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82자)

14도짜리 고기는 안 받아요

던전 급식 조리사 · 윤바로

3월 22일 월요일 새벽 다섯 시⁠, 급식소 뒷문 앞에 냉장 탑차가 후진해 들어왔다⁠. 삐삐 소리가 광장 돌바닥에 울렸다⁠. 탑차 옆면에 초록 글씨로 「⁠두레마수가공 — 손질부터 배송까지⁠」라고 쓰여 있었다⁠. 태분은 검수대 위에 탐침 온도계와 마력 측정기⁠, 저울⁠, 분홍 장갑과 파란 장갑을 줄 맞춰 놓고 기다렸다⁠. 학교에서 하던 순서 그대로였다⁠. 차가 서면 먼저 차 온도를 본다⁠.

운전석 옆 작은 화면에 빨간 숫자가 떠 있었다⁠. 12⁠.8⁠.

“⁠기사님⁠, 냉장차 온도가 왜 12도예요⁠?⁠”

“⁠오다가 문을 몇 번 열었어요⁠. 강남 길드 두 군데 들렀다 와서⁠.⁠”

탑차 문이 열리자 찬 기운 대신 미지근한 바람이 나왔다⁠. 안에 투명 비닐로 싼 고깃덩이가 상자째 쌓여 있었다⁠. 태분은 파란 장갑을 끼고 맨 앞 상자를 검수대로 끌어내렸다⁠. 비닐 너머로 비늘 자국이 보였다⁠. 비늘을 벗긴 자리마다 살이 뜯겨 나가 있었고⁠, 몇 군데는 비늘이 반쯤 꺾인 채 붙어 있었다⁠. 기계로 훑은 자국이었다⁠.

탐침을 고깃덩이 한가운데 꽂았다⁠. 숫자가 올라가다 멈췄다⁠. 14⁠.

봉춘이 옆에서 숫자를 읽었다⁠. “⁠십사⁠.⁠”

“⁠냉장 고기는 10도 아래로 와야 돼요⁠.⁠” 태분이 탐침을 뽑았다⁠. “⁠두 번째 상자⁠.⁠”

두 번째 상자는 13⁠. 세 번째는 15⁠. 태분은 파란 장갑을 벗었다⁠.

“⁠안 받아요⁠.⁠”

기사가 뒷머리를 긁더니 휴대전화를 꺼냈다⁠. 십 분 뒤 회색 점퍼를 입은 남자가 승용차에서 내렸다⁠. 점퍼 가슴에 탑차와 같은 초록 글씨가 수놓여 있었다⁠. 두레마수가공 대표였다⁠.

“⁠조리사님⁠, 4도 차이 가지고 이백 킬로를 반품하시면 어떡합니까⁠? 몬스터 고기는 원래 몸에서 열이 좀 납니다⁠.⁠”

“⁠몸에서 열이 나는 고기는 처음 봤는데요⁠.⁠”

“⁠보라 비늘은 그래요⁠. 다른 길드에선 다 받습니다⁠.⁠”

“⁠다른 길드에서 다 받으니까 부산에서 열두 명이 쓰러졌죠⁠.⁠”

대표의 입이 다물어졌다⁠. 태분은 검수대 위 탐침을 다시 들었다⁠.

“⁠사장님 고기 탓하는 거 아니에요⁠. 냉장은 10도 아래예요⁠. 그 위면 고기가 상하기 시작해요⁠. 몬스터 고기는 상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몰라요⁠. 모르는 걸 오백 명한테 먹일 수는 없잖아요⁠.⁠”

*

다섯 시 사십 분⁠, 광장 저편에서 운동복 차림 남자가 뛰어왔다⁠. 도윤이었다⁠. 정장이 아닌 도윤은 처음이었다⁠. 회색 운동복 무릎이 튀어나와 있었고⁠, 머리 한쪽이 베개 모양으로 눌려 있었다⁠. 손에는 그래도 삼각김밥이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14도예요⁠.⁠”

도윤은 탐침 화면을 들여다보고⁠, 탑차 온도 화면을 들여다보고⁠, 휴대전화로 계약서를 열었다⁠. 엄지가 화면을 빠르게 내렸다⁠.

“⁠계약서에 검수 온도 조항이 없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넣어요⁠.⁠”

“⁠오늘 점심이 오백 식입니다⁠.⁠” 도윤이 휴대전화를 내렸다⁠. “⁠이 고기를 돌려보내면 점심에 고기가 없습니다⁠. 고기를 새로 사면 사천 원을 넘깁니다⁠. 넘긴 돈은 어디서 나옵니까⁠?⁠”

“⁠고기 없이 할게요⁠. 사천 원 안에서⁠.⁠”

“⁠오백 식을요⁠?⁠”

“⁠학교에선 고기 안 들어온 날도 밥 나가요⁠. 애들 굶긴 적 없어요⁠.⁠”

도윤이 태분을 보았다⁠. 운동복 차림이라 그런지 눈빛이 정장 입었을 때보다 덜 날카로웠다⁠. 대표가 끼어들었다⁠.

“⁠이사님⁠, 이거 반품하면 계약 위반입니다⁠. 위약금 조항은 계약서에 있어요⁠.⁠”

도윤이 계약서를 다시 내렸다⁠. 위약금 조항을 찾자 엄지가 멈췄다⁠. 한참 숫자를 읽던 도윤이 대표를 돌아보았다⁠.

“⁠위약금 조항에 납품 품질 불량은 예외라고 되어 있습니다⁠. 냉장 고기가 14도면 품질 불량입니다⁠. 오늘 물건은 돌려보내 주십시오⁠. 다음 납품부터 차 온도와 고기 온도를 받는 자리에서 잽니다⁠. 10도가 넘으면 다 돌려보냅니다⁠.⁠”

대표가 입을 벌렸다⁠. 태분도 입을 벌렸다⁠. 도윤은 삼각김밥 비닐을 뜯으며 덧붙였다⁠.

“⁠대신 조리사님⁠. 고기 없이 사천 원으로 오백 식⁠, 오늘 하셔야 합니다⁠. 넘으면 넘은 만큼 급식소 다음 주 예산에서 뺍니다⁠.⁠”

탑차가 고기를 다시 싣고 광장을 빠져나갔다⁠. 빨간 후미등이 동굴 입구 앞을 돌아 사라졌다⁠. 태분은 검수대 위 탐침을 장갑으로 닦았다⁠. 손이 떨렸다⁠. 이겼는데 떨렸다⁠.

*

여섯 시⁠, 태분은 창고 문을 열고 선반을 훑었다⁠. 두부 마흔 모⁠, 달걀 열 판⁠, 감자 두 상자⁠, 콩비지 한 통⁠, 어묵 세 봉지⁠. 오백 식에는 모자랐다⁠. 휴대전화로 성수동 시장 두부 공장에 전화했다⁠. 공장 사장은 아침 일곱 시에 두부 백 모를 리어카로 밀고 왔다⁠.

“⁠급식실 엄 여사님 맞죠⁠? 학교 납품할 때 두부 판 모서리 깨졌다고 돌려보내신 분⁠.⁠”

“⁠맞아요⁠.⁠”

“⁠그때 미웠는데⁠, 덕분에 판 바꿨어요⁠.⁠” 사장이 영수증을 내밀었다⁠. “⁠오늘은 깨진 거 하나도 없습니다⁠.⁠”

식단판에 매직으로 새로 적었다⁠. 밥⁠, 두부조림⁠, 비지찌개⁠, 감자채볶음⁠, 달걀찜⁠. 고기라고는 비지찌개에 넣을 어묵 세 봉지가 다였다⁠.

봉춘이 감자 상자 앞에 앉으며 분홍 장갑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을 한 마디씩 밀어 넣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오늘은 고기가 없으니까 분홍입니다⁠.⁠”

“⁠감자 두 상자예요⁠. 채 썰어요⁠.⁠”

“⁠분홍 끼고 썰면 채가 가늘게 나옵니다⁠.⁠”

실제로 가늘게 나왔다⁠. 봉춘은 감자를 썰 때마다 장갑 낀 손을 형광등에 비춰 보았다⁠. 열 개를 썰고 한 번 비춰 보고⁠, 또 열 개를 썰고 한 번 비춰 보았다⁠. 태분은 말리지 않았다⁠. 감자채가 가늘었다⁠.

열한 시 반⁠, 배식 줄 앞에서 2공략대 대검 헌터가 식단판을 읽더니 탄식했다⁠.

“⁠고기 없는 날이에요⁠?⁠”

“⁠두부도 콩이고 콩도 고기예요⁠. 밭에서 나는 고기⁠.⁠”

“⁠그럼 콩나물도 고기예요⁠?⁠”

“⁠콩나물은 범인이고⁠.⁠”

줄 뒤에서 웃음이 터졌다⁠. 대검 헌터는 두부조림을 두 번 받아 갔다⁠. 반납대에 돌아온 식판에 비지찌개 국물이 조금 남아 있었다⁠. 태분은 국물 몇 숟가락쯤은 봐주었다⁠.

벽 텔레비전에서 열두 시 뉴스가 나왔다⁠. 「⁠헌터협회⁠, 헌터 급식 기준 공청회 4월 29일 개최⁠」⁠. 화면에 협회 회관 앞 깃발과 기자들이 지나갔다⁠. 「⁠몬스터 고기 조리 온도·검수 기준 처음 마련⁠」⁠. 태분은 국자를 쥔 채 자막을 끝까지 읽었다⁠. 몬스터 고기 조리 온도라는 글자에서 눈이 멈췄다⁠.

*

열두 시 반⁠, 준기가 1공략대 사이에 끼어 배식대 앞에 왔다⁠. 식판에 두부조림을 받으면서 준기가 낮게 말했다⁠.

“⁠엄마⁠, 오늘 7층 취소됐어⁠.⁠”

“⁠왜⁠?⁠”

“⁠고기 안 먹고 7층 내려가면 멧돼지가 물잖아⁠. 대장님이 오늘은 5층만 돌기로 했어⁠.⁠” 준기의 목소리가 떨렸다⁠. “⁠신입 중에 이번 주에 7층 세 번 내려가야 보스 공략 추천받는다고⁠. 오늘이 두 번째였어⁠.⁠”

태분의 국자가 허공에서 멈췄다⁠. 뒷사람이 식판을 내밀었다⁠. 태분은 뒷사람 식판에 감자채볶음을 올리고 준기를 보았다⁠.

“⁠14도짜리 고기를 너 먹이라고⁠?⁠”

“⁠14도면 냉장고에서 막 꺼낸 거 아냐⁠?⁠”

“⁠냉장고는 4도야⁠.⁠”

“⁠엄마는 왜 다 숫자로 알아⁠?⁠”

“⁠학교에서 열다섯 해 쟀으니까⁠.⁠”

준기는 대답 없이 식판을 들고 갔다⁠. 멀어지는 등에서 갑옷 어깨가 덜컥거렸다⁠. 맨 뒤에서 무겸이 식판을 내밀었다⁠.

“⁠조리사님 잘못 아닙니다⁠. 확인⁠.⁠”

“⁠무슨 확인이요⁠?⁠”

“⁠14도면 저도 안 먹습니다⁠.⁠” 무겸이 두부조림을 받았다⁠. “⁠대신 오늘 1공략대 7층 의뢰가 취소된 것도 확인입니다⁠. 이사님이 오후에 그 숫자 들고 오실 겁니다⁠.⁠”

*

두 시⁠, 설거지 첫 판을 끝낸 봉춘이 뒷문 밖 벤치에 앉아 무릎 보호대를 풀었다⁠. 태분은 종이컵 두 개에 보리차를 따라 나갔다⁠. 동굴 입구에서 5층을 돌고 올라온 1공략대가 장비를 내려놓고 있었다⁠. 준기는 멀리서 엄마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대장님이 저러시는 거 이해해 주세요⁠.⁠” 봉춘이 보리차를 받으며 말했다⁠. “⁠작년 가을 7층에서 둘을 잃으셨어요⁠. 큰어미 앞에서요⁠.⁠”

“⁠큰어미가 그렇게 세요⁠?⁠”

“⁠무리를 뚫고 가야 큰어미가 나옵니다⁠. 무리 뚫다가 물약이 다 떨어져서 큰어미 앞에선 빈손이었어요⁠.⁠” 봉춘이 무릎을 문질렀다⁠. “⁠저도 그날 방패 들고 들어갔습니다⁠. 무릎은 그날 나갔고요⁠.⁠”

태분은 보리차를 마시다 말고 봉춘의 무릎을 보았다⁠. 보호대 자국이 빨갛게 파여 있었다⁠.

“⁠그날 아침에 뭐 먹고 내려갔어요⁠?⁠”

“⁠컵라면이요⁠. 다들 컵라면 하나씩⁠.⁠” 봉춘이 웃었다⁠. “⁠전 조리사님이 오시기 전이라 부엌에 아무도 없었어요⁠. 냄비에 물 끓여서 각자 부었죠⁠.⁠”

태분은 개수대에 포개져 있던 양은 냄비 열한 개를 떠올렸다⁠. 냄비마다 말라붙어 있던 주황색 띠⁠. 1공략대가 7층에 내려갔다가 둘이 못 올라온 아침에도 냄비들은 저렇게 끓었을 것이다⁠.

“⁠봉춘 씨⁠, 내일 아침엔 뭐 먹고 싶어요⁠?⁠”

“⁠고기요⁠.⁠” 봉춘이 바로 대답했다⁠. “⁠85도 삼 분짜리⁠.⁠”

*

세 시⁠, 도윤이 정장을 갖춰 입고 다시 나타났다⁠. 손에 든 것은 태블릿이 아니라 투명 비닐봉지 두 개였다⁠. 봉지마다 보라 비늘이 한 장씩 들어 있었다⁠. 하나는 매끈했고 하나는 가운데가 쩍 갈라져 있었다⁠.

“⁠지난주 비늘 판매 결과입니다⁠.⁠” 도윤이 매끈한 봉지를 들었다⁠. “⁠조리사님이 벗긴 비늘⁠. 한 장 사만 원⁠.⁠” 갈라진 봉지를 들었다⁠. “⁠두레마수가공에서 시험 삼아 받은 비늘⁠. 한 장 만 원⁠.⁠”

“⁠네 배네요⁠.⁠”

“⁠네 배입니다⁠.⁠”

“⁠그럼 손질은 내가 하는 게 남는 거네요⁠.⁠”

도윤이 계산기를 켰다⁠. 엄지가 한참 움직였다⁠. 태분은 도윤의 엄지가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이 사람이 계산기를 켜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아닙니다⁠.⁠” 도윤이 화면을 보여 주었다⁠. “⁠멧돼지 한 마리 비늘을 조리사님이 벗기면 한 시간 반이 듭니다⁠. 그 시간이면 백 식이 늦어집니다⁠. 비늘 값으로 버는 돈보다 오백 식 늦어지는 손해가 큽니다⁠. 조리사님 손은 솥 앞에 있어야 남습니다⁠.⁠”

틀린 데가 없었다⁠. 태분은 숫자를 다시 보았다⁠. 틀린 데가 없어서 더 답답했다⁠.

“⁠그럼 비늘은 누가 벗겨요⁠? 기계가 벗기면 네 배 못 받아요⁠.⁠”

“⁠그래서 안건을 올렸습니다⁠.⁠”

도윤이 휴대전화 화면을 돌렸다⁠. 사내 메신저 공지였다⁠.

「⁠3월 30일 화요일 이사회 — 안건⁠: 공략대 급식소 운영 방식(⁠외주 전환⁠) 검토⁠」

“⁠오늘 7층 의뢰가 취소되면서 삼백만 원이 날아갔습니다⁠. 고기를 돌려보낸 판단은 맞습니다⁠. 판단이 맞아도 돈은 날아갑니다⁠. 두레마수가공에 급식 전체를 맡기면 검수 책임도 업체가 집니다⁠. 조리사님은 오백 식에서 풀려나십니다⁠.⁠”

“⁠풀려나면 나는 뭘 해요⁠?⁠”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대답이었다⁠. 태분은 팔짱을 꼈다⁠. 분홍 장갑이 겨드랑이 밑에서 뽀득 소리를 냈다⁠.

“⁠이사회에 조리사님도 오십시오⁠. 현장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도윤이 문 앞에서 돌아보았다⁠. “⁠앞치마는 벗고 오세요⁠.⁠”

“⁠고무장갑은 껴도 돼요⁠?⁠”

도윤이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계산하는 얼굴이었다⁠. 문이 닫혔다⁠. 봉춘이 개수대 앞에서 파란 장갑을 벗지도 않고 물었다⁠.

“⁠반장님⁠, 진짜 끼고 가실 겁니까⁠?⁠”

태분은 대답 대신 창고 선반에서 분홍 고무장갑 한 켤레를 새로 꺼내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냉동고 문을 열어 오늘 점심 보존식 다섯 봉지를 맨 아래 칸에 눕혔다⁠. 비지찌개 봉지가 맨 끝에서 하얗게 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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