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23자)
매운 소고기 맛
드론 부대 막내가 전쟁을 하루 만에 멈췄다 · 남시우
렌츠 소령은 순한 맛 상자를 이 초 동안 보았다. 컵 다섯 사이로 삐져나온 걸레 귀퉁이는 회색이었고, 기름때가 묻어 있었다. 3월 16일 오후 한 시 오십이 분, 페트르는 다리를 벌린 채 숨을 쉬지 않았다.
“선반 정리해, 일병.” 렌츠가 말했다. “걸레가 나와 있다.”
“예, 소령님.”
렌츠는 선반에서 돌아섰다. 정비칸에서 헌병 둘이 나왔다. 하나가 빈손을 들어 보였다. 렌츠는 고개를 끄덕이고 수색 명령서를 접어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지휘 화면 앞의 의자에 앉았다. 코바치가 앉던 의자였고, 나흘 동안 코바치의 체중 때문에 등받이가 오른쪽으로 조금 기울어 있었다. 렌츠는 앉자마자 그 기울기를 느꼈는지 엉덩이를 한 번 옮겼다.
페트르가 쪼그려 앉아 걸레 귀퉁이를 상자 안으로 밀어 넣었다. 손가락이 꺼짐이의 접힌 날개 끝에 닿았다. 날개는 차가웠다.
미로가 입 모양으로 토마시에게 물었다. “알고 지나간 거예요, 모르고 지나간 거예요?”
토마시는 입 모양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렌츠의 뒤통수를 보고 있었다.
*
세 시 정각, 렌츠가 의자를 돌렸다.
“크랄 병장.”
“병장 크랄.”
“어제 오후 네 시 사십 분 기록. 병장이 깃발 단 베스트라 기체 하나를 수동으로 떨어뜨렸다. 이 중대에서 깃발 붙은 상대를 손으로 쏜 건 병장 하나다.” 렌츠가 지휘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화면에 흰샘 분지 위의 고리가 떠 있었다. 고리는 이제 아흔 대가 넘었다. “저녁 여섯 시 전에 중대원들이 봐야 한다. 손으로 쏘면 떨어진다는 걸. 시범.”
“지금 말입니까?”
“지금.”
토마시는 조종석에 앉아 있었다. 자기 무리 열두 대는 고리 안에서 돌고 있었다. 화면 넷에 깃발이 떠 있었다. 토마시는 오른손을 조종 화면 오른쪽 아래의 「수동」 상자로 가져갔다.
“소령님, 지금 쏘면 저쪽이 저녁까지 안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저쪽도 깃발 붙어 있다. 자동으로는 못 쏜다.”
“저쪽에도 손가락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보여 준다. 저쪽 손가락이 굳게.” 렌츠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병장, 어제는 했잖나. 명령도 없이.”
토마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컨테이너 안이 조용했다. 미로는 손등을 보지 않았고, 아다는 정비칸 커튼 앞에서 엎어진 공구 상자를 다시 채우다가 손을 멈췄다. 페트르는 순한 맛 상자 앞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토마시가 「수동」을 눌렀다.
흐린 조준 표시가 화면에 떴다. 토마시는 그 표시를 손가락으로 끌어 고리 속 베스트라 드론 하나 위에 올렸다. 그 드론은 토마시의 아홉째, 서리의 이십 미터 앞에서 돌고 있었다. 토마시는 손가락을 떼지 않고 숨을 한 번 쉬었다. 그리고 눌렀다.
베스트라 드론이 떨어졌다. 고리가 그 자리를 비워 둔 채 돌았다. 서리의 카메라가 떨어지는 드론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서리는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다. 가까이서 떨어지는 것이 있으면 카메라가 따라간다.
떨어지는 드론이 한 바퀴를 돌았다. 배가 위를 향했다. 배에 흰 테이프 한 줄이 붙어 있었다. 테이프 위에 볼펜 글씨가 있었다. 베스트라 글자였다. 화면 속에서 그 글자가 반 초 동안 또렷했다가 풀밭으로 사라졌다.
“시범 끝.” 렌츠가 말했다. “다들 봤나?”
다들 봤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정비칸 커튼 앞에서 아다가 토마시 옆으로 왔다. 아다는 토마시의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서리의 카메라 기록을 반 초 되감았다. 배가 위를 향한 드론, 흰 테이프, 볼펜 글씨.
“눈송이.” 아다가 말했다.
“읽을 줄 알아?”
“베스트라 글자 조금. 정비 교본이 그쪽 말이랑 같이 나와. 같은 엔진이라.” 아다가 화면에서 손을 뗐다. “저쪽에도 나 같은 사람 있네.”
토마시는 화면을 껐다가 다시 켰다. 서리의 카메라 화면에서 흰샘 분지의 풀밭이 바람에 눕고 있었다. 떨어진 드론은 보이지 않았다.
“하사님, 저쪽 정비병도 이름 붙인 애 떨어지면 존댓말 해요?” 페트르가 순한 맛 상자 앞에서 물었다.
“몰라.” 아다가 말했다. “나라면 해.”
*
네 시 십 분, 물자 컨테이너의 문이 열리고 첫 손님이 들어왔다. 헌병 하나가 데려온 사람은 제5 중대의 하사였다. 서른 가까운 남자였고, 장갑 한 짝을 손에 쥐고 있었다. 다른 한 짝은 어디서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레고르 중사가 의자 일곱 가운데 하나를 가리켰다. 하사는 앉기 전에 컨테이너 안을 둘러보았다. 통조림 상자, 전지 상자, 난로, 그리고 소고기 통조림 상자 옆면에 볼펜으로 적힌 이름 하나.
“여기 라면 있어요?” 하사가 물었다.
“통조림밖에 없어.” 중사가 말했다.
“우리 중대에서 시범 사격 하래서 안 한다고 했더니 여기로 보내더라고요. 저녁 여섯 시도 아닌데.” 하사가 의자에 앉아 장갑 한 짝을 무릎에 놓았다. 그리고 레아를 보았다. “노박이죠? 결승.”
“네.”
“그 깃발, 우리 언덕에서도 다 알아요. 처음엔 다들 해킹이라고 했어요. 근데 해킹이면 저쪽만 우리를 못 쏴야 하잖아요. 저쪽도 우리를 안 쏘니까 다들 알았어요.” 하사가 손바닥을 난로 쪽으로 내밀었다. “근데 노박, 이거 끝은 어떻게 돼요? 게임에서는.”
레아는 대답하기 전에 난로 불을 보았다. 쇠판 아래에서 파란 불꽃이 낮게 떨었다.
“게임에서는 동맹이 판 끝까지 가요.” 레아가 말했다. “판이 끝나면 다 같이 내려와요.”
“판은 누가 끝내요?”
“양쪽이 같이요.”
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고르 중사가 빈 의자를 세었다. 여섯이 남아 있었다.
*
나흘 전, 3월 12일 오후 네 시였다. 분쟁 첫날이었다.
그날 아침 루카 마렉 병장은 매운 소고기 맛 컵라면 하나의 뚜껑에 볼펜으로 「루」 한 글자를 적어 선반 맨 위 칸 구석에 올려 두었다. 루카는 토마시의 동기였다. 입대 날 같은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았고, 훈련소에서 같은 침대 위아래를 썼다. 루카는 매운 소고기 맛만 먹었고, 이 중대에 와서 컵라면 서열을 처음 만들자고 한 사람도 루카였다. 서열을 정하면 싸울 일이 줄어든다고 했다. 실제로는 서열 때문에 매일 싸웠다.
“저녁에 먹을 거야.” 루카가 말했다. “전지 실어 오고 나서. 손대면 죽어.”
“누가 대.” 토마시가 말했다.
오후 세 시 반, 루카는 고원 아래 보급소에서 전지 상자를 실은 트럭 짐칸에 올라탔다. 짐칸에서 상자를 끈으로 묶는 일이었다. 트럭이 바르카 언덕으로 올라오는 비탈길은 마른 흙이었고, 바퀴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길게 일었다.
네 시, 토마시의 화면 구석에 그 흙먼지가 보였다. 토마시의 무리는 흰샘 북쪽 이 킬로에 있었다. 흙먼지 위로 점 하나가 내려앉았다. 베스트라 드론이었다. 짐칸 위의 사람 하나가 그 점을 올려다보았다. 화면이 너무 멀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은 손을 들어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 손짓이 끝나기 전에 흙먼지 속에서 불꽃이 일었다.
토마시는 그 화면을 다시 본 적이 없었다. 기록은 사령부로 올라갔고, 중대에는 「보급 차량 피격 · 사망 1」이라는 한 줄이 내려왔다. 그날 저녁 토마시는 선반 맨 위 칸 구석의 「루」를 옮기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
다섯 시, 컨테이너 안쪽 벽의 지휘 화면에 큰 숫자가 떴다. 「총공세까지 육십 분」.
렌츠가 조종석 다섯을 차례로 돌았다. 조종사 한 사람 한 사람의 화면을 보고, 무리 배치를 확인하고, 선두 칸의 토마시 이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렌츠는 토마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섯 시 이십 분, 미로가 손등을 소매에서 꺼냈다. 작대기 열 개와 반쯤 지워진 「경례」가 있었다. 미로는 볼펜으로 그 옆에 「토마」까지 쓰다가 멈췄다.
“뭐 걸게요?” 페트르가 상자 앞에서 물었다.
“안 걸어.” 미로가 볼펜 뚜껑을 닫았다. “이건 안 걸어.”
다섯 시 사십 분, 고원의 해가 서쪽 능선에 닿았다. 바르카 언덕 위 높은 자리에서 보면 흰샘 분지에 그림자가 길게 들어차기 시작했고, 분지 위 불빛 고리 셋에서 초록 불과 빨간 불이 하나씩 켜졌다. 해가 지면 저절로 켜지는 불이었다. 고리 하나에 백 대가 넘었다. 불빛이 켜지자 고리는 다시 등불 단 실이 되었다.
같은 시각, 고원 서쪽 비탈 밑의 베스트라 관제실에서 카이 렌이 책상 위의 노란 쪽지를 뒤집었다. 쪽지에 볼펜으로 적힌 두 글자는 카렐 글자로 쓴 「노박」이었다. 카이는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이번에는 글자가 아니라 그림이었다. 위로 솟는 나선, 꼭대기에서 뒤집히는 꺾임, 그리고 그 끝에서 바닥으로 길게 내려오는 선 하나. 「하이브」 선수라면 알아보는 그림이었다. 판을 끝내자는 신호, 양쪽 군집을 모두 땅에 내리는 기동이었다.
카이의 소대장이 어깨 너머로 쪽지를 보았다. 소대장은 그것이 무슨 그림인지 몰랐다. 대신 카이의 화면 열두 개의 깃발을 세었다.
“렌, 여섯 시에 저쪽이 쏘면.”
“그럼 쏘는 기체만 봅니다.”
“안 쏘는 기체는?”
“안 쏘는 기체는 데려갑니다.” 카이가 쪽지를 접어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저쪽 한 사람이 압니다.”
다섯 시 오십 분, 렌츠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오 분 뒤 이륙 준비. 여섯 시 정각 출격. 전 기체 수동.”
다섯 시 오십오 분, 토마시가 조종석에서 일어섰다.
렌츠가 돌아보았다. 토마시는 렌츠를 보지 않고 문 옆 선반으로 걸어갔다. 페트르가 순한 맛 상자 앞에서 반 걸음 비켜섰다. 토마시는 맨 위 칸 구석으로 손을 뻗었다. 나흘 동안 아무도 옮기지 않은 매운 소고기 맛 하나. 뚜껑 위의 「루」.
토마시가 그 컵을 내렸다. 뚜껑을 반쯤 뜯었다. 수프 봉지를 꺼내 찢어 넣었다. 붉은 가루가 면 위로 쏟아지면서 매운 냄새가 확 올라왔다. 컨테이너 안의 냉각팬이 그 냄새를 천천히 저었다.
“병장.” 렌츠가 말했다. “지금 뭐 하나?”
“저녁 먹습니다.” 토마시가 말했다. “루카가 저녁에 먹는다고 했습니다. 나흘 늦었습니다.”
토마시는 주전자를 들었다. 손잡이의 녹은 자리를 장갑 없이 쥐었다. 뜨거운 물이 컵 안의 선까지 차올랐다. 토마시는 뚜껑을 덮고, 그 위에 볼펜 한 자루를 얹어 눌렀다. 그리고 컵을 든 채 조종석으로 돌아가 앉았다.
지휘 화면의 숫자가 바뀌었다. 「총공세까지 오 분」.
토마시는 컵을 화면 옆에 내려놓았다. 오른손을 조종 화면 오른쪽 아래로 가져갔다. 거기에 「수동」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