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60자)

사슴목

드론 부대 막내가 전쟁을 하루 만에 멈췄다 · 남시우

사슴목은 흰샘 분지 남쪽으로 삼 킬로 떨어진 좁은 능선이었다. 고원 위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면 두 언덕 사이를 가늘게 잇는 등뼈 같았고, 그 등뼈 한가운데의 돌무더기 뒤에 카렐 관측초소가 있었다. 모래주머니로 둘러친 구덩이 둘, 위장 그물 한 장, 쌍안경 셋, 그리고 아홉 명이었다.

초소장 보리스 크렌 하사는 서른한 살이었다. 고원 아래 시크 마을에서 자랐고, 어릴 때 흰샘으로 소풍을 다녔다. 3월 16일 새벽 한 시, 보리스는 구덩이 가장자리에 엎드려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하늘에 고리가 셋 있었다. 초록 불과 빨간 불이 섞인 고리였다. 고리 하나가 사슴목 바로 위 이백 미터에서 돌았다. 지난 사흘 동안 그 자리에는 카렐 드론 여섯 대가 떠서 초소 앞 골짜기를 내려다보았다. 베스트라 드론이 다가오면 그 여섯 대가 먼저 달려들었다. 보리스는 그 여섯 대의 소리를 알았다. 모기 떼가 귓가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소리였다.

그 여섯 대는 이제 고리 안에 있었다. 베스트라 드론들과 섞여 돌았고, 골짜기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하사님, 저거 춤추는 거예요?” 일병 다닐 보스가 물었다. 다닐은 스물둘이었고, 초소에서 제일 말이 많았다.

“모르겠다.”

“춤추는 것 같은데. 둥글게 둥글게.”

“다닐, 쌍안경.”

다닐이 쌍안경을 골짜기 쪽으로 돌렸다. 골짜기 바닥은 캄캄했다. 풀이 바람에 눕는 소리만 올라왔다. 그 소리 사이에 다른 소리가 하나 섞여 있었다. 풀을 밟는 소리였다. 보리스는 그 소리가 바람 소리와 다르게 일정한 간격으로 끊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한 시 이십 분, 보리스는 무전기로 바르카 언덕을 불렀다. 받은 사람은 코바치였다.

“사슴목. 머리 위 엄호 기체가 자리를 비웠다. 골짜기에 움직임 있다. 엄호 다시 달라.”

“사슴목, 지금 그 자리 기체들이 명령을 안 받는다. 고리에서 빼려면 손으로 하나씩 끌어내야 하는데, 끌어내면 다시 끌려 들어간다.” 코바치의 목소리 뒤에서 냉각팬 소리가 났다. “다른 언덕 기체를 돌리겠다. 이십 분.”

“이십 분이면 걔들이 우리 구덩이에 들어와 있어.”

“알아. 이십 분.”

보리스는 무전기를 내려놓고 아홉 명을 둘러보았다. 모두 보리스를 보고 있었다. 위장 그물 사이로 들어온 고리 불빛이 사람들 얼굴 위를 초록과 빨강으로 번갈아 지나갔다.

“물러난다.” 보리스가 말했다. “동쪽 골짜기로. 바르카까지 삼 킬로. 쌍안경 셋, 무전기, 탄약 가지고. 나머지 버려.”

“그물은요?”

“그물도 버려.”

“이 그물 제가 사흘 꿰맨 건데.” 다닐이 말했다. “하사님, 저 이거 접어서 갈게요. 가벼워요.”

“다닐.”

“접을게요. 삼십 초.”

다닐이 그물을 접는 데 사십 초가 걸렸다.

*

한 시 삼십팔 분, 아홉 명이 사슴목 동쪽 비탈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비탈은 돌투성이였고, 서리가 앉아서 군화 밑창이 자꾸 미끄러졌다. 앞사람의 등을 보고 걸었다. 손전등은 켜지 않았다. 머리 위 고리의 불빛이 비탈에 희미한 초록 그림자를 던졌다가 거두어 갔다.

한 시 사십오 분, 등 뒤에서 첫 소리가 났다. 휘파람처럼 높은 소리가 짧게 하늘을 가르더니 사슴목 돌무더기 위에서 터졌다. 보리스가 돌아보았다. 아홉 명이 방금 나온 구덩이 자리에서 흙과 돌이 위로 솟았다가 떨어졌다. 박격포였다. 드론이 아니라 사람이 골짜기 바닥에서 손으로 쏘아 올리는 포였다.

두 번째 소리는 더 가까웠다.

세 번째 소리가 났을 때 보리스는 땅에 엎드려 있었다. 터지는 소리보다 먼저 땅이 배 밑에서 한 번 떠올랐다가 내려앉았다. 귀가 먹먹해졌다. 먹먹한 귀 속에서 누가 소리를 질렀다. 다닐이었다. 다닐은 비탈 아래 이 미터쯤에 모로 누워 있었고, 왼쪽 허벅지를 두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검은 것이 번졌다. 접은 그물은 다닐 옆에 떨어져 있었다.

보리스가 다닐에게 기어갔다. 압박붕대를 꺼내 허벅지 위쪽을 감았다. 다닐이 이를 악물었다가, 악문 이 사이로 말했다.

“하사님. 그물. 그물 챙겨요.”

“닥쳐.”

“사흘 꿰맨 거라니까요.”

보리스는 붕대를 한 번 더 감고 끝을 묶었다. 그리고 그물을 다닐의 가슴 위에 얹었다. 다닐이 그물을 끌어안았다.

*

두 시 십 분, 아홉 명은 다닐을 들것 대신 판초 우의 위에 눕혀 넷이 끌며 골짜기를 따라 내려갔다. 골짜기는 갈라지는 곳이 많았다. 갈라진 데서 한 번 잘못 들어가 이백 미터를 되돌아왔다. 박격포 소리는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 골짜기 바닥에 물이 흐르는 소리가 났고, 그 물에서 쇠 냄새가 올라왔다.

판초 우의 네 귀퉁이를 잡은 넷 가운데 하나는 상병 야쿱이었다. 야쿱은 덩치가 초소에서 가장 컸고, 그래서 늘 무거운 쪽을 잡았다. 이번에도 다닐의 머리 쪽이었다.

“다닐, 너 그물 놓으면 일 킬로는 가벼워.”

“안 놔.”

“그물이 너보다 무거워.”

“그럼 나를 놓고 그물을 들고 가.”

“하사님, 이 새끼 말 들으셨죠? 놓고 가도 된대요.”

“조용히.” 보리스가 앞에서 말했다. 보리스는 잠깐 멈춰서 골짜기 양쪽 비탈을 올려다보았다. 왼쪽 비탈 꼭대기에 키 큰 돌 하나가 사람처럼 서 있었다. 보리스는 그 돌을 알았다. 열 살 때 시크 마을 학교에서 흰샘으로 소풍을 갈 때, 버스가 고장 나서 아이들이 이 골짜기를 걸어 올라간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 돌을 ‘할아버지 돌’이라고 불렀고, 할아버지 돌이 보이면 흰샘까지 반이 남았다고 했다. 그날 보리스는 샘물에 손을 담갔다가 너무 차서 소리를 질렀다. 다른 아이들이 웃었다.

지금 할아버지 돌은 반대쪽을 보고 있었다. 보리스는 그 돌에서 눈을 떼고 다시 걸었다.

“하사님, 여기 와 보셨어요?” 다닐이 판초 위에서 물었다.

“어릴 때.”

“그때도 길 잃으셨어요?”

“그때는 버스가 고장 났다.”

“그럼 오늘은 하사님이 고장 나신 거네요.”

넷 가운데 셋이 동시에 웃음을 참았다. 판초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다닐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고, 그 소리에 다들 한꺼번에 엎드렸다가, 아무것도 날아오지 않자 다시 일어섰다. 야쿱이 판초 귀퉁이를 고쳐 잡으며 다닐에게 욕을 했고, 다닐은 그물을 더 꽉 끌어안았다.

두 시 이십육 분, 머리 위에 불빛 하나가 내려왔다.

고리에서 떨어져 나온 불빛이 아니었다. 동쪽에서 낮게, 바르카 언덕 쪽에서 혼자 날아왔다. 드론 한 대였다. 그 드론은 아홉 명의 머리 위 이십 미터에서 멈추더니, 앞쪽으로 오십 미터를 가서 다시 멈췄다. 그리고 불빛을 깜빡였다. 짧게, 짧게, 길게. 마지막 깜빡임이 조금 길었다.

“저거 우리 거예요?” 누군가 물었다.

보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드론이 깜빡이는 자리는 골짜기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곳의 왼쪽이었다. 보리스는 오른쪽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드론은 왼쪽 위에서 다시 깜빡였다. 이번에는 조금 더 앞에서.

“왼쪽.” 보리스가 말했다.

드론은 그 뒤로 사십 분 동안 아홉 명의 앞에서 날았다. 갈라지는 데마다 앞에서 멈추고 깜빡였다. 한 번은 골짜기 위쪽 능선에서 사람 그림자가 움직일 때 드론이 갑자기 불빛을 끄고 아홉 명 머리 위로 돌아와 낮게 떴다. 아홉 명은 그 자리에 엎드렸다. 그림자는 능선을 따라 지나갔다. 드론의 불빛이 다시 켜졌다.

세 시 십 분, 바르카 언덕 기슭의 응급 진료소 천막이 보였다. 드론은 천막 위를 한 바퀴 돌고 언덕 꼭대기 쪽으로 올라가 사라졌다.

*

응급 진료소 천막 안은 소독약 냄새와 젖은 모직 냄새로 찼다. 군의관 하나와 위생병 둘이 다닐의 허벅지를 열었다. 박격포 파편은 뼈를 비켜 갔다. 군의관은 그 말을 다닐이 아니라 보리스에게 했다. 다닐은 그물을 끌어안은 채 진통제에 취해 웃고 있었다.

“하사님, 그 깜빡이 누구예요? 길 진짜 잘 찾던데. 우리 하사님보다.”

“닥쳐.”

네 시 십 분, 보리스는 천막 밖으로 나왔다. 바르카 언덕 꼭대기에서 사다리 덮개가 열리고 사람 하나가 내려오고 있었다. 손에 공구 가방을 들고 있었다. 키가 작았고, 얼굴이 어렸다. 계급장은 상병이었다.

보리스는 그 상병이 언덕을 다 내려올 때까지 기다렸다. 상병이 천막 앞에 왔다. 공구 가방 지퍼가 반쯤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날개 하나가 보였다.

“네가 노박이냐?”

“상병 노박입니다.”

보리스가 레아의 멱살을 잡았다. 군복 깃이 보리스의 주먹 안에서 구겨졌다. 레아의 발뒤꿈치가 땅에서 조금 떴다.

“제3 중대에서 다들 그러더라. 깃발인지 뭔지, 그거 처음 띄운 게 노박이라고. 너냐?”

“제가 했어요.”

“우리 머리 위에 있던 여섯 대, 그거 어디 갔는지 아냐? 저 위에서 원 그리고 돌았어. 베스트라 놈들이랑 손잡고. 그사이에 박격포가 우리 구덩이에 떨어졌어.” 보리스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대신 주먹이 한 번 더 조여졌다. “다닐 허벅지에 쇳조각이 들어갔다. 사흘 꿰맨 그물 끌어안고 지금 저 안에서 웃고 있어.”

레아는 보리스의 주먹을 떼어 내려 하지 않았다. 보리스는 레아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왼손 바닥에 붉게 데인 줄이 하나 나 있었다. 녹은 주전자 손잡이 자국이었다. 오른손 엄지에는 작은 조종기를 너무 오래 눌러서 생긴 하얀 자국이 있었다.

보리스가 그 엄지를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 깜빡이.” 보리스가 말했다. “너였냐?”

“네.”

보리스는 주먹을 풀지 않았다. 대신 손에서 힘을 조금 뺐다. 레아의 발뒤꿈치가 땅에 닿았다.

“길은 잘 찾더라.” 보리스가 말했다. “그래도 다닐 다리는 네 거다. 그건 안 바뀐다.”

보리스가 손을 놓았다. 레아는 구겨진 깃을 펴지 않았다. 천막 안에서 다닐이 누구에게인지 모를 농담을 하고, 위생병이 웃는 소리가 났다.

*

같은 시각, 고원 아래 텔렌의 방면 사령부 이층 집무실에서 브로더 소장이 종이 한 장을 받았다. 종이 맨 위에 「사슴목 관측초소 철수 · 부상 1 · 엄호 기체 이탈」이 찍혀 있었다. 맨 아래 비고란에는 손으로 쓴 한 줄이 있었다. 「철수 중 아군 기체 한 대가 길 안내. 기체 번호 확인 불가. 불빛 깜빡임 짧게 짧게 길게」.

브로더는 그 한 줄을 두 번 읽었다. 책상 위에는 정보처 중령이 놓고 간 분석 결과가 있었다. 불에 탄 드론 한 대의 번호판을 복원한 결과였다. 복원된 번호는 사백십칠이 아니었다.

브로더는 종이 두 장을 겹쳐 들고 창가로 갔다. 창밖 동쪽 하늘이 회색으로 밝아 오고 있었다. 고원 쪽 하늘에서 불빛 고리 셋이 여전히 돌았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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