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68자)

콩나물무침이 범인이다

던전 급식 조리사 · 윤바로

3월 3일 수요일 새벽 네 시⁠, 급식소 뒷문 앞 시멘트 바닥에서 봉춘이 방패를 거꾸로 쥐고 멧돼지 등을 긁었다⁠. 방패 모서리가 비늘 밑을 파고들 때마다 쩍 소리가 났고⁠, 떨어진 비늘은 하나같이 가운데가 쩍 갈라져 있었다⁠. 쟁반 위에 금 간 보라 비늘이 수북했다⁠.

“⁠봉춘 씨⁠, 그거 생선 손질이에요⁠, 전쟁이에요⁠?⁠”

“⁠던전에선 이렇게 벗겼습니다⁠. 빨리 벗겨야 다음 놈이 오기 전에 도망가니까요⁠.⁠”

“⁠여긴 다음 놈 안 와요⁠.⁠”

태분은 국솥에 물을 올리고 탐침 온도계를 꽂았다⁠. 70도에서 불을 줄인 뒤 국자로 물을 떠 비늘 뿌리 하나에 천천히 부었다⁠. 김이 올라오고⁠, 비늘 밑 허연 힘줄이 오그라들었다⁠. 집게로 비늘 끝을 잡고 결 반대 방향으로 살짝 비틀자 비늘이 통째로 쑥 빠졌다⁠. 손바닥만 한 보라 비늘이 금 하나 없이 쟁반에 떨어졌다⁠. 땡⁠, 하고 맑은 소리가 났다⁠.

봉춘이 방패를 내려놓았다⁠.

“⁠반장님⁠, 그거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학교에서 돼지 껍데기 벗길 때 이렇게 해요⁠. 힘줄은 뜨거운 물에 약해요⁠.⁠”

“⁠이렇게 성한 건 비늘 시장에서 네 배는 받습니다⁠. 금 가면 가루 내서 약재로나 팔리고요⁠.⁠”

봉춘이 방패로 긁어 놓은 쟁반을 내려다보았다⁠. 금 간 비늘이 쟁반 하나를 넘쳤다⁠.

봉춘은 무릎을 딱딱거리며 쪼그려 앉아 쟁반의 성한 비늘을 들어 불빛에 비춰 보았다⁠.

“⁠옛날 헌터들은 이 비늘을 끓여서 마셨어요⁠. 그 물 마시면 멧돼지가 안 문다고⁠.⁠”

“⁠누가 그래요⁠?⁠”

“⁠제 첫 대장님이요⁠. 마시고 내려가셨다가 사흘 동안 손에 불이 안 붙으셨습니다⁠.⁠”

“⁠그게 미신이라는 증거잖아요⁠.⁠”

“⁠그때부터 대장님이 안 마시셨습니다⁠.⁠”

태분은 웃음을 참으며 비늘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한 시간 반 만에 백이십 킬로가 맨살을 드러냈고⁠, 쟁반 넷에 보라 비늘이 기와처럼 포개졌다⁠.

*

다섯 시 반⁠, 태분은 부엌 화이트보드에 줄을 그었다⁠. 고기를 엄지 두 마디 두께로 썰어 냄비 다섯에 나눠 넣고 불을 다르게 올렸다⁠. 냄비마다 탐침을 꽂았다⁠. 무겸에게 빌린 마력 측정기를 고기 한가운데 갖다 댔다⁠.

75도에서 일 분⁠. 유리판에 보랏빛이 옅게 남았다⁠. 80도에서 일 분⁠. 아직 보랏빛이었다⁠. 85도에서 일 분을 넘기자 빛이 연기처럼 흩어지기 시작했고⁠, 삼 분이 지나자 유리판이 맑아졌다⁠. 95도에서 십 분을 끓인 냄비는 빛이 일찍 사라졌지만⁠, 고기를 씹어 보니 장화 밑창을 씹는 맛이었다⁠.

“⁠85도⁠, 삼 분⁠.⁠”

태분은 화이트보드에 숫자 두 개를 크게 쓰고 동그라미를 쳤다⁠. 봉춘이 옆에서 따라 읽었다⁠.

“⁠팔십오 도 삼 분⁠. 반장님⁠, 이거 외워야 합니까⁠?⁠”

“⁠문신하세요⁠.⁠”

점심 메뉴는 멧돼지 고추장불고기⁠, 콩나물무침⁠, 배추된장국이었다⁠. 불고기는 회전솥에 나눠 볶고⁠, 솥마다 고기 가장 두꺼운 조각을 골라 탐침을 꽂았다⁠. 85도에 닿으면 휴대전화 타이머를 삼 분에 맞췄다⁠. 타이머가 울리면 측정기를 댔다⁠. 맑으면 배식대로 보냈다⁠. 한 솥도 건너뛰지 않았다⁠. 학교에서 열다섯 해 동안 75도 일 분을 한 번도 건너뛰지 않았듯이⁠.

열한 시 반⁠, 배식대 앞에서 헌터들이 머뭇거렸다⁠. 불고기 고기 가장자리에 보랏빛 테두리가 남아 있었다⁠. 비늘 밑 살이 원래 보랏빛이었다⁠. 대검 멘 헌터가 집게를 든 채 물었다⁠.

“⁠이거 그 돼지예요⁠? 전 조리사님 때 다섯 명이 사흘 쉬었는데⁠.⁠”

“⁠그 돼지 맞아요⁠. 85도에서 삼 분⁠.⁠”

태분은 탐침 온도계 화면을 헌터 눈앞에 들어 보였다⁠. 숫자가 아직 84에서 깜빡였다⁠. 헌터가 숫자를 따라 눈을 깜빡였다⁠.

“⁠조리사님⁠, 숫자로 말씀하시니까 이사님 같아요⁠.⁠”

“⁠이사님은 사천 원밖에 몰라요⁠. 난 85도도 알아요⁠.⁠”

뒤에서 웃음이 터졌고⁠, 대검 헌터가 불고기를 먼저 집었다⁠. 앞사람이 집자 뒷사람들이 따라 집었다⁠. 십 분 뒤 2공략대가 불고기를 두 번씩 받으러 줄을 다시 섰다⁠. 대검 멘 헌터가 식판을 두 손으로 들고 맨 뒤에 섰다⁠. 어제 가르친 것이 하루 만에 몸에 붙어 있었다⁠. 반납대에 돌아온 식판에는 콩나물 한 가닥 남지 않았다⁠.

*

3월 4일 목요일 아침 일곱 시⁠, 급식소 문이 벌컥 열렸다⁠. 2공략대 화염술사 셋이 들어오더니 배식대 앞에서 나란히 손바닥을 폈다⁠.

“⁠조리사님⁠, 이거 보세요⁠.⁠”

맨 앞 헌터가 손가락을 튕겼다⁠. 원래라면 손바닥 위로 주먹만 한 불덩이가 올라와야 했다⁠. 손바닥에서 김이 한 줄 피어올랐다⁠. 두 번째 헌터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힘을 줬다⁠. 김이 두 줄이 되었다⁠.

“⁠전기밥솥이네⁠.⁠” 봉춘이 중얼거렸다⁠.

뒤에서 구두 소리가 빠르게 들어왔다⁠. 도윤이 태블릿을 쥐고 배식대 앞에 섰다⁠. 오늘은 삼각김밥이 없었다⁠.

“⁠2공략대 의뢰가 취소됐습니다⁠. 협회 마석 납품 계약이라 위약금이 육백만 원입니다⁠. 셋이 사흘 쉬면 일당까지 합쳐 천만 원 가까이 나갑니다⁠.⁠”

“⁠고기는 85도에서 삼 분 익혔어요⁠. 한 솥도 안 빼먹었어요⁠.⁠”

“⁠어제 먹은 것 중 몬스터 고기는 이것 하나입니다⁠.⁠”

“⁠고기는 아니에요⁠.⁠”

“⁠그럼 뭡니까⁠?⁠”

태분은 대답 대신 팔짱을 꼈다⁠. 도윤이 태블릿을 내려다보았다⁠.

“⁠원인 찾으십시오⁠. 오늘 안에 못 찾으면 내일부터 몬스터 고기는 중지하고⁠, 급식소는 편의점 상품권으로 돌립니다⁠. 상품권이 천 원 쌉니다⁠.⁠”

“⁠상품권으로 7층 내려가요⁠?⁠”

“⁠지금 상황에선 상품권이 마력 불통보다 쌉니다⁠.⁠”

도윤은 서서 말하고 서서 돌아섰다⁠. 화염술사 셋이 손바닥을 접고 태분을 보았다⁠. 태분은 냉동고로 걸어갔다⁠.

*

냉동고 맨 아래 칸에 투명한 봉지들이 날짜 순서대로 누워 있었다⁠. 끼마다 메뉴마다 1인분씩 떠서 영하 18도에 얼려 둔 보존식이었다⁠. 학교에서는 144시간을 두게 되어 있었다⁠. 탈이 나면 무엇이 탈을 냈는지 거꾸로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여기 와서도 첫날부터 떠 두었다⁠. 봉춘이 이걸 왜 버리지 않고 얼리느냐고 물었을 때 태분은 대답했었다⁠. 오늘 같은 날을 위해서⁠.

어제 점심 봉지 셋을 꺼냈다⁠. 불고기 봉지에 측정기를 대자 유리판이 맑았다⁠. 된장국도 맑았다⁠. 콩나물무침 봉지에 대자 유리판 가장자리에 보랏빛이 옅게 번졌다⁠.

“⁠콩나물⁠?⁠”

봉춘이 뒤에서 숨을 들이마셨다⁠. 태분이 돌아보자 봉춘은 자기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분홍 고무장갑을 낀 큰 손이었다⁠.

“⁠반장님⁠, 제가 어제 새벽에 고기 썰던 장갑으로 그대로 콩나물을 무쳤습니다⁠. 장갑은 물로 헹궜는데⁠.⁠”

콩나물은 데친 뒤 식혀서 맨 마지막에 양념으로 무친다⁠. 무친 뒤에는 다시 익히지 않는다⁠. 생고기를 만진 장갑이 날것의 마력을 콩나물에 그대로 옮겼다⁠. 학교라면 식중독균이 할 일을⁠, 여기서는 엉긴 마력이 했다⁠.

태분은 고무장갑을 벗었다⁠. 장갑 벗은 손이 차가웠다⁠.

“⁠봉춘 씨 잘못 아니에요⁠. 구역을 안 나눈 사람이 잘못이에요⁠.⁠”

*

아홉 시⁠, 도윤과 화염술사 셋을 배식대 앞에 세워 놓고 태분이 콩나물 봉지와 측정기를 내밀었다⁠. 유리판에 보랏빛이 다시 번졌다⁠.

“⁠생고기 만진 장갑으로 콩나물을 무쳤어요⁠. 제가 구역을 안 나눴어요⁠. 제 잘못이에요⁠.⁠”

화염술사 하나가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사과를 받을 준비는 했어도 조리사가 먼저 잘못을 인정할 줄은 몰랐던 얼굴이었다⁠. 도윤이 봉지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다음은 없습니다⁠.⁠”

“⁠알아요⁠.⁠”

도윤이 태블릿 화면을 돌려 보였다⁠. 「⁠헌터협회 — 마력 이상 사고 보고⁠」라는 양식이 떠 있었다⁠.

“⁠마력 불통이 셋 이상이면 협회에 신고하게 바뀌었습니다⁠. 조리 온도 기록을 사진으로 찍어 가겠습니다⁠.⁠”

도윤은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85도 삼 분이 적힌 판을 찍었다⁠. 태분이 쳐 놓은 동그라미까지 화면에 들어갔다⁠.

“⁠협회에서 좋아하겠습니다⁠. 숫자가 있으니까요⁠.⁠”

칭찬인지 아닌지 몰라서 태분은 고무장갑을 다시 꼈다⁠.

“⁠고기는 계속 씁니다⁠. 원가가 없으니까요⁠.⁠” 도윤이 화염술사들을 돌아보았다⁠. “⁠세 분은 사흘 동안 일당이 그대로 나갑니다⁠. 어차피 나가는 돈이니 급식소에서 쓰십시오⁠.⁠”

“⁠예⁠?⁠”

“⁠마늘 까시면 됩니다⁠.⁠”

도윤이 나가자 화염술사 셋은 의자에 앉아 마늘 자루를 하나씩 받았다⁠. 맨 앞 헌터가 마늘 한 알을 손에 쥐고 무심코 손가락을 튕겼다⁠. 김이 한 줄 올라왔다⁠.

“⁠구우려고 했지⁠?⁠” 태분이 물었다⁠.

“⁠버릇이라서요⁠.⁠”

“⁠까⁠. 굽지 말고⁠.⁠”

*

열 시⁠, 준기가 1공략대 훈련복 차림으로 뒷문에 왔다⁠. 이번에도 문틀 너머에서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 2공략대 형들이 나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콩나물 아들⁠.⁠”

“⁠시금치보단 낫네⁠.⁠”

“⁠농담할 때야⁠?⁠” 준기가 목소리를 낮췄다⁠. “⁠이사님이 아침에 신입들 모아 놓고 그랬어⁠. 급식소에서 사고 한 번 더 나면 급식소 닫고⁠, 모자라는 돈은 신입 수당부터 깎는다고⁠.⁠”

태분은 마늘 까는 화염술사들을 돌아보았다⁠. 셋 다 못 들은 척 마늘만 깠다⁠.

“⁠엄마가 고기 쓰지 말고⁠, 그냥 이사님 말대로 편의점 하면 안 돼⁠?⁠”

“⁠사고 낸 건 고기가 아니라 엄마 장갑이야⁠.⁠”

“⁠그러니까⁠.⁠” 준기가 문틀을 손바닥으로 쳤다⁠. “⁠엄마가 실수하면 내가 찍힌다고⁠.⁠”

태분은 할 말을 찾다가 냉장고에서 주먹밥 두 개를 꺼내 문틀 너머로 내밀었다⁠. 준기는 안 받으려다 받았다⁠.

“⁠이건 고기 안 들었어⁠.⁠”

“⁠알아⁠. 냄새로 알아⁠.⁠”

준기가 가고 나서 화염술사 하나가 마늘을 내려놓았다⁠. “⁠조리사님⁠, 저희는 콩나물 아들이라고 안 했어요⁠. 저 형이 했어요⁠.⁠” 손가락이 옆 헌터를 가리켰다⁠. 지목당한 헌터가 마늘 한 알을 집어 던지는 시늉을 했다⁠. 손에서 김이 또 한 줄 올라왔다⁠.

*

점심 전에 태분은 바닥에 노란 테이프를 붙였다⁠. 뒷문에서 개수대까지는 전처리⁠, 개수대에서 배식대까지는 조리⁠. 테이프를 넘어갈 때는 손을 씻고 장갑을 갈았다⁠. 생 몬스터 고기는 파란 고무장갑⁠, 나머지는 전부 분홍 고무장갑이었다⁠. 창고에서 파란 장갑 열 켤레를 꺼내 봉춘 앞에 놓았다⁠.

“⁠봉춘 씨는 이제 고기 담당이에요⁠. 파랑⁠.⁠”

“⁠반장님⁠.⁠” 봉춘이 분홍 장갑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저 분홍 하면 안 됩니까⁠?⁠”

“⁠왜요⁠?⁠”

“⁠분홍 끼면 손이 예뻐 보입니다⁠.⁠”

“⁠고기 만지는 손은 파랑⁠.⁠”

봉춘은 파란 장갑을 끼고 손을 앞뒤로 뒤집어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화염술사들이 마늘을 까다 말고 키득거렸다⁠. 셋 다 손톱 밑이 노래져 있었다⁠. 태분은 화이트보드의 85도 삼 분 밑에 한 줄을 더 적었다⁠. 테이프 넘으면 장갑 갈기⁠. 점심은 남은 멧돼지로 다시 불고기를 볶았고⁠, 솥마다 탐침을 꽂았다⁠.

*

밤 열 시⁠, 마지막 설거지를 마치고 불을 끄려는데 뒷문이 열렸다⁠. 무겸이 들어왔다⁠. 갑옷 가슴판이 주먹만 하게 찌그러져 있었고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이마에 붙어 있었다⁠. 무겸은 오늘 점심 불고기를 두 번 받아 먹고 1공략대를 이끌고 7층에 내려갔었다⁠.

“⁠조리사님⁠, 오늘 점심에 뭘 먹인 겁니까⁠?⁠”

태분은 고무장갑을 벗다 말고 멈췄다⁠. 마력 불통이 또 났나 싶어 손목이 차가워졌다⁠.

“⁠불고기요⁠. 85도 삼 분⁠. 장갑도 갈았어요⁠.⁠”

“⁠7층 멧돼지들이 우리를 안 물었습니다⁠.⁠” 무겸이 찌그러진 가슴판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무리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는데⁠, 놈들이 코를 대고 킁킁거리더니 그냥 비켜 갔습니다⁠. 이건 무리 밖에서 혼자 돌던 놈한테 맞은 겁니다⁠.⁠”

봉춘이 행주를 떨어뜨렸다⁠. 태분은 쟁반에 포개 둔 보라 비늘을 돌아보았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비늘이 일제히 번들거렸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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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면은세개2026.11.06· 2화

    고기는 완벽하게 익혔는데 범인이 콩나물무침이라니요. 보존식 통 하나씩 뒤지는 장면에서 급식실 일 해 본 사람은 다 끄덕였을 거예요. 생고기 장갑 그대로 무쳤다는 데서 소리 질렀습니다.

    • 윤바로작가2026.11.06

      급식실에서 제일 무서운 건 늘 사소한 손 하나예요. 85도 삼 분을 찾아낸 태분이 그 숫자를 어디까지 지키는지 계속 봐 주세요.

콩나물무침이 범인이다 · 던전 급식 조리사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