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46자)

초안 부록에 아들 서명이 있었다

던전 급식 조리사 · 윤바로

4월 22일 목요일 새벽 다섯 시⁠, 급식소 검수대 위에 두레마수가공 도시락 상자 여섯 개가 쌓였다⁠. 상자 하나에 도시락이 열 개씩 들어 있었다⁠. 이사회가 끝나고 세 주 동안 태분은 날마다 이 시각에 탑차를 맞았다⁠. 차 온도를 보고⁠, 상자 겉면 온도를 보고⁠, 첫 상자에서 도시락 하나를 열어 고기에 탐침과 측정기를 댔다⁠. 오늘 차 온도는 6도⁠, 도시락 고기는 7도였다⁠. 측정기 유리판은 맑았다⁠.

“⁠통과⁠.⁠”

기사가 고개를 꾸벅하고 차로 돌아갔다⁠. 봉춘이 상자를 냉장고로 옮기며 물었다⁠.

“⁠반장님⁠, 오늘도 한 개만 여십니까⁠?⁠”

“⁠한 개만 열어요⁠.⁠”

예순 개를 다 열면 한 시간이 걸렸다⁠. 한 시간이면 아침 이백 식이 늦었다⁠. 태분은 첫 상자에서 꺼낸 도시락을 비닐에 담아 날짜를 쓰고 냉동고 맨 아래 칸에 눕혔다⁠. 도윤이 이사회 날 떠 두라고 한 업체 도시락 보존식이 이제 냉동고 바닥에 두 줄로 누워 있었다⁠. 맨 끝 봉지에 「⁠4/22 두레⁠」라고 매직으로 썼다⁠.

세 주 동안 급식소는 하루 오백 식을 냈다⁠. 봉춘은 무릎 보호대를 하나 더 샀고⁠, 태분은 손목에 파스를 붙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오른쪽에 한 장⁠, 지금은 양쪽에 두 장씩이었다⁠.

아홉 시⁠, 뒷문으로 반딧불 대장이 빈 리어카를 끌고 왔다⁠. 오늘은 도시락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낡은 가죽 갑옷 위 앞치마를 손으로 구기며 대장이 말했다⁠.

“⁠조리사님⁠, 다음 주부터 우리 도시락 끊겠습니다⁠. 두레에서 한 개 사천오백 원에 준답니다⁠. 여기는 칠천 원이라서요⁠.⁠”

“⁠두레 거는 데워 드셔야 돼요⁠. 전자레인지 있으세요⁠?⁠”

“⁠물약 냉장고 옆에 하나 놓을 겁니다⁠. 중고로⁠.⁠”

“⁠몇 분 돌리실 건데요⁠?⁠”

“⁠뚜껑에 쓰인 대로 이 분이요⁠.⁠”

태분은 이사회 날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시제품 도시락의 숫자를 떠올렸다⁠. 71⁠. 말을 하려다 반딧불 대장의 앞치마를 보았다⁠. 앞치마 주머니에 계산기가 꽂혀 있었다⁠. 헌터 열둘 길드의 대장이 계산기를 들고 다녔다⁠.

“⁠이 분 돌리고 한 번 더 돌리세요⁠. 가운데까지 뜨겁게⁠.⁠”

“⁠전기세가⁠…⁠…⁠.⁠” 대장이 웃다가 말았다⁠. “⁠알겠습니다⁠. 한 번 더 돌리겠습니다⁠.⁠”

빈 리어카가 광장을 건너갔다⁠. 바퀴 하나가 돌바닥 이음매를 넘을 때마다 덜컹거렸다⁠. 태분은 리어카가 동굴 입구 앞을 돌아 나갈 때까지 뒷문에 서 있었다⁠.

*

열한 시 사십 분⁠, 광장 스피커에서 경보가 울렸다⁠. 길고 짧게 세 번⁠. 6층 이하 응급이라는 뜻이었다⁠. 배식대 앞 줄이 일제히 동굴 입구를 돌아보았다⁠. 태분은 국자를 쥔 채 창으로 다가갔다⁠. 입구 앞에 하얀 응급 천막이 서둘러 펼쳐지고 있었다⁠.

무겸이 투구도 안 쓰고 급식소 문을 밀고 들어왔다⁠.

“⁠2공략대가 6층에서 둘이 손에 불이 안 붙는답니다⁠. 돌거미 떼 한가운데서요⁠.⁠”

“⁠2공략대 오늘 점심은⁠…⁠…⁠.⁠”

“⁠업체 도시락입니다⁠. 열한 시에 6층에서 먹었습니다⁠.⁠” 무겸이 숨을 골랐다⁠. “⁠준기 씨도 거기 있습니다⁠. 1공략대가 쉬는 날이라 보충으로 따라갔습니다⁠.⁠”

태분의 손에서 국자가 미끄러졌다⁠. 국자가 솥 가장자리를 치고 국 속으로 들어갔다⁠. 봉춘이 파란 장갑을 낀 채 국자를 건져 냈다⁠.

“⁠반장님⁠, 배식은 제가 합니다⁠. 가세요⁠.⁠”

“⁠봉춘 씨는 파랑이잖아요⁠.⁠”

“⁠지금 갈아 끼우겠습니다⁠. 분홍으로⁠.⁠” 봉춘이 파란 장갑을 벗어 던졌다⁠. “⁠이런 날 분홍 끼려고 기다렸습니다⁠.⁠”

*

응급 천막 안은 소독약 냄새로 찼다⁠. 간이침대 넷이 놓였고 협회 응급 요원 둘이 오가고 있었다⁠. 태분은 천막 입구에서 오래 기다렸다⁠. 두 시에 첫 번째 헌터가 들것에 실려 나왔다⁠. 손바닥이 퉁퉁 부어 있었고⁠, 손등에 돌거미 다리 자국이 줄줄이 찍혀 있었다⁠. 불을 못 쓰는 화염술사가 돌거미 떼 앞에서 맨손으로 버틴 자국이었다⁠.

세 시가 넘어서야 입구 계단에서 준기가 올라왔다⁠. 등에 같은 신입 동기를 업고 있었다⁠. 동기 하용태는 준기 목을 팔로 감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6층에서 입구까지 계단만 한 시간이었다⁠. 준기는 천막 앞에서 무릎을 꿇듯 주저앉아 용태를 내려놓았다⁠. 갑옷 어깨에 거미줄이 하얗게 엉켜 있었다⁠.

“⁠엄마⁠.⁠”

태분은 준기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았다⁠. 분홍 장갑 위로 땀이 묻어났다⁠. 준기의 입술이 하얗게 말라 있었다⁠.

“⁠다친 데는⁠?⁠”

“⁠없어⁠. 나는 1공략대 도시락 먹고 갔어⁠. 엄마 밥⁠.⁠” 준기가 등 뒤를 돌아보았다⁠. “⁠용태는 업체 거 먹었어⁠. 6층에서 돌거미 나오는데 손에서 김만 나와서⁠…⁠…⁠. 내 등에서 계속 미안하다고 했어⁠. 계단 올라오는 내내⁠.⁠”

용태가 간이침대에서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미안해⁠, 준기야⁠.⁠”

“⁠그만해⁠. 무거우니까 그만해⁠.⁠” 준기가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천막 입구가 거칠게 젖혀졌다⁠. 2공략대장이 투구를 벗어 들고 들어왔다⁠. 얼굴 한쪽에 돌거미 다리에 긁힌 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2공략대장은 침대 위 대원 둘을 보고 나서 곧장 태분 앞으로 왔다⁠.

“⁠급식소에서 검수했다면서요⁠. 검수했는데 왜 이럽니까⁠?⁠”

“⁠예순 개 중에 한 개만 열었어요⁠.⁠”

“⁠왜 한 개만요⁠?⁠”

“⁠사람이 둘이라서요⁠. 예순 개 다 열면 아침 이백 식이 늦어요⁠.⁠”

2공략대장이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화를 낼 데를 찾던 눈이 태분의 손목에 멈췄다⁠. 파스 두 장이 조리복 소매 밖으로 비어져 나와 있었다⁠. 2공략대장은 투구를 침대 모서리에 내려놓고 대원 곁에 앉았다⁠.

응급 요원이 혈압계를 감으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올해 들어 몬스터 도시락 마력 불통 신고가 전국에서 마흔 건이 넘어요⁠. 협회 기준이 빨리 나와야지⁠.⁠”

태분은 준기의 등짐을 내려 열었다⁠. 등짐 맨 위에 먹다 만 도시락 하나가 비닐에 싸여 있었다⁠.

“⁠이건 왜 들고 왔어⁠?⁠”

“⁠엄마가 남은 거 함부로 버리지 말라며⁠. 잔반은 왜 남겼는지 봐야 한다며⁠.⁠” 준기가 코를 훌쩍였다⁠. “⁠용태 거야⁠. 반 먹다가 돌거미 나왔어⁠.⁠”

*

네 시⁠, 천막 옆 간이 탁자에 회색 점퍼 차림의 두레마수가공 대표와 정장 차림의 도윤이 마주 섰다⁠. 대표가 먼저 소리를 높였다⁠.

“⁠던전 안에서 뭘 주워 먹었는지 어떻게 압니까⁠? 우리 도시락은 오늘 아침 검수도 통과했어요⁠. 조리사님이 직접 통과시켰잖습니까⁠?⁠”

태분은 탁자 위에 봉지 둘을 나란히 놓았다⁠. 하나는 냉동고에서 꺼내 온 「⁠4/22 두레⁠」 보존식⁠, 하나는 준기가 들고 온 용태의 도시락이었다⁠. 측정기를 보존식에 댔다⁠. 유리판이 맑았다⁠. 용태의 도시락에 댔다⁠. 유리판 한가운데 보랏빛이 진하게 일렁였다⁠.

대표의 얼굴이 굳었다⁠.

“⁠같은 날 같은 업체 도시락인데 하나는 맑고 하나는 보라예요⁠.⁠” 태분이 두 도시락 뚜껑을 뒤집었다⁠. 보존식 뚜껑 바닥에는 「⁠A⁠」⁠, 용태 도시락 뚜껑 바닥에는 「⁠B⁠」라고 작은 글씨가 찍혀 있었다⁠. “⁠공장 라인이 둘이죠⁠? 저는 아침에 첫 상자에서 하나만 열었어요⁠. 첫 상자는 A였고요⁠.⁠”

대표가 대답하지 않았다⁠. 도윤이 대표를 보았다⁠.

“⁠B라인 고기 익히는 온도 기록 보내 주십시오⁠. 오늘 안에요⁠.⁠”

“⁠이사님⁠, 그건 회사 내부⁠…⁠…⁠.⁠”

“⁠계약은 오늘부로 멈춥니다⁠. 기록이 오면 다시 얘기하겠습니다⁠.⁠” 도윤이 휴대전화를 들었다⁠. “⁠2공략대 내일 의뢰도 취소합니다⁠. 둘이 사흘이니 위약금까지 천오백만 원입니다⁠.⁠”

대표가 점퍼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천막을 떠났다⁠. 도윤이 휴대전화를 내리고 태분을 보았다⁠.

“⁠조리사님이 예순 개를 다 열어 보셨으면 잡으셨겠습니까⁠?⁠”

“⁠다 열면 잡았겠죠⁠. 다 열려면 한 시간이에요⁠. 그 한 시간에 아침 이백 식이 늦어요⁠.⁠”

“⁠알고 있습니다⁠.⁠”

“⁠알면 사람을 주세요⁠.⁠”

“⁠돈이 없습니다⁠.⁠” 도윤은 숫자를 말할 때와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협회 기준이 필요합니다⁠. 업체가 온도를 지키게 기준으로 묶으면 조리사님이 예순 개를 다 안 열어도 됩니다⁠.⁠”

“⁠업체가 기준을 안 지키면요⁠?⁠”

도윤이 대답하지 않았다⁠. 천막 안에서 용태가 다시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

여섯 시⁠, 급식소로 돌아오니 봉춘이 배식대 뒤에서 분홍 장갑을 낀 채 저녁 국을 젓고 있었다⁠. 위생모가 비뚤어져 있었다⁠. 저녁 백 식 중 칠십 식이 벌써 나갔다⁠.

“⁠반장님⁠, 국 85도까지 올렸습니다⁠. 국도 85도 맞죠⁠?⁠”

“⁠국은 끓으면 돼요⁠.⁠”

“⁠끓으면 몇 도입니까⁠?⁠”

“⁠100도요⁠.⁠”

“⁠아⁠.⁠” 봉춘이 국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제가 십오 도를 덜 끓인 겁니까⁠?⁠”

태분은 웃음이 터져 나와 배식대에 손을 짚었다⁠. 하루 종일 다물고 있던 입이 처음 벌어졌다⁠. 웃다가 눈가가 젖었다⁠. 봉춘은 왜 웃는지 모르는 얼굴로 국을 한 번 더 저었다⁠.

여덟 시⁠, 무겸이 저녁 식판을 반납하러 와서 배식대에 팔을 얹었다⁠.

“⁠하용태 씨는 병원에서 사흘 쉽니다⁠. 준기 씨는 병원에 같이 있겠답니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나갔다고 전해 달랍니다⁠.⁠”

“⁠밥은요⁠?⁠”

“⁠병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먹었답니다⁠.⁠” 무겸이 잠깐 웃었다⁠. “⁠이사님 따라 하는 것 같다고 하니까 화를 내더군요⁠.⁠”

무겸이 식판을 반납대에 올려놓았다⁠. 오늘도 밥알 하나 없었다⁠.

“⁠보스 공략 날짜가 잡혔습니다⁠. 5월 6일 목요일 새벽⁠. 큰어미입니다⁠.⁠” 무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오늘 준기 씨가 용태 씨를 업고 6층 계단을 올라온 거⁠, 신입으로는 처음 봤습니다⁠. 확인입니다⁠.⁠”

태분은 확인이라는 말을 이번에는 알아들었다⁠.

*

밤 열 시⁠, 마지막 솥을 닦던 태분의 휴대전화에 협회 알림이 떴다⁠. 「⁠헌터협회 — 헌터 급식 기준(⁠안⁠) 공개⁠, 4월 29일 공청회 자료⁠」⁠. 장갑을 벗고 화면을 넓혔다⁠.

첫 장에 조리 온도가 있었다⁠. 「⁠몬스터 고기는 중심 온도 85℃에서 3분 이상 가열한다⁠」⁠. 태분의 화이트보드에서 동그라미만 빠진 숫자였다⁠. 두 번째 장에 단가가 있었다⁠. 「⁠끼니 식품비 하한 4⁠,000원⁠」⁠. 세 번째 장에서 엄지가 멈췄다⁠.

「⁠조리 인력 — 조리원 1인당 하루 250식 이내⁠」

오백 나누기 둘⁠. 태분은 숫자를 한참 보았다⁠. 양쪽 손목에 붙인 파스가 숫자가 되어 있었다⁠. 봉춘의 무릎 보호대 두 개⁠, 감자 상자 위에서 나간 영혼⁠, 예순 개 중 한 개만 열어 본 아침이 다 이 숫자 하나에 들어가 있었다⁠.

부록으로 넘겼다⁠. 「⁠부록 2 — 청운 공략대 급식소 운영 사례⁠」⁠. 사진 한 장이 실려 있었다⁠. 급식소 화이트보드⁠, 85도 삼 분⁠, 동그라미⁠. 사진 밑에 「⁠자료 제공⁠: 청운 재무이사 반도윤⁠」⁠.

「⁠부록 3 — 현장 헌터 의견서⁠」

「⁠청운 1공략대 신입 대표 엄준기⁠. 청운 급식소는 현 인력으로 운영에 문제가 없으며⁠, 급식소 증원보다 공략 수당 보전이 우선이다⁠. 2027년 4월 2일⁠.⁠」

4월 2일⁠. 이사회 사흘 뒤⁠, 자판기 앞에서 캔 커피를 굴리던 날로부터 사흘 뒤였다⁠.

태분은 준기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갔다⁠. 한 번⁠, 두 번⁠, 열 번⁠. 받지 않았다⁠. 용태가 실려 간 병원에 아직 있을 시각이었다⁠. 다시 눌렀다⁠. 신호음 사이로 후드 돌아가는 소리가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3월에 도윤이 고쳐 준 후드였다⁠. 태분은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냉동고 문을 열었다⁠. 맨 아래 칸에서 「⁠4/22 두레⁠」 봉지가 하얗게 얼어 가고 있었고⁠, 바로 옆에 용태의 도시락을 나란히 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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