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323자)
꺼진 한 대
드론 부대 막내가 전쟁을 하루 만에 멈췄다 · 남시우
2035년 3월 14일 밤 열 시, 세렌 고원 동쪽 비탈의 바르카 언덕 밑 사 미터에 묻힌 컨테이너 안에서 모니터 서른두 개가 한꺼번에 푸른빛을 냈다. 고원 동쪽의 나라 카렐과 서쪽의 나라 베스트라가 고원 한가운데의 샘 하나를 두고 총을 쏘기 시작한 지 사흘째였다. 그동안 고원 하늘에 뜬 것은 대부분 사람이 아니라 손바닥 두 개만 한 드론이었다.
컨테이너는 길이 십이 미터, 폭 이 미터 반이었다. 한쪽 벽을 따라 조종석 여섯이 붙어 있고, 맞은편 벽에서는 냉각팬 네 개가 쉬지 않고 돌았다. 팬 소리는 낮고 고르게 깔려서 사흘째가 되자 아무도 듣지 않았다. 대신 다들 냄새를 맡았다. 데워진 회로 기판의 단내, 나흘 못 감은 머리, 그리고 문 옆 선반에서 누가 뚜껑을 반쯤 뜯어 놓은 컵라면의 수프 냄새였다.
다섯째 조종석에 앉은 상병 레아 노박은 스무 살이었고, 중대에서 가장 어렸다. 왼손은 조종간 위에, 오른손은 키보드 위에 있었다. 화면 넷에는 레아가 맡은 드론 열두 대의 눈이 떠 있었는데, 열두 대는 고원 남쪽 능선 위 백오십 미터에서 한 덩어리로 돌고 있었다. 능선 위 더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면 검은 깨 한 줌이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핑 튄다.” 레아가 말했다.
옆자리의 병장 토마시 크랄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여기서 핑 얘기 하지 말랬지. 통신 지연이라고 해. 군대 말로.”
“통신 지연 튄다.”
“그게 더 이상해.”
뒷줄에서 상병 미로 하벨이 웃음을 참다가 기침을 했다. 미로의 왼손 등에는 볼펜으로 적은 작대기가 일곱 개 있었다. 사흘 동안 내기에서 진 횟수였고, 작대기 하나가 컵라면 하나였다가 나흘째부터는 이자가 붙기로 되어 있었다.
*
열 시 사십 분, 베스트라 쪽 능선에서 점 마흔 개가 떠올랐다. 레아의 화면 왼쪽 위에서 점들은 처음에 흩어져 있다가, 고원의 마른 바람을 한 번 타더니 기러기처럼 비스듬한 줄로 모였다.
“마흔. 남서쪽, 고도 이백.” 레아가 말했다. “줄 서서 와요. 저거 몰고 오는 사람, 줄 세우는 거 좋아하네.”
“보고는 숫자만.” 중대장 얀 코바치 대위가 뒤에서 말했다. 코바치는 서른넷이었고, 왼쪽 손목에 낡은 쇠줄 시계를 차고 있었다. 시계는 늘 오 분 빨랐다. 시계 수리공이던 아버지가 맞춰 준 그대로였다.
레아의 열두 대가 고원 위에서 몸을 접었다. 덩어리가 길게 늘어지며 상대 줄의 옆구리로 파고들었고, 파고든 자리에서 다시 둘로 갈라졌다. 화면 속에서 베스트라 드론 셋이 불꽃을 튀기며 떨어졌다. 하나는 풀밭에 박히기 전에 한 바퀴를 돌았다. 레아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짧게 세 번 움직였고, 그사이 다른 화면의 숫자가 바뀌었다.
그때 화면 하나가 까매졌다.
까만 화면 한가운데에 흰 글씨 「417 · 연결 끊김」이 떴다. 레아는 그 화면을 이 초쯤 보았다. 나머지 열한 대가 빈자리를 메우려고 저절로 대열을 고쳤다.
“사백십칠 끊겼어요. 마지막 위치 흰샘 북쪽 일 킬로.”
“떨어졌나?” 코바치가 물었다.
“안 떨어졌어요. 고도는 그대로였어요. 연결만 나갔어요.”
연결을 잃은 드론은 정해진 대로 한다. 마지막 자리 근처를 돌다가 전지가 반쯤 남으면 출발한 언덕으로 혼자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적을 만나면 쏠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었다. 레아는 까만 화면을 껐다가 다시 켰다. 「417 · 연결 끊김」은 그대로였다.
*
새벽 한 시 오 분에 컨테이너 문이 열렸다. 차가운 공기가 먼저 들어왔다. 바깥은 영하 4도였고, 그 공기에는 마른 풀 냄새와 담배 냄새가 섞여 있었다. 사다리를 내려온 사람은 셋이었다. 앞의 둘은 참모였고, 맨 뒤에서 천천히 발을 디딘 사람이 세렌 고원 방면 사령관 하랄트 브로더 소장이었다.
브로더는 쉰여섯이었다. 키가 크지 않았고, 털모자를 벗자 짧게 깎은 흰 머리가 팬 바람에 조금 흔들렸다. 조종석 여섯이 한꺼번에 일어서려 하자 브로더가 손바닥을 아래로 눌렀다. 다들 도로 앉았다.
브로더는 컨테이너 안쪽 벽에 붙은 화면 앞에 섰다. 「격추 집계」라는 제목 아래 조종사 여섯의 이름과 숫자가 있었다. 레아의 칸에는 사흘 동안 마흔둘, 오늘 밤 일곱이 적혀 있었고, 그 옆에 붉은 글씨로 「손실 1」이 있었다.
“노박 상병.”
“상병 노박.”
“사백십칠이 어디 있나?”
“흰샘 북쪽 일 킬로에서 연결이 끊겼습니다. 기체는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같다는 건 보고가 아니다.” 브로더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다섯 시 반에 흰샘 양수장을 되찾는다. 양수장 지붕에 베스트라 관측병 넷이 있다. 중대 전 기체가 나간다.”
컨테이너 안이 조용해졌다. 팬 소리가 갑자기 커진 것처럼 들렸다.
레아가 입을 열었다. 토마시가 의자 밑으로 레아의 발목을 찼다. 레아는 한 번 차였고, 그래도 말했다.
“다섯 시 반이면 해가 동쪽 능선 위로 올라와요. 우리 드론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날면 카메라가 해를 정면으로 봐요. 화면이 하얗게 타요. 일곱 시가 나아요. 그때는 해가 높아서…….”
“상병.” 브로더가 처음으로 레아를 보았다. 눈이 회색이었다. “전쟁은 게임이 아니다. 게임에는 다시 하기가 있지.”
“게임에도 다시 하기 없어요. 결승은.”
뒷줄에서 미로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코바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사령관님, 노박 상병은 시각을 말씀드린 겁니다. 일출 각도는 제가 다시 계산해서…….”
“계산은 내가 했다, 대위.” 브로더가 말을 잘랐다. “일곱 시면 베스트라 증원이 고원에 올라온다. 해가 정면이면 그쪽 관측병도 해를 정면으로 본다. 똑같은 조건이다.” 브로더는 털모자를 다시 썼다. “노박 상병이 맨 앞줄을 맡는다. 눈이 부신지 직접 보고 보고해.”
브로더가 사다리를 올라가자 찬 공기가 한 번 더 들어왔다가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끊겼다. 참모 하나가 내려놓고 간 종이에는 「0530 흰샘 탈환 · 제3 중대 선두 노박」이 인쇄되어 있었다.
“나 이거 건다.” 미로가 말했다. “사령관이 다음에 오면 레아한테 경례하는 거.”
“뭘 걸어?” 토마시가 물었다.
“컵라면 둘.”
“너 이미 일곱 개 빚졌어.”
“그러니까 걸지. 따면 다섯이잖아.”
*
컨테이너 문 옆 선반은 네 칸이었다. 맨 위 칸은 매운 소고기 맛, 둘째 칸은 해물, 셋째 칸은 김치, 맨 아래 칸은 순한 맛이었다. 맨 위 칸은 병장 이상, 둘째는 상병, 셋째는 일병, 맨 아래는 막내 몫이었다. 이 서열을 사흘 전 토마시가 정했다.
세 시에 일병 페트르 오소가 선반 앞에서 손을 멈췄다. 페트르는 스물둘이었고, 계급은 중대에서 제일 낮았지만 나이는 레아보다 둘 많았다.
“상병님은 막내니까 순한 맛 드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 상병이야. 해물 칸.”
“막내잖아요.”
“계급은 상병이잖아.”
둘이 동시에 토마시를 보았다. 토마시는 매운 소고기 맛 뚜껑을 뜯으며 말했다.
“서열은 계급이다. 나이는 사회에서나 따져.”
“그럼 제가 순한 맛…….” 페트르가 맨 아래 칸으로 손을 내렸다.
맨 위 칸 구석에는 매운 소고기 맛 하나가 따로 놓여 있었다. 뚜껑 위에 볼펜으로 「루」 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사흘 동안 아무도 그 컵을 옮기지 않았다. 토마시는 자기 컵에 물을 부으면서 그쪽을 보지 않았다.
*
새벽 네 시 이십 분, 레아의 화면 구석에서 점 하나가 깜빡였다. 「417 · 위치 신호」. 연결은 여전히 없었지만 드론이 언덕으로 돌아오면서 짧은 위치 신호만 보내고 있었다. 점은 고원의 마른 풀밭 위를 낮게, 아주 느리게 넘어왔다.
“돌아온다.” 레아가 일어섰다.
정비 하사 아다 세르게가 공구 가방을 어깨에 메고 먼저 사다리를 올라갔다. 아다는 스물일곱이었고, 정비칸 벽에 걸린 드론 쉰 대에 전부 번호 말고 이름을 붙여 두었다. 아다는 사람에게는 말을 짧게 했고 기계에게는 존댓말을 썼다.
지상은 아직 캄캄했다. 바르카 언덕의 풀은 무릎 높이였고, 서리를 맞아 밟을 때마다 바스락 소리를 냈다. 바람은 서쪽에서 왔다. 그 바람에는 멀리서 탄 고무 냄새가 실려 있었다. 레아는 숨을 쉴 때마다 콧속이 따가웠다.
드론은 언덕 꼭대기에서 삼십 미터 떨어진 풀밭에 내려앉아 있었다. 날개 넷 가운데 하나가 금이 갔고, 몸통에 흙이 묻어 있었다. 불빛은 꺼져 있었다. 아다가 쪼그려 앉아 손전등을 비추고 몸통을 손바닥으로 한 번 쓸었다.
“고생하셨어요.” 아다가 드론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레아를 보지 않은 채 덧붙였다. “꺼짐이.”
“이름이에요?”
“방금 지었어.”
*
다섯 시 삼 분, 꺼짐이의 기록이 레아의 화면에 펼쳐졌다. 연결이 끊긴 순간부터 돌아온 순간까지 다섯 시간 사십 분이었다. 레아는 빨리 감기를 눌렀다. 흰샘 북쪽의 풀밭이 화면 아래로 흘러갔고, 별이 없는 하늘이 위로 흘러갔다.
열한 시 십이 분에 레아가 손을 뗐다.
화면 왼쪽에 다른 드론 한 대가 있었다. 몸통 밑의 표식은 베스트라 것이었다. 그 드론도 연결을 잃은 듯 불빛 하나만 켜고 있었다. 두 대는 이십 미터 거리를 두고 같은 원을 그리며 돌았다. 꺼짐이의 조준 표시가 상대 드론 위에 떴다가, 붉어지지 않고 그대로 흐려졌다. 상대 드론도 꺼짐이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가 도로 폈다. 두 대는 그렇게 돌았다. 화면 구석의 시간이 열한 시 십이 분에서 열한 시 오십이 분으로 넘어갔다.
“사십 분.” 토마시가 레아 뒤에 와 서 있었다. “사십 분 동안 한 발도 안 쐈어. 둘 다 고장이야.”
“둘 다 고장 나서 둘 다 같은 원을 돌아요?”
토마시가 대답하지 않았다.
열한 시 오십이 분에 상대 드론이 원에서 벗어났다. 꺼짐이 앞으로 와서 멈췄고, 공중에서 8자를 그렸다. 한 번, 다시 한 번. 그리고 불빛을 세 번 깜빡였다. 짧게, 짧게, 길게.
레아의 손가락이 키보드에서 떨어졌다.
「하이브」는 고원에서 멀리 떨어진 중립국 미르니아의 게임 회사 솔렌 스튜디오가 만든 군집 전략 게임이었다. 선수 한 사람이 드론 수백 대를 지휘해 맞붙는 게임이었고, 국제 대회 결승은 수도의 체육관 하나를 꽉 채웠다. 그 게임의 선수들은 판을 시작할 때 자기 드론으로 8자를 두 번 그리고 불빛을 세 번 깜빡였다. 짧게, 짧게, 길게. 해설자들은 그것을 ‘판 시작 인사’라고 불렀다. 대회에 나가 본 사람이 아니면 그 깜빡임의 길이까지는 몰랐다.
“뭔데?” 토마시가 물었다.
레아는 대답 대신 되감기를 눌렀다. 상대 드론이 다시 8자를 그렸다. 첫 번째 8자는 왼쪽 고리가 조금 컸고, 두 번째 8자를 다 그리기 전에 오른쪽으로 날카롭게 한 번 꺾였다. 레아는 그 꺾임을 화면에 손가락을 대고 따라 그렸다.
컨테이너 천장의 스피커에서 코바치의 목소리가 나왔다. “다섯 시 이십 분. 전 기체 출격 준비. 선두 노박.”
레아는 꺼짐이의 기록을 끄지 않고 화면 구석으로 밀어 두었다. 그리고 열한 대가 기다리는 언덕 위 발사대로 눈을 옮겼다. 동쪽 능선이 회색으로 밝아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