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6,072자)
투서
층간소음 전쟁 석 달째 · 지마루
차무헌은 계단 마지막 칸에서 멈췄다. 귀남은 이미 현관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은팔찌가 짤랑거렸다. 현관문이 열렸다가 닫혔고, 찬바람이 한 줄기 계단통으로 밀려 들어왔다.
단우는 단추를 다 끼우고 무헌을 돌아보았다. 얼굴이 평소와 같았다. 평소보다 더 평소와 같았다.
“뭐래요?”
“보일러요. 다음 달이랍니다.”
“그게 다예요?”
“그게 다입니다.”
단우의 존댓말이 한 칸 더 정중해졌다. 무헌은 석 달 동안 쪽지에서 정중한 말투를 읽었다. 정중해질수록 무언가를 감추는 사람이었다. 무헌은 맨발로 차가운 계단을 내려와 단우 앞에 섰다.
“단우 씨. 지금 존댓말 두 칸 올라갔어요.”
“원래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요. 원래는 한 칸이에요.”
단우가 웃었다. 웃고 나서 근무복을 가지러 할머니 집 문을 열었다. 문 안으로 들어가면서 단우가 말했다.
“무헌 씨, 발 시렵니다. 올라가십시오.”
문이 닫혔다. 무헌은 1층 복도에 혼자 남아 맨발을 내려다보았다. 시멘트 바닥이 발바닥을 차갑게 물었다. 감춘 말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귀남이 문 앞에서 단우를 내려다보던 눈은 알았다. 철물점에서 못 개수를 셀 때의 눈이었다.
*
수요일 오후, 망원동 악기점은 한산했다. 무헌은 계산대 뒤에서 드럼 스틱 상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계산대 위 작은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흘렀다. 정부가 노후 저층 주거지 소규모 재건축 요건을 풀겠다는 발표였다. 건물주 동의율 기준을 낮추고 용적률을 올려 준다고 했다. 앵커 뒤 화면에 망원동과 비슷한 빨간 벽돌 빌라 골목이 지나갔다.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고시생이 노트북을 끌어안고 들어왔다. 슬리퍼에 무릎 나온 추리닝 차림이었다. 고시생은 악기점에 처음 와 본다며 심벌즈 앞에서 한참 서성이다가 계산대로 왔다.
“형. 이거 보세요.”
노트북 화면에 마포구청 홈페이지가 떠 있었다. 「2025년 노후 공동주택 보수 공사 지원 대상 선정 결과」 표의 열한 번째 줄에 솔빌라가 있었다. 망원동 주소, 사 층, 여덟 세대. 지원 항목은 옥상 방수, 외벽 균열 보수, 공용 보일러 교체. 지원 금액 천팔백만 원.
“작년 5월이에요. 공사 기한은 올해 6월까지였고요. 공사 안 하면 지원금 돌려줘야 하고, 다음부터는 신청도 못 해요. 근데 지금 10월이잖아요.”
무헌은 화면을 보았다. 공용 보일러 교체. 옥상 방수. 302호 천장에서 대야로 받던 빗물이 생각났다. 지하 보일러실의 새 자물쇠가 생각났다. 손가락이 계산대 위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둥, 둥, 둥. 킥 드럼 박자였다.
“형, 손.”
고시생이 무헌의 손을 가리켰다. 무헌은 손을 멈췄다. 계산대 위 영수증 묶음이 박자에 맞춰 조금씩 밀려나 있었다.
“이거 단우 씨한테 먼저 말해야 돼요.”
“단우 형은 오늘 근무예요. 밤이요.”
“그럼 내일.”
무헌은 화면을 휴대전화로 찍었다. 표의 열한 번째 줄이 흔들리지 않게 두 손으로 찍었다. 고시생이 심벌즈를 손가락으로 톡 쳤다. 쨍 소리가 악기점 안에 길게 퍼졌다. 고시생이 깜짝 놀라 손을 뺐다.
“이거 얼마예요?”
“사십오만 원.”
“시험 붙으면 살게요.”
“삼 년째라면서요.”
“그러니까 붙으면요.”
*
목요일 밤, 신촌 대학병원 응급실은 독감 환자로 넘쳤다. 대기 의자가 모자라 보호자들이 복도 벽에 기대 서 있었다. 근처 병원 두 곳이 야간 소아 진료를 닫은 뒤로 아이들이 전부 이쪽으로 왔다. 텔레비전 뉴스는 지방 응급실 의사가 모자라 구급차가 세 시간을 떠돈 일을 전했다.
육단우는 열한 시간째 서 있었다. 수액 펌프 경고음이 세 군데서 동시에 울렸다. 단우는 하나씩 껐다. 소아 환자 손등에 바늘을 꽂았다. 한 번에 들어갔다. 아이 엄마가 단우의 얼굴을 보고 고맙다고 했다. 눈 밑을 보며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단우는 기뻤다. 지난 이틀 밤을 여덟 시간씩 잤다. 사흘째 바늘이 한 번에 들어갔다.
새벽 네 시, 수간호사가 단우를 휴게실로 불렀다. 수간호사는 쉰여덟이었고 응급실에서만 서른 해를 일했다. 응급실 사람들은 수간호사가 웃는 것을 일 년에 두 번 보았다. 휴게실 탁자 위에 출력한 종이 두 장과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앉아.”
단우는 앉았다. 종이 맨 위에 「간호부 고충 신고」라고 적혀 있었다. 이름은 없었다. 내용은 짧았다. 응급실 간호사 육단우가 근무 전날 이웃 남성의 집에서 자고 출근한다. 혼자 사는 노인의 집에 얹혀살며 노인의 생활비를 쓴다. 병원 홈페이지 민원 게시판에도 같은 글이 올라왔다고 두 번째 종이가 알려 주었다.
사진에는 302호 현관문이 찍혀 있었다. 아침 햇빛 속에서 단우가 문을 나서고 있었다. 머리가 한쪽으로 눌려 있었다. 셔츠 단추가 하나씩 밀려 끼워져 있었다. 사진 각도가 낮았다. 계단 아래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네 사생활은 병원 일이 아니야.”
수간호사가 말했다.
“누구랑 자든 내 알 바 아니고. 근데 민원이 두 군데로 들어오면 간호부가 경위서를 받아. 노인 얘기는 사회복지팀이 확인 전화를 해. 그건 내가 못 막아.”
“할머니 생활비는 제가 쓴 적 없습니다. 장 보는 돈은 제가 냅니다. 영수증 있습니다.”
“알아. 그러니까 경위서에 영수증 붙여.”
수간호사가 서랍에서 서류 한 장을 더 꺼냈다. 9월 첫 주 날짜였다. 소아 환자 수액 바늘 두 번 시도, 보호자 구두 민원. 단우가 직접 쓴 보고서였다.
“이것도 붙어 올라가. 간호부장이 이거 보면 뭐라고 할 것 같아? 잠 못 자는 야간 간호사, 이웃이랑 시끄러운 일, 보호자 민원. 낮 근무로 돌리자고 할 거야. 아니면 병동 이동.”
단우의 손이 무릎 위에서 맞잡혔다. 응급실을 떠난다는 말이었다. 단우는 일곱 해 동안 응급실에만 있었다. 숨이 멈춘 사람의 가슴을 눌러 다시 뛰게 한 것이 마흔한 번이었다. 단우는 마흔한 번을 하나하나 기억했다.
“수간호사님. 지금은 잡니다. 여덟 시간 잡니다. 오늘 바늘 열네 개 전부 한 번에 들어갔습니다.”
“여덟 시간?”
수간호사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응급실 야간이 여덟 시간을 자? 위층 남자가 뭐 하는 사람인데.”
“드러머입니다.”
수간호사가 단우를 한참 보았다.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올해 두 번째였다.
“드러머 옆에서 여덟 시간을 자면 그건 의학적으로 연구해야 돼.”
수간호사는 웃음을 거두고 종이를 단우 쪽으로 밀었다.
“금요일까지 경위서 내. 그리고 단우야. 한 번 더 들어오면 그땐 내가 못 지켜. 사진 찍는 사람이 있다는 건 다음 사진도 있다는 거야.”
*
금요일 오후 세 시, 반차순 할머니가 인천에서 돌아왔다. 딸의 차에서 내리자마자 집에 들어가지 않고 골목을 걸어 솔철물로 갔다. 한 손에 지팡이, 한 손에 영감님 영정 사진을 들고 있었다. 딸이 뒤에서 엄마를 부르며 쫓아갔다.
차무헌은 악기점 일을 일찍 끝내고 솔철물 앞에 와 있었다. 휴대전화에는 구청 공고 사진이 있었다. 귀남과 정면으로 붙을 참이었다. 철물점 문을 밀고 들어가려는 순간, 지팡이 소리가 뒤에서 다가왔다. 할머니가 무헌을 지나쳐 먼저 들어갔다.
솔철물 안은 좁고 쇠 냄새가 났다. 벽마다 못 상자와 경첩과 수도꼭지가 빼곡했다. 계산대 뒤 텔레비전에서는 재건축 규제 완화 뉴스가 다시 흐르고 있었다. 귀남이 계산대에서 고개를 들었다.
“아이고, 어머니. 오셨어요?”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계산대 앞 시멘트 바닥에 영정 사진을 세우고, 영정 옆에 천천히 앉았다. 지팡이를 옆에 눕혔다. 그리고 바닥에 등을 대고 드러누웠다. 손님 둘이 경첩을 고르다 말고 할머니를 내려다보았다.
“사흘이야.”
할머니가 천장을 보며 말했다.
“사흘 안에 보일러 안 고치면 여기 눕는다고 했어. 우리 영감도 같이 왔어. 이 땅 판 사람이야. 인사해.”
귀남의 웃음이 얼굴에서 반쯤 내려왔다. 손님 하나가 휴대전화를 꺼내려다 귀남의 눈과 마주치고 도로 넣었다. 할머니의 딸이 숨을 몰아쉬며 들어와 엄마 옆에 쪼그려 앉았다. 딸은 엄마를 일으키지 않았다. 귀남을 올려다보았다.
“사장님. 저희 엄마 일흔셋이세요. 영하 1도에 전기장판 하나로 주무셨어요.”
무헌이 휴대전화를 계산대 위에 놓았다. 구청 공고 사진이었다. 열한 번째 줄. 공용 보일러 교체.
“작년에 보일러 교체 지원금 받으셨잖아요. 기사님 가방에 새 부품도 있었고요.”
귀남은 화면을 보았다. 오래 보지 않았다. 웃음이 다시 얼굴로 올라왔다.
“받았지. 받았는데 업자가 견적을 두 배로 불렀어. 지원금은 반만 나오고 나머지는 내 돈이야. 니네 월세로 공사비 남는 줄 아냐? 솔빌라 월세 다 합쳐도 내 이자 못 낸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무헌은 틀리지 않은 말이 더 싫었다. 귀남이 휴대전화를 무헌 쪽으로 밀어 돌려주며 목소리를 낮췄다.
“보일러는 오늘 고친다. 어머니 때문에. 니가 들고 온 사진 때문이 아니고.”
귀남은 수화기를 들고 수리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저녁까지 부품을 갈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귀남은 무헌을 보았다.
“그리고 무헌아. 단우 병원에 무슨 편지가 들어갔다더라. 경위서 쓴다고. 우리 단골 아들이 원무과잖아. 걱정돼서 하는 말이다.”
“편지요?”
“나는 편지 쓸 줄 몰라. 영수증만 쓰지.”
귀남이 웃었다. 바닥에 누운 할머니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거짓말하는 놈 웃음은 서른 해 전에도 저랬어.”
*
금요일 밤 아홉 시, 지하 보일러가 다시 돌았다. 웅웅 소리가 1층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할머니는 따뜻해진 방바닥에 손바닥을 대 보고 영정 앞의 물 잔을 새로 갈았다. 딸은 인천으로 돌아갔다.
육단우는 202호에 있었다. 벽이 터진 자리에 비닐을 쳐 두었다. 비닐 너머로 곰팡이 냄새가 났다. 단우는 책상 앞에 앉아 경위서를 쓰고 있었다. 장 본 영수증 열한 장을 날짜순으로 붙였다. 할머니에게 받은 돈은 한 푼도 없다고 썼다. 이웃 남성의 집에서 잔 날짜는 쓰지 않았다. 사생활은 병원 일이 아니라고 수간호사가 말했다.
계단에서 발소리가 내려왔다. 두 칸씩 뛰어 내려오는 소리였다. 무헌이었다. 202호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무헌이 문틀을 잡고 숨을 골랐다.
“단우 씨. 보일러 고쳤어요. 할머니가 철물점에 누우셨어요. 그리고 지원금. 작년에 천팔백 받았어요. 공사 안 했어요. 이걸로 귀남 사장님 잡을 수 있어요.”
무헌은 신이 나 있었다. 휴대전화 화면을 단우에게 내밀었다. 단우는 화면을 보지 않았다. 경위서 위에 펜을 내려놓았다.
“병원 편지 얘기도 들으셨습니까?”
무헌이 멈췄다.
“사장님이 그러던데. 걱정돼서 하는 말이라고.”
단우는 책상 위의 사진 한 장을 무헌에게 건넸다. 수간호사가 복사해 준 사진이었다. 302호 문을 나서는 단우. 잘못 끼운 단추. 계단 아래에서 올려 찍은 각도.
무헌은 사진을 오래 보았다. 손가락이 사진 모서리를 구겼다. 무헌의 오른발이 바닥을 한 번 굴렀다. 킥 드럼을 밟는 발이었다. 아래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리가 202호 바닥으로 그대로 빠져나갔다.
“이 사람 죽여 버릴 거예요.”
“무헌 씨.”
단우의 목소리가 정중했다. 세 칸이었다.
“이제 쪽지 그만합시다. 문자도요.”
무헌이 사진에서 고개를 들었다.
“한 번 더 들어오면 수간호사님도 못 지키신답니다. 저는 응급실에 있어야 합니다. 일곱 해 동안 거기서 마흔한 번 사람을 다시 뛰게 했습니다. 마흔두 번째가 오늘 밤일 수도 있습니다. 그 자리를 사진 한 장에 내줄 수 없습니다.”
“그럼 사진 찍는 사람을 잡으면 되잖아요. 지원금으로—”
“잡는 동안 사진이 또 들어옵니다. 다음 사진에는 무헌 씨 얼굴이 나옵니다.”
단우는 사진을 도로 받아 경위서 밑에 끼웠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사흘 밤을 여덟 시간씩 잔 손이었다. 떨리지 않아서 무헌은 더 아팠다.
“공연은 하십시오. 12월 첫 토요일. 저는 안 갑니다.”
무헌은 한참 서 있었다. 할 말을 찾는 얼굴이었다.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었다. 손이 단우 쪽으로 반쯤 나가다가 문틀로 돌아갔다. 무헌은 계단을 올라갔다. 한 칸씩, 천천히. 302호 현관문이 닫혔다.
단우는 경위서를 마저 썼다. 서명을 하고 날짜를 적었다. 펜을 내려놓았을 때 천장에서 소리가 내려왔다.
똑. 똑.
스틱 끝으로 바닥을 두 번 치는 소리였다. 연습 끝. 석 달 동안 정해 둔 약속 가운데 가장 짧은 말이었다. 단우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밀대가 현관 옆에 세워져 있었다. 단우는 밀대를 쥐었다. 천장까지 들어 올렸다. 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