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430자)
지하 클럽
층간소음 전쟁 석 달째 · 지마루
11월 첫 주, 302호에는 킥 드럼 소리가 없었다.
차무헌은 연습 패드 앞에 앉아 스틱을 쥐었다. 고무 패드는 두드려도 톡톡 소리만 났다. 오른발은 페달 옆 바닥에 내려놓았다. 페달 위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무릎을 박자에 맞춰 까딱였다. 둥 소리가 나야 할 자리마다 무릎이 허공을 찼다.
“너 지금 뭐 하냐.”
찬열이 침대에 걸터앉아 무헌을 보고 있었다. 「새벽배송」 단독 공연 곡 순서를 짜러 온 참이었다. 손에 든 종이에는 곡 열두 개가 적혀 있었고 일곱 번째 곡 이름이 「아흔한 장」이었다.
“연습.”
“발로 공기를 차는 게 연습이야? 킥이 없는 드럼은 국 없는 밥이야. 아니, 밥 없는 국이야. 아무튼 없으면 안 되는 거야.”
“아래층에 사람 있어.”
“아래층 사람이 연락 끊었다며. 끊었으면 밟아. 밟아서 올라오게 해.”
무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릎이 계속 허공을 찼다. 열흘 동안 문자가 없었다. 무헌이 보낸 문자 세 통에는 읽음 표시만 떴다. 마지막 문자에는 번호를 붙이지 않았다. 번호를 붙이면 단우가 세어야 했다.
찬열이 한숨을 쉬고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에 기사 하나가 떠 있었다. 홍대 앞 공연장 세 곳이 올해 문을 닫았다는 기사였다. 임대료가 오르고 소음 민원이 쌓였다고 했다. 사진 속 공연장 간판이 철거되고 있었다.
“우리 망원 지하는 버텨야 돼. 거기 없어지면 우리 설 데가 없어.”
“알아.”
“아는 놈이 왜 킥을 안 밟아.”
무헌이 스틱을 내려놓았다. 페달을 보았다. 페달 아래 매트의 움푹한 자리를 보았다. 단우가 누웠던 자리였다.
“밟으면 저 사람이 못 자.”
찬열이 노트북을 덮었다. 이번에는 노래하듯 말하지 않았다.
“밟지 않으면 너는 못 치고.”
*
11월 둘째 주 토요일 오후, 차무헌은 「망원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리허설이 있는 날이었다. 계단 벽에는 이십 년 동안 이 무대에 선 밴드들의 포스터가 겹겹이 붙어 있었다. 맨 아래 포스터는 종이가 삭아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클럽 문 앞에 사람이 셋 서 있었다. 클럽 사장과 구청 작업복을 입은 남자, 그리고 염귀남이었다. 구청 남자는 손에 소음 측정기를 들고 있었다. 사장은 쉰다섯이었고 젊어서 펑크 밴드 베이스를 쳤다. 팔뚝에 다 바랜 문신이 있었다.
“무헌아, 왔냐.”
사장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귀남이 무헌을 보고 웃었다. 은팔찌가 짤랑거렸다.
“무헌이구나. 마침 잘 왔다. 너네 공연 소리가 골목 끝까지 간다더라. 경로당 어르신들이 밤에 잠을 못 주무신대.”
구청 남자가 측정기 화면을 사장에게 보여 주었다.
“지난주 토요일 밤 열한 시에 측정한 수치가 기준치를 넘었습니다. 주거 지역이라 밤 열 시 넘으면 기준이 더 낮아요. 두 번 더 넘으면 과태료고요, 영업 정지 사유도 됩니다.”
“지하인데요.”
무헌이 말했다.
“지하 계단 문 닫으면 골목에서 거의 안 들려요.”
“지난주 토요일엔 문이 열려 있었다는 민원이 접수됐어요. 사진도 있고요.”
구청 남자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열린 클럽 계단 문 사진이었다. 계단 아래로 무대 불빛이 새어 나왔다. 사진을 찍은 각도가 낮았다. 무헌은 사진을 보다가 귀남을 보았다. 귀남은 웃고 있었다.
“사장님. 민원 넣으신 분이 누굽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는 경로당 어르신들 얘기를 전했을 뿐이야. 우리 골목 어르신들도 사람이야, 무헌아. 너만 사람이 아니고.”
틀린 말이 아니었다. 골목 경로당에는 할머니 또래 노인들이 열두 명 있었다. 무헌은 노인 몇이 클럽 앞을 지나며 귀를 막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무헌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사장이 무헌의 어깨를 잡고 계단 쪽으로 끌었다. 귀남과 구청 남자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사장이 말했다.
“12월 단독 공연, 못 한다.”
“사장님.”
“나 이 가게 스물두 해 했다. 영업 정지 한 번이면 끝이야. 건물주가 벌써 전화했어. 재건축 얘기 나오는데 시끄러운 세입자는 필요 없다고. 너네 단독 공연은 열한 시 넘어서 끝나잖아. 나도 미안하다.”
사장의 바랜 문신이 무헌의 어깨 위에서 떨렸다. 계단 위에서 귀남이 구청 남자에게 수고하셨다고 인사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다정한 반말이었다.
무헌은 계단을 올라갔다. 귀남 앞에 섰다. 귀남이 무헌을 올려다보았다. 무헌이 한 칸 위에 서 있었다.
“사장님. 단우 씨 사진도 계단 아래에서 찍었죠.”
귀남의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무헌아. 나는 사진 못 찍는다. 휴대전화가 이거야.”
귀남이 주머니에서 접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버튼 달린 낡은 기계였다. 카메라 렌즈가 깨져 있었다. 귀남은 휴대전화를 도로 넣고 무헌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사진은 아무나 찍어. 그게 요즘 세상이야.”
*
같은 시각, 육단우는 202호에서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다. 비닐 친 벽 너머로 바람이 들어왔다. 오후 두 시였다. 일곱 시에 출근이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이 조용했다. 2주째 조용했다. 석 달 동안 단우를 괴롭힌 킥 드럼이 사라졌다. 단우는 잠들 수 있어야 했다. 잠들지 못했다. 귀가 천장으로 올라가 소리를 기다렸다. 아무것도 내려오지 않았다. 조용한 천장은 두 시간 뒤에 무엇이 떨어질지 알 수 없는 천장이었다.
간호부의 결정은 이틀 전에 나왔다. 경고 한 번. 야간 근무는 그대로. 다음 민원이 오면 병동 이동. 수간호사가 결정문을 건네며 한마디만 했다.
“눈 밑이 다시 내려왔다.”
단우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문자 창에 무헌의 마지막 문자가 있었다. 「밥은 먹어요?」 번호가 없었다. 단우는 번호가 없는 문자를 열 번 읽었다. 답장 칸에 커서가 깜박였다. 단우는 「105」라고 쳤다가 지웠다.
현관문을 누가 두드렸다. 402호 유학생이었다. 손에 보온병을 들고 있었다.
“단우 형. 수테차입니다. 몽골 우유차. 잠 잘 옵니다.”
“고맙습니다. 근데 왜 저한테 주십니까?”
“계단으로 다 들립니다. 형 문이 밤에도 낮에도 열렸다 닫혔다 합니다. 우리 할머니가 그랬습니다. 문을 자꾸 여는 사람은 누구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단우는 보온병을 받았다. 슬래브가 얇은 집이었다. 소리는 위에서 아래로만 내려오지 않았다. 유학생이 계단을 올라가다 돌아보았다.
“곰팡이는 제가 잘 지키고 있습니다. 형은 형 것을 지키십시오.”
보온병 뚜껑을 열자 짭짤하고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다. 단우는 한 모금 마셨다. 소금 넣은 우유 맛이었다. 이상한 맛이었다. 단우는 한 모금을 더 마셨다.
*
토요일 밤 열한 시 사십 분, 응급실 접수 창구에 송찬열이 나타났다.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가슴이 아파요. 아주 많이. 찌르듯이.”
분류 간호사가 찬열을 보고 혈압계를 감았다. 혈압은 정상이었다. 심전도도 정상이었다. 산소포화도는 백이었다. 찬열은 침대에 누워 담당 간호사를 지정해 달라고 했다. 육단우 간호사요. 분류 간호사가 이상한 얼굴로 단우를 불렀다.
단우는 커튼을 걷고 들어왔다. 찬열을 보았다. 차트를 보았다. 다시 찬열을 보았다.
“송찬열 님. 어디가 아프십니까?”
“여기요.”
찬열이 왼쪽 가슴을 가리켰다.
“제 친구가 2주째 킥 드럼을 안 밟아요. 그거 보고 있으면 여기가 아파요.”
단우의 존댓말이 세 칸 올라갔다.
“송찬열 님. 지금 응급실 대기 환자가 마흔두 명입니다. 독감 아이가 열한 명입니다. 가슴 아프신 분의 접수비는 본인 부담입니다.”
“냈어요. 이만 칠천 원. 단우 씨 얼굴 보는 값으로는 싸요.”
단우가 커튼을 닫으려 했다. 찬열이 몸을 일으켜 커튼 끝을 잡았다. 장난기가 얼굴에서 빠져 있었다.
“단독 공연 취소됐어요. 오늘 오후에. 구청에 민원이 들어갔어요. 귀남 사장님이 경로당 어르신들 핑계 대고요.”
단우의 손이 커튼 위에서 멈췄다.
“그리고 이거요. 무헌이는 못 봤는데 저는 봤어요.”
찬열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구청 남자가 보여 준 클럽 계단 문 사진을 무헌이 몰래 찍어 온 것이었다. 사진 옆에 단우의 사진을 나란히 놓았다. 수간호사가 복사해 준 사진이었다. 무헌이 202호에서 휴대전화로 찍어 갔다.
“두 장 다 낮은 데서 올려 찍었어요. 근데 단우 씨 사진 보세요. 302호 문이 정면으로 보이고 문고리가 눈높이예요. 3층 계단참 아래, 2층 계단참에서 찍은 거예요. 2층에 사는 사람은 단우 씨랑 201호밖에 없어요.”
단우는 사진을 보았다. 2층 계단참. 201호 현관 앞. 신혼부부 남편의 택배 조끼가 생각났다. 봉투를 쥐던 엄지가 생각났다. 아기 방이 없다던 아내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귀남 사장님 휴대전화는 렌즈가 깨졌대요. 무헌이 앞에서 꺼내 보였대요. 자기는 사진 못 찍는다고.”
“찬열 씨.”
단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존댓말이 한 칸 내려왔다.
“201호 사람들은 아기가 있습니다. 봉투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알아요. 그러니까 단우 씨가 혼자 다 지고 있으면 안 된다고요. 이건 둘이 싸울 일이 아니라 여덟 집이 같이 싸울 일이에요.”
찬열은 침대에서 내려와 패딩을 입었다. 커튼을 젖히고 나가다가 돌아보았다. 다시 노래하듯 말했다.
“아, 그리고 무헌이가 요새 곡을 하나 썼어요. 킥이 하나도 없는 곡이에요. 제목은 「조용한 천장」 진짜 구려요. 드러머가 킥 없는 곡을 쓰다니. 단우 씨가 책임지세요.”
찬열이 응급실 문을 나갔다. 단우는 빈 침대의 시트를 걷었다. 걷다가 멈췄다. 침대 머리맡 바구니에 귤 하나가 놓여 있었다. 찬열이 두고 간 귤이었다. 껍질에 매직으로 무언가 적혀 있었다. 「할머니가 주래요」
*
일요일 새벽 세 시, 차무헌은 「망원 지하」에서 짐을 빼 왔다. 리허설용으로 맡겨 둔 심벌즈 두 장과 스네어 하나였다. 짐을 들고 솔빌라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무헌은 2층 계단참에서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202호 문 아래로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단우는 근무 중이었다.
3층에 올라 302호 현관 앞에 짐을 내려놓았다. 열쇠를 꺼냈다. 열쇠 구멍에 꽂으려다 멈췄다. 문틈에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처방 메모지였다. 병원 이름이 맨 위에 찍혀 있었다. 무헌은 종이를 빼냈다. 석 달 동안 아흔한 장을 받으며 익힌 손이었다. 접힌 모서리를 펴는 손가락이 떨렸다. 또박또박한 글씨였다. 맨 위에 번호가 있었다.
「105. 북 밟으십시오. 안 들리니까 더 못 잡니다. 간호부에는 제가 말합니다. 위층 소리를 들어야 잠이 오는 체질이라고. 공연 취소 들었습니다. 무대는 망원 지하만 있는 게 아닙니다. 내일 아침 아홉 시, 옥상.」
무헌은 쪽지를 두 번 읽었다. 세 번째 읽을 때 웃음이 터졌다. 위층 소리를 들어야 잠이 오는 체질. 간호부장 앞에서 체질 이야기를 할 단우의 정중한 얼굴이 보였다.
무헌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짐을 내려놓았다. 불을 켜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드럼 의자에 앉았다. 오른발을 페달 위에 올렸다. 2주 만이었다. 아래층 202호에는 아무도 없었다. 밟아도 들을 사람이 없었다.
무헌은 페달을 밟았다. 둥.
한 번. 아침 아홉 시에 들을 사람을 위해 연습해 둔 한 번이었다. 무헌은 쪽지를 운동화 상자에 넣지 않았다. 셔츠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