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452자)

보수 공사

층간소음 전쟁 석 달째 · 지마루

월요일 새벽 한 시⁠, 응급실 문이 열리고 구급대원 둘이 들것을 밀고 들어왔다⁠. 들것 위의 노인은 일흔하나였다⁠. 얼굴이 붉었고 눈을 감고 있었다⁠. 혈압 계기판의 숫자가 이백을 넘었다⁠.

육단우는 들것으로 달려가며 노인의 얼굴을 보았다⁠. 한 달에 한 번 실려 오는 할아버지였다⁠. 구청 주택과에서 서른 해를 일하고 작년 여름에 퇴직한 사람이었다⁠. 9월에 단우에게 노후 빌라 보수 지원금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이었다⁠.

단우는 손목을 짚었다⁠. 맥이 빨랐다⁠. 일 분에 백십육⁠. 정맥에 바늘을 꽂았다⁠. 한 번에 들어갔다⁠. 혈압약이 수액을 타고 들어갔다⁠. 단우는 한 시간 동안 침대 옆을 떠나지 않았다⁠. 숫자가 백칠십으로⁠, 백오십으로 내려왔다⁠.

새벽 두 시 반⁠, 할아버지가 눈을 떴다⁠. 단우를 보고 알아보았다⁠.

“⁠육 간호사⁠. 또 신세 지네⁠.⁠”

“⁠말씀하지 마십시오⁠. 아직 높으십니다⁠.⁠”

할아버지는 천장을 보았다⁠. 응급실 천장의 형광등이 하얗게 떨었다⁠. 한참 뒤에 할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귀남이가 나 얘기 했지⁠?⁠”

단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액 속도를 확인했다⁠. 할아버지가 웃었다⁠. 웃다가 기침을 했다⁠.

“⁠귀남이 아버지랑 나랑 국민학교 동창이야⁠. 솔빌라 서류 올라왔을 때 세입자 동의서가 반밖에 없었어⁠. 원래는 돌려보내야 돼⁠. 내가 열한 번째 줄에 넣었어⁠. 친구 아들이니까⁠. 그리고 빌라가 진짜 낡았으니까⁠. 공사만 하면 되는 거였어⁠. 공사를 안 할 줄은 몰랐지⁠.⁠”

“⁠그럼 재건축 추진위원장은요⁠?⁠”

할아버지의 눈이 단우에게 왔다⁠.

“⁠이 골목에 칠십 넘은 집주인이 열넷이야⁠. 다 나 같은 사람들이야⁠. 낡은 집 하나 들고 혈압약 먹으면서 사는⁠. 재건축 되면 새 집에 들어가⁠. 엘리베이터 있는 집에⁠. 너희 젊은 사람들은 딴 데 가서 살면 되지만 우리는 갈 데가 없어⁠.⁠”

“⁠할머니도 갈 데가 없으십니다⁠. 1층 할머니요⁠. 일흔셋이십니다⁠.⁠”

할아버지가 눈을 감았다⁠. 오래 감고 있었다⁠. 계기판의 혈압이 다시 백육십으로 올라갔다⁠. 단우는 숫자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지금 이 사람의 혈압을 올리는 일은 간호사의 일이 아니었다⁠.

“⁠육 간호사⁠. 구청에 알리면 나는 연금이 깎여⁠. 그건 괜찮아⁠. 내가 잘못했으니까⁠. 근데 그러면 귀남이는 공사 안 해⁠. 환수되면 돈이 없으니까⁠. 빌라는 더 낡고⁠, 할머니는 더 추워⁠.⁠”

할아버지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잡을 거면 공사를 받아 내고 잡아⁠. 순서가 그래⁠.⁠”

*

월요일 아침 아홉 시⁠, 차무헌은 302호 매트 위에서 단우를 기다렸다⁠. 근무가 끝나면 문자 대신 스틱 소리가 올라오기로 했다⁠. 단우가 202호에서 밀대로 천장을 세 번 치면 일어났다는 뜻이었다⁠. 오늘은 세 번이 오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왔다⁠.

단우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매트 위에 엎드렸다⁠. 근무복도 벗지 않았다⁠. 얼굴을 매트에 묻은 채 웅얼거렸다⁠.

“⁠지원금 내준 사람이 제 환자입니다⁠.⁠”

무헌은 단우 옆에 앉았다⁠. 손이 먼저 나갔다⁠. 단우의 등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등이 숨을 따라 오르내렸다⁠. 무헌은 숨을 세었다⁠. 하나⁠, 둘⁠, 셋⁠. 일 분에 열여덟⁠. 빨랐다⁠.

“⁠혈압이 이백을 넘어서 왔습니다⁠. 제가 구청에 알리면 그 사람 연금이 깎입니다⁠. 그 사람은 괜찮다고 했습니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괜찮다고⁠. 그 말을 할 때 혈압이 다시 올라갔습니다⁠.⁠”

“⁠단우 씨가 올린 거 아니에요⁠.⁠”

“⁠제가 물어서 올라갔습니다⁠.⁠”

단우가 고개를 돌려 무헌을 보았다⁠. 매트에 눌린 볼이 빨갰다⁠.

“⁠무헌 씨⁠. 저는 사람 숫자를 내리는 일을 합니다⁠. 맥⁠, 혈압⁠, 열⁠. 올라간 걸 내립니다⁠. 근데 이번엔 누구 숫자를 내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할머니 방 온도를 올리려면 할아버지 혈압이 올라갑니다⁠.⁠”

무헌은 오래 생각했다⁠. 생각하는 동안 손가락이 단우의 등 위에서 박자를 쳤다⁠. 아주 느린 박자였다⁠. 일 분에 육십⁠. 잠드는 사람의 맥이었다⁠.

“⁠둘 다 내려요⁠. 순서대로⁠. 할아버지가 그랬다면서요⁠. 공사 먼저⁠.⁠”

“⁠여덟 집이 다 그렇게 생각할까요⁠?⁠”

“⁠물어봐요⁠. 할머니 거실에서⁠. 귤 놓고⁠.⁠”

단우가 웃었다⁠. 웃다가 눈을 감았다⁠. 무헌의 손가락 박자가 느려졌다⁠. 단우는 일 분도 안 되어 잠들었다⁠. 근무복을 입은 채였다⁠. 무헌은 손을 떼지 않았다⁠. 다섯 시간 동안 페달을 밟지 않았다⁠.

*

수요일 밤⁠, 반차순 할머니의 거실에 여덟 집이 다 모였다⁠. 처음이었다⁠. 201호 부부⁠, 202호 단우⁠, 301호 라이더⁠, 302호 무헌⁠, 401호 고시생⁠, 402호 유학생⁠, 그리고 집주인 할머니⁠. 찬열이 귤 한 봉지를 사 들고 아홉 번째로 들어와 문 앞에 앉았다⁠.

차무헌은 거실 벽에 등을 대고 앉아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할머니 거실에 일곱 집이 들어앉으니 무릎이 서로 닿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소규모 재건축 요건 완화 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는 뉴스가 흘렀다⁠. 할머니가 리모컨으로 소리를 줄였다⁠.

단우가 할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응급실 환자의 일은 밖에서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동창이라는 것과 서류를 눈감아 준 것과 연금 이야기만 했다⁠.

“⁠그러니까 두 가지입니다⁠. 구청에 알리면 지원금은 환수되고 사장님은 공사를 안 합니다⁠. 거래하면 공사는 받아 내지만 사장님 잘못은 덮입니다⁠.⁠”

라이더가 헬멧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덮으면 안 되죠⁠. 할머니가 영하 1도에 주무셨는데⁠.⁠”

“⁠덮는 게 아니에요⁠.⁠”

고시생이 안경을 이마로 올렸다⁠.

“⁠공사를 먼저 받고 영수증을 다 모아 두면 돼요⁠. 공사가 지원금보다 적게 들면 그때 알려도 늦지 않아요⁠. 공사 기한 넘긴 건 이미 기록에 남아 있어요⁠. 도망 못 가요⁠.⁠”

“⁠저는 아기가 2월에 나와요⁠.⁠”

201호 아내가 배를 받친 채 말했다⁠. 처음으로 모두 앞에서 하는 말이었다⁠.

“⁠2월에 보일러가 멈추면 안 돼요⁠. 공사 먼저요⁠.⁠”

유학생이 손을 들었다⁠.

“⁠곰팡이도 공사합니까⁠?⁠”

“⁠외벽 균열 보수에 들어가요⁠.⁠”

“⁠그럼 저는 곰팡이와 이별하겠습니다⁠.⁠”

할머니가 귤을 하나씩 돌렸다⁠. 귤이 손에서 손으로 넘어갔다⁠. 찬열이 귤을 받아 들고 말했다⁠.

“⁠손 들어요⁠. 공사 먼저인 사람⁠.⁠”

손이 올라갔다⁠. 하나⁠, 둘⁠, 셋⁠. 라이더가 마지막으로 손을 들었다⁠. 들고 나서 투덜거렸다⁠.

“⁠공사 끝나면 바로 알리는 거예요⁠. 약속해요⁠.⁠”

무헌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라이더가 무헌의 손가락을 보다가 걸었다⁠. 할머니가 두 사람의 손을 보며 웃었다⁠. 서른 해 전에 자기가 걸었던 손가락이었다⁠.

자정 무렵 모임이 끝났다⁠. 육단우는 할머니 집 현관을 나와 계단을 올랐다⁠. 2층 계단참에 201호 남편이 서 있었다⁠. 사진을 찍은 자리였다⁠. 남편은 단우를 보고 비켜서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숙였다⁠. 허리까지 숙였다⁠.

“⁠죄송합니다⁠.⁠”

단우는 계단 한 칸 아래에서 남편을 올려다보았다⁠. 택배 조끼의 회사 마크가 단우의 눈높이에 있었다⁠. 오늘도 열네 시간을 일하고 온 조끼였다⁠.

“⁠고개 드십시오⁠. 허리 다치십니다⁠. 택배 하시는 분들 허리 디스크로 응급실 많이 오십니다⁠.⁠”

남편이 고개를 들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사진은 지우셨습니까⁠?⁠”

“⁠네⁠. 원본까지요⁠.⁠”

“⁠그럼 하나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단우가 계단을 한 칸 올라 남편과 같은 높이에 섰다⁠.

“⁠아기 나오면 제가 첫 예방 접종 날짜 알려 드리겠습니다⁠. 응급실 간호사라 그런 건 잘 압니다⁠. 그때 아기 사진 한 장만 보내 주십시오⁠. 정면으로요⁠. 아래에서 올려 찍지 마시고⁠.⁠”

남편이 웃음을 터뜨렸다⁠. 웃다가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다⁠. 201호 문이 안에서 열렸다⁠. 아내가 문틈으로 두 사람을 내다보고 있었다⁠. 단우는 아내에게 고개를 숙이고 계단을 마저 올랐다⁠.

*

토요일 오후⁠, 염귀남이 101호 거실에 앉았다⁠. 할머니가 부른 자리였다⁠. 귀남은 파일을 무릎에 올려놓고 거실을 둘러보았다⁠. 영감님 영정 사진⁠, 귤 바구니⁠, 자개장⁠. 서른 해 동안 바뀌지 않은 방이었다⁠.

무헌과 단우가 귀남 맞은편에 앉았다⁠. 할머니는 자개장 앞 방석에 앉았다⁠. 고시생이 휴대전화 녹음 버튼을 누르고 탁자 위에 엎어 놓았다⁠.

“⁠사장님⁠. 거래하겠습니다⁠.⁠”

단우가 말했다⁠.

“⁠옥상 방수⁠, 공용 보일러 교체⁠, 202호 벽 배관⁠, 302호 천장⁠. 이번 달 안에 시작해 주십시오⁠. 그러면 지원금 일은 저희가 구청에 먼저 말하지 않겠습니다⁠.⁠”

귀남은 단우를 보았다⁠. 무헌을 보았다⁠.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가 귤을 까고 있었다⁠. 귀남은 파일을 열지 않았다⁠.

“⁠계장님 만났구나⁠.⁠”

“⁠환자 일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귀남이 웃었다⁠. 지친 웃음이었다⁠. 옥상에서 처음 보인 웃음이 아직 얼굴에 남아 있었다⁠.

“⁠단우야⁠. 너 내 사정은 아냐⁠? 솔빌라 담보로 빌린 돈이 이억이야⁠. 금리가 두 해 만에 두 배가 됐어⁠. 철물점은 동네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못을 사면서 반 토막 났고⁠. 내 나이 쉰여섯이다⁠. 재건축 하나 보고 버텼어⁠. 새 아파트 한 채면 내 늙은 다음은 걱정이 없어⁠.⁠”

“⁠알고 있습니다⁠.⁠”

“⁠아는데 왜 막아⁠.⁠”

“⁠사장님 늙은 다음을 위해서 할머니가 지금 늙은 몸으로 나가셔야 하니까요⁠.⁠”

귀남은 대답하지 않았다⁠. 은팔찌를 손목에서 한 바퀴 돌렸다⁠. 할머니가 깐 귤 하나를 귀남 앞에 놓았다⁠. 귀남은 귤을 보지 않았다⁠.

“⁠좋아⁠. 공사 한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업자 견적 두 배는 내가 낸다⁠. 대신⁠.⁠”

귀남이 파일을 열었다⁠. 전세 계약서 사본이 맨 위에 있었다⁠. 1996년부터 2년마다 갱신한 계약서 열다섯 장이 묶여 있었다⁠. 맨 위 장의 만기일은 2026년 12월 1일이었다⁠.

“⁠어머니 계약은 끝이다⁠. 법대로⁠. 열다섯 번 갱신했으면 할 만큼 했어⁠. 공사 끝난 101호는 새로 세놓는다⁠. 이 동네에 101호 같은 1층 집을 찾는 사람은 줄을 섰어⁠.⁠”

“⁠사장님⁠.⁠”

무헌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오른발이 바닥을 찾았다⁠. 귀남이 무헌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무헌아⁠. 너는 계약 갱신해 줄게⁠. 단우도⁠. 201호도 이사비 칠백 다시 준다⁠. 다 준다⁠. 어머니 한 분만 나가시면 돼⁠.⁠”

거실이 조용해졌다⁠. 귀남은 마지막 판을 가장 약한 자리에 깔았다⁠. 일곱 집을 다 살려 주고 한 집을 내놓으라고 했다⁠. 일곱 집 중 누구도 할머니를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내놓지 못하면 일곱 집이 다 같이 공사 없는 빌라에서 겨울을 나야 했다⁠.

단우가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귤을 다 까서 껍질을 바구니에 넣었다⁠. 귤 알을 하나씩 떼어 귀남 앞 탁자 위에 놓았다⁠. 하나⁠, 둘⁠, 셋⁠. 여덟 개였다⁠.

“⁠여덟 집이야⁠.⁠”

할머니가 말했다⁠.

“⁠일곱이 아니고 여덟⁠.⁠”

귀남이 귤 알을 내려다보았다⁠. 집지 않았다⁠.

“⁠어머니⁠. 감정으로 할 일이 아니에요⁠. 계약서가 있어요⁠.⁠”

“⁠계약서⁠.⁠”

할머니가 일어났다⁠. 지팡이 없이 일어났다⁠. 자개장 앞으로 걸어가 저고리 안주머니에서 열쇠 하나를 꺼냈다⁠. 놋쇠 열쇠였다⁠. 손때가 묻어 반들거렸다⁠. 자개장 맨 아래 서랍의 작은 자물쇠에 열쇠를 꽂았다⁠. 서른 해 동안 한 번도 열지 않은 서랍이라고⁠, 나중에 할머니의 딸이 말했다⁠.

“⁠총각⁠. 총각 아버지가 이 땅 살 때⁠, 우리 영감이 다 판 게 아니야⁠.⁠”

귀남의 손이 파일 위에서 멈췄다⁠.

“⁠등기 얘기 해 줄까⁠.⁠”

할머니가 열쇠를 돌렸다⁠. 서랍이 열렸다⁠. 안에서 누런 종이 냄새가 올라왔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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