⁠그럼 던전 안에서 또 마시려면 거기서 끓여야겠네요⁠.⁠” 태분이 말했다⁠.

“⁠던전 안에서 85도를요⁠?⁠” 무겸이 솥을 내려다보았다⁠. “⁠6층은 바람이 셉니다⁠. 버너 불이 누웁니다⁠.⁠”

솥 안에서 비늘 여섯 장이 보랏빛 김을 올리며 천천히 뒤집혔다⁠.

무겸이 나간 지 한 시간 만에 지원자가 다 찼다⁠. 둘째 줄에 준기 이름이 있었다⁠. 태분은 무겸이 보내 준 화면을 오래 보았다⁠. 준기는 엄마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원했다⁠.

*

4월 25일 일요일 새벽 다섯 시 반⁠, 태분은 비늘차 세 잔을 직접 우렸다⁠. 85도에서 삼 분⁠. 잔마다 탐침을 꽂아 85를 확인하고 측정기를 댔다⁠. 셋 다 맑았다⁠. 무겸이 첫 잔을 비웠다⁠. 1공략대 고참 하나가 두 번째 잔을 비우고 얼굴을 찌푸렸다⁠.

“⁠조리사님⁠, 맛이 멧돼지 발 씻은 물입니다⁠.⁠”

“⁠발 씻은 물 마셔 봤어요⁠?⁠”

“⁠지금 처음 마셔 봤습니다⁠.⁠”

뒷문 앞에 도윤이 와 있었다⁠. 일요일 새벽인데도 정장 차림이었다⁠. 도윤은 국솥 옆 쟁반에 남은 비늘을 세어 보고 계산기를 켰다⁠.

“⁠이 차 세 잔에 성한 비늘 여섯 장이 들어갔습니다⁠. 한 장 사만 원⁠, 이십사만 원입니다⁠.⁠”

“⁠멧돼지 무리 뚫는 데 물약 스무 병이라면서요⁠. 물약은 얼마예요⁠?⁠”

도윤의 엄지가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물약이 더 비쌉니다⁠. 효과가 있으면요⁠.⁠”

“⁠효과는 오후 네 시에 봐요⁠.⁠”

“⁠오후 네 시에 보겠습니다⁠.⁠” 도윤이 계산기를 끄지 않고 주머니에 넣었다⁠.

세 번째 잔을 준기가 들었다⁠. 준기는 잔을 들고 엄마를 보았다⁠. 이틀 동안 처음 마주친 눈이었다⁠. 준기는 아무 말 없이 잔을 비웠다⁠. 목울대가 세 번 움직였다⁠.

오후 네 시⁠, 무겸이 헬멧 카메라 영상을 급식소 배식대 위에 틀었다⁠. 7층 멧돼지 무리가 화면 가득 길을 비켜 주었다⁠. 비켜 줄 뿐 아니라 셋을 둘러싸고 같이 걸었다⁠. 새끼 멧돼지 하나가 준기의 장화에 주둥이를 비볐다⁠. 화면 밖에서 준기 목소리가 들렸다⁠. “⁠대장님⁠, 얘가 저 좋아하는데요⁠.⁠” 무겸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확인⁠. 쓰다듬지 마라⁠.⁠”

셋은 무리 한가운데로 다섯 시간을 걸어 들어갔다가 다섯 시간째가 끝나 갈 무렵 무리 밖으로 걸어 나왔다⁠. 큰어미의 굴 입구까지 셋이서 물약 한 병 쓰지 않았다⁠.

“⁠다섯 시간입니다⁠.⁠” 무겸이 영상을 멈췄다⁠. “⁠고기는 세 시간⁠, 비늘은 다섯 시간⁠.⁠”

봉춘이 무릎을 탁 쳤다⁠. 이번에는 무릎에서 소리가 안 났다⁠.

*

밤 열 시⁠, 화양동 집 부엌 식탁에 준기와 태분이 마주 앉았다⁠. 식탁 위에 김치찌개 냄비 하나가 식어 갔다⁠. 준기는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용태 병원에서 봤어⁠. 초안⁠.⁠” 준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엄마 손목 숫자인 줄 몰랐어⁠. 이사님이 급식소 잘 돌아간다는 거라고만 했어⁠.⁠”

“⁠읽었다며⁠.⁠”

“⁠읽었어⁠. 250이 뭔지 몰랐어⁠.⁠” 준기가 식탁 위에 손을 펴 놓았다⁠. “⁠엄마⁠, 나 첫해에 보스 못 들어가면 수습에서 잘려⁠. 엄마는 어디 가도 밥 하잖아⁠. 학교로 돌아가도 되고⁠. 나는 여기서 잘리면 갈 데가 없어⁠.⁠”

태분은 조리복 소매를 걷었다⁠. 양 손목에 파스가 두 장씩 붙어 있었다⁠. 파스 가장자리가 들떠서 까맣게 때가 앉아 있었다⁠.

“⁠이게 250이야⁠.⁠”

준기가 파스를 보았다⁠. 한참 보았다⁠. 숟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용태가 병원에서 그러더라⁠. 6층에서 손에 불이 안 나오는데⁠, 제일 먼저 생각난 게 아침에 받은 도시락 뚜껑이었대⁠. 뚜껑을 왜 안 열어 봤을까⁠. 열어 봤자 뭘 알았겠어⁠.⁠” 준기가 식탁 모서리를 엄지로 문질렀다⁠. “⁠엄마는 열어 보잖아⁠. 날마다⁠. 예순 개 중에 하나라도⁠.⁠”

“⁠엄마는 어떻게 하라고 안 해⁠?⁠”

“⁠네 자리는 네가 정해⁠. 엄마는 공청회에 갈 거야⁠.⁠”

준기의 휴대전화가 식탁 위에서 울렸다⁠. 화면이 켜졌다⁠. 준기가 화면을 보더니 휴대전화를 엄마 앞으로 밀었다⁠.

「⁠엄준기 씨⁠. 공청회에서 의견서 내용을 바꾸시면 보스 공략 명단은 다시 정합니다⁠. 숫자는 바뀌지 않습니다⁠. — 반도윤⁠」

준기가 휴대전화를 뒤집어 엎었다⁠. 식은 김치찌개 위에 기름이 하얗게 굳어 있었다⁠. 태분은 냄비를 들고 가스레인지로 가서 불을 켰다⁠. 냄비 바닥에서 지글거리는 소리가 올라왔다⁠. 국자로 한 번 젓고⁠, 두 그릇에 나눠 담아 식탁에 놓았다⁠.

“⁠식은 건 다시 끓여 먹는 거야⁠.⁠”

준기가 숟가락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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