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48자)

붉은 수건

꿈에서 만나는 남녀북남 · 기담오

리광혁은 집 앞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아궁이 연기 냄새를 맡았다⁠. 4월 16일 저녁이었다⁠. 신의주 강 하구 쪽 낮은 집들 사이로 골목이 구불구불 이어졌고⁠,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골목 어귀에 창익의 지프가 시동을 끈 채 멈춰 있었다⁠. 운전병이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며 광혁의 등을 보고 있었다⁠.

“⁠하룻밤이다⁠. 내일 새벽 다섯 시에 데리러 온다⁠.⁠”

신문실을 나서기 전 창익은 그렇게 말했다⁠. 왜 보내 주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광혁도 묻지 않았다⁠. 할아버지 약이 이번 달 것까지만 남았다는 말을 창익에게 한 적이 있었다⁠. 창익은 들은 말을 잊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엌문을 열자 어머니가 부지깽이를 든 채로 돌아보았다⁠. 예순둘의 어머니는 광혁을 위아래로 훑더니 부지깽이로 아궁이 속을 탁 쳤다⁠.

“⁠또 말랐다⁠. 보위부에서 밥을 안 주나⁠?⁠”

“⁠국수 줍네다⁠.⁠”

“⁠무슨 국수⁠?⁠”

“⁠맛없는 국수⁠.⁠”

어머니는 혀를 차고 솥뚜껑을 열었다⁠. 김이 확 올라왔다⁠. 강냉이밥 위에 감자 세 알이 얹혀 있었다⁠. 집에서는 세 알이었다⁠. 어머니는 제일 큰 감자를 광혁의 그릇에 올리고⁠, 두 번째로 큰 것을 할아버지 그릇에 올렸다⁠.

“⁠동네에 소문 다 났다⁠. 니가 꿈에서 남쪽 색시를 만난다고⁠.⁠”

광혁은 감자를 목에 걸릴 뻔했다⁠. 물을 마셨다⁠.

“⁠누가 그럽네까⁠?⁠”

“⁠보위부 복도에서 경비 서는 아이가 우리 옆집 손자다⁠. 감자보다 진한 머리라더라⁠. 감자보다 진하면 뭐냐⁠, 고구마냐⁠?⁠”

“⁠어머니⁠.⁠”

“⁠색시 키는 몇이냐⁠?⁠”

“⁠나보다 큽네다⁠.⁠”

어머니는 숟가락을 멈추고 광혁을 한참 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다⁠. 니 아버지도 나보다 작았다⁠.⁠”

*

할아버지 방은 부엌 뒤 작은 방이었다⁠. 창이 하나⁠, 이불 한 채⁠, 벽에 걸린 낡은 털모자⁠. 리영수는 아흔셋이었다⁠. 이불 밖으로 나온 손이 나뭇가지처럼 말랐고⁠, 숨을 쉴 때마다 가슴께의 이불이 조금씩 오르내렸다⁠. 할아버지는 하루 대부분을 눈을 감고 지냈다⁠. 말은 하루에 몇 마디 하지 않았다⁠.

광혁은 할아버지 머리맡에 앉아 숟가락으로 미음을 떠 넣었다⁠. 할아버지는 세 숟갈을 받아먹고 고개를 돌렸다⁠.

“⁠할아버지⁠, 남민동에 아는 사람 있었습네까⁠?⁠”

광혁은 왜 남민동을 묻는지 저도 몰랐다⁠. 유채의 목소리가 귀에 남아 있었다⁠. 남민동⁠, 압록강 보이는 동네⁠.

할아버지가 눈을 떴다⁠. 탁한 눈동자가 천장을 한참 헤매다 광혁에게 왔다⁠.

“⁠남민동⁠.⁠”

“⁠예⁠.⁠”

“⁠순아⁠.⁠”

할아버지의 손이 이불 밖으로 기어 나와 베개 밑을 더듬었다⁠. 광혁이 베개를 들어 주자 할아버지는 손때 묻은 군용 수첩 하나를 꺼냈다⁠. 표지 가죽이 다 닳아서 실밥이 드러나 있었다⁠. 할아버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수첩을 펼쳤다⁠. 갈피에 사진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손바닥만 한 흑백 사진이었다⁠. 꽃이 핀 살구나무 앞에 아이 둘이 서 있었다⁠. 열다섯쯤 된 소년이 짧은 머리에 눈썹이 짙었고⁠, 열두어 살 된 소녀는 단발머리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소년의 손이 소녀의 어깨에 얹혀 있었다⁠. 둘 다 웃지 않았다⁠. 사진사가 웃으라 했는데 안 웃은 얼굴이었다⁠.

뒷면에 연필로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영수 옥순⁠」⁠.

“⁠남쪽 간 내 동생이다⁠. 옥순이⁠.⁠”

할아버지는 숨을 몰아쉬며 사진을 광혁의 손에 쥐여 주었다⁠.

“⁠찾으면 이거 보여 줘라⁠.⁠”

“⁠어떻게 찾습네까⁠?⁠”

“⁠니가 찾는다며⁠. 꿈에서⁠.⁠”

할아버지는 말을 마치고 눈을 감았다⁠. 광혁은 사진을 든 채로 오래 앉아 있었다⁠. 옥순⁠. 유채의 할머니 이름은 들은 적이 없었다⁠. 물으면 될 일이었다⁠. 다음 꿈에서 한마디면 될 일이었다⁠. 광혁은 사진을 군복 가슴 주머니에 넣고 단추를 채웠다⁠. 단추 하나를 채우는 동안 손가락이 여러 번 미끄러졌다⁠.

*

새벽 네 시 반⁠, 어머니가 부엌에서 삶은 달걀 두 개를 광혁의 손에 쥐여 주었다⁠. 달걀은 아직 뜨거웠다⁠.

“⁠하나는 니 먹고⁠, 하나는 색시 줘라⁠.⁠”

“⁠꿈에는 아무것도 못 가지고 갑네다⁠.⁠”

“⁠기럼 니가 두 개 다 먹고 색시한테 맛있었다고 말해 줘라⁠.⁠”

어머니는 광혁의 군복 깃을 바로잡아 주고 등을 두 번 두드렸다⁠. 광혁은 달걀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가 따뜻했다⁠.

*

새벽 다섯 시⁠, 창익은 지프에서 내리지 않고 운전병을 시켜 광혁을 불렀다⁠. 광혁이 골목으로 나가자 창익이 차창을 내렸다⁠.

“⁠가슴 주머니⁠.⁠”

광혁은 걸음을 멈췄다⁠. 창익은 차창에 팔을 걸치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네 어머니가 옆집에 자랑하더라⁠. 할아버지가 손자한테 보물을 줬다고⁠. 이 동네는 담이 낮다⁠.⁠”

“⁠할아버지 사진입네다⁠.⁠”

“⁠안다⁠. 그러니까 달라는 거다⁠.⁠”

광혁은 단추를 풀지 않았다⁠. 창익이 차 문을 열고 내려왔다⁠. 둘은 골목 한가운데에서 마주 보았다⁠. 동네 개 한 마리가 담 밑에서 고개를 들었다가 도로 묻었다⁠.

“⁠남쪽 여자 할머니가 남민동 출신이라더라⁠. 네 입으로 나한테 말했다⁠.⁠”

“⁠말했습네다⁠.⁠”

“⁠네 할아버지는 남쪽으로 보낸 누이가 있고⁠. 이 사진이 그 누이라면⁠, 이건 사진이 아니다⁠. 줄이다⁠. 강 건너 단둥에서 그 여자 손에 이걸 쥐여 주면⁠, 남쪽 할머니가 움직이고⁠, 남쪽 할머니가 움직이면 서민영이 움직인다⁠.⁠”

“⁠그러면 소좌 동지는 뭘 얻습네까⁠?⁠”

“⁠중개인 이름⁠.⁠”

“⁠사진 돌려주지 않으면 저는 안 잡네다⁠. 세 시 십 분에도⁠, 다른 시각에도⁠.⁠”

창익은 웃지 않았다⁠. 담배 개비를 꺼내 손가락 사이에서 굴렸다⁠.

“⁠안 자면 꿈은 끊긴다⁠. 꿈이 끊기면 나는 쓸 데가 없는 하사를 하나 데리고 있는 거다⁠. 쓸 데 없는 하사의 박가 진술은 서랍에 오래 못 있는다⁠. 철민이 전화기도⁠.⁠”

광혁은 주먹을 쥐었다⁠. 창익은 기다렸다⁠. 강가에서 기다려 본 사람의 기다림이었다⁠. 광혁이 강가에서 배운 것과 같은 기다림이었다⁠.

“⁠그리고 네가 안 자도 그 여자는 단둥에 온다⁠. 저쪽 담당관이 비행기 표를 끊었다며⁠. 그것도 네 입으로 말했다⁠.⁠”

광혁은 단추를 풀었다⁠. 사진을 꺼내 창익의 손바닥에 올렸다⁠. 창익은 사진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가죽 잠바 안주머니에 넣었다⁠.

“⁠잘 간수하마⁠. 네 할아버지 것이다⁠.⁠”

*

창익은 광혁을 신문실이 아닌 초소로 데려다 놓았다⁠. 남쪽 여자가 유람선에서 초소를 보려면 초소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철민은 광혁을 보자마자 뛰어나와 경례를 붙이더니⁠, 경례한 손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하사님⁠, 드릴 말씀이 있습네다⁠.⁠”

“⁠말하라⁠.⁠”

“⁠소좌 동지가 저보고 하사님을 지켜보라 했습네다⁠. 하사님이 밤에 무슨 잠꼬대를 하는지⁠, 낮에 강을 몇 번 보는지 다 적어 바치라 했습네다⁠.⁠”

“⁠기래서⁠?⁠”

“⁠저 글씨를 잘 못 씁네다⁠.⁠”

철민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를 꺼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몇 줄이 적혀 있었다⁠. 「⁠사월 십칠일⁠. 하사님 강 열한 번 봄⁠. 감자 반 나눠 줌⁠. 잠꼬대 없음⁠. 코 곪⁠.⁠」

“⁠코 고는 건 왜 적었나⁠?⁠”

“⁠적을 게 없어서 적었습네다⁠.⁠”

광혁은 웃음을 참으려다 실패했다⁠. 철민도 따라 웃다가 갑자기 울상이 되었다⁠.

“⁠하사님⁠, 저 이거 바쳐야 합네까⁠?⁠”

“⁠바치라⁠. 있는 대로 적어서⁠.⁠”

“⁠하사님이 남쪽 여자 얘기할 때 귀 빨개지는 것도 적습네까⁠?⁠”

“⁠그건 적지 말라⁠.⁠”

초소 라디오에서 저녁 방송이 흘러나왔다⁠. 서해 경계선을 넘어 들어온 남쪽 어선 한 척을 해군이 붙잡았다는 소식이었다⁠. 선원은 다섯이라고 했다⁠. 철민이 “⁠남쪽 사람들도 배가 자꾸 길을 잃습네다⁠” 하고 중얼거렸다⁠. 광혁은 라디오를 끄지 않고 오래 들었다⁠.

*

4월 20일 새벽 세 시 십 분⁠, 바닷가에서 광혁은 사진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가 베개 밑에서 사진을 꺼냈다고⁠, 소년과 소녀가 살구나무 앞에 서 있다고⁠, 소좌가 사진을 가져갔다고⁠. 철조망은 무릎 높이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다 참말이었다⁠.

“⁠할아버지 누이예요⁠?⁠”

“⁠할아버지는 동생이라 했다⁠.⁠”

“⁠이름은요⁠?⁠”

광혁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뒷면의 네 글자가 눈앞에 떠올랐다⁠. 이름을 말하면 유채가 무슨 얼굴을 할지 몰랐다⁠. 모르는 얼굴을 보는 일이 무서웠다⁠. 광혁은 다른 말을 했다⁠.

“⁠단둥에서 소좌가 너한테 그 사진을 보일 거다⁠.⁠”

“⁠그럼 그때 볼게요⁠.⁠”

유채는 더 묻지 않았다⁠. 광혁은 그게 고마웠고⁠, 고마운 게 부끄러웠다⁠.

둘은 신호를 정했다⁠. 유채는 유람선 난간에서 붉은 수건을 흔든다⁠. 소방서에서 쓰는 붉은 수건이 있다고 했다⁠. 광혁은 초소 앞 강둑에 나와 모자를 한 번 벗었다가 쓴다⁠.

“⁠모자만 벗어요⁠? 손은 안 흔들어요⁠?⁠”

“⁠초소병이 유람선에 손을 흔들면 그날로 끝이다⁠.⁠”

“⁠그럼 모자 두 번 벗어요⁠.⁠”

“⁠한 번⁠.⁠”

“⁠두 번⁠.⁠”

“⁠한 번 반⁠.⁠”

유채가 물을 걷어찼다⁠. 물방울이 광혁의 얼굴에 튀었다⁠. 광혁은 얼굴을 닦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물이 따뜻했다⁠.

*

4월 22일 정오⁠, 광혁은 초소 앞 강둑에 서 있었다⁠. 햇빛이 강물 위에서 잘게 부서졌다⁠. 강 건너 단둥 선착장에서 하얀 유람선 한 척이 뱃고동을 울리며 떠났다⁠. 갑판에 사람들이 빽빽했다⁠. 확성기에서 중국 노래가 흘러나왔다⁠. 바람을 타고 노래가 강둑까지 건너왔다⁠.

유람선이 다가오기 전에 창익이 먼저 말을 꺼냈다⁠. 강을 보면서였다⁠.

“⁠강 건너 사람들은 우리를 구경한다⁠. 우리는 강을 구경한다⁠. 스무 해를 봤는데도 저 배가 지나갈 때마다 저쪽 얼굴들을 하나씩 본다⁠. 혹시 아는 얼굴이 있나 해서⁠.⁠”

“⁠누이 동지 얼굴입네까⁠?⁠”

“⁠누이는 갈대밭에서 찾았다⁠. 아는 얼굴이 저 배에 있을 리 없지⁠.⁠”

창익은 쌍안경을 눈에 댔다가 내렸다⁠.

“⁠오늘 저 여자를 보고 나면 나는 오후에 강을 건넌다⁠. 단둥에 볼일이 있다⁠.⁠”

“⁠그 여자를 만납네까⁠?⁠”

“⁠사진을 보여 줄 거다⁠. 네 할아버지 소원 아니냐⁠.⁠”

“⁠소좌 동지 소원이기도 합네다⁠.⁠”

창익은 대답 대신 담배 개비를 귀에 꽂았다⁠. 광혁은 창익이 처음으로 말문이 막혔다는 것을 알았다⁠. 강바람이 둘 사이로 지나갔다⁠.

창익은 광혁 옆에 그대로 있었다⁠. 목에 쌍안경을 걸고⁠, 담배는 입에 물지 않고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있었다⁠. 철민은 초소 문간에서 반쯤 숨어 고개만 내밀었다⁠.

유람선이 강 한가운데를 지나 이쪽으로 비스듬히 다가왔다⁠. 갑판의 얼굴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를 든 손들이 이쪽을 향했다⁠. 모자를 쓴 아주머니들⁠, 선글라스를 쓴 남자들⁠, 어깨에 아이를 태운 사내⁠.

난간 끝에 키 큰 여자가 서 있었다⁠. 갈색 머리를 하나로 묶었고⁠,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었다⁠. 남색 바람막이 앞자락이 바람에 펄럭였다⁠. 여자는 다른 사람들처럼 휴대전화를 들지 않았다⁠. 대신 한 손을 높이 들었다⁠. 손끝에서 붉은 수건이 바람에 펼쳐졌다⁠.

광혁은 숨을 멈췄다⁠. 꿈에서 본 얼굴보다 조금 더 그을려 있었다⁠. 꿈에서는 맨발이었는데 저기서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꿈에서는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였는데 저기는 강 한가운데였다⁠. 붉은 수건이 크게 한 번⁠, 작게 한 번 흔들렸다⁠.

광혁은 모자를 벗었다⁠. 쓰려다 말고 반쯤 들어 올린 채로 멈췄다⁠. 한 번 반이었다⁠.

옆에서 창익이 쌍안경을 내렸다⁠. 쌍안경 끈이 창익의 목에서 흔들렸다⁠.

“⁠저 여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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