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266자)
해킹
드론 부대 막내가 전쟁을 하루 만에 멈췄다 · 남시우
3월 15일 저녁 일곱 시, 해가 서쪽 능선 너머로 넘어가자 세렌 고원 위에 불빛 고리들이 떠올랐다.
드론의 위치 불빛은 밤이 되면 저절로 켜졌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작은 초록 불과 빨간 불이 고원 하늘 곳곳에 동그랗게 모여 돌았다. 흰샘 분지 위에 하나, 남쪽 능선 위에 둘, 제1 중대가 맡은 북쪽 언덕 위에 하나. 고원 위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면 누가 밤하늘에 등불 단 실을 몇 가닥 걸어 놓고 천천히 돌리는 것 같았다. 고리 하나에 많게는 마흔 대, 적게는 열두 대였다. 그 바깥에서는 여전히 불꽃이 튀었지만, 불꽃이 튀는 자리는 해가 진 뒤로 눈에 띄게 줄었다.
컨테이너 안쪽 벽의 지휘 화면에 숫자가 떴다. 「아군 기체 사격 거부 · 백열둘」.
“아까 열여섯이었는데.” 페트르가 말했다.
“지수 함수야.” 미로가 말했다. 미로는 순한 맛 컵라면 세 개를 자기 조종석 밑에 쌓아 두고 있었다. 오후에 딴 판돈이었다.
“지수 함수가 뭔데요.”
“둘이 넷, 넷이 여덟. 우리 할머니 양 기르는 거.”
“할머니 양이 그렇게 늘어요?”
“처음 몇 해만.”
*
일곱 시 사십 분, 컨테이너 문이 열렸다. 찬 공기가 먼저 들어오고 담배 냄새가 따라 들어왔다. 이번에 사다리를 내려온 사람은 넷이었다. 브로더 소장, 어젯밤의 소령, 헌병 하나, 그리고 가방을 든 여자 중령 하나였다.
중령은 마흔쯤이었고 안경을 썼다. 사령부 정보처의 전산 담당이라고 소령이 소개했다. 중령은 인사 대신 가방에서 판 하나를 꺼내 지휘 화면 옆에 세웠다. 판 위에는 고원 지도가 있었고, 지도 위에 작은 붉은 점들이 퍼져 있었다. 붉은 점은 바르카 언덕에서 가장 많았다.
“적성 신호입니다.” 중령이 말했다. “아군 기체의 식별 체계를 오염시켜 적 기체를 아군으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오염된 기체는 인접 기체로 오염을 전파합니다. 최초 발생 지점은 이 언덕으로 추정됩니다.”
“오염.” 레아가 정비칸 커튼 옆에서 작게 따라 했다.
브로더가 레아를 보았다. 레아는 주전자를 들고 있었다.
“노박 상병은 왜 정비칸에 있나?”
“오늘 새벽부터 정비 보조입니다.” 코바치가 말했다. “통신 이상 건으로 제가 내렸습니다.”
브로더는 코바치를 보지 않고 레아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컨테이너 폭이 이 미터 반이라 한 걸음이면 충분했다. 브로더의 외투에 밤공기가 묻어 있었고, 그 공기가 레아 얼굴에 닿았다.
“상병. 이게 해킹인가?”
“아닙니다.”
“그럼 뭔가?”
“베스트라가 한 겁니다.” 레아가 말했다. “베스트라 드론이 먼저 신호를 보냈습니다. 어젯밤 열한 시 십이 분에요. 기록에 있습니다.”
레아는 거짓말을 반만 했다. 베스트라 드론이 먼저 인사한 것은 기록에 있었다. 오늘 새벽 대열을 벗어나 인사를 돌려준 것과 낮에 꺼짐이를 띄운 것은 말하지 않았다.
브로더는 고개를 돌려 코바치를 보았다. “기록이 있는 기체는.”
“사백십칠입니다.” 코바치가 말했다. “회수 직후 상태가 나빠서 폐기했습니다.”
정비칸 커튼 뒤에서 무언가가 작업대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브로더가 레아와 코바치를 번갈아 보았다. 레아는 기록이 있다고 했고, 코바치는 기체를 폐기했다고 했다. 둘 다 거짓말이 아니면서 둘이 나란히 놓이자 맞지 않았다. 브로더는 그 어긋남을 짚지 않았다. 대신 정비칸 커튼을 손등으로 젖혔다.
“폐기한 기체 잔해를 가져와.”
*
정비칸 작업대 앞에서 아다가 일어섰다. 작업대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꺼짐이는 아다의 공구 가방 맨 아래, 걸레 세 장 밑에 있었다. 아다는 벽에 걸린 드론들 가운데 하나를 내렸다. 날개가 둘 부러지고 몸통이 탄 드론이었다. 배에 붙은 흰 테이프에 「황사」라고 적혀 있었다.
아다는 황사의 테이프를 손톱으로 긁어 떼어 냈다. 테이프가 한 번에 떨어지지 않아서 두 번 긁었다. 그리고 황사를 두 손으로 들고 커튼 밖으로 나가 브로더 앞에 내밀었다.
“사백십칠입니다.”
브로더가 황사를 받아 몸통 밑의 번호판을 보았다. 번호판은 불에 타 읽을 수 없었다. 중령이 황사를 받아 가방에 넣었다.
“분석하겠습니다.”
아다는 커튼 안으로 돌아가 작업대 앞에 앉았다. 레아가 따라 들어갔을 때 아다는 빈 작업대를 손바닥으로 쓸고 있었다.
“황사가 제일 잘 날았는데.” 아다가 말했다.
*
여덟 시 반, 브로더는 지휘 화면 앞에 의자를 하나 가져다 놓고 앉았다. 앉은 채로 명령을 내렸다.
“자정 전에 고원의 카렐 기체 전부를 내린다. 내린 기체는 처음 상태로 되돌린다. 식별 체계, 비행 기록, 학습 자료 전부. 자정 이후 재출격.”
“전부 내리면 그동안 하늘이 빕니다.” 코바치가 말했다.
“베스트라도 오염됐다. 그쪽도 쏘지 못한다.”
“그쪽이 언제 고칠지는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고친다.” 브로더는 지휘 화면의 흰샘 분지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대위, 흰샘 아래 마을 이름 아나?”
“오르바, 시크, 그리고 남텔렌입니다.”
“오르바 물탱크가 사흘 치 남았다. 시크는 이틀. 남텔렌은 어제부터 소방차가 물을 나른다. 모레 정오에 미르니아 감시단이 고원에 올라와서 그 시각의 선을 그대로 적는다. 그 선이 지금 선이면, 흰샘은 베스트라 것으로 적힌다. 마을 셋이 협상이 끝날 때까지 소방차 물을 먹는다.” 브로더의 목소리는 높아지지 않았다. “적의 신호 때문에 쏘지 못했다고 그 마을 사람들한테 설명할 사람 있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냉각팬이 돌았다.
레아가 커튼 옆에서 입을 열었다. “베스트라 조종사도 지금 쏘지 않아요. 우리가 먼저 고치면, 우리만 쏘게 돼요.”
“그게 목적이다, 상병.”
“그다음엔 그쪽도 고쳐요. 그럼 처음으로 돌아가요. 사흘째 밤으로요.”
브로더가 레아를 보았다. “사흘째 밤에 우리는 흰샘에서 일 킬로 떨어져 있었다. 이번엔 일 킬로 안에서 시작한다. 그게 처음으로 돌아가는 건가?”
레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미로가 손등의 작대기를 엄지로 문질렀다.
*
열한 시부터 자정까지, 세렌 고원의 카렐 드론 천백 대가 차례로 내려앉았다.
고원 위에서 보면 불빛 고리 가운데 초록과 빨강이 섞인 고리들이 하나씩 풀렸다. 풀린 자리에서 카렐 쪽 불빛만 동쪽으로 흘러가 언덕들 위에 내려앉았다. 베스트라 불빛은 그 자리에 남아서 동료가 빠져나간 고리를 혼자 돌았다. 남은 불빛들의 고리는 이가 빠진 톱니 같았다.
바르카 언덕 꼭대기에서는 아다와 레아와 페트르가 손전등을 들고 풀밭에 내려앉은 드론들을 하나씩 주워 날랐다. 서리를 맞은 풀이 무릎에서 바스락거렸다. 레아가 서리를 집어 들었다. 배에 붙은 테이프가 서리에 젖어 글씨가 번져 있었다.
컨테이너 안에서는 토마시와 미로가 드론을 하나씩 선에 물리고 되돌리기를 눌렀다. 화면 구석의 깃발이 하나씩 사라졌다. 깃발이 사라질 때 소리는 나지 않았다.
열한 시 사십 분, 레아가 드론 넷을 품에 안고 사다리 쪽으로 걸어오다가 멈췄다. 사다리 꼭대기의 철판 덮개 옆에 코바치가 앉아 있었다. 코바치는 불 붙이지 않은 담배 한 개비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있었다. 중대에서 코바치가 담배 피우는 걸 본 사람은 없었다.
“안 피우세요?”
“끊은 지 육 년.” 코바치가 담배를 귀 뒤에 꽂았다. “들고 있으면 손이 덜 심심해.”
레아는 드론 넷을 풀밭에 내려놓고 덮개 옆에 쪼그려 앉았다.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에 실린 냄새가 낮과 달랐다. 탄 고무 냄새는 옅어지고 젖은 흙냄새가 짙었다. 멀리 흰샘 분지 위에서 이 빠진 베스트라 고리가 천천히 돌았다.
“폐기했다고 하셨어요.” 레아가 말했다.
“했지.”
“꺼짐이는 아다 하사님 가방에 있어요.”
“알아. 그래서 했지.” 코바치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야광 바늘이 초록으로 떨었다. “이제 사백십칠은 없는 기체다. 사령부 기록에서도, 내 입에서도. 없는 기체는 날 수 없다. 날면 내 거짓말이 난다.”
“사령관님 말이 틀렸어요?”
“안 틀렸어. 오르바 물탱크 사흘 치, 그것도 맞아. 내가 알아봤어.”
“제 말도 안 틀렸어요.”
“그것도 알아.” 코바치가 일어서서 무릎의 풀잎을 털었다. “둘 다 안 틀렸으면 결정은 계급이 하는 거다. 그게 군대야. 네가 「하이브」에서 계급 없이 싸웠던 거랑 달라.”
“「하이브」에도 계급 있어요. 순위요.”
“네 순위가 몇이었는데.”
“이 등이요.”
“그럼 일 등 말을 들었어야지.”
코바치가 사다리를 내려갔다. 레아는 드론 넷을 다시 품에 안았다. 넷 가운데 하나에서 금 간 날개가 바람에 달각거렸다.
자정, 지휘 화면의 숫자가 바뀌었다. 「아군 기체 사격 거부 · 영」.
브로더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열두 시 이십 분 재출격. 흰샘 방향.” 그리고 코바치에게 말했다. “대위, 사백십칠의 분석 결과가 나오면 다시 보자.”
브로더와 참모들이 사다리를 올라갔다. 헌병은 남았다. 헌병은 문 옆 선반 앞에 섰고, 선반의 매운 소고기 맛 칸을 한 번 보았다. 토마시가 헌병과 선반 사이로 가서 섰다.
“병장, 비켜.”
“이 칸은 병장 이상입니다.”
“나 중사야.”
토마시가 헌병의 계급장을 보았다. 그리고 맨 위 칸에서 「루」라고 적힌 컵만 빼고 하나를 꺼내 헌병에게 내밀었다. “물은 저쪽 상병이 붓습니다. 막내라서요.”
“상병이 막내야?”
“나이로는요. 계급으로는 저쪽 일병이 막내입니다.” 토마시가 페트르를 가리켰다. 페트르가 순한 맛 컵 세 개를 미로에게 빼앗긴 빈손을 들어 보였다. “여기선 그걸로 매일 싸웁니다.”
헌병은 컵을 받았다가, 한참 들고 있다가, 선반에 도로 올려놓았다.
*
열두 시 이십 분, 바르카 언덕에서 카렐 드론들이 다시 떠올랐다. 흰샘 분지 위에는 베스트라 불빛들이 아직 이 빠진 고리를 그리며 돌고 있었다. 베스트라는 기체를 내리지 않았다.
레아는 조종석에 앉지 못했다. 정비칸 커튼 옆에 서서 토마시의 화면을 보았다. 토마시의 무리 열두 대가 흰샘 분지에 닿았다. 베스트라 고리의 이 빠진 자리 옆을 스쳐 지나가며 쏘았다. 베스트라 드론 둘이 떨어졌다. 베스트라 고리는 흩어지지 않고 돌았다. 토마시의 무리가 다시 고리 옆을 스쳤다.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 스쳤다. 고리의 불빛 옆에 사십 초 넘게 머물렀다.
열두 시 이십구 분, 토마시의 셋째 화면 구석에 손톱만 한 깃발이 떴다.
토마시가 그 깃발을 보았다. 깃발은 넷째 화면에도 떴다. 지휘 화면의 숫자가 「영」에서 「넷」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아홉」으로 바뀌었다.
컨테이너 천장의 스피커에서 사령부 통신병의 목소리가 났다. 사령관 차가 언덕 중간에서 멈췄다고 했다. 사령관이 돌아온다고 했다.
토마시는 깃발을 지우지 않았다. 지울 방법이 없었다. 토마시는 레아를 돌아보았다. 정비칸 커튼 옆에 아무도 없었고, 커튼 안쪽에서 아다의 공구 가방 지퍼가 천천히 열리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