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96자)

옥상

층간소음 전쟁 석 달째 · 지마루

일요일 아침 아홉 시⁠, 육단우는 옥상 문을 밀었다⁠. 열네 시간 근무를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근무복 위에 패딩 조끼를 걸쳤다⁠. 머리는 눌려 있지 않았다⁠. 단추는 제대로 끼웠다⁠. 세 번 확인했다⁠.

옥상 빨랫줄 아래에 킥 드럼이 놓여 있었다⁠. 302호 방에 있던 북이었다⁠. 스네어와 하이햇⁠, 심벌즈 두 장⁠. 무헌이 드럼 의자에 앉아 단우를 보고 있었다⁠. 맨발이었다⁠. 옥상 시멘트 위에 맨발이었다⁠.

“⁠이거 다 들고 올라왔습니까⁠?⁠”

“⁠라이더 형이랑 둘이요⁠. 새벽 다섯 시에⁠.⁠”

“⁠엘리베이터 없는 사 층을요⁠?⁠”

“⁠북은 무거운데 쪽지가 가벼워서요⁠.⁠”

무헌이 셔츠 가슴 주머니를 두드렸다⁠. 처방 메모지 모서리가 주머니 밖으로 삐죽 나와 있었다⁠. 단우는 고개를 돌려 옥상 너머 골목을 보았다⁠. 망원동의 빨간 벽돌 지붕들이 아침 햇빛에 줄지어 있었다⁠. 고무 대야마다 살얼음이 끼어 있었다⁠.

“⁠간호부에는 말 안 했습니다⁠.⁠”

단우가 말했다⁠.

“⁠위층 소리를 들어야 잠이 오는 체질이라는 말이요⁠. 쪽지에만 썼습니다⁠. 그건 무헌 씨한테 하는 말이었습니다⁠.⁠”

“⁠알아요⁠.⁠”

“⁠그리고 무헌 씨 발 시렵니다⁠. 신발 신으십시오⁠.⁠”

“⁠페달은 맨발로 밟아야 돼요⁠.⁠”

“⁠여기는 옥상입니다⁠. 영하 2도입니다⁠.⁠”

무헌은 운동화를 신지 않았다⁠. 대신 오른발을 페달에 올렸다⁠. 단우를 보았다⁠. 밟았다⁠. 둥⁠.

소리가 옥상 바닥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4층⁠, 3층⁠, 2층⁠, 1층⁠. 슬래브 네 장을 지나 할머니 집 천장까지 내려갔다⁠. 몇 초 뒤⁠, 1층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골목으로 올라왔다⁠.

“⁠총각들⁠! 아침부터 뭐 해⁠! 귤 가지고 올라갈까⁠?⁠”

단우가 웃었다⁠. 2주 만에 웃었다⁠. 웃으면서 무헌 앞으로 걸어가 무헌의 맨발 위에 자기 운동화 한 짝을 벗어 덮었다⁠. 발 하나가 들어가기엔 작은 신발이었다⁠.

“⁠토요일 오후 세 시⁠. 낮이면 소음 기준이 높습니다⁠. 무대는 여기로 합시다⁠.⁠”

*

화요일 밤⁠, 차무헌의 302호 현관을 누가 두드렸다⁠. 두 번⁠, 조심스럽게⁠. 무헌이 문을 열었다⁠. 201호 남편이 서 있었다⁠. 택배 조끼를 입은 채였다⁠. 손에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남편은 거실 매트 위에 앉지 않았다⁠. 현관 앞에 서서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귀남과 주고받은 문자 창이었다⁠.

「⁠계단에서 찍어⁠. 302호 문 나올 때⁠. 단추 보이게⁠.⁠」 「⁠찍으면 이사비 칠백⁠.⁠」 「⁠사진 보내⁠. 원본으로⁠.⁠」

마지막 문자 아래에 사진이 있었다⁠. 302호 문을 나서는 단우⁠. 잘못 끼운 단추⁠. 남편은 화면을 쥔 손을 내리지 못했다⁠.

“⁠제가 찍었어요⁠.⁠”

무헌은 화면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오른발이 바닥을 찾았다⁠. 페달은 옥상에 있었다⁠. 발이 바닥을 한 번 굴렀다⁠. 아래층 202호가 울렸다⁠.

“⁠왜요⁠.⁠”

“⁠칠백이면 보증금이 맞아요⁠. 아기 방 있는 집이요⁠. 와이프가 다섯 달이에요⁠. 병원비도 있고요⁠. 사장님이 그 사진 하나면 단우 씨가 병원에서 좀 시끄러워지고 끝이라고 했어요⁠. 쫓겨나는 건 아니라고⁠.⁠”

남편의 목소리가 떨렸다⁠.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근데 와이프가 단우 씨 경위서 쓰는 소리를 들었어요⁠. 밤에 계단에서요⁠. 영수증 붙이는 소리⁠. 와이프가 울었어요⁠. 우리 아기가 크면 이런 아빠라고 말해야 하냐고⁠.⁠”

무헌은 주먹을 쥐었다⁠. 손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었다⁠. 주먹이 남편 쪽으로 반 뼘 나가다 멈췄다⁠. 남편은 피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기다렸다⁠.

무헌은 주먹을 폈다⁠. 펴진 손으로 남편의 휴대전화를 받았다⁠.

“⁠이 문자⁠, 단우 씨한테 보여 줘도 돼요⁠?⁠”

“⁠그러려고 왔어요⁠. 칠백은 안 받았어요⁠. 사장님이 지난주에 다 줬다고 하는데⁠, 아직 안 줬어요⁠. 아마 안 줄 거예요⁠.⁠”

“⁠단우 씨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남편이 눈을 떴다⁠.

“⁠201호 사람들은 봉투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라고⁠. 찬열이가 그 말 듣고 왔어요⁠. 단우 씨는 당신이 찍은 줄 알고도 그렇게 말했어요⁠.⁠”

남편은 고개를 숙였다⁠. 택배 조끼 가슴에 붙은 회사 마크가 무헌의 눈높이에서 흔들렸다⁠. 무헌은 문을 열어 주었다⁠.

“⁠토요일 세 시⁠. 옥상이에요⁠. 와이프분이랑 같이 오세요⁠. 계단 올라오기 힘드시면 제가 업을게요⁠.⁠”

*

토요일 오후 세 시⁠, 솔빌라 옥상에 사람이 서른 명 넘게 모였다⁠.

고시생이 옥상 문에 골판지 한 장을 붙였다⁠. 매직으로 큰 글씨가 적혀 있었다⁠. 「⁠솔빌라 옥상 공연⁠. 입장료 귤 한 개⁠.⁠」 문 옆에 할머니가 귤 상자를 놓고 앉아 있었다⁠. 입장료를 걷는 게 아니라 나눠 주고 있었다⁠. 귤이 없는 사람에게 귤을 주고⁠, 받은 귤을 다시 입장료로 걷었다⁠. 고시생이 손가락으로 사람 수를 셌다⁠. 서른한 명이었다⁠.

유학생은 보온병 세 개에 수테차를 끓여 왔다⁠. 종이컵마다 따라 주며 설명했다⁠. 소금 들어간 우유입니다⁠. 처음엔 이상합니다⁠. 두 번째부터 맛있습니다⁠. 라이더는 배달 가방에 치킨 다섯 마리를 싣고 사 층을 두 번 오르내렸다⁠. 다섯 마리 중 한 마리는 사장님 몫이라고 했다⁠. 「⁠망원 지하⁠」 사장이 옥상 구석에서 앰프를 연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골목 건너편 빌라 옥상에도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빨랫줄 너머로 손을 흔들었다⁠. 경로당 할머니 넷이 반차순 할머니 손에 이끌려 계단을 올라왔다⁠. 클럽 소리에 귀를 막던 사람들이었다⁠. 낮 세 시라 괜찮다고⁠, 우리 차순이 손주들이라고⁠, 귤을 받아 들고 맨 앞 의자에 앉았다⁠.

201호 부부가 마지막으로 올라왔다⁠. 아내는 계단 손잡이를 잡고 한 칸씩 올랐다⁠. 남편이 뒤에서 아내의 허리를 받쳤다⁠. 무헌이 업겠다고 했지만 아내가 웃으며 거절했다⁠. 단우가 의자 하나를 아내 앞에 놓았다⁠. 아내가 단우를 보았다⁠. 단우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아내가 의자에 앉아 단우의 손을 잡았다⁠. 말은 없었다⁠.

찬열이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새벽배송⁠」입니다⁠. 원래 12월에 지하에서 하려던 공연을 오늘 하늘에서 합니다⁠. 하늘이 지하보다 넓네요⁠. 첫 곡은 우리 드러머가 쓴 곡이에요⁠. 제목은 「⁠조용한 천장⁠」 원래 킥이 하나도 없는 곡이었는데⁠, 오늘 아침에 고쳤대요⁠. 킥 하나 넣었대요⁠.⁠”

무헌이 스틱을 들었다⁠. 오른발이 페달에 올라갔다⁠.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단우의 운동화였다⁠. 한 치수 작았다⁠. 뒤꿈치가 접혀 있었다⁠.

곡은 조용하게 시작했다⁠. 스네어 위를 브러시가 쓸었다⁠. 하이햇이 숨처럼 열렸다 닫혔다⁠. 찬열이 낮게 불렀다⁠. 천장이 조용하면 나는 잠들 수가 없어요⁠. 두 시간 뒤에 무엇이 떨어질지 모르니까⁠. 곡 끝에서 무헌이 페달을 밟았다⁠. 딱 한 번⁠. 둥⁠.

소리가 옥상 바닥을 타고 솔빌라 여덟 집을 다 지나갔다⁠. 서른한 명이 동시에 숨을 멈췄다⁠. 맨 앞 의자의 경로당 할머니 하나가 귤을 든 채 박수를 쳤다⁠. 귤이 손에서 굴러떨어졌다⁠.

세 번째 곡이 끝나자 반차순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났다⁠. 찬열이 마이크를 내밀었다⁠. 할머니는 마이크를 귤처럼 두 손으로 받았다⁠. 마이크에 입을 너무 바짝 대서 첫마디가 웅 하고 울렸다⁠. 경로당 할머니들이 웃었다⁠.

“⁠이 땅 우리 영감이 팔았어⁠. 1990년 봄에⁠. 텃밭이었어⁠. 고추 심고 호박 심었어⁠. 팔면서 약속을 받았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1층 한 칸 내 거라고⁠. 손가락 걸고⁠. 시장 입구 주막 영감이 봤어⁠. 우리 영감은 갔고⁠, 고추도 호박도 갔어⁠. 나만 남았어⁠.⁠”

할머니가 옥상을 둘러보았다⁠. 서른한 명을 하나씩 보았다⁠. 201호 아내의 배에서 눈이 오래 머물렀다⁠.

“⁠근데 오늘 보니까 나만 남은 게 아니네⁠. 총각들이 남았네⁠. 애기도 오고⁠. 그러니까 시끄럽게들 해⁠. 내 귀는 어두워서 괜찮아⁠.⁠”

할머니는 마이크를 찬열에게 돌려주고 의자에 앉았다⁠. 귀가 어둡다는 말에 옥상의 서른 명이 한꺼번에 웃었다⁠. 할머니의 귀가 하나도 어둡지 않다는 것을 솔빌라 사람은 다 알았다⁠. 단우는 웃다가 무헌을 보았다⁠. 무헌은 스틱을 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깨가 떨렸다⁠. 말보다 손이 먼저인 사람이 손도 못 쓰고 울고 있었다⁠.

*

다섯 번째 곡 「⁠아흔한 장⁠」이 끝났을 때⁠, 옥상 문이 열렸다⁠. 귀남이 들어왔다⁠. 뒤에 경찰 둘이 따라 들어왔다⁠. 젊은 순경과 나이 든 경위였다⁠.

“⁠이거 보세요⁠. 건물 옥상을 무단으로 쓰고 있어요⁠. 서른 명이 올라와 있어⁠. 무너지면 누가 책임져요⁠. 소음 신고 세 건 들어갔죠⁠?⁠”

나이 든 경위가 옥상을 둘러보았다⁠. 드럼⁠, 앰프⁠, 치킨 상자⁠, 귤 상자⁠, 할머니 다섯⁠, 임신부 하나⁠. 경위가 휴대전화 소음 측정 앱을 켜 보았다⁠. 낮 시간 기준 아래였다⁠. 경위가 화면을 젊은 순경에게 보여 주었다⁠. 순경이 머쓱하게 모자를 고쳐 썼다⁠.

반차순 할머니가 일어나 경위에게 귤 두 개를 쥐여 주었다⁠.

“⁠경찰 양반⁠, 하나는 입장료고 하나는 수고비야⁠.⁠”

경위가 귤을 받았다⁠. 받고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귀남을 보았다⁠. 귀남의 얼굴에서 웃음이 한 칸 내려와 있었다⁠.

“⁠어머니⁠. 여기 건물주는 접니다⁠. 저는 허락한 적 없어요⁠.⁠”

“⁠그럼 사장님⁠.⁠”

단우가 앞으로 나왔다⁠. 정중한 목소리였다⁠. 세 칸이었다⁠.

“⁠허락하신 적 없는 것을 하나씩 말씀드리겠습니다⁠.⁠”

단우는 휴대전화를 들어 화면 두 개를 차례로 보여 주었다⁠. 첫 번째는 구청 공고였다⁠. 솔빌라⁠, 공용 보일러 교체⁠, 옥상 방수⁠, 천팔백만 원⁠, 공사 기한 올해 6월⁠. 두 번째는 201호 남편 휴대전화에서 받은 문자였다⁠. 「⁠계단에서 찍어⁠. 302호 문 나올 때⁠. 단추 보이게⁠.⁠」 보낸 사람 번호 옆에 「⁠솔철물 사장님⁠」이라고 저장되어 있었다⁠.

“⁠지원금을 받고 옥상 방수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302호 천장이 무너졌습니다⁠. 보일러 교체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일흔세 살 할머니가 영하 1도에 전기장판 하나로 주무셨습니다⁠. 그리고 이 문자는 사장님 휴대전화가 사진을 못 찍는다는 말이 맞다는 증거입니다⁠. 사진은 남한테 시키셨으니까요⁠.⁠”

옥상이 조용해졌다⁠. 골목 건너 옥상의 사람들까지 조용해졌다⁠. 경위가 귤을 든 손을 내렸다⁠. 201호 남편이 아내의 손을 잡은 채 고개를 들었다⁠. 피하지 않았다⁠.

귀남은 화면을 오래 보지 않았다⁠. 한 번 보고 고개를 들어 단우를 보았다⁠. 웃음이 다시 얼굴로 올라왔다⁠. 이번 웃음은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지친 사람의 웃음이었다⁠.

“⁠단우야⁠. 지원금 문제 삼으면 너 하나 다치는 거 아니다⁠.⁠”

“⁠협박입니까⁠?⁠”

“⁠아니⁠. 물어보는 거야⁠.⁠”

귀남이 은팔찌를 손목에서 한 바퀴 돌렸다⁠.

“⁠그 지원금 누가 내줬는지 아냐⁠? 작년 5월에 구청 주택과에서 솔빌라 서류 올린 계장⁠. 서류 미비한 거 눈감고 열한 번째 줄에 넣어 준 사람⁠. 지금은 퇴직했지⁠.⁠”

단우의 손가락이 휴대전화 위에서 멈췄다⁠.

“⁠네 응급실 단골⁠. 혈압 높아서 한 달에 한 번씩 실려 가는 양반⁠. 너한테 지원금 얘기 해 준 그 할아버지야⁠. 그 양반이 다음 주에 망원 재건축 추진위원장 된다⁠. 지원금 문제 삼아 봐⁠. 그 양반이 제일 먼저 날아가⁠. 그 양반 혈압으로⁠.⁠”

귀남은 경위에게 수고하셨다고 인사했다⁠. 경위의 손에 들린 귤을 보고 웃었다⁠. 그리고 옥상 문을 나가기 전에 단우를 돌아보았다⁠.

“⁠지원금 준 사람을 잡을래⁠, 받은 사람을 잡을래⁠. 둘 다 잡으면 이 골목에 남는 게 없어⁠.⁠”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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