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30자)

멧돼지가 길을 비켜 줬다

던전 급식 조리사 · 윤바로

3월 5일 금요일 아침 여섯 시⁠, 급식소 배식대 위에 태블릿이 세워졌다⁠. 무겸이 헬멧 카메라 영상을 틀었고⁠, 태분과 봉춘⁠, 마늘을 까던 화염술사 셋이 태블릿 앞에 머리를 모았다⁠. 화면 속 7층은 어두웠다⁠. 헬멧 등이 비추는 둥근 빛 안으로 축축한 돌벽과 고인 물웅덩이가 흔들리며 지나갔다⁠.

빛 가장자리에서 보라색이 번들거렸다⁠. 멧돼지였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빛이 옆으로 돌자 보라 비늘 등이 열 개⁠, 스무 개 이어졌다⁠. 화면 밖에서 누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게 준기 씨 숨소리입니다⁠.⁠” 무겸이 말했다⁠.

맨 앞 멧돼지가 다가왔다⁠. 주둥이가 화면을 가득 채웠고⁠, 콧구멍이 벌름거릴 때마다 렌즈에 김이 서렸다⁠. 멧돼지는 한참 킁킁거리더니 코를 들고⁠, 짧게 꿀 소리를 내고⁠, 몸을 돌려 무리 속으로 걸어갔다⁠. 나머지 멧돼지들도 길 가운데를 비워 주며 양옆으로 물러났다⁠.

“⁠대장님 말이 맞았네⁠!⁠” 봉춘이 무릎을 쳤다⁠. 무릎에서 딱 소리가 났다⁠. “⁠비늘 물 마시면 안 문다고⁠!⁠”

“⁠물 안 마셨어요⁠. 불고기 먹었어요⁠.⁠”

“⁠그거나 그거나⁠.⁠”

화면이 바뀌었다⁠. 무리 끝에서 멧돼지 하나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한 헌터에게 달려들었다⁠. 헌터가 비명을 지르며 바위 뒤로 굴렀다⁠. 다른 헌터들은 멀뚱히 서 있었고⁠, 멧돼지는 다른 헌터들 사이를 지나 쓰러진 헌터 하나만 쫓았다⁠.

“⁠저 사람은 왜요⁠?⁠”

“⁠점심을 걸렀답니다⁠.⁠” 무겸이 화면을 멈췄다⁠. “⁠체중 관리 중이라고 단백질 바만 먹었습니다⁠.⁠”

화염술사 하나가 마늘을 떨어뜨렸다⁠. 태분은 팔짱을 꼈다⁠.

“⁠그러니까 밥을 먹어야지⁠. 밥을⁠.⁠”

무겸이 영상을 앞으로 감았다⁠. 세 시간쯤 지나 1공략대가 6층으로 올라오던 길에 멧돼지 두 마리가 다시 덤벼들었다⁠. 무겸은 덤벼드는 장면에서 화면을 껐다⁠.

“⁠세 시간입니다⁠. 먹고 세 시간이 지나면 놈들이 다시 우리를 남으로 봅니다⁠.⁠”

*

일곱 시⁠, 문이 열리고 도윤이 들어왔다⁠. 무겸이 아무 말 없이 태블릿을 도윤에게 내밀었다⁠. 도윤은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서서 보았다⁠. 삼각김밥 비닐을 뜯다 말고 손이 멈춰 있었다⁠. 영상이 끝나자 도윤은 휴대전화 계산기를 켰다⁠.

“⁠7층에서 멧돼지 무리를 뚫는 데 보통 얼마나 걸립니까⁠?⁠”

“⁠무리 하나에 두 시간⁠. 물약 스무 병⁠.⁠” 무겸이 답했다⁠.

“⁠어제는요⁠?⁠”

“⁠십오 분⁠. 물약 두 병⁠. 혼자 돌던 놈 때문에 쓴 겁니다⁠.⁠”

도윤의 엄지가 계산기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태분은 저렇게 빠른 엄지를 학교 앞 문구점 사장님한테서밖에 본 적이 없었다⁠.

“⁠조리사님⁠.⁠”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처음으로 태분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급식소를 키웁시다⁠.⁠”

*

3월 7일 일요일 저녁⁠, 급식소 개수대 옆에서 화염술사 셋이 마지막 마늘 자루를 비우고 있었다⁠. 사흘째 저녁이었다⁠. 맨 앞 헌터가 깐 마늘을 소쿠리에 던지다 말고 손가락을 튕겼다⁠. 버릇처럼 튕긴 손가락 끝에서 콩알만 한 불꽃이 톡 튀었다⁠.

셋이 동시에 손을 들여다보았다⁠. 두 번째 헌터가 손가락을 튕겼다⁠. 이번에는 주먹만 한 불이 올라왔고⁠, 소쿠리 맨 위 마늘 세 알이 노릇하게 구워졌다⁠. 고소한 냄새가 부엌에 퍼졌다⁠.

“⁠돌아왔다⁠!⁠”

“⁠마늘 탔다⁠!⁠”

셋이 얼싸안고 펄쩍 뛰었다⁠. 봉춘이 구운 마늘을 하나 집어 입에 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태분은 소쿠리를 냉큼 치웠다⁠.

“⁠까라고 했지⁠, 굽지 말라고 했지⁠.⁠”

맨 앞 헌터가 숨을 고르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조리사님⁠, 사흘 동안 마늘 까면서 봤어요⁠. 솥마다 온도계 꽂고 삼 분 기다리시는 거⁠. 다음엔 콩나물도 그렇게 해 주세요⁠.⁠”

“⁠콩나물은 안 끓여⁠.⁠”

“⁠그럼 장갑을 그렇게 해 주세요⁠.⁠”

“⁠장갑은 갈아⁠.⁠”

셋이 웃으며 나갔다⁠. 문밖에서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불꽃 튀는 소리가 한참 이어졌다⁠.

*

청운 본관은 급식소에서 걸어서 십 분⁠, 성수동 길드 거리 끝 4층 건물이었다⁠. 1층 유리문 옆에 「⁠청운⁠」 간판이 붙어 있었고⁠, 계단 벽에는 역대 공략 사진이 액자로 이어졌다⁠. 사진마다 헌터들이 무언가의 머리를 들고 웃고 있었다⁠. 재무이사실은 4층 맨 끝이었다⁠. 책상 위에 삼각김밥 비닐이 접힌 채 일곱 장 쌓여 있었다⁠. 일곱 장 모두 반듯하게 네모로 접혀 있었다⁠. 비닐 더미 옆에 이가 빠진 머그잔이 하나 있었다⁠. 잔 옆면에 「⁠백야⁠」라는 글자와 흰 초승달 그림이 반쯤 닳아 남아 있었다⁠.

“⁠백야가 어디예요⁠?⁠”

“⁠전 직장입니다⁠.⁠” 도윤은 머그잔을 서랍에 넣었다⁠. “⁠2025년에 없어졌습니다⁠.⁠”

서랍이 닫히는 소리가 짧았다⁠. 태분은 더 묻지 않았다⁠. 열다섯 해 급식실에서 배운 것 하나는⁠, 아이가 식판을 숨기는 날에는 반찬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도윤은 화이트보드에 숫자를 적었다⁠.

“⁠하루 세 끼로 늘립니다⁠. 아침을 넣어야 공략대가 먹고 바로 내려갑니다⁠. 공략대 다섯 팀 전부⁠, 예비 인원까지⁠. 그리고 뚝섬 쪽 작은 길드 셋에 도시락을 팝니다⁠. 한 개 칠천 원⁠.⁠”

“⁠식수가 몇이에요⁠?⁠”

“⁠하루 오백 식입니다⁠.⁠”

태분은 의자에 앉지 않았다⁠. 앉으면 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백 식이면 조리원 둘로는 안 돼요⁠. 학교에서도 백오십 명에 한 사람이에요⁠. 사람 둘 더 주세요⁠. 단가도 사천팔백⁠. 몬스터 고기 손질에 시간이 두 배 들어요⁠.⁠”

“⁠단가는 사천 원 그대로입니다⁠.⁠” 도윤이 마커 뚜껑을 닫았다⁠. “⁠도시락 팔아서 남는 돈은 급식소로 안 갑니다⁠. 이백 명 월급으로 갑니다⁠. 그게 이 계획의 목적입니다⁠.⁠”

“⁠사람은요⁠?⁠”

“⁠사람도 그대로입니다⁠. 사람 하나에 한 해 사천만 원입니다⁠. 지금 청운은 사천만 원이 없습니다⁠.⁠”

“⁠그럼 오백 식은 누가 해요⁠?⁠”

“⁠조리사님이 하십니다⁠. 어제 영상 보셨잖습니까⁠. 조리사님 밥이 물약 열여덟 병을 아꼈습니다⁠.⁠”

칭찬이었다⁠. 칭찬이 일을 두 배로 늘리는 소리로 들렸다⁠. 태분은 팔짱을 풀고 가방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어젯밤 집에서 프린터로 뽑아 온 기사들이었다⁠. 급식실 노동자 폐암 산재⁠, 조리흄⁠, 환기 설비⁠. 기사 위에 형광펜으로 그은 줄이 굵었다⁠.

“⁠숫자로 달라고 하셨죠⁠? 숫자예요⁠.⁠”

도윤이 기사를 넘겼다⁠. 한 장씩⁠, 줄 그은 데만 읽었다⁠. 넘기는 속도가 처음보다 느려졌다⁠. 마지막 장을 덮은 도윤이 계산기를 다시 켰다⁠.

“⁠후드는 이번 주에 고칩니다⁠.⁠”

“⁠예⁠?⁠”

“⁠산재 한 건이면 후드 백 개 값이 나갑니다⁠. 후드는 고치는 게 쌉니다⁠.⁠” 도윤이 기사 뭉치를 반듯하게 모아 태분에게 돌려주었다⁠. “⁠사람은 그대로입니다⁠.⁠”

태분은 기사 뭉치를 받았다⁠. 이긴 건지 진 건지 알 수 없었다⁠. 후드를 얻었고⁠, 오백 식을 떠안았다⁠. 도윤은 화이트보드 숫자 밑에 줄을 하나 그었다⁠. 줄 밑에 「⁠3월 15일 시작⁠」이라고 적었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도윤이 4층 난간에서 불렀다⁠.

“⁠조리사님⁠.⁠”

“⁠또 뭐요⁠?⁠”

“⁠협회에서 회신이 왔습니다⁠. 지난번 보고서에 붙인 조리 온도 기록을 기준 마련 참고자료로 쓰고 싶답니다⁠.⁠”

“⁠내 화이트보드를요⁠?⁠”

“⁠숫자가 있으니까요⁠.⁠”

*

저녁 아홉 시⁠, 화양동 집 부엌에서 태분은 감자를 깎았다⁠. 급식소 감자가 아니라 집 감자였다⁠. 준기가 샤워를 마치고 수건을 목에 건 채 식탁에 앉았다⁠. 오늘 하루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엄마⁠, 나 7층 고정 됐어⁠. 신입 중에 7층 고정 나 혼자야⁠.⁠”

“⁠잘했네⁠.⁠”

“⁠대장님이 그러는데⁠, 이대로 가면 5월 보스 공략에 신입 자리 하나 날 수도 있대⁠. 보스 공략 한 번 들어가면 수습 바로 뗀대⁠.⁠”

태분은 감자를 깎다가 칼을 멈췄다⁠. 큰어미라고 헌터들이 부르는 7층의 주인을 영상에서 본 적은 없었다⁠. 무겸이 작년 가을 거기서 대원 둘을 잃었다는 말만 봉춘에게서 들었다⁠.

“⁠보스 공략은 다 아는 사람들이 가는 거야⁠.⁠”

“⁠엄마 밥 먹으면 멧돼지가 안 물잖아⁠.⁠” 준기가 웃었다⁠. “⁠엄마가 내 무기야⁠.⁠”

“⁠무기는 칼이고⁠, 엄마는 밥이야⁠.⁠”

“⁠그게 그거지⁠.⁠”

준기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었다⁠. 물방울이 식탁에 튀었다⁠. 태분은 감자 껍질을 개수대에 털고 한 개를 더 집었다⁠. 손바닥 안에서 감자가 무거웠다⁠.

거실 텔레비전에서 저녁 뉴스가 흘렀다⁠. 「⁠일본 오사카⁠, 던전 몬스터 고기 가공 공장 첫 가동⁠」⁠. 하얀 방진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라색 고깃덩이를 기계에 밀어 넣는 화면이 지나갔고⁠, 「⁠국내 가공 업체도 잇따라 문 열어⁠」라는 자막이 뒤따랐다⁠. 기계 안으로 들어가는 고기마다 비늘이 반쯤 붙어 있었다⁠. 태분은 화면 속 작업자들의 손을 보았다⁠. 장갑 색이 전부 하얬다⁠.

*

3월 15일 월요일 새벽 다섯 시 반⁠, 고친 후드가 처음으로 제대로 돌았다⁠. 웅 소리가 끊기지 않고 이어졌고⁠, 볶음 솥에서 오르던 연기가 천장으로 빨려 올라갔다⁠. 태분은 후드 밑에서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셨다⁠. 기름 냄새 대신 마늘 냄새가 들어왔다⁠.

여섯 시⁠, 첫 아침 배식이 열렸다⁠. 헌터들이 반쯤 감긴 눈으로 줄을 이었다⁠. 갑옷을 반만 입은 헌터⁠, 투구를 거꾸로 쓴 헌터⁠, 식판 대신 방패를 내미는 헌터⁠.

“⁠방패 말고 식판⁠.⁠”

“⁠아⁠, 네⁠.⁠”

“⁠눈 뜨고 받아요⁠. 자면서 먹으면 체해요⁠.⁠”

“⁠체하면 마력 불통 돼요⁠?⁠”

“⁠엄마 불통 돼요⁠.⁠”

뒷줄에서 웃음이 터졌다⁠. 준기가 1공략대 사이에서 고개를 숙였다⁠. 귀가 또 빨개졌다⁠.

배식대 뒤에서 봉춘이 파란 장갑을 낀 채 비늘 쟁반을 나르고⁠, 태분은 분홍 장갑을 낀 채 국자를 휘둘렀다⁠. 아침 이백⁠, 점심 이백⁠, 저녁 백⁠. 뚝섬 길드에 보낼 도시락은 점심 배식이 끝나기 전에 싸야 했다⁠. 탐침을 꽂고⁠, 85도를 보고⁠, 삼 분을 기다리고⁠, 측정기를 댔다⁠. 한 솥을 기다리는 삼 분 동안 다른 솥 둘이 끓었다⁠.

열한 시⁠, 봉춘이 냉장고 문에 손을 짚고 섰다⁠.

“⁠반장님⁠, 저 잠깐 앉아도 됩니까⁠?⁠”

“⁠무릎이에요⁠?⁠”

“⁠아니요⁠. 영혼이요⁠.⁠”

봉춘은 감자 상자 위에 털썩 앉았다⁠. 상자가 찌그러졌다⁠.

뒷문 밖에서 리어카 바퀴 소리가 났다⁠. 뚝섬의 작은 길드 「⁠반딧불⁠」에서 도시락을 받으러 온 대장이었다⁠. 쉰 살쯤 된 남자가 낡은 가죽 갑옷 위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도시락 스무 개요⁠. 우리 길드는 헌터가 열둘인데⁠, 여덟 개는 저녁까지 나눠 먹습니다⁠.⁠”

“⁠저녁까지 두면 안 돼요⁠. 받으면 두 시간 안에 드세요⁠.⁠”

“⁠우리 부엌엔 냉장고가 하나라서요⁠. 그 냉장고에 물약이 들어 있습니다⁠.⁠”

반딧불 대장이 리어카에 도시락을 싣고 고개를 꾸벅했다⁠. 태분은 리어카가 광장을 가로질러 멀어지는 것을 보다가 다시 솥으로 돌아섰다⁠. 물약 냉장고에 들어갈 도시락 여덟 개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태분은 웃을 틈도 없이 다음 솥에 탐침을 꽂았다⁠. 83도⁠. 84도⁠. 숫자가 올라가는 동안 휴대전화가 주머니에서 울렸다⁠. 장갑을 벗을 수 없어서 팔꿈치로 화면을 켰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전처리는 외주 업체 두레마수가공에서 받습니다⁠. 손질 시간을 줄여야 단가가 맞습니다⁠. — 반도윤⁠」

탐침이 85도를 가리켰다⁠. 태분은 타이머를 삼 분에 맞추고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남이 벗긴 비늘⁠, 남이 썬 고기⁠, 남이 갈아 끼우지 않은 장갑⁠. 팔꿈치로 답장 창을 열었다가⁠, 장갑 낀 손가락으로는 글자가 눌리지 않아 창을 닫았다⁠. 타이머가 울렸다⁠. 측정기 유리판이 맑았다⁠.

태분은 국자를 들고 배식대로 돌아섰다⁠. 줄은 문밖 광장까지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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