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842자)
식판 똑바로 들어
던전 급식 조리사 · 윤바로
2027년 3월 2일 화요일 아침 여섯 시 반, 성수동 던전 입구 광장의 청운 급식소 문을 열자 컵라면 냄새가 먼저 나왔다. 개수대에는 양은 냄비가 열한 개 포개져 있었고, 냄비마다 라면 국물이 말라붙어 주황색 띠를 둘렀다. 가스레인지 위 후드는 스위치를 누르면 웅 소리를 내다 멈췄다. 엄태분은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스위치를 세 번 더 눌렀다.
“여기서 애들 밥을 해 먹였다고?”
어제까지 태분이 일한 곳은 마포의 초등학교 급식실이었다. 열다섯 해 동안 아침마다 식재료 상자를 뜯고, 고기 한가운데 탐침 온도계를 꽂고, 열두 시 십 분이면 우르르 몰려오는 아이들에게 식판을 똑바로 들라고 소리쳤다. 2월 마지막 날 퇴근할 때 같이 일한 언니들이 고무장갑 한 묶음을 쥐여 주었다. 전부 분홍색이었다.
탈의실이 따로 없어서 창고 선반 뒤에서 조리복을 갈아입었다. 냉장고 스테인리스 문에 비친 몸을 한 번 훑었다. 통통하고 다부진 몸에 흰 조리복, 하늘색 앞치마. 흰 위생모 밑으로 짧은 갈색 곱슬머리가 삐져나와 손가락으로 밀어 넣었다. 둥근 볼은 아침 바람에 발갰고, 아이들이 급식실 호랑이라고 부르던 매서운 눈매도 그대로였다. 분홍 고무장갑을 끼고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고무가 뽀득 소리를 냈다.
큰 창 너머로 돌 동굴 입구가 보였다. 회색 돌을 아치로 쌓은 입구 양옆에 등이 켜져 있었고, 위쪽 바위에 꽂힌 「청운」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다. 여덟 해 전 공장 터 바닥이 꺼지면서 열린 구멍이 지하 일곱 층까지 내려간다고, 아들 준기가 입사 서류를 내밀며 자랑하듯 말했었다.
*
일곱 시, 뒷문이 열리고 감자 상자가 세 개 포개진 채 들어왔다. 상자 뒤에서 덩치가 문틀만 한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따라 들어왔다. 양 무릎에 검은 보호대를 찼고, 걸을 때마다 무릎에서 딱딱 소리가 났다.
“새로 오신 반장님이시죠? 노봉춘입니다. 조리보조요.”
“반장은 무슨. 조리사예요.”
“전에 계시던 분도 반장님이라고 불렀어요. 석 달 버티셨고요.”
봉춘이 감자 상자를 내려놓고 냉장고 문을 턱으로 가리켰다. 자석 밑에 누런 쪽지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돼지는 덜 익히면 사흘 간다. 나는 간다.」
“돼지가 뭘 사흘 가요?”
“보시면 압니다.”
봉춘은 던전이 열린 뒤로 여덟 해를 맨 앞에서 방패를 들었다고 했다. 무릎 연골이 다 닳아 협회 등급을 내려놓은 뒤로 길드에서 감자를 나른다. 태분은 감자 상자 위에 손을 얹은 봉춘의 손을 보았다. 손톱 밑이 까맸다.
“손 씻고 와요.”
“아까 씻었는데요.”
“언제?”
“어제요.”
태분이 개수대를 가리켰다. 봉춘은 무릎을 딱딱거리며 개수대로 가서 비누를 손에 쥐고 한참을 문질렀다. 방패를 쥐던 손이라 비누가 두 번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
일곱 시 반, 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반쯤 먹은 삼각김밥을 들고 들어왔다. 다른 손에는 태블릿이 있었다. 남자는 삼각김밥 비닐을 이로 물고 태블릿을 켰다.
“재무이사 반도윤입니다. 급식소 운영안 드리러 왔습니다.”
화면에 표가 떴다. 맨 위 칸에 「공략대 급식소 — 끼니 단가 4,000원」이라는 글자가 굵게 박혀 있었다.
“식수는 하루 두 끼, 이백 명입니다. 식품비는 한 끼 사천 원 안에서 해 주십시오. 다음 주부터는 몬스터 고기를 씁니다. 공략대가 잡아 오는 거라 원가가 없습니다.”
“사천 원이면 초등학생 한 끼 식품비예요.”
“알고 있습니다. 조사해 봤습니다.”
“헌터는 애들 세 배는 먹을 텐데.”
“그건 감이고요, 이건 숫자입니다.” 도윤이 화면을 넘겼다. 빨간 막대가 줄지어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작년 가을 7층 공략이 실패하면서 장비 대출 이자가 밀렸습니다. 청운이 올해 적자를 한 번 더 내면 은행이 대출을 거둬 갑니다. 그러면 헌터 이백 명이 다음 달 월급을 못 받습니다.”
태분은 화면 대신 도윤의 손을 보았다. 삼각김밥을 쥔 손가락에 김 부스러기가 붙어 있었다. 서른아홉이라고 들었는데 손등이 쉰 살처럼 말라 있었다.
“그럼 후드부터 고쳐 주세요. 튀김 하면 연기가 부엌에 다 찹니다.”
“후드 수리 견적이 삼백만 원입니다. 다음 분기에 보겠습니다.”
태분은 팔짱을 꼈다. 분홍 고무장갑 낀 손이 겨드랑이 밑으로 들어갔다. 학교 급식실에서 10년 넘게 같이 튀김을 튀긴 언니가 작년 겨울 폐 한쪽을 잘라 냈다. 의사는 튀김 연기를 오래 마신 탓이라고 했다. 태분이 급식실을 그만둔 날짜는 언니가 수술실에 들어간 날로부터 두 달 뒤였다.
“튀김 연기 십 년 마신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모릅니다. 숫자로 주시면 보겠습니다.”
도윤은 삼각김밥 마지막 한 입을 털어 넣고 비닐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서서 먹고 서서 접었다.
“밥은 앉아서 드세요.”
“앉으면 늦습니다.”
*
태분은 식단판 앞에 섰다. 「오늘의 식단」이라고 인쇄된 판에 매직으로 한 줄씩 채웠다. 밥, 두부고추장찌개, 시금치나물, 달걀말이. 사천 원 안에 들어오는 것은 이 정도였다. 어젯밤 식자재 업체에 전화로 주문한 두부 쉰 모와 달걀 다섯 판이 뒷문 앞에 와 있었다.
봉춘에게 달걀을 맡겼더니 첫 판에서 껍데기가 네 조각 들어갔다. 봉춘은 달걀을 방패 모서리로 적의 무릎을 치듯 그릇 가장자리에 내리쳤다.
“살살. 달걀이 몬스터예요?”
“몬스터는 이렇게 쳐야 깨져서요.”
“달걀은 이렇게.” 태분이 달걀을 손바닥에 올리고 개수대 모서리에 톡 쳤다. 금이 한 줄로 갔다. 엄지 둘로 벌리자 노른자가 그릇에 둥글게 떨어졌다. 봉춘이 입을 벌렸다.
“반장님, 그거 기술입니까?”
“열다섯 해 깨면 다 돼요.”
*
열한 시 반, 동굴 입구에서 쇳소리가 몰려왔다. 밤새 3층을 돈 2공략대가 갑옷도 안 벗고 급식소로 들어섰다. 칼집이 문틀에 부딪히고, 방패가 배식대 모서리를 긁고, 누가 투구를 바닥에 떨어뜨려 쇳소리가 부엌 끝까지 울렸다. 헌터 서른 명이 배식대 앞으로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줄이랄 것이 없었다.
맨 앞으로 대검을 멘 키 큰 헌터가 어깨부터 밀고 들어왔다. 뒤에서 기다리던 여자 헌터가 비켜났다. 태분이 국자를 국솥 가장자리에 땅 쳤다.
“줄!”
급식소가 조용해졌다. 서른 명이 한꺼번에 태분을 보았다.
“거기 칼 멘 학생, 아니, 헌터님. 맨 뒤로.”
“저 C급인데요.”
“여기선 다 식판급이에요. 뒤로.”
대검이 뒤로 갔다. 걸어가는 뒷모습이 1학년 남자애들이 새치기하다 걸렸을 때와 똑같았다. 어깨가 내려가 있었다.
“식판 똑바로 들어. 국 흘러요.”
한 손에 방패를 든 헌터가 식판을 기울여 들고 있었다. 찌개 국물이 식판 가장자리로 쏠렸다.
“방패 내려놓고. 밥 먹는데 방패가 왜 필요해요?”
“습관이라서요.”
“밥 먹을 땐 두 손으로. 그것도 습관 들이면 돼요.”
달걀말이를 두 개 집어 가려던 손을 태분이 국자로 막았다. “한 사람 하나. 더 먹고 싶으면 남기지 말고 다 먹고 다시 와요.” 헌터가 달걀말이를 하나 내려놓고 식판을 두 손으로 들었다. 뒤에서 누가 킥 웃었다.
*
열두 시가 되자 1공략대가 들어왔다. 갑옷이 아직 새것이라 반짝거리는 헌터 하나가 투구를 옆구리에 끼고 줄 가운데 서 있었다. 갑옷 어깨가 몸보다 한 뼘 넓었다. 태분은 국자를 쥔 채 멈췄다.
준기였다.
준기가 식판을 내밀며 입술만 움직였다. 엄마. 태분도 입술만 움직였다. 조리사님. 준기의 귀가 빨개졌다.
“시금치 빼 주세요.”
“편식하면 마력 안 늘어요.”
“그런 말이 어딨어요?”
“지금 생겼어요.”
시금치가 식판에 두 번 올라갔다. 줄 뒤에서 1공략대 헌터들이 웅성거렸다.
“엄준기. 엄 조리사님이랑 성이 같네?”
“엄준기 엄마가 엄 조리사님이야?”
“엄마가 엄마네.”
준기는 아무 대답 없이 시금치를 내려다보며 자리로 갔다. 준기는 태어날 때부터 엄씨였다. 아버지 성을 받을 일이 없었다. 태분은 스물두 해 동안 아들 밥을 혼자 해 먹였고, 이제 다른 헌터 이백 명과 같은 줄에서 해 먹이게 되었다.
맨 뒤에 마흔 남짓한 남자가 식판을 들고 서 있었다. 1공략대장 탁무겸이었다. 대원들이 앞으로 오라고 손짓했지만 무겸은 고개를 저었다. 차례가 오자 무겸은 식판을 두 손으로 내밀었다.
“대장은 맨 뒤입니다. 확인.”
“확인.”
태분은 무슨 뜻인지 몰라도 따라 했다. 사십 분 뒤 무겸은 밥알 하나 없는 식판을 반납대에 올려놓았다. “잔반 없음.” 태분은 무겸의 식판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열다섯 해 동안 이렇게 깨끗한 식판은 영양 선생님 식판밖에 없었다.
*
두 시, 설거지를 하는데 뒷문이 빼꼼 열렸다. 준기가 투구 없이 고개만 들이밀었다.
“엄마, 아까 거 좀.”
“뭐.”
“애들 앞에서 학생이라고 하지 마. 나 벌써 별명 생겼어. 시금치.”
“시금치 좋은 거야.”
“엄마.” 준기가 문틀을 붙잡았다. “여기 신입은 첫해에 보스 공략 못 들어가면 수습에서 잘려. 엄마가 이사님이랑 싸우면 나도 찍혀.”
“싸운 적 없어.”
“팔짱 꼈잖아. 다 봤대.”
태분은 고무장갑을 벗어 개수대 가장자리에 걸쳐 두었다. 준기는 문틀 너머에 발을 둔 채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서는 냉장고 문을 발로 닫던 애가 급식소 바닥에는 한 발도 들이지 않았다.
“밥은 다 먹었어?”
“시금치 빼고.”
벽에 달린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흘렀다. 「부산 해운대 던전 길드, 몬스터 고기 회식 뒤 헌터 열두 명 마력 이상」. 화면 아래로 「헌터협회, 급식 기준 마련 검토」라는 자막이 지나갔다. 준기가 화면을 보더니 문을 닫았다. 닫히는 문틈으로 한마디가 들어왔다.
“엄마 밥은 맛있었어.”
*
오후 네 시, 뒷문 밖에서 바퀴 소리가 났다. 1공략대 넷이 철제 수레를 밀고 왔다. 수레 위에 보라색 덩어리가 얹혀 있었다. 멧돼지였다. 멧돼지라고 하기에는 어깨부터 엉덩이까지 손바닥만 한 보라 비늘이 기왓장처럼 겹쳐 덮였고, 비늘 하나하나가 햇빛을 받아 기름 먹은 듯 번들거렸다. 헌터 넷이 수레를 기울이자 덩어리가 뒷문 앞 시멘트 바닥에 쿵 떨어졌다.
“7층 보라 비늘 멧돼지입니다.” 무겸이 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백이십 킬로.”
등 뒤에서 구두 소리가 났다. 도윤이 태블릿을 들고 와서 멧돼지를 내려다보았다.
“내일 점심부터 이걸로 하십시오. 원가 0원입니다.”
“이거 몇 도에 익혀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무겸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전 조리사님은 75도로 하셨습니다.”
“75도에 일 분은 사람 먹는 돼지고기 기준이에요. 이건 사람 먹는 돼지가 아니잖아요.”
봉춘이 냉장고 문의 쪽지를 떼어 와 태분 앞에 펼쳤다. 돼지는 덜 익히면 사흘 간다. 나는 간다.
“사흘 뭐가 가요?”
“마력이요.” 무겸이 대답했다. “덜 익은 걸 먹으면 사흘 동안 손에 불이 안 붙습니다. 지난겨울에 2공략대 다섯이 그렇게 쉬었습니다.”
태분은 뒷문 선반에서 탐침 온도계를 꺼내 멧돼지 넓적다리 한가운데 꽂았다. 4도. 무겸이 허리에 찬 손바닥만 한 기계를 고기 가까이 댔다. 협회에서 헌터들에게 나눠 주는 마력 측정기였다. 측정기의 유리판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고깃덩이 속에서 무언가 꿈틀대듯 빛이 일렁였다.
“검수 기준 없는 고기는 안 받아요. 학교에선 온도 안 맞는 고기는 트럭째 돌려보내요.”
“여긴 학교가 아닙니다.” 도윤이 태블릿을 내렸다. “이 고기 안 쓰시면 사천 원으로 이백 명 고기 반찬은 일주일에 한 번입니다. 고기 없는 밥 먹고 7층 내려간 헌터가 다치면, 그건 누가 책임집니까?”
태분은 대답하지 않았다. 분홍 고무장갑 낀 손으로 비늘 하나를 쓸어 보았다. 차갑고 단단했고, 손끝에 닿는 결이 생선 비늘보다 백 배는 두꺼웠다. 측정기 빛이 고무장갑 위에 보랏빛 얼룩으로 떨어졌다.
“봉춘 씨.”
“예, 반장님.”
“칼 갈아요. 내일 새벽 네 시.”
도윤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돌아섰다. 걸어가면서 주머니에서 새 삼각김밥을 꺼냈다. 태분은 멧돼지 앞에서 팔짱을 꼈다. 뒷문 너머 동굴 입구에서 「청운」 깃발이 바람에 한 번 크게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