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83자)

오라비

꿈에서 만나는 남녀북남 · 기담오

강유채는 유람선 난간을 잡은 손에 강물이 튀는 것을 느꼈다⁠. 4월 22일 정오⁠, 단둥 선착장을 떠난 유람선은 압록강 한가운데를 지나 북쪽 강둑으로 비스듬히 다가갔다⁠. 물보라가 차가웠다⁠. 꿈속 바닷가의 미지근한 물과는 달랐다⁠. 강물은 살갗을 찌르듯 차가웠고⁠, 흙냄새와 기름 냄새가 섞여 있었다⁠.

확성기에서 중국인 안내원이 한국말로 외쳤다⁠.

“⁠여러분⁠, 저기 북한 군인 있어요⁠! 손 흔들면 안 돼요⁠! 사진은 괜찮아요⁠! 사진 찍고 웃지 마세요⁠! 웃으면 저쪽이 기분 나빠요⁠!⁠”

갑판의 한국 관광객들이 일제히 휴대전화를 들었다⁠. 등산 모자를 쓴 아주머니들이 “⁠어머⁠, 진짜 군인이다⁠” “⁠말랐네⁠, 밥은 먹나⁠” 하고 떠들었다⁠. 유채 옆에는 민영의 요원이 서 있었다⁠. 요원은 형광 연두색 등산복에 챙 넓은 선캡을 쓰고 관광객인 척했다⁠. 관광객 누구보다 관광객 같았다⁠. 요원이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속삭였다⁠.

“⁠열한 시 방향⁠, 초소 앞 강둑⁠. 확인했습니다⁠.⁠”

유채는 이미 보고 있었다⁠. 갈대 사이 강둑에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마른 몸에 국방색 얼룩무늬 군복이 헐렁했다⁠. 모자 아래로 각진 턱이 보였다⁠. 거리가 백 미터도 되지 않았다⁠. 꿈에서는 손을 뻗으면 닿았는데⁠, 여기서는 강물이 둘 사이를 다 채우고 있었다⁠.

유채는 바람막이 주머니에서 붉은 수건을 꺼냈다⁠. 소방서에서 땀 닦을 때 쓰는 수건이었다⁠. 손을 높이 들자 수건이 바람에 펼쳐졌다⁠. 크게 한 번⁠, 작게 한 번⁠.

강둑의 남자가 모자를 벗었다⁠. 다시 쓰려다 말고 반쯤 들어 올린 채로 멈췄다⁠. 한 번 반이었다⁠.

유채는 웃음이 터졌다⁠. 웃음이 터지는데 눈이 뜨거워졌다⁠. 옆의 아주머니가 유채를 힐끔 보았다⁠.

“⁠아가씨⁠, 웃으면 안 된대⁠.⁠”

“⁠네⁠, 안 웃어요⁠.⁠”

유채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수건에서 소방서 세제 냄새가 났다⁠. 유람선이 뱃머리를 돌렸다⁠. 강둑의 남자 옆에 가죽 잠바를 입은 사내 하나가 쌍안경을 내리는 것이 보였다⁠. 사내는 이쪽을 보며 무엇인가를 말했다⁠. 남자가 짧게 대답했다⁠. 입 모양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선착장에 내리자 요원이 선캡 챙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얼굴이 햇볕에 벌겋게 익어 있었다⁠.

“⁠저 군인⁠, 소방장님 보고 모자를 반만 벗던데요⁠. 무슨 신호입니까⁠?⁠”

“⁠한 번 반이요⁠.⁠”

“⁠한 번 반⁠, 확인했습니다⁠. 뜻은 무엇입니까⁠?⁠”

“⁠한 번은 너무 적고 두 번은 너무 많다는 뜻이요⁠.⁠”

요원은 수첩을 꺼내 진지하게 적었다⁠. 적다가 펜을 멈추고 유채를 보았다⁠. 유채가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을 보고 요원도 처음으로 따라 웃었다⁠. 웃다가 휴대전화가 울려 화면을 보더니 표정이 굳었다⁠.

“⁠담당관님 문자입니다⁠. 서해에서 우리 어선이 북쪽에 붙잡혔답니다⁠. 제삼 해성호⁠, 선원 다섯⁠. 엔진 고장으로 경계선을 넘었답니다⁠.⁠”

유채는 강 건너 강둑을 돌아보았다⁠.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갈대만 바람에 한쪽으로 누워 있었다⁠. 3월 마지막 밤 북쪽에서 셋이 내려왔고⁠, 4월 끝에 남쪽에서 다섯이 올라갔다⁠. 바다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떠밀었다⁠.

*

오후 세 시⁠, 유채는 강변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공원 끝에서 오래된 철교가 강 한가운데까지 뻗어 나가다 뚝 끊겨 있었다⁠.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끊긴 다리였고⁠, 단둥 사람들은 부서진 철교를 관광지로 만들었다⁠. 끊긴 다리 끝에서 관광객들이 북쪽을 보며 사진을 찍었다⁠.

민영은 공원 건너편 찻집 창가에 앉아 있었다⁠. 요원은 선캡을 쓴 채 근처에서 솜사탕을 샀다⁠. 민영이 비행기에서 한 말은 하나였다⁠. 저쪽이 다가오면 이야기하세요⁠. 따라가지는 마세요⁠.

벤치 반대편 끝에 누군가 앉았다⁠. 가죽 잠바는 벗고 회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쉰 줄의 사내였다⁠. 손가락 사이에서 불붙지 않은 담배 한 개비가 굴렀다⁠.

“⁠어깨가 넓다더니 정말 넓구만⁠.⁠”

유채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오창익 소좌님이세요⁠?⁠”

“⁠광혁이가 이름을 알려 줬나 보다⁠. 너도 이름이 강유채지⁠. 마포 소방서 구조대⁠.⁠”

“⁠제 이름은 제가 알려 준 거예요⁠.⁠”

창익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이 짧고 낮았다⁠.

“⁠광혁이 말이 맞다⁠. 말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라더라⁠.⁠”

창익은 점퍼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 하나를 꺼냈다⁠. 봉투에서 사진을 꺼내 벤치 가운데에 내려놓았다⁠. 손바닥만 한 흑백 사진이었다⁠. 살구나무 앞의 소년과 소녀⁠. 소년의 손이 소녀의 어깨에 얹혀 있었다⁠. 둘 다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리영수⁠. 광혁이 할아버지다⁠. 아흔셋이다⁠. 누워서 산다⁠. 뒷면 봐라⁠.⁠”

유채는 사진을 집지 않고 고개만 숙여 뒷면을 보았다⁠. 창익이 사진을 뒤집어 주었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네 글자⁠.

「⁠영수 옥순⁠」⁠.

유채의 손이 무릎 위에서 굳었다⁠. 옥순⁠. 할머니가 문자 끝마다 붙이는 이름이었다⁠. 옥순이 할미가⁠.

“⁠가져가도 돼요⁠?⁠”

“⁠안 된다⁠. 이건 내 것도 네 것도 아니다⁠. 리영수 동지 것이다⁠. 사진은 찍어 가라⁠.⁠”

유채는 휴대전화를 꺼내 앞면과 뒷면을 찍었다⁠. 손이 떨려서 두 번 찍었다⁠. 창익은 사진을 봉투에 넣고 안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네 할머니한테 보여라⁠. 맞는지 아닌지만 알려 주면 된다⁠. 그리고 서민영한테 하나 전해라⁠.⁠”

“⁠뭘요⁠?⁠”

“⁠서덕환이 아직 살아서 술 마시면 딸 이름을 부른다는 소식⁠, 앞으로도 듣고 싶으면 단둥의 중개인 이름을 달라고⁠. 누가 누구를 얼음 위로 건네주고⁠, 누가 돈을 받는지⁠. 남쪽 기관은 다 안다⁠.⁠”

유채는 그제야 창익을 보았다⁠. 창익의 눈 밑 주름이 깊었다⁠. 웃지 않는 얼굴이었다⁠.

“⁠사람 건네주는 사람들 이름을 팔라고요⁠?⁠”

“⁠사람 버리는 사람들 이름이다⁠.⁠”

“⁠그걸 어떻게 가려요⁠?⁠”

창익은 끊긴 다리를 보았다⁠. 다리 끝에서 아이 하나가 북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엄마가 아이 손을 잡아 내렸다⁠.

“⁠스무 해 전 봄에 내 누이가 중개인을 따라 얼음 위로 나갔다⁠. 얼음이 갈라지니까 중개인은 혼자 뛰어서 이쪽으로 왔다⁠. 바로 저 근처다⁠. 나는 사흘 뒤 하구 갈대밭에서 누이를 건졌다⁠.⁠”

유채는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오므렸다⁠. 구조대에 들어온 뒤로 강에서 건진 사람이 몇인지 유채는 기억했다⁠. 다 기억했다⁠.

“⁠저도 작년에 한강에서 손 하나를 놓쳤어요⁠. 장마철이었어요⁠. 물이 가슴까지 왔는데⁠, 잡았던 손목이 미끄러졌어요⁠.⁠”

창익이 고개를 돌려 유채를 보았다⁠.

“⁠그 뒤로 가슴까지 오는 물에는 못 들어가요⁠. 그래도 물에 들어가는 사람을 막지는 않아요⁠. 들어가는 사람을 따라 들어갈 사람을 늘리지⁠.⁠”

“⁠말은 잘한다⁠.⁠”

“⁠소방관은 원래 말 잘해요⁠. 불난 데서 사람 설득하려면⁠.⁠”

창익은 담배 개비를 귀에 꽂고 일어났다⁠. 일어나다 말고 한마디를 보탰다⁠.

“⁠광혁이를 남쪽으로 데려가고 싶나⁠?⁠”

유채는 대답하지 못했다⁠. 창익이 유채의 얼굴을 한참 보았다⁠.

“⁠귀가 빨갛구만⁠. 광혁이도 그렇다⁠. 둘이 똑같다⁠.⁠”

창익은 공원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출구 앞에 중국 공안 차 한 대가 멈춰 있었다⁠. 창익은 공안 차 옆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다⁠. 공안이 창익을 보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

호텔 방에서 민영은 유채의 휴대전화 화면을 확대했다 줄였다 했다⁠. 사진 속 소녀의 얼굴⁠, 뒷면의 네 글자⁠. 요원은 선캡을 벗지도 않고 침대 끝에 앉아 솜사탕을 먹었다⁠.

“⁠할머니 성함이 이옥순이시죠⁠.⁠”

“⁠어떻게 알아요⁠?⁠”

“⁠처음 만난 날 다 찾아봤어요⁠. 신의주 출생⁠, 1950년 월남⁠, 1959년 강씨 집안에 시집⁠.⁠”

민영은 화면을 끄고 유채에게 돌려주었다⁠. 유채는 창익이 전하라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중개인 이름⁠. 민영의 볼펜이 수첩 위에서 멈췄다⁠. 딸깍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안 돼요⁠.⁠”

유채가 먼저 말했다⁠. 민영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볼펜 소리가 안 나잖아요⁠. 담당관님 볼펜은 할 말이 있을 때만 조용해요⁠.⁠”

민영은 볼펜을 내려다보다가 한 번 눌렀다⁠. 딸깍⁠.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창가로 갔다⁠. 창 너머로 강이 검게 흘렀다⁠. 강 건너 신의주에는 불빛이 드문드문했다⁠. 민영은 창에 이마를 대고 오래 서 있었다⁠. 휴대전화가 울리자 민영은 이마를 떼고 받았다⁠.

“⁠네⁠, 차장님⁠. 사진 확인했습니다⁠. 이산가족 쪽으로 보입니다⁠. 네⁠. 할머니는 아흔이십니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민영이 몸을 돌렸다⁠. 아까보다 얼굴이 단단해져 있었다⁠.

“⁠차장님이 할머니를 궁금해하세요⁠.⁠”

“⁠우리 할머니를 왜요⁠?⁠”

“⁠남과 북이 지금 아무 말도 안 해요⁠. 그런데 아흔 살 할머니와 아흔세 살 할아버지가 만나는 일이라면⁠, 양쪽 다 거절할 핑계가 없어요⁠. 말을 다시 트기 좋은 일이에요⁠.⁠”

“⁠우리 할머니가 말 트는 데 쓰는 문고리예요⁠?⁠”

민영은 대답하지 않고 볼펜을 한 번 눌렀다⁠. 딸깍⁠.

*

밤 열 시⁠, 유채는 욕실 문을 닫고 변기 뚜껑 위에 앉아 영상 통화를 걸었다⁠. 할머니는 신호가 다섯 번 가서야 받았다⁠. 화면에 할머니 콧구멍이 크게 나왔다⁠.

“⁠할머니⁠, 화면 좀 멀리⁠.⁠”

“⁠이렇게⁠?⁠”

이번에는 천장이 나왔다⁠. 형광등이 화면 가득 비쳤다⁠.

“⁠할머니 얼굴이 안 보여⁠.⁠”

“⁠니가 보면 됐지 내 얼굴은 왜 봐⁠. 왜 전화했냐⁠. 중국은 밥이 기름지냐⁠?⁠”

“⁠할머니⁠, 사진 하나 보낼게⁠. 봐 봐⁠.⁠”

유채는 사진 두 장을 보냈다⁠. 화면 너머에서 할머니가 안경을 찾는 소리가 났다⁠. 서랍 여는 소리⁠,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 “⁠이놈의 안경⁠” 하는 소리⁠. 할머니 얼굴이 화면에 돌아왔다⁠. 돋보기안경을 쓰고 휴대전화를 코앞에 바짝 댔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욕실 환풍기가 웅웅 돌았다⁠. 유채는 숨을 참았다⁠. 할머니의 입술이 한 번 달싹였다가 다물어졌다⁠. 주름진 손가락이 화면 위를 더듬었다⁠. 사진 속 소년의 얼굴 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살구나무다⁠.⁠”

할머니가 말했다⁠. 목소리가 아주 작았다⁠.

“⁠남민동 우물가 살구나무⁠. 사진사가 웃으라 했는데 오라비가 안 웃어서 나도 안 웃었다⁠.⁠”

“⁠할머니⁠.⁠”

“⁠내 오라비다⁠. 영수 오라비⁠.⁠”

할머니가 손등으로 안경 밑을 훔쳤다⁠.

“⁠살아 있냐⁠?⁠”

“⁠살아 계셔⁠. 아흔셋이래⁠. 누워 계신대⁠.⁠”

할머니는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면 너머에서 할머니의 숨소리만 들렸다⁠. 길게 들이쉬고 길게 내쉬는 숨이었다⁠. 유채는 할머니가 숨을 쉬는 소리를 그렇게 오래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 사진 니가 어디서 났냐⁠?⁠”

“⁠할아버지 손자를 내가 알아⁠.⁠”

“⁠어떻게⁠?⁠”

“⁠말하면 길어⁠.⁠”

“⁠길면 짧게 해라⁠. 구십 먹은 늙은이는 긴 얘기 들을 시간이 없다⁠.⁠”

“⁠꿈에서 만나⁠.⁠”

할머니는 놀라지 않았다⁠. 돋보기 너머에서 눈을 끔벅였을 뿐이었다⁠.

“⁠영수 오라비 손자가 니 꿈에 나와⁠?⁠”

“⁠응⁠.⁠”

“⁠생긴 건⁠?⁠”

“⁠말랐어⁠. 턱이 각졌고⁠. 웃을 때 소리를 안 내⁠.⁠”

할머니가 콧소리를 냈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였다⁠.

“⁠그 집 내림이다⁠.⁠”

유채는 변기 뚜껑 위에서 손가락을 접었다⁠. 할머니의 오라비가 광혁의 할아버지였다⁠. 할머니의 아들이 아버지였고⁠, 광혁의 할아버지의 아들이 광혁의 아버지였다⁠. 아버지와 광혁의 아버지는 사촌이었다⁠. 손가락 하나를 더 접었다⁠. 사촌의 자식끼리⁠.

육촌⁠.

손가락을 접은 주먹이 무릎 위에서 떨렸다⁠. 꿈속에서 맞댔던 손끝⁠, 차갑고 거친 손가락 다섯 개가 주먹 안에서 따끔했다⁠. 화면 너머에서 할머니가 사진 속 소년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쓸고 또 쓸었다⁠. 욕실 환풍기는 계속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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