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80자)
흰여우
드론 부대 막내가 전쟁을 하루 만에 멈췄다 · 남시우
3월 15일 새벽 다섯 시 삼십 분, 바르카 언덕의 발사대에서 카렐 드론 서른여섯 대가 차례로 떠올랐다. 언덕 위 더 높은 곳에서 보면 회색 하늘에 검은 점들이 한 줄로 찍혔다가 서쪽으로 기울며 비스듬한 띠가 되었다. 띠 맨 앞의 열한 대가 레아의 것이었다.
흰샘 양수장은 고원 한가운데의 낮은 분지에 있었다. 콘크리트 펌프장 하나와 녹슨 물탱크 하나, 그리고 그 둘을 잇는 쇠 계단이 전부였다. 분지 바닥의 샘은 한겨울에도 얼지 않아서 새벽마다 김이 피어올랐다. 고원 아래 카렐 마을 셋이 그 물을 먹었다. 사흘 전부터는 펌프장 지붕에 베스트라 관측병 넷이 엎드려 있었다.
다섯 시 사십일 분, 해가 동쪽 능선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레아의 화면 넷이 동시에 하얗게 탔다. 화면 가운데에 둥근 빛이 번졌고, 그 빛 가장자리에서 무지갯빛 테두리가 떨렸다. 컨테이너 안의 모니터 서른두 개 가운데 열다섯 개가 같은 흰빛을 냈다. 냉각팬 소리 위로 누군가 혀를 찼다.
“선두, 보고.” 코바치가 말했다.
“눈이 부십니다.” 레아가 말했다. “직접 보고 보고합니다. 눈이 부십니다.”
뒷줄에서 미로가 어깨를 떨었다. 토마시는 웃지 않았다. 토마시의 화면도 하얬다.
흰빛 너머에서 베스트라 드론들이 올라왔다. 그쪽은 해를 등지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하얗게 탄 하늘 한쪽이 검은 점들로 얼룩지더니, 그 점들이 커지면서 날개 모양이 되었다. 레아의 열한 대 가운데 두 대가 첫 교전에서 떨어졌다. 화면 둘이 까매졌고, 까만 화면에 흰 글씨가 떴다.
*
다섯 시 사십육 분, 레아의 셋째 화면에서 베스트라 드론 하나가 오른쪽으로 날카롭게 꺾였다.
다른 드론들은 무리를 지어 둥글게 돌았다. 그 한 대만 무리의 가장자리를 따라 돌다가, 원을 다 그리기 전에 꺾었다. 각이 너무 깊어서 날개 하나가 잠깐 하늘을 향했다. 레아는 그 꺾임을 열여섯 살 때부터 보았다. 대회 중계 화면에서, 연습 상대 화면에서, 결승전 맞은편 부스의 큰 화면에서.
레아의 왼손이 조종간을 비틀었다.
선두 드론 한 대가 대열에서 빠졌다. 컨테이너 안쪽 벽의 지휘 화면에서 띠 맨 앞의 점 하나가 떨어져 나와 혼자 아래로 내려갔다. 코바치가 그 점을 보았다.
“노박, 대열.”
레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드론은 해를 등지고 돌아서서, 꺾인 드론 앞 삼십 미터에서 멈췄다. 8자를 그렸다. 한 번, 다시 한 번. 그리고 불빛을 세 번 깜빡였다. 짧게, 짧게, 길게. 마지막 깜빡임은 다른 사람들보다 반 박자 길었다. 레아는 대회 때부터 늘 그 반 박자를 길게 끌었고, 중계진은 그걸 ‘노박의 한 박자’라고 불렀다.
상대 드론이 멈췄다.
이 초가 지났다. 상대 드론이 위로 솟았다. 나선을 그리며 오 미터, 십 미터를 올라가더니 꼭대기에서 몸을 뒤집어 떨어졌고, 떨어지는 길 끝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날카롭게 꺾었다. 레아의 화면에는 그 궤적이 흰 꼬리처럼 남았다.
레아의 화면 구석에 처음 보는 표시가 떴다. 손톱만 한 깃발 모양이었다. 군 조종 프로그램에는 없는 그림이었다. 레아는 그 그림을 알았다. 「하이브」에서 두 선수가 판 도중에 손을 잡으면 서로의 군집 위에 뜨는 표시, ‘동맹 깃발’이었다.
조준 표시가 상대 드론 위에서 흐려졌다. 상대 드론의 앞쪽 불빛도 흐려졌다.
“노박!” 코바치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레아는 드론을 돌려 대열 끝으로 붙였다. 대열을 벗어난 시간은 이 분 십 초였다. 그사이 레아의 남은 아홉 대 가운데 두 대가 더 떨어졌다.
*
같은 시각, 고원 서쪽 비탈 밑 베스트라 쪽 관제실은 카렐의 컨테이너보다 조금 넓었고 조금 더 추웠다. 난방기가 첫날 고장 났다. 조종사들은 장갑 손가락 끝을 잘라 내고 화면 앞에 앉아 있었다.
넷째 자리의 상병 카이 렌은 스물하나였다. 키가 크고 말랐으며, 목에 감은 회색 털목도리를 코까지 끌어올리고 있었다. 카이의 화면 구석에도 손톱만 한 깃발이 떠 있었다.
“렌, 왜 혼자 올라갔어.” 카이의 소대장이 뒤에서 물었다.
카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책상 위 노란 쪽지에 볼펜으로 두 글자를 적었다. 적고 나서 쪽지를 뒤집어 놓았다. 소대장은 쪽지를 보지 못했고, 카이의 화면에서 하얗게 타는 동쪽 하늘만 보았다.
“렌. 대답.”
“반 박자 길었습니다.”
“뭐가?”
카이는 다시 대답하지 않았다. 목도리 위로 드러난 눈이 깃발 표시를 보고 있었다.
*
두 해 전 가을, 중립국 미르니아의 수도에 있는 실내 체육관 하나가 관중 팔천 명으로 꽉 찼다. 「하이브」 국제 대회 결승이었다. 무대 양쪽에 유리 부스가 하나씩 있었고, 왼쪽 부스에 열여덟 살 레아 노박이, 오른쪽 부스에 열아홉 살 카이 렌이 앉았다. 두 부스 사이의 큰 화면에서 드론 육백 대가 서로를 쫓았다.
다섯 판 가운데 넷을 둘이 나눠 가졌다. 마지막 판 마지막 일 분, 레아의 군집이 카이의 본진을 세 방향에서 감쌌다. 관중이 일어섰다. 그리고 레아의 군집이 멈췄다. 정확히 사 초 동안, 육백 대 가운데 레아 쪽 삼백 대가 공중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사이 카이의 군집이 빠져나와 레아의 본진을 쳤다.
해설자들은 레아의 손이 굳었다고 했다. 준우승 상패를 받을 때 레아는 웃었다. 시상대에서 내려오는 계단에서 카이가 레아를 한 번 보았고, 레아는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둘이 말을 나눈 기록은 없다.
*
여덟 시 반, 흰샘 출격의 결과가 지휘 화면에 숫자로 떴다. 카렐 드론 서른여섯 대 가운데 아홉 대를 잃었다. 양수장 지붕의 관측병 넷은 그대로였다. 베스트라 드론은 일곱 대가 떨어졌다. 사령부에서 보낸 글이 화면 아래쪽에 한 줄로 흘렀다. 「제3 중대 선두 대열 이탈 사유 즉시 보고」.
코바치는 컨테이너 맨 안쪽 정비칸 문 앞에 서서 레아를 불렀다. 정비칸은 커튼 한 장으로 조종석과 갈라져 있었다. 커튼 너머에서 아다가 드론 날개를 갈아 끼우는 소리가 났다. 작은 나사가 쇠판에 떨어져 굴렀다.
“이 분 십 초.” 코바치가 말했다. “그사이 네 기체 두 대가 떨어졌다. 토마시 쪽 한 대도.”
“알아요.”
“알면 말해 봐. 왜 빠졌나?”
레아는 꺼짐이의 기록 이야기를 했다. 연결이 끊긴 채 사십 분 동안 나란히 돈 베스트라 드론, 8자 두 번, 짧게 짧게 길게. 그리고 오늘 새벽 그 꺾임. 레아가 말하는 동안 코바치는 손목시계를 한 번 보았다. 시계는 여덟 시 삼십구 분을 가리켰지만 실제로는 여덟 시 삼십사 분이었다.
“그러니까.” 코바치가 말했다. “적이 인사를 해서, 인사를 받아 주러 대열을 벗어났다.”
“네.”
“그건 보고서에 쓰기 좋은 문장이군. 사령관님이 아주 좋아하시겠어.”
“중대장님, 저 깃발은 군 프로그램에 없는 거예요. 「하이브」 거예요. 우리 드론 머리에 그게 남아 있어요. 베스트라 드론 머리에도요. 이거 버그 아니고 기능이에요.”
“기능이면 더 나쁘다.” 코바치가 커튼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적이 우리 드론에 쓸 수 있는 기능이라는 거니까.”
“적이 쓴 게 아니에요. 제가 먼저 썼어요.”
코바치가 레아를 오래 보았다. 커튼 너머의 나사 소리가 멎었다.
“노박 상병, 조종석에서 내려온다. 오늘부터 정비칸 보조. 컵라면 물 당번 겸.”
“중대장님.”
“사령부에는 선두 기체 통신 이상으로 올린다.” 코바치는 시계를 풀어 손바닥에 놓았다가 다시 찼다. “내가 거짓말을 하나 하는 거다. 너는 그 값으로 조종석을 내놓는 거고. 셈이 맞나?”
레아는 한참 있다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
아홉 시 십 분, 레아가 컵라면 여섯 개에 차례로 뜨거운 물을 부었다. 주전자는 손잡이가 녹아서 장갑을 끼고 잡아야 했다. 김이 얼굴에 닿자 사흘 동안 굳어 있던 콧속이 풀렸다.
페트르가 순한 맛을 받아 들고 레아를 보았다.
“상병님, 물이 선보다 조금 위입니다.”
“일병, 그거 순한 맛이라 물 많아도 돼.”
“순한 맛에도 선은 있습니다.”
토마시는 자기 몫을 받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운 소고기 맛의 붉은 국물 냄새가 컨테이너 안에 퍼졌다. 토마시의 오른손 손톱 밑에는 조종간을 너무 세게 쥐어서 생긴 하얀 반달이 있었다. 미로는 손등의 작대기를 세다가 레아를 보고 작게 말했다.
“나 이거 건다. 너 오늘 안에 조종석 돌아가는 거.”
“이번엔 뭐 걸어?”
“이자.”
*
아홉 시 사십 분, 컨테이너 안쪽 벽의 지휘 화면이 둘로 갈라지더니 오른쪽 절반에 고원 아래 텔렌의 방면 사령부가 떴다. 화면 속 방은 천장이 높았고 벽에 고원 지도가 걸려 있었다. 지도 앞에 브로더의 참모 하나가 서 있었다. 어젯밤 컨테이너에 종이를 두고 간 그 소령이었다.
“제3 중대장. 선두 대열 이탈 사유.”
코바치가 화면 앞에 섰다. 레아는 정비칸 커튼 옆에서 주전자를 든 채 멈췄다. 화면 속 소령의 눈은 코바치를 보고 있었지만, 소령 뒤의 지도 위에는 흰샘 분지가 붉은 원으로 쳐져 있었다.
“선두 기체 통신 이상입니다. 해를 정면으로 받는 동안 조종 신호가 이 분가량 흔들렸습니다. 기체는 회수했고 지금 정비 중입니다.”
“조종사는.”
“조종석에서 내렸습니다. 정비 보조로 돌렸습니다.”
“통신 이상인데 조종사를 내렸나?”
코바치는 손목시계를 보지 않았다. “통신이 흔들릴 때 조종사가 당황해서 대열을 더 벌렸습니다. 그건 조종사 책임입니다.”
소령이 무언가를 적었다. 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화면 너머에서 작게 들렸다. “사령관님께서 다섯 시 반 일출 각도에 대해 상병이 한 말을 기억하신다. 그 상병인가?”
“그 상병입니다.”
“사령관님께서 웃으셨다고 전하라고 하셨다.” 소령이 화면 아래로 손을 뻗었다. “웃으신 건 그게 마지막이다. 오후 세 시 재출격 명령이 내려간다. 이번엔 해가 서쪽이다. 베스트라가 눈이 부실 거다.”
화면이 꺼졌다. 코바치는 꺼진 화면 앞에 일 초쯤 더 서 있다가 돌아섰다. 레아와 눈이 마주쳤다. 코바치는 레아가 든 주전자를 가리켰다.
“식는다.”
레아는 주전자를 내려놓지 않았다. 주전자 손잡이의 녹은 자리에서 장갑 너머로 열기가 천천히 올라왔다.
*
열 시, 정비칸 커튼 안에서 아다가 레아를 불렀다. 작업대 위에 꺼짐이가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있었다. 금 간 날개는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고, 몸통 옆 덮개가 열려 기판이 보였다. 아다는 기판에 가는 선 두 가닥을 물리고 작은 화면을 레아 쪽으로 돌렸다.
“꺼짐이가 뭘 들고 왔어.”
화면에는 숫자와 글자가 섞인 줄이 위에서 아래로 흘렀다. 아다가 한 줄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그 줄 끝에 군 프로그램에서는 쓰지 않는 글자 셋, 「흰여우」가 있었다.
“상대가 깃발을 꽂을 때 자기 이름표를 같이 꽂은 것 같아.” 아다가 말했다. “게임에서 쓰던 이름이지?”
레아는 화면을 보았다. 냉각팬이 등 뒤에서 돌았다. 커튼 틈으로 조종석의 푸른빛이 새어 들어와 꺼짐이의 배에 줄무늬를 그렸다.
“결승에서 쓰던 이름이에요.”
“누구?”
“카이 렌. 베스트라 사람.” 레아는 손가락으로 「흰여우」 세 글자를 덮었다. “지금 저 너머에 앉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