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37자)

여덟 집

층간소음 전쟁 석 달째 · 지마루

아침 일곱 시⁠, 202호 거실 벽의 물줄기는 가늘어져 있었다⁠. 무헌이 새벽 다섯 시에 건물 밖 계량기를 찾아 수도를 잠갔다⁠. 물은 멎었는데 벽지는 계속 아래로 흘러내렸다⁠. 단우의 침대 매트리스는 한쪽이 무겁게 젖어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단우는 거실 바닥에 앉아 근무복 세 벌을 개고 있었다⁠. 세 벌 모두 말라 있었다⁠. 새벽에 끌어안고 나간 덕분이었다⁠. 무헌은 터진 벽 앞에 쪼그려 앉아 배관이 지나가는 자리를 손가락으로 눌러 보았다⁠. 석고가 손가락 아래에서 젖은 빵처럼 꺼졌다⁠.

“⁠이 벽 안에 배관 지나가는 거 처음 알았어요⁠.⁠”

“⁠저는 석 달 전부터 알았습니다⁠. 북소리가 이 벽을 타고 내려왔으니까요⁠.⁠”

단우는 근무복을 개다 말고 휴대전화를 들어 귀남의 문자를 다시 읽었다⁠. 「⁠12월 1일까지 두 집 모두 비워 주세요⁠.⁠」 단우는 문자 창을 닫고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안 나갑니다⁠.⁠”

“⁠저도요⁠.⁠”

“⁠차무헌 씨는 11월 말 계약 만기 아닙니까⁠?⁠”

“⁠그래도요⁠.⁠”

단우가 고개를 들었다⁠. 무헌은 벽에서 손을 떼고 젖은 손가락을 바지에 닦았다⁠.

“⁠근데 오늘 밤에 어디서 자요⁠? 302호도 천장이 저래요⁠.⁠”

현관문 밖에서 계단을 올라오는 느린 발소리가 났다⁠. 한 칸 오르고 쉬고⁠, 한 칸 오르고 쉬고⁠. 반차순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202호 문간에 서서 터진 벽을 한 번 보고 혀를 찼다⁠.

“⁠총각⁠, 우리 집에서 자⁠.⁠”

“⁠할머니 댁 방 하나잖아요⁠.⁠”

“⁠거실 있어⁠. 영감 쓰던 요도 있어⁠. 나 코 골아⁠. 괜찮지⁠?⁠”

*

차무헌은 벽이 터진 날 오후 악기점을 쉬었다⁠. 단우는 할머니 집 거실에서 영감님이 쓰던 요를 깔고 잤다⁠. 할머니는 정말로 코를 골았고⁠, 단우는 무헌이 사 준 실리콘 귀마개를 처음으로 꼈다⁠. 할머니가 낮잠을 자다 깨어 단우의 귀를 보더니 웃었다고⁠, 나중에 단우가 문자로 알려 주었다⁠. 「⁠귀마개 효과 있습니다⁠. 할머니 코골이가 킥 드럼보다 셉니다⁠. 104⁠.⁠」

무헌은 문자를 받고 웃다가 302호 현관 앞에 섰다⁠. 손에 귤 한 봉지를 들고 있었다⁠. 할머니 바구니에서 가져온 귤이었다⁠.

“⁠한 집씩 문 두드려요⁠.⁠”

무헌의 제안이었다⁠. 단우가 다섯 시에 할머니 집에서 일어나 올라왔고⁠, 둘은 솔빌라 계단을 위에서부터 내려가기로 했다⁠. 4층이 먼저였다⁠.

401호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무헌 또래의 남자였다⁠. 머리는 며칠 감지 않은 듯했고⁠, 뿔테 안경 너머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등 뒤로 방 안 벽에 법전 두 권과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이었다⁠. 3년째라고 했다⁠.

“⁠302호시죠⁠. 드럼⁠.⁠”

“⁠네⁠. 시끄러우셨어요⁠?⁠”

“⁠아니요⁠. 저는 귀마개 쓰고 공부해요⁠. 문제는 창문이에요⁠.⁠”

고시생은 무헌과 단우를 방으로 들였다⁠. 방 창문 하나가 금이 간 채 테이프로 덕지덕지 막혀 있었다⁠. 금은 유리 한가운데에서 별 모양으로 퍼져 있었다⁠. 창틀 아래 바닥에 수건이 깔려 있었다⁠. 어젯밤 비가 금 간 틈으로 들어왔다⁠.

“⁠3월에 깨졌어요⁠. 바람에⁠. 사장님한테 열두 번 말했어요⁠. 날짜까지 다 적어 놨어요⁠. 다음 주에 해 줄게⁠, 다음 달에 해 줄게⁠. 겨울에 외풍이 너무 세서 손이 곱아서 답안 연습을 못 해요⁠.⁠”

고시생은 책상 서랍에서 공책을 꺼냈다⁠. 날짜와 시각이 빼곡했다⁠. 무헌은 공책을 보고 웃음을 참았다⁠. 단우는 공책을 받아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사람을 존중하는 끄덕임이었다⁠.

402호는 유학생이었다⁠. 몽골에서 와서 홍익대 대학원에서 디자인을 공부한다고 했다⁠. 한국말을 또박또박 했는데⁠, 말끝마다 ‘⁠입니다⁠’를 붙였다⁠.

“⁠저는 보증금이 걱정입니다⁠. 내년 2월 졸업입니다⁠. 사장님이 보증금은 원상 복구 후에 준다고 했습니다⁠. 원상 복구가 무엇입니까⁠?⁠”

“⁠처음처럼 해 놓으라는 거예요⁠.⁠”

“⁠처음에 이 방은 곰팡이가 있었습니다⁠. 곰팡이를 다시 키워야 합니까⁠?⁠”

무헌이 웃음을 터뜨렸다⁠. 유학생은 웃지 않았다⁠. 진지하게 묻는 얼굴이었다⁠. 단우가 휴대전화를 꺼내 유학생의 방 벽 곰팡이 자리를 사진으로 찍었다⁠. 이사 들어올 때 사진이 있느냐고 묻자 유학생이 휴대전화 앨범을 열었다⁠. 2024년 3월⁠, 같은 자리에 같은 곰팡이가 있었다⁠.

“⁠이 사진 지우지 마십시오⁠.⁠”

“⁠지우지 않습니다⁠.⁠”

*

육단우는 4층에서 내려오는 길에 1층 할머니 집에 잠깐 들렀다⁠. 할머니가 저녁을 차려 놓고 기다린다고 문자를 보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문자를 쓸 줄 알았다⁠. 받침이 다 빠져 있었다⁠. 「⁠총가 밥머거⁠」

밥상에는 된장국과 호박잎 쌈과 갈치 한 토막이 놓여 있었다⁠. 할머니는 갈치 가운데 토막을 단우 밥 위에 올렸다⁠. 가시를 손으로 다 발라 놓은 토막이었다⁠.

“⁠위층 총각은 밥 잘 먹어⁠?⁠”

“⁠모르겠습니다⁠. 라면 봉지가 분리수거장에 많던데요⁠.⁠”

“⁠총각이 밥 해 줘⁠.⁠”

“⁠저 요리 못 합니다⁠. 응급실 간호사는 다 편의점으로 삽니다⁠.⁠”

할머니는 혀를 차고 자개장 서랍을 열었다⁠. 안에서 누렇게 바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솔빌라가 들어서기 전의 땅이었다⁠. 텃밭 이랑이 비스듬히 이어졌고⁠, 이랑 끝에 밀짚모자 쓴 남자가 호미를 들고 서 있었다⁠. 남자 옆에 젊은 여자가 소쿠리를 안고 웃고 있었다⁠. 머리를 쪽 찐 반차순이었다⁠.

“⁠여기가 지금 너 자는 방 자리야⁠. 고추 심었어⁠. 위층 총각 북 치는 자리는 호박 심었어⁠.⁠”

단우는 사진을 오래 보았다⁠. 사진 뒷면에 볼펜으로 날짜가 적혀 있었다⁠. 1990년 4월⁠. 날짜 아래에 다른 글씨가 한 줄 있었다⁠. 「⁠솔밭에서⁠. 셋이⁠.⁠」

“⁠할머니⁠, 이 글씨 누가 쓰셨어요⁠?⁠”

“⁠주막 주인 영감⁠. 사진도 그 영감이 찍었어⁠. 사진기가 그 집에만 있었어⁠.⁠”

할머니는 사진을 도로 서랍에 넣으려다 말고 단우의 손바닥에 올려 주었다⁠.

“⁠가져가⁠. 총각이 갖고 있어⁠. 나는 이제 눈이 어두워⁠.⁠”

“⁠아까는 눈이 밝다고 하셨잖아요⁠.⁠”

“⁠아까는 아까고⁠.⁠”

*

육단우는 3층에서 301호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자 헬멧을 옆구리에 낀 남자가 서 있었다⁠. 서른 중반⁠, 배달 대행 조끼를 입고 있었다⁠. 막 나가려던 참이었다⁠.

“⁠302호 드럼이랑 202호 간호사⁠. 다 알아요⁠. 계단에서 쪽지 끼우고 도망가는 거 맨날 봤어요⁠. 배달 나갈 때⁠.⁠”

“⁠다들 보셨네요⁠.⁠”

“⁠밤 열한 시에 나가서 새벽 네 시에 들어오니까요⁠. 키 큰 아저씨가 계단 불 안 켜고 쪽지 끼우는 것도 봤어요⁠. 금팔찌 아니고 은팔찌⁠.⁠”

단우와 무헌이 서로를 보았다⁠. 라이더는 헬멧을 고쳐 쥐며 시계를 보았다⁠.

“⁠빨리 말해요⁠. 콜 밀려요⁠.⁠”

“⁠사장님한테 당한 거 있으세요⁠?⁠”

“⁠오토바이요⁠. 건물 앞에 세우면 안 된대요⁠. 주민 통행 방해라고⁠. 근데 사장님 철물점 트럭은 맨날 세워요⁠. 지난달에 내 오토바이에 견인 딱지 붙었어요⁠. 구청 신고 들어갔대요⁠. 누가 신고했겠어요⁠.⁠”

라이더는 계단을 두 칸씩 뛰어 내려가다 2층 계단참에서 돌아보았다⁠.

“⁠모임 하면 불러요⁠. 새벽 네 시 이후면 언제든⁠.⁠”

*

201호는 문이 늦게 열렸다⁠. 안에서 두 사람이 무언가를 속삭이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연 사람은 서른쯤의 여자였다⁠. 배가 조금 불러 있었다⁠. 뒤에 남편이 서 있었다⁠. 남편은 택배 회사 조끼를 입고 있었다⁠.

“⁠저희는 괜찮아요⁠.⁠”

여자가 먼저 말했다⁠. 묻기도 전이었다⁠.

“⁠사장님이랑 문제 없어요⁠. 저희는 이사 갈 거예요⁠. 아기 나오면 여기는 좁아서요⁠.⁠”

남편이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사장님이 이사비 주신대요⁠. 일찍 나가면⁠.⁠”

단우는 여자의 배를 보았다⁠. 다섯 달쯤이었다⁠. 응급실에서 하루에 몇 번씩 보는 배였다⁠. 단우는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문이 닫혔다⁠. 닫히기 직전에 여자가 문틈으로 한마디를 보탰다⁠.

“⁠할머니 얘기⁠, 계단에서 들었어요⁠. 손가락 건 거⁠. 저희도 할머니 좋아해요⁠.⁠”

*

밤 열 시⁠, 반차순 할머니의 거실에 일곱 사람이 모였다⁠. 할머니⁠, 단우⁠, 무헌⁠, 고시생⁠, 유학생⁠, 그리고 콜을 하나 미루고 들어온 라이더⁠. 찬열이 소주 두 병과 치킨 한 마리를 사 들고 일곱 번째로 들어왔다⁠. 201호 부부는 오지 않았다⁠.

할머니 거실은 좁았다⁠. 텔레비전과 자개장과 영감님 영정 사진이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영정 사진 속 영감님은 밀짚모자를 쓰고 상추 소쿠리를 들고 웃고 있었다⁠. 일곱이 장판 위에 둥글게 앉았다⁠. 가운데에 귤 바구니가 놓였다⁠.

고시생이 공책을 펼쳤다⁠.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202·302 퇴거 통지는 안전 문제를 사유로 들었는데⁠, 안전 문제를 만든 건 임대인이 수리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둘째⁠, 401호 창문 수리 요청 열두 회⁠. 셋째⁠, 402호 곰팡이 원상 복구 문제⁠. 사진 증거 있습니다⁠. 넷째⁠, 301호 견인 신고⁠. 다섯째⁠, 101호 할머니⁠.⁠”

“⁠여섯째⁠, 쪽지⁠.⁠”

찬열이 치킨 다리를 들며 끼어들었다⁠.

“⁠가짜 쪽지 여섯 장⁠. 은팔찌⁠.⁠”

“⁠그건 법적으로 약합니다⁠.⁠”

고시생이 말했다⁠. 찬열이 고시생을 노려보았다⁠.

“⁠연애적으로는 강해요⁠. 저 쪽지 때문에 이 둘이 석 달 동안 원수였어요⁠. 원수 아니었으면 석 달 일찍 사귀었다고요⁠.⁠”

거실이 조용해졌다⁠. 단우가 귤을 까다 말고 손을 멈췄다⁠. 무헌이 찬열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쳤다⁠. 찬열은 치킨 다리를 입에 문 채로 무헌을 보았다⁠. 아차 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다 계산한 얼굴이었다⁠.

유학생이 손을 들었다⁠.

“⁠사귑니까⁠?⁠”

할머니가 귤 껍질을 바구니에 던지며 웃었다⁠. 이가 다 보이게 웃었다⁠. 귀 어두운 사람이 제일 먼저 웃었다⁠.

*

차무헌은 자정이 넘어 할머니 집을 나와 계단을 올라갔다⁠. 2층 계단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무헌은 걸음을 멈췄다⁠. 계단참 위쪽⁠, 201호 현관 앞이었다⁠. 귀남의 목소리였다⁠. 다정한 반말이었다⁠.

“⁠이거 오백이다⁠. 이사비⁠. 다음 달 15일까지만 나가 주면 돼⁠. 여기 합의서에 사인하고⁠.⁠”

무헌은 계단 모서리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201호 현관 앞에 귀남과 신혼부부가 서 있었다⁠. 남편은 택배 조끼를 벗지 않은 채였다⁠. 아내는 배를 한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귀남이 내민 손에 하얀 봉투가 들려 있었다⁠. 두툼했다⁠.

계단 아래에서 발소리가 올라왔다⁠. 단우였다⁠. 할머니 집에서 찬열을 배웅하고 올라오던 길이었다⁠. 단우는 계단참 아래에서 귀남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귀남이 단우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단우야⁠, 마침 잘 왔다⁠. 너도 생각해 봐⁠. 너는 삼백 줄게⁠. 벽 터진 집에서 버티면 너만 고생이야⁠.⁠”

단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신혼부부를 보았다⁠. 아내가 단우의 눈을 피했다⁠. 남편이 봉투를 보았다⁠. 아내의 배를 보았다⁠. 다섯 달 뒤에 태어날 아이가 거기 있었다⁠. 봉투 안의 오백은 새 집 보증금의 일부가 될 것이었다⁠.

“⁠아기 생각해⁠.⁠”

귀남이 봉투를 남편의 손에 쥐여 주었다⁠. 남편의 손가락이 봉투를 감쌌다⁠. 아내가 남편의 팔을 잡았다⁠. 놓으라는 것인지 쥐라는 것인지 단우는 알 수 없었다⁠. 남편이 봉투를 가슴께로 끌어당겼다⁠.

“⁠받을게요⁠.⁠”

귀남이 펜을 꺼냈다⁠. 솔철물 펜이었다⁠. 남편이 펜을 받으려는 순간⁠, 계단 위에서 발소리가 내려왔다⁠. 운동화를 벗어 손에 든 맨발 소리였다⁠. 무헌이 계단 모서리를 돌아 내려와 귀남과 신혼부부 사이에 섰다⁠. 맨발이었다⁠. 발등에 단우가 붙여 준 밴드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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